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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뱀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옥희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평점 :
그녀에 대한 몇몇 주변인들의 극찬으로 요시모토 바나나 전작주의자가 되겠노라 마음먹으며 지금까지 출간된 그녀의 몇몇 소설들을 한꺼번에 사들였던 적이 있다. 불과 두 달 전쯤의 일이었던가. 책에 대한 욕심은 많아가지고 이것저것 또 신작도서들을 주워담다보니 그녀의 책들이 자꾸만 뒤로 밀리고 밀리고 하여 결국 몇권 읽지 못했다. 지금껏 읽은 그녀의 책은 <불륜과 남미> <몸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하드 보일드 하드럭> 그리고 이번에 읽은 <도마뱀> 까지 네 권. 아직 <키친> <하치의 마지막 연인> <암리타> <허니문> <티티새> <하얀 강 밤배> 이렇게 6권이 남아있다. 지금까지는 굿.
그녀의 소설은 사소한 일상에 대해 포근히 감싸주는 무언가가 있다. 지치고 상처받고 아프고 쓰라리고 넋이 나간 그 순간에, 누군가 나를 도와줬으면 좋겠는, 나에게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줬음 하고 바랄 즈음에, 살며시 나의 상처를 아픔을 어루만져주고 포근히 안아준다. 지금까지 읽은 네 권의 책 모두 그러했고, 아직 읽지 않은 여섯권의 책도 그와 비슷한 구도와 형식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녀의 소설들이 다 그렇듯 <도마뱀> 역시 몇 편의 짧은 소설들이 묶여져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신혼부부' '도마뱀' '나선' '김치꿈' '피와 물' '오카와바타 기담' 이라는 여섯편의 짧은 소설들. 이 소설들은 모두 1990년에서 93년 사이에 그녀가 각각 다른 매체를 통해 발표한 소설들로 비슷한 소재와 메세지를 담고 있어 한권으로 묶여졌다.
지치고 지루하고 상처받은 일상 속에 내던져진 개인에 대한 치유와 보듬음. 모두 다 다른 소재와 줄거리를 담고 있지만 여섯편의 소설은 배다른 형제의 관계를 맺고 있다. 각각의 소설은 모두 쓰러질 듯한 상처받은 개인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것으로 시작해 결국 그들이 누군가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고 다시 삶의 희망을 갖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녀의 소설은 마치 상처받은 영혼에 대한 치유의 주술과 같다. 영혼을 달래준다. 그리고 희망을 불어넣어준다. 다시 일어설수있도록.
때로는 비정상적이게 보이는, 우리와 달라 보이는 개인을 설정해놓기도 하지만, 결국 소설 속 주인공과 우리는 다르지 않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지루한 일상이 기다리는 가정으로 돌아가기 싫어하는 남자도, 동성애와 그룹섹스에 자신의 몸을 내던져 육체를 탐닉한 그녀도 결국 우리와 다르지 않다.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은 상처받은 영혼이다. 종류는 다를지언정 누구나 내면에 상처를 안고 살아가며 때로는 그 상처를 부정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소설 속의 그들과 우리를 '다르다'고 규정지어버리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코 다르지 않다. 그들도 우리도 상처받기는 마찬가지다. 그리고 상처를 치유하기를 원하고 다시 궤도위에 올라서기를 희망한다.
그녀는 사건을 터뜨리고 줄거리를 진행시키기보다 정지된 화면 속의 세밀한 묘사를 통해 소설을 진행시킨다. 무엇을 그렸는지 알 수 없는 추상화를 보는 것처럼 알 수 없는 이미지를 만들고 한 장 두 장 그림을 넘긴다. 끝까지 그림이 다 넘어가고 나면 나는 한층 나아진 나의 편안한 마음과 안식을 얻는다.
그녀의 소설은 중독성이 강하다. 내 마음을 꿰뚫어보며 가슴을 어루만져주고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준다. 그래서 자꾸 찾게 된다. 처음의 상처는 치유됐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나는 또다른 상처를 받고 괴로워하기 때문에. 그 다음에는 또 어떤 이야기 속에서 나를 발견할지 기대된다. 다음 작품은 어떤 것을 선택해볼까. 이야기를 모른 채 남아있는 그녀의 다른 작품들을 무작위로 선택하는 것도 또다른 재미.
한 마디 : 아직 안읽은 많은 책들 중에 <도마뱀>을 선택한 것은 최근 봤던 영화 <도마뱀>과 혹시 연관이 있을까 해서였다. 아니었다. 내용이 달랐다. 영화 속의 그 내용은 그녀의 소설 <도마뱀>과는 달랐다. 하지만 다른 이야기 속에서 같음을 발견했다. 영화 <도마뱀>도, 소설 <도마뱀>도, 한 상처받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었다. 혹시 소설 속 내용을 영화로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기대를 갖고 봤고 그 기대를 저버리긴 했지만 영화와 소설 속에서 나름대로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어 더 좋았던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