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를 기르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들
박형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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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등단. 유쾌하고 진지하고, 유머러스하고 섬뜩하고, 실험적이면서도 읽어낼 수 있다.

정말 오랜만에 괜찮은 단편을 만났다. 최근에는 외국 장편들을 읽고 꽤나 소설의 힘에 감동했었는데 (히라노 게이치로, <장송>, 존 스타인백, <에덴의 동쪽>) 단편만이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을 확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다음 작품이자, 화제작인 '정오의 픽션'도 읽기 시작했는데, 진지함음 조금 줄었지만, 유머와 실험성의 내공이 정말 압도적이다.

박형서라는 작가. 이런 것만 쓰면서 먹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말 기대되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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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 시대의 격랑을 헤쳐나간 젊은 영혼들의 기록
황광우 지음 / 창비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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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들어와서, 가장 처음 찾아온 충격은, 80광주였다.

80광주는 임철우의 소설, 황석영의 기록으로 찾아왔다. 그리고 4.3 현기영의 순이삼촌.

80년 광주는 분노, 내가 지금껏 '몸과 마음을 바쳐'야 된다고 주입받았던, 적어도 '중립적'이라고 믿어왔던 '국가'에 대한 배신감에 어지럽게 했다면, 87년 6월은 항상 선배들이 입에 달고 다니던 '쪽수' '민중'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게 한다.

'화려한 휴가'도 개봉했다. 광주는 점차 '안전한 기억'으로 변질되고 국가에 의해서 관리되어가고 있다. 올해 87항쟁 20주년, 황광우 선생의 책이 반가운 이유는, 87은 아직 관리되지 않은, 우리에게 새로운 '상상력'을 줄 수 있는 기억이기 때문이다.

87까지의 기억들. 이 책을 여러 친구들, 후배들에게 권하고 싶은 이유이다. 우선 두사람이 떠오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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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7-30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네요.잘지냅니까?

기인 2007-07-30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 ㅎㅎ 그저 그렇게 지냅니다. 영어랑 일어 공부하느냐고 정작 책은 안 보고 있습니다 ㅎㅎ
 
천 개의 공감 - 김형경 심리 치유 에세이
김형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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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나서 드는 느낌은, 제목처럼

약간은 쓸쓸하고, 조금은 따뜻한 기분이다.

쓸쓸한 이유는, 아마, 내 '사랑'에 대한 환상을 극복하고, 결국 홀로라는 느낌 때문일 터이고,

그래도 따뜻한 기분은, 누구나 홀로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내 곁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때문.

그러면 '조금'은 따뜻하다는 것은 너무 야박한 표현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하겠지만, 적어도 지금 이 시점에서는 그런 느낌. 점점 이 따뜻함이 커질 것이라고 믿는다.

사랑에 실패한 이들, 사랑하고 있는 이들, 인간관계에 절망한 이들, 성장통을 겪는 이들..

모든 20대 중반 이상의 남녀에게 권한다. 찬찬히 읽다보면, 약간은 쓸쓸하고 조금은 따뜻하고,

그리고 아주 많이 차분해진다..

ps. 모든 것을 유년기로 환원하는 정신분석학적 메커니즘이 그닥 마음에 들지는 않았으나, 그러한 '환원'이 일종의 무의식의 전치와 같은 역할을 하는 셈. 정신분석학 한 때 꽤나 들여다봤었는데 벌써 4년 전이군.. 다시 볼 마음이 쪼매 생기고 있는 중. 무엇보다도 '주체'문제를 뚫어내야 하니.. 알튀세와 지젝.. 이 숙제는 1주 더 쉬고 천천히 시작해 볼 예정.

모두들 힘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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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7-14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득 이 책을 읽고 떠오르는 사람은, 아프님 :)

마늘빵 2007-07-14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깜짝이야. 왜요오오? @.@

기인 2007-07-14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 읽어보세요. 예전에 아프님이 쓰셨던 사랑 관련 글이 생각나서..
강추입니다. :) 혹 아프님 생신이 가깝다면, 제가 선물해 드리지요 ;)

마늘빵 2007-07-14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생일이야 뻥치면 되는데, 그렇게해서 받아내고 싶진 않은데요? ㅋㅋ
이러면 또 사야할 책이 늘어나잖아욧. 사놓고 안보고 있는 책이 얼마나 많은데.

기인 2007-07-14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는 쉬엄쉬엄 읽으실 수 있어요. 문득 옛사랑이 떠오르거나 학생들에게 상처받거나 하실때 ㅎㅎ
 

왜 富者가 가난한 사람보다 더 도덕적인가?

스스로 돈을 벌어 본 적이 없고 공돈으로 잘 먹고 잘 살아온 사람이 돈을 많이 벌어 좋은 데 쓴 사람을 상대로 도덕성 검증이란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도덕에 대한 모독이다.  趙甲濟

*예수는 위대한 시장경제론자

성경을 읽다가 마태복음 25장 14절부터 29절까지의 유명한 에피소드가 새삼 새롭게 이해되었다. 예수는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탄압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구원하기 위해서 세상에 온 분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예수는 시장경제주의자이다. 이 대목은 예수가 죽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한 말이다.

<또 어떤 사람이 他國에 갈 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金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 같이 하여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 새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리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는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는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取利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와와서 내 본전과 邊利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곳으로 내어쫒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니라 하니라>

이 에피소드는 자본주의의 윤리, 그 핵심을 말하고 있다.

1. 예수는 商행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돈을 빌어주고 이자를 받는 행위도 부정하지 않는다.

2. 예수는 공짜심리를 대단히 경멸한다. 예수는 부자 주인의 입을 통해서 세번째 종이 주인에 대해서 노력하지 않고 돈을 버는 공짜심리의 소유자로 誤判하여 한 달란트를 땅에 파묻어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데 대해 분노하고 있다.

3. 예수는 자본주의의 큰 동력인 모험을 찬양한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종을 칭찬하는 主人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설사 손해를 볼 망정 돈은 돌려서 사업을 일으켜야 하는 것이란 점이다. 주인은 한 달란트 받은 종을 책망하면서 사업을 하기 싫으면 이자라도 놓았어야 하지 않았느냐고 말한다. 예수는 현금을 장롱에 쌓아두는 행위를 죄악시한다.

4. 예수는 게으른 것을 惡으로 본다. 세번째 종을 문책하는 가장 큰 논리도 그것이다. 능력이 있으면서 게으른 자는 구원의 대상이 못된다는 식이다. 예수는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동정하나, 게으른 인간을 경멸한다.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특혜를 하나님으로부터 얻었다면 열심히 일하고 생산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할 의무를 진다. 그는 무능과 무지를 無産계급의 미덕으로 선전하는 공산주의자들의 억지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셈이다.

5. 예수는 열심히 잘 하는 사람을 집중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효율의 논리에 충실하다. 게으른 종의 한 달란트를 빼앗은 주인은 네 달란트를 가진 종에게 주어 열 달란트를 가진 종과 균형을 맞추려 하지 않고 열 달란트를 가진 종에게 주어버린다. 자본주의적 경쟁원리를 새마을 운동에 도입했던 朴正熙 대통령은 自立정신이 없는 마을에 대해서는 정부가 지원을 하지 않는 대신 잘 하는 마을을 돕도록 하여 마을 간에 경쟁을 붙여 사업을 성공시켰다.

6. 예수는 악하고 게으른 자들이 인류 문명의 짐이 될 것임을 예언했다. 주인이 쫓아낸 악하고 게으른 종은 반성하지 않는다. 그는 슬피 울면서 이를 간다. 복수를 다짐한다.

7. 이런 악하고 게으른 자들에게 공산주의 이념은 아편이 되었다. 게으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하는 자칭 평등의 논리, 계급해방의 논리, 가진 자에 의한 착취의 논리가 인간의 양심과 열심을 마비시켰다. 게으른 자의 악한 마음에 파고든 이 가짜 평등의 논리, 해방의 논리가 증오심을 부추기고, 인간의 발전동기를 말살시켰다.

8. 朱子學을 교조적으로 수입한 조선조 시대의 권력 엘리트들은 商행위를 경멸하였다. 士農工商의 조선조 신분질서는 그런 가치관의 반영이다. 주자학은 돈을 죄악시하면서 오로지 독서와 글짓기에 전념하는 무능한 선비들을 淸貧한 인물로 존경했다(반면에 예수의 자본주의 윤리를 계승한 서양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어 좋은 데 쓰는 것이 善이라는 淸富의 윤리를 가졌다). 자본주의의 씨앗이 도저히 자랄 수 없는 이념적 토양을 가진 곳이 한국이었다. 이런 척박한 토양에서 세계적인 경제대국과 대기업을 키워낸 이승만, 박정희, 이병철, 정주영 같은 사람들은 요사이도 욕을 더 많이 먹고 있다.

한 달란트를 땅속에 파묻어놓고 무위도식했던 자들은 부지런한 사람들이, 다섯 달란트를 가지고 또 다시 다섯 달란트를 만들어내려다가 실수를 한 것만 들추어내기 때문이다.

*부자가 더 도덕적이다.

요새 유행하는 도덕성 검증은 게으른 좌파들이 만든 것인데, 무능한 자를 도덕군자, 유능하여 일을 많이 하다가 실수도 조금한 이를 부패분자로 몰려는 함정이다. 이 함정에 빠진 것이 한나라당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富者는 대체로 가난한 사람보다 더 도덕적이다. 부자는 우선 성실하고 부지런하고 신뢰성이 강하므로 부자가 되었다. 즉 도덕적이기 때문에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예외적으로 속임수와 뇌물로 부자가 되는 경우가 있다.

가난한 사람은 신체부자유자나 특별한 가정사정을 제외하면 대체로 게으르고 무책임하며 신용이 떨어진다.

부자는 남을 돕는다. 기업을 만들고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와 월급을 준다. 가난한 사람은 남을 도울 수가 없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경우가 많다. 이 또한 부자가 더 도덕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물론 돈을 벌기 위하여 불법적이고 부도덕한 일을 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비정상 사회에선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이 경우에도 그들이 벌어놓은 돈 그 자체는 좋은 목적으로 쓰인다. 나쁜 부자가 벌어놓은 돈은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돈의 생명력이다.

가난은 자랑이 아니다. 좌파들은 가난이 자랑이고 가난이 도덕적이라고 속인다. 淸貧이란 말을 악용한다. 淸貧보다도 더 좋은 게 淸富이다. 정상적으로 돈을 벌고 좋은 곳에 그 돈을 쓰는 것이 가장 큰 도덕이다.

스스로 돈을 벌어 본 적이 없고 공돈으로 잘 먹고 잘 살아온 사람이 돈을 많이 벌어 좋은 데 쓴 사람을 상대로 도덕성 검증이란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도덕에 대한 모독이다.

[ 2007-07-11, 00:16 ] 조회수 : 764

조갑제의 글을 읽으니, 우선 명쾌한 세계인식이 들어나네요. 그에게는 모두 '주체'입니다. 사회 구조라는 것은 없지요.

요즘 고민하고 있는 주체/구조/계몽/소통의 문제로 제 자신의 사고방식, 세계관을 반성해보면.

우선 저는 가난-부의 문제를 사회 구조적 문제로 바라봅니다. 그러면 가난한 자는 주체라기 보다는, 구조 속의 '주름'에 불과한 것으로 바라보는 것이죠. 또 이에는 '노동가치설'에 대한 믿음이 작용하니까, 더욱 가난한 자는 '피해자', 즉 '비주체'로 봅니다.

그렇다고 부자가 '가해자-주체'인 것은 아니고, 이 또한 자본주의 '체제'의 작동방식에 따르는 것이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도덕적 계몽'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를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의 대안의 수준에서는 또 개별 주체, 내지는 집단 주체가 다른 '주체'들과 소통하고 계몽하여 변혁을 이루어내야 한다고 기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가난한 자'들은 경제적 토대 상으로는 비주체이지만, '주체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무엇보다도 '나'라는 주체' 내지는 사회를 변혁할 '집단주체'는 '주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를 설명할 개념으로는 '주체' 대신에 '주체성'이라는 개념을 쓰면 되고, '주체성'의 발현의 차원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합니다.

주체성이 작동되는 심급이 있는 것이, 아닌 것이 있는데, 문제는 가난한 자 -부자 라는 경제적 심급에서의 계급이라는 '대상성'을 토대로 하여,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심급에서의 '주체성'이라는 것이 작동한다는 기묘함입니다.

이것이 왜 기묘하냐면, '대상성'에서 '주체성'이 솟아나오고, 결국 맑스주의적 변혁의 궁극목적은 이 '대상성'의 파괴로 인한 '주체성'의 성립일 터인데... 구조의 획기적 변혁에 따라, 이것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의문이 드는 것은, 역시 '나'라는 것은 무엇인가, '주체화'하여 '주체성'을 지녀야 하는 사회구조 속에 만들어진 '주름'일터..

내 입장에서 사유해야 하는 것은, 어떻게 '주체화'하고 어떤 '주체성'을 지녀야 하는가의 문제.

그리고 '대중'을 볼 때, 그들과 '나' 또는 '엘리트'와 구분하는 차이. 또는 '내'가 '볼 때' 대상화되는 '대중'의 주체성의 정도의 문제 등..

조갑제는 명쾌하네요. 조갑제도 주체, 부자도 주체, 가난한자도 주체. 우리는 모두 주체. 그러면 결국 똑똑하고 힘센 놈만 주체로 되겠죠. '주체'라는 것은 다른 '주체'를 '대상화'시키는 것, 또는 시킬 수 있는 권력/권능의 문제일 터이니까.

조갑제 같은 이는 이회창/이명박/박근혜에게도 주체일 수 있을 것입니다. 글 쓸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주체'로서 이용가치가 있을 터이니까. 행복하겠네요. 조갑제.... 다만 그도 '대중'에 대해서는 '주체'일 수 없겠죠. 그러니 화가 나는 거겠죠.

조갑제를 읽다가 든 생각입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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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철저한 시장자본주의의 논리-淸富論 - 조갑제의 현실인식
    from With Sunny Side Up 2007-07-12 00:47 
    오늘 오후는 간만에 조갑제의 갑작스런 등장 덕에 각 포털이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동아일보의 기자가 찾아낸(?) 갑제씨 홈페이지의 글이 오늘 오후의 정치관련 화두로 등장했다. 조갑제 같은 인물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해 왔던 것은 사실이지만, 누구의 말 처럼 이런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너무 민감한 것은 아닌가 하고 가끔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할 필요는 있어보인다. 진중권 교수는 지만원씨에대해 한 말이지만, 이런 사람들에 대해 그저 '노..
 
 
마늘빵 2007-07-11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갑제 책 냈나요? 이 사람 참 재밌어요. 복거일보다 더 재밌어요.

멜기세덱 2007-07-11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치겠네요! 성경을 또 저렇게 읽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기가 찹니다. 이 정도면 조갑제 말 그대로 조갑제에게 돌려 줘야할 듯 싶어요. "예수에 대한 모독"이라고...

Mephistopheles 2007-07-12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렇게 사고방식이 하나로 굳어진 사람이 언론기관에 몸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위험하다고 생각됩니다. 총칼이라면 단지 육체를 사라지게 한다지만 저런 사람의 글 하나가 사람들의 정신을 사라지게 만든다는 면으로 본다면 공포 그 자체군요..

드팀전 2007-07-12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갑제같은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조갑제만큼 극단적으로 말하지 않을 뿐입니다.조갑제의 복제품같은 사람은 오히려 상대하기가 쉽습니다.더 세련된 당의정을 입고 더 세련된 품위와 도덕(일반적인) 을 갖추고 더 세련된 문화를 즐기는 스스로 청부라고 믿는 사람들을 상대하기가 100만배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마늘빵 2007-07-12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팀전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 차라리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드러내주는 사람은 상대하기가 쉽죠. 아닌 척 하면서 저런 사고를 하는 사람이 어렵죠. 그런 사람들의 다수는 또 자기가 그런 줄도 모르고요. 조갑제 욕할 때는 함께 욕하는데 실상 뜯어내면 조갑제랑 다를 바 없는 위인들도 많아요.
 
이유 - 제120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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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존에 '추리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장르는, 추리게임 식의 추리소설이었던 것 같다. 미야베 미유키를 읽으면서, 굳이 '장르소설'로 미유키의 소설을 파악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발자크적 작업이라는 평이 무색하지 않게, 하나의 살인사건에 얽혀진 군상들을 절묘하게 포착하고 있다.

인간의, 가족의, 사회에 대한 시선이 깊이가 있고 덤덤하면서도 폭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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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을뭐라하지 2007-07-11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그렇죠?
지금 <모방범> 보고 있는데 여전하군요.

기인 2007-07-11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정말 대단해요.. 이런 필력은 어떻게 길러지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