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다녀왔습니다. 피곤하네요. 육체적, 정신적으로...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

기억에 남는 감동은 르부르에서 다빈치(드빈치라던데..-_-;)의 모나리자와 에펠탑 정도...
모나리자는 특히, 그 신비로움, 그 기묘함에, 그 다음날 밤에는 모나리자에 귀신 쓰인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진짜 대단해요. 이게 그 작품의 아우라인지, 그 작품에 대한 주위의 반응 때문인지, 그것의 복합인지는 모르겠어도, 그렇게 유명한 작품이 될 수 밖에 없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양인이라는 아이덴티티가, 계속 의식되게 만드는 시선들,
미국인들(거진 미국, 그리고 국적을 알 수 없는 백인들..)의 무례함, 거침, 깔봄 때문에 입은 상처들
(훗. 부쉬가 정상회담때 짜증나는 표정으로 후진타오의 양복을 끌어댕기던 것이 생각나는 군요. ㅋㅋ 이런게 떠오르다니..
이것을 '다름'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다름'은 '다른'이들에게는 다르게 적용되는 것도 새삼 느꼈습니다..)
한국에 돌아오니, 편안함을 느낍니다.
끊임없이 타자에게 의식당하고, 또 그들을 의식하고 계속 배려해야 하는 것.. 그리고 끊임없이 '타자'로 인식되는 것.
쉽지만은 않아요.. 어쩌면 이것이 '여성'이라는 소수자가 남한에서 느꼈을 불편함과도 맞닿아 있는 것도 같고, 왜 유독 여성 친구들이 외국에 나가는 것을 '자유'라고 느끼는지 알 것 같기도 했습니다..
세계의 타자성에 대한 인식. 체코를 여행했을 때는 그렇지 않은데, 역시 프랑스라는 나라, 그 오만함을 둘러보고 오니
정말 피곤하네요..
남한에서는 그냥 걸어다닌다면, 파리에서는 계속 세계의 타자성을 의식하면서 걷는다랄까..
세계-내-존재가 아니라, 세계/존재랄까.......
여러가지 짜증나는 에피소드들이 많았어요. 미국 엑센트라면 경기가 날 정도로..


기억에 정말 남는 것은, 히라노 게이치로의 <<장송>>을 다 읽은 것이지요. 쇼팽과 들라크루아에 대한 예술가소설, 역사소설인데. 이 작가와 동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비록 '일본-남한'이라는 차이는 있겠지만, 행운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정통' 소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 보겠다는 결심으로 썼다는 작가의 말이 과장이 아니라고 느껴집니다.
좀 쉬어야 하겠습니다. 파리를 다녀와서, 쓸 소설도 메모해 두었고요 ㅎㅎ
타자로서의 세계, 타자로서의 타자.. 잊고 있었던 것을 깨닫네요. 항상 '동일성'만을 생각했는데.. '타자' 없는 동일성이라는 것은 작동 할 수 없는 것이었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