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드팀전 > 즐거운 제국
제국 이학문선 1
안토니오 네그리 & 마이클 하트 지음, 윤수종 옮김 / 이학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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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함은 물처럼 존재한다.불행은 해처럼 떠오른다.

그리고 인간은 인간을 뜯어먹는다.물고기가 물고기를 잡아먹듯이 

 .......    브레히트의 <이기주의자 요한 팟저의 몰락> 중에서

<제국>을 읽기 전에 '제국 논쟁'을 접했다.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2차 저작이나 논쟁은 훨씬 다층적이고 복잡하다.딸기를 먹는 것은 쉽지만 딸기 케이크 레서피를 읽는 것은 어려운 것 처럼.<진보평론>을 중심으로 펼쳐진 '제국 논쟁'을 다 따라가는 것은 처음부터 역부족이었다.책이 번역된 후 국내외 세계 체제론자 또는 트로츠키주의를 포함한 범좌파의 '제국' 비판과 자율주의자들의 반비판이 이어졌다.그러나 국내에서 '제국 논쟁'은 정점을 지난 듯 하다.인터넷 한 구석에서는 '제국 논쟁'의 잔불마저 꺼져버린 것을 아쉬워하는 글들도 가끔 찾을 수 있다.

일단 <제국>을 읽고자 하는 이들에게 <제국 논쟁>을 먼저 읽지는 말라고 권하고 싶다.<제국> 자체도 결코 만만한 내용이 아니다.거기에 주요 개념들에 대한 상이한 해석과 비판의 전체적 맥락까지 알아야 이해가 되는 <제국 논쟁>은 머리털 밑 신경세포를 괴롭히는 일이다.

선행과정이 좀 지저분해졌지만 <제국>을 읽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이다.물론 내용과 개념을 이 잡듯이 이해하려고 달려든다면 또 다른 편두통의 원인이 될 것이다.조금 너그러운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이해하고 그렇지 못한 부분은 적당히 넘겨가면서 보는 유연성도 필요하다.<제국>을 읽는게 무슨 수학 정석의 미적분의 공식을 적어내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필요한 도구들은 있다.사회과학적 관심과 상상력,그리고 졸음을 이겨낼 정도의 끈기말이다.

<제국>으로 들어가자.도대체 <제국>이란 무엇인가? 내가 이 책을 들고 다녔더니 회사차 운전하는 기사 아저씨가 그런다. "어..제국...음..무슨 대하 무협 소설인가 본데 ".. 생각해보니 그럴 법도 하다.네그리는 제국의 기본 가설을 이렇게 말한다."주권이 단일한 지배 논리하에 통합된 일련의 일국적 기관들과 초국적 기관들로 이루어진 새로운 형태를 띠어 왔다는 것.이러한 새로운 전지구적 주권 형태를 제국 이라고 부른다"

네그리는 맑시즘을 주권개념으로 이해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어쨋거나 쉽게 생각해서 '제국'은 세계화된 어떤 힘이다.과연 이런게 있을까 하고 싶을때는 상상력을 동원해서 끌고 가자.전지구적 주권형태가 없다라는 것도 '제국 비판' 의 하나인데 그걸 물고 늘어지면 진도 안나간다.<제국>이란 것이 아주 독특한 것은 안과 밖이 없다는 것이다.그러니까 세상은 거대한 어항이고 그 어항은 물로 가득차 있다.우리들은 물고기인셈이다.제국의 바깥이 없다는 것은 이 체제 안에서 무슨 짓을 해도 다 <제국>의 범주안에 포섭된다는 것이다.이것도 이해 안된다고 할 사람들이 많다.네그리가 드는 예를 보자면 수많은 국제적인 NGO들도 결국엔 <제국>을 땡실 땡실하게 만들어주는 개량적 제도들일 뿐이다.좀 더 나가면 네그리는 제 1세계와 제 3세계의 구분도 없고 남과 북의 구분도 없다고 말한다.역사적으로 없었던 것이 아니라 제국적 이행과정에서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기존 좌파들의 전략에 대한 네그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전지구화에 대한 저항과 국지성 방어라는 이러한 좌파적 전략은 많은 경우에 국지적 정체성으로 나타나는 것이 자율적이거나 자기 결정적이지 않고 실제로는 자본주의적 제국 기계의 발전에 연료를 공급하고 그 발전을 지지하기 때문에 해롭기도 하다.국지적 저항전략은 적을 잘못확인하고 그래서 적을 감춘다.오히려 적은 우리가 제국이라고 부르는 전지구적 관계들의 특정한 체계이다.

이미 할 비판하고 싶은 이야기가 목구멍까지 가득차 있을 것이다.그렇지만 비판은 수첩 속에 적어 놓고 계속 상상력을 동원하여 진도를 빼야한다.

아..한편에서는 상식적으로(특히 반미정서가 높은 우리에게 소구력이 있는 것인데) 미국이 제국 아니냐고 말한다.그러나 이들은 단호히 어느 특정 국민국가도 제국이 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제국으로의 이행은 근대적 주권의 황혼기에 나타난다.제국은 개방적이고 팽창하는 자신의 경계안에 지구적 영역 전체를 점차 통하하는 탈중심화되고 탈영토화 하는 지배장치이다.제국주의적 세계 지도에서 몇 가지로 구분됐던 국가의 색깔들은 제국적인 전지구적 무지개 속에서 합쳐지고 섞일 것이다.미국은 제국주의적 기획의 중심을 형성하지 않으며 진정으로 어떤 국민국가도 오늘날에는 제국주의적 기획의 중심을 형성할 수 없다.미국의 연방헌법과 미국이라는 나라의 예외성은 '제국'적 속성(제국주의적이 아닌)을 지닌다.네그리는 로마제국의 권력체계를 인용한다.미국은 출발선상에서 공화주의적 마키아벨리 전통과 연결된다.특히 폴리비우스의 제국적 로마 모델을 따른다.군주정,귀족정.민주정의 3원분립은 팽창성을 특징으로 한다.하지만 미국의 제국주의적 속성이 제국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최소한 제국이 땅덩어리가 있는 국민국가적 상상력은 벗어난 일이란 것은 짐작할 수 있을것이다.(과연 그것의 현실성은 떼어놓고 보면 말이다.)

네그리는 <제국>을 기획하기 위해 선배 철학자들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스피노자,마키아벨리,맑스,푸코,들뢰즈와 가타리가 자주 언급된다.그중 가장 먼저 꼽아야 사람은 스피노자이다.그는 스피노자의 '내재성' 개념을 차용한다.그리고 다음으로 푸코의 '생체정치학'은 인용한다.푸코는 '훈육사회'와 '통제사회'를 구분하였다.<제국>의 이행은 통제사회로의 이행선상에 있다.제국의 지배대상은 사회생활 전체이며 따라서 제국은 전형적인 생체 권력 형태를 나타낸다.개인들에 대한 사회의 통제는 의식이나 이데올로기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체속에서 그리고 신체와 함께 이루어지기도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제국>은 닫힌 체계이고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하는 물고문같은 것이다.그러나 <제국>기획은 그게 목적이 아니다.탈출구가 있고 전복의 가능성이 훨씬 많이 열려있다.네그리와 하트는 그래서 <제국>을 더 밀고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그렇다면 어디에 전복의 가능성이 있는 것일까? 정답은 <제국> 그 자체가 스스로를 붕괴시킬 답을 안고 있다.제국은 제국 자신이 지닌 일반법칙에 의거해서만 그리고 제국이 제공하는과정들이 지닌 현재의 한계들을 넘어 그 과정들을 밀어붙일 때에만 효과적으로 논의 될 수 있다.우리는 그러한 도전을 받아들여야만 하고 전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전지구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배워야만 한다.전지구화는 틀림없이 대항 전지구화와 만날 것이며 제국은 틀림없이 대항 제국과 만날 것이다.

네그리와 하트가 열나게 인용하는 연구도 있는 반면 <제국>을 이해하기 위해 배격하는 것도 있으니 흔히 말하는 유럽 형이상학의 족보들이다.데카르트,칸트,헤겔...특히 <제국>을 이해하기 위해 헤겔식의 변증법과는 단절하라고 말한다.천천히 읽어보면 어렵지 않다.근대 권력 자체가 변증법적이라면 탈근대주의적 기획은 비변증법적이어야한다는 논리가 된다.바바(탈식민주의 호미 바바이다)의 일차적 공격대상은 이분법적 분할이다.전체 탈식민주의 계획은 식민주의적 세계관이 근거하고 있는 이분법적 분할에 대한 거부에 의해 규정된다.세계를 둘로 나누어져 있지도 않고 대립 진영들(중심 대 주변,제 1세계대 제 3세계)로 구분되지도 않으며 오히려 셀 수 없는 부분적이고 이동적인 차이들에 의해 항상 규정되고 있다.세계를 이분법적 분할의 측면에서 이해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바바는 또한 총체성 이론들과 사회적 주체들의 정체성 동질성 볼질주의에 관한 이론들을 거부하게 된다..바바의 분석을 따라 다니는 그리고 일관되게 이러한 다양한 적대자들을 열결시키는 유령은 헤겔의 변증법이다.즉 서로 대립하는 본질적인 사회적 정체성들을 일관된 총체성 안에 포섭하는 변증법이다.

네그리와 하트는 책 도입부에 <제국>에 대해 개괄적인 설명을 한다,그리고 <제국>으로의 이행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유럽 근대를 분석한다.(책의 구성이 흥미롭다.) 네그리는 근대성의 두가지 양식이 있다고 말한다.혁명과 반혁명이다.유럽 르네상스기는 신이라는 초월성을 거세한 혁명의 시간이었다.그러나 이내 반혁명이 이루어지고 그들이 승리한다.르네상스가 종교전쟁,사회전쟁으로 마감했던 것처럼.그러나 반혁명이 성공했다고 모든게 끝이 아니다.내전은 근대성 개념속에 흡수되어 끊임없이 내적인 위기를 조성한다.근대성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전가의 보도를 들고 나타난 것이 '계몽주의'이다.계몽주의의 일차적 과제는 형식적으로 자유로운 수많은 주체들을 훈육시킬 수 있는 선험적 장치를 구축함으로써 중세 문화의 절대적 이원론을 재생산하지 않고 내재성 관념을 지배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 애국하는 '국민국가'의 화려한 등장하여 질서와 명령을 더 효과적으로 통제한다.19세기-20세기에와서 근대적 주권의 국민 국가들 사이의 갈등은 내전을 가져왔다.국민들은 갈등 상태의 계급 주체들의 신비화로서 혹은 대역으로 제시되었다.기다리고 기다리던 '제국주의'가 등장하는 것이다.(제국주의와 제국은 완전히 다르다) 국민국가는 계급 투쟁과 계급 투쟁의 전복 효과들을 해소하고 실질적으로 대체하기 위해서 제국주의를 필요로 한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말을 들어보자.자본주의적 정복의 역사적 새로움을 비자본주의 환경 자체를 자본화하는 것으로 본다.자본주의적 재생산 및 축적의 핵심은 반드시 제국주의적 팽창을 함의하고 있다.자본은 달리 행동할 수 없다.자본주의 자체를 파괴하지 않고서는 제국주의의 해악과 대결할 수 없다.

어찌 어찌하여 식민주의도 제국주의도 마감하고 있는 시점이 중요하다.여기서 한참 기다린 '제국'이 나오는 것이다.

<제국>이 안과 밖이 없는 체제라면 도대체 누가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가? 네그리와 하트는 생산 경제에서 정보경제로의 이행이 가져온 생산양식과 노동 주체의 변화에 촛점을 맞춘다.전통적의미의 프롤레타리아는 더이상 혁명 주체가 될 수 없다.그들이 중요시 하는 것은 '비물질 노동'이다.그리고 '다중'이라는 독특한 개념이 유출된다.Mutitude는 사전적으로 특정 지배장치에 의해 구조화되지 않고 소통하면서 주체적인 욕망과 주장들을 결집해 나가는 사람들을 말한다.이들의 저항은 근본적으로 도주,탈주,유목주의를 표방한다.<제국> 하에서 다중은  아무런 매게 없이 <제국>과 면하기 때문에 더 폭발력을 갖는다.다중이 갖는 요구는 크게 전지구적 시민권,사회적 임금권 등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생산수단의 재전유이다.생산수단의 재전유는 지식,정보,소통,그리고 정서에 대해 자유롭게 접근하고 그것들을 자유롭게 통제하는 것이다.이를 통해 다중은 자기통제 및 자율적인 자기 생산을 가능케한다.궁극적으로 다중은 제국권력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제국과 다르게 움직이는 기계(기계가 공장 기계가 아니다.)를 발명하는 것이다.(짧게 쓰려고 했는데 결국 또 길어졌다.ㅜㅜ 인용이 많다보니 ㅜㅜ)

<제국>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따로 적지 않아도 될 듯 하다.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정보 네트워크(^^) 속에서 쉽게 <제국 비판>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조정환/정성진 논쟁 부터해서 등등등) <제국>의 역자이자 국내 자율주의 전도사인 전남대 윤수종 교수 역시 책 말미에서 네그리와 하트에 대해  비판적인 코멘트를 단다. 그들이 제국으로의 이행을 강조하다보니까 근대적인 성격의 잔존에 대해서 과소평가한 점, 그리고 이행 경향을 과도하게 강조하여 완전히 다른 사회로 넘어간 것 같이 설명한 점 등을 지적한다.특히 한국적 상황에서는 납득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을 것이다.그러나 네그리와 하트의 책 <제국>이 유럽적 상황에서 쓰여졌다는 저자들의 한계설정,그리고 시대의 추이를 미루어보는 예언적 성격 등을 고려한다면 그 부분만 물고 늘어지는 것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그렇다면 변혁 투쟁 역시 그 변화에 따라서 변화해야한다.적들이 대포 쏘고 있는데 돌도끼들고 뛰어다니는 것도 한계가 있다.그런 의미에서 <제국>은 의미심장하다.

개인적으로 자본의 입체적 압박에 숨을 못쉬고 패배주의에 빠져들고 있던 시점이어서 이 책<제국>이 더욱 반갑다.물론 세계와 현실에 대한 인식차이,개념의 모호성,실천적 구성력의 부재,과도한 낙관주의 등의 단어들도 머릿 속을 빙빙 돈다.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즐거웠던 것은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이 이러한 '낙관적인 선언'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잠시 즐거운 꿈일지라도 말이다.)

천천히 위리는 전지구적 잔치를 위해 도착하고 있는 아주 맛있는 많은 요리 접시들처럼 지구의 구석구석에서 오는 기증품들을 인식하기 시작하고 있다.상이 꽉차고 있다.축제를 준비하자!   

p.s)딱딱한 내용이 많지만 간혹 등장하는 문학적인 표현들이 감칠 맛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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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재灰 > '아도르노'가 멀지 않은 까닭

아도르노의 <부정변증법>에 대한 노성숙의 서평 한 대목은 헤겔 변증법과 아도르노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아도르노의 '부정변증법'이 이러한 헤겔 변증법(자체 긍정성These, 이를 부정하는 반정립 Antithese, 마지막 '단계'로서 그 둘의 모순 대립을 고차원적으로 매개하는 종합Synthese으로의 '이행'을 강조)과 가장 다른 점은, 두 번째 단계에서의 부정성이 세 번째의 긍정성에로 이행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아도르느는 부정의 부정이 긍정성에로 대치되는 데에서 '동일성 사고'의 전형이 드러난다고 본다. 그리고 그러한 동일성 사고 안에서 주체성의 원칙만을 절대시하는, 그리하여 객체가 갖고 있는 다양한 경험적 내용들을 배제한 채 단지 순수하게 형식적으로만 치닫는 기만성이 숨어 있다고 지적한다."

변증법은 필연적으로 주체와 객체(타자), 나와 남, 부분과 전체, 개별과 보편의 문제를 제기한다. 아도르노가 말하는 "짜임 관계"는 그런 문제들에 대한 한 가지 답안이다. 벤야민의 '성좌', 이진경의 '외부', 들뢰즈의 '리좀', 조동일의 '화이부동', 지젝의 헤겔옹호론이 떠오른다.


"짜임 관계"에 들어선 이후에 대한 한 대목: "객체는 더 이상 주체의 지배 아래 놓인 동일성의 폐쇄적인 체계안에 속박되지 않고 해방되며, 주체는 객체의 비동일적인, "질적인 계기"(103쪽)들을 수용할 태세를 갖추게 된다. 이러한 전환을 통해 주체는 이중적인 의미를 확인하게 되는데, 내적으로는 그 스스로도 역시 하나의 객체임을 인정하는 한편, 외적으로는 주체 자신이 항상 타자인 객체들과의 연관성 속에서야 비로소 주체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객체(타자, 비동일자)의 우선성으로 이행함으로써 변증법은 유물론적으로 된다.(274쪽)"

'변증법이 유물론적으로 된다'는 아도르노의 명제에 대한 한 대목: "아도르노가 '객체의 우선성'을 통하여 도달하고자 하는 바는 주체(동일자)에 대항하는 객체의 유물론적 경험인데, 이는 곧 동일성에 대항하는 비동일자의 저항의 경험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아도르노에게서 객체란 "비동일자의 긍정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아도르노는 주체성의 기만을 깨뜨리는 비동일성의 철학, 즉 주-객의 위계질서에 의한 '동일성의 인식'을 해체함으로써 주-객의 새로운 '짜임 관계' 속에서 얻을 수 있는 비동일자에 대한 '철학적 경험'에 이르게 된다."; '주체성의 기만을 깨트리는 비동일성의 철학'이라는 노성숙의 서평 표제가 타당하다.

<부정변증법>의 '방법'에 대한 역자 김유동의 서평 한 대목: "그의 방법에서 오해되어서는 안될 중요한 점은 그가 부정적 총체성이나마 총체성의 범주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 개념이 만든 족쇄는 개념이 풀 수밖에 없다는 명제를 충실히 지킴으로써 합리성의 속박 너머에 있는 비합리성의 세계에 충분히 열려져 있으면서도 비합리주의에 빠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 "주체나 주체의 현실적 속박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우주 속으로 달아나버리는 교의들은 쉽게 세계의 경직된 상황 및 그 속의 성공기회들과 결합될 수 있다"는 아도르노의 지적은 속박의 틀이 완벽해짐에 따라 유목민적인 탈주의 논리가 새로운 지배조류로 부상하고 있는 지금 시대에 대한 날카로운 경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속된 탈주들, 난립하는 차이들에 대한 비판은 있을 수 있고 있어야 한다. 김유동은, 아도르노의 '잘못된 세계의 존재론'이 "질(質)과 사용가치에 대한 기억이 완전히 말살되어버린 채 순수한 양(量)으로서의 교환가치의 지배가 더욱더 철저해지는 카지노자본주의에 대한 적절한 해석이론"일 수 있음을 제임슨과 함께 긍정했다. 그런 긍정은 그러나, 다음과 같은 대목에서 일종의 '감옥'으로 되며, 현대의 지식인은 그 감옥에서의 '탈주'라는 책무를 부과받는다: "20세기 초의 위대한 모더니스트들과 동시대인이면서 아우슈비츠에서 운좋게 살아남은 아도르노는 현대세계라는 체계 바깥에서 이 체계를 관조하고 비판하는 개인적 주체의 경험적 특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었지만, 그러한 자리가 오늘날의 지식인에게 마련될 것 같지는 않다. 그 때문에 현실이라는 족쇄를 재현하는 아도르노 사상은 그 자체가 또다른 의미의 족쇄로 다가오는데, 그 올가미를 감당하면서 어떻게 삶을, 실천이나 탈주의 놀이로 풀어갈 것이가는 오늘날의 지식인의 숙제일 것이다." 아도르노가 '참된 중도(中道)'였는지는 논외로 하고, 그가 좌우의 포격으로 68혁명의 와중에 급작스런 죽음을 맞이한 사태는 우리 사회 '중도의 괴멸'이라는 한 단면을 환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족쇄이자, 탈주의 디딤돌인 아도르노가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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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다녀왔습니다. 피곤하네요. 육체적, 정신적으로...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

 

기억에 남는 감동은 르부르에서 다빈치(드빈치라던데..-_-;)의 모나리자와 에펠탑 정도...

모나리자는 특히, 그 신비로움, 그 기묘함에, 그 다음날 밤에는 모나리자에 귀신 쓰인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진짜 대단해요. 이게 그 작품의 아우라인지, 그 작품에 대한 주위의 반응 때문인지, 그것의 복합인지는 모르겠어도, 그렇게 유명한 작품이 될 수 밖에 없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양인이라는 아이덴티티가, 계속 의식되게 만드는 시선들,

미국인들(거진 미국, 그리고 국적을 알 수 없는 백인들..)의 무례함, 거침, 깔봄 때문에 입은 상처들

(훗. 부쉬가 정상회담때 짜증나는 표정으로 후진타오의 양복을 끌어댕기던 것이 생각나는 군요. ㅋㅋ 이런게 떠오르다니..

이것을 '다름'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다름'은 '다른'이들에게는 다르게 적용되는 것도 새삼 느꼈습니다..)

 

한국에 돌아오니, 편안함을 느낍니다.

끊임없이 타자에게 의식당하고, 또 그들을 의식하고 계속 배려해야 하는 것.. 그리고 끊임없이 '타자'로 인식되는 것.

쉽지만은 않아요.. 어쩌면 이것이 '여성'이라는 소수자가 남한에서 느꼈을 불편함과도 맞닿아 있는 것도 같고, 왜 유독 여성 친구들이 외국에 나가는 것을 '자유'라고 느끼는지 알 것 같기도 했습니다..

 

세계의 타자성에 대한 인식. 체코를 여행했을 때는 그렇지 않은데, 역시 프랑스라는 나라, 그 오만함을 둘러보고 오니

정말 피곤하네요..

 

남한에서는 그냥 걸어다닌다면, 파리에서는 계속 세계의 타자성을 의식하면서 걷는다랄까..

세계-내-존재가 아니라, 세계/존재랄까.......

 

여러가지 짜증나는 에피소드들이 많았어요. 미국 엑센트라면 경기가 날 정도로..

 

기억에 정말 남는 것은, 히라노 게이치로의 <<장송>>을 다 읽은 것이지요. 쇼팽과 들라크루아에 대한 예술가소설, 역사소설인데. 이 작가와 동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비록 '일본-남한'이라는 차이는 있겠지만, 행운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정통' 소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 보겠다는 결심으로 썼다는 작가의 말이 과장이 아니라고 느껴집니다.

 

좀 쉬어야 하겠습니다. 파리를 다녀와서, 쓸 소설도 메모해 두었고요 ㅎㅎ

타자로서의 세계, 타자로서의 타자.. 잊고 있었던 것을 깨닫네요. 항상 '동일성'만을 생각했는데.. '타자' 없는 동일성이라는 것은 작동 할 수 없는 것이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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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6-04 0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인님, 파리 다녀오셨군요! 많이 느끼고 꽤 피곤하기도 하고 그러신 것 같아요.
소설 쓰실 준비를 하고 계시군요. 와, 대단합니다.
그리고 남한이라고 의도적으로 쓰시는 게 인상적입니다.
오만하던가요? 파리가?? ^^ 여행 중 이렇게 책을 읽으시니 부러워요.
그 중 장송, 건져갑니다. 오래 전 그의 작품, 달을 읽은 기억이 나네요.
푹 쉬며 여독을 푸시기 바랍니다...

드팀전 2007-06-04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사귀환환영...여행이 아니면 얻을 수 없는 것이었겠습니다.머리로는 타자성을 인식해도 아시아 동쪽 끝..국가의 역사라는 우산 아래 내부적으로 언제나 각종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는 곳에 살다보니 ..인식이 우물 속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다는 생각이 가끔 듭니다.존재를 규정하는 타자성 역시 물질성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지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돌로 만들고 붓으로 만든 것들의 기억말고 담아 오신게 멋있습니다.부럽기도 하구요.

마늘빵 2007-06-04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앤님은 잘 보고 오셨나요? :)

Mephistopheles 2007-06-04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다녀오셨군요...그런데..누가 감히 우리 기인님을...??
이것들을 그냥..!

yoonta 2007-06-04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품 준비중이시군요. 어서 읽어 볼수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백인들의 유색인종에 대한 깔봄은 정말 뭐 어찌할수 없는 것이지요. 같은 백인계인 유태인들에게조차 그토록 심한 편견을 가졌던 사람들인데..그래도 과거보다는 많이 나아진 것일 겁니다.

기인 2007-06-04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네 ㅋ 우리 커플은 여행하면 오전, 오후만 여행하고 저녁에는 책 봐요. 저는 약과고 제 애인은 5권은 읽었을 꺼에요. ㅋ 그냥 '읽어야 하는 책'에서 벗어나서 읽고 싶은 책을 읽는 시공간으로서의 여행.. 그런거 좋아하거든요.. 파리 물가도 넘 비싸서;; 그냥 점심 많이 먹고 저녁은 때우고 그랬답니다 ^^ 게이치로 참 좋아요..
드팀전님/네.. 가끔 이렇게 나갔다오면, '세계'라는 것을 느끼고는 해요.. 이번 경험을 토대로 뭔가 써봐야 할텐데.. 또 일상에 파묻히다가 말지.. 꼭 써봐야죠 ㅎ
아프락사스님/ 네 ㅋㅋ 아프님에게는 염장이 아니겠지만, 올만에 보고 애인이 그렇게 예뻤는지 새삼 깨닫고 엄청 놀라버렸죠! ㅋㅋ 함께 돌아와서 더 좋았어요.
메피님/ 오옷 어느새 바뀐 대문과 닉네임! 든든한 메피님. 역시 그 상황에서 메피님이었다면!!! :)
윤타님/ 네.. 으 이 '준비'가 얼릉 현실화로 되어야 할텐데... 네. 과거보다는 많이 나아졌을 테지만.. 쩝. 씁쓸하더라고요..

2007-06-05 0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인 2007-06-05 0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L님/네 진짜 닮은 점이 있을 듯.. :) 고마워요~ ㅎ

나비80 2007-06-05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인 님 부럽습니다. 언제 오시나 했는데..^^

누에 2007-07-22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제작년 남한에 한번 다녀왔는데, 사람들이 모두 똑같이 생기고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말을 해서 놀랐답니다. ^^ (차학경의 딕테를 타고 기인님 서재까지 오게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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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그말리온
조지 버나드 쇼 지음, 이한섭 옮김 / 동인(이성모)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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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집- 범우희곡선 12
헨리 입센 지음, 김진욱 옮김 / 범우사 / 199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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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체호프 단편선
안톤 체호프 지음, 김학수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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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전쟁과 평화 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김상영 옮김 / 신원문화사 / 2006년 12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2월 16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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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교수신문 자체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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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향
전성태 지음 / 실천문학사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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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는 일
전성태 지음 / 창비 / 2005년 4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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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이발사
전성태 지음 / 창해 / 2005년 9월
8,000원 → 7,200원(10%할인) / 마일리지 4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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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삼 전집
권명옥 엮음 / 나남출판 / 2005년 10월
28,000원 → 25,200원(10%할인) / 마일리지 1,4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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