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스칼렛 요한슨을 처음 본 것은, '판타스틱 소녀백서'(2001)에서의 엉뚱하고 멋있는 여주인공의 이쁜 친구로서였지만, 실제로 '그녀'를 주목하게 된 것은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2003)에서 였다. 그녀의 아름다움이 빛을 발한 이 영화를 보고 그녀의 필모그라피를 검색해 본 결과 '판타스틱 소녀백서'로 거슬러 올라갔던 것이었지, '판타스틱 소녀백서'에서 그녀는 그리 빛나 보이지 않았다.
그녀에 대한 검색 결과로 놀란 것은 그녀의 나이. 1984년 11월 22일 생! 키 163cm. 이런! 84년생이라니. 한국 연예계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마 중학교 졸업 후이겠지만, 요즘 tv를 켜면 나오는 연예인들 대부분이 80년대생이라는 사실에 깜짝깜짝 놀랄 뿐이다. 그런데, 스칼렛이 84년생!
여하튼, 스칼렛이 아름답게 나오는 이 영화는 전직 테니스 선수가 상류계급에 편입하기 위해서 부잣집 여성과 결혼을 한다는 스토리. 그 과정에서 스칼렛 요한슨이라는 여성과 사랑에 빠지고, 그러나 상류계급의 안락한 삶에 적응(?)된 남주인공은 결국 자신에게 매달리는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스칼렛을 제거(!)하고 자신의 안온한 삶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이다.
스토리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그런 것이지만, 역시 문제는 이야기를 하는 방식. 우디 앨런 감독 특유의 먹물 근성과 대사들이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과 즐거움을 준다.
보면서 계속 느껴지는 것은 '상류계급'의 아비투스(habitus)
주인공은 프로 테니스 선수를 그만두고, 고급 테니스 클럽에 코치로 들어간다. 얼마전에 딴지에서 골프와 테니스 중 어떤 것이 더 고급 스포츠인가 하는 설문을 했듯이, 테니스는 전통적인 상류층의 스포츠이다. 물론 동네 아파트에서 테니스를 치는 것이 아닌, 컨트리 클럽에서 테니스를 치는 것. 여기에 다니는 사람은 모두 상류계급이며 '그들만의 리그'를 돈독히 한다. 이 리그에 편입하기 위해서 그는 그들의 아비투스를 모방하려고 애를 쓴다. 그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으며, 이에 대한 개론서도 함께 읽음으로서 '그들'과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해 토론을 하며 오페라를 듣는다.
테니스, 도스토예프스키, 오페라, 승마, 사격, 샴페인.(부르디외의 연구에 따르면 '샴페인'은 문화자본과 상업자본이 많은 층이 애용하는 아비투스라고... 어쩐지 나는 마셔본 기억이 없다. -_-; ) 이와 자신의 핸섬한 미모와 매너를 이용하여 마침내 상류계급의 여성과 결혼을 통해서 그는 '그들만의 리그'에 진입한다. 영화는 내내 상류계급의 아비투스와 그들의 매너를 지루하지 않게 보여준다. 이와 대비되는 것이 주인공과 스칼렛의 진짜 모습이다. 스칼렛 또한 자신의 미모를 이용해서 상류계급의 남자와 만나지만, 그들은 한눈에 서로 끌린다.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나, 비슷한 아비투스를 갖은 그들. '그들만의 리그'에서 외로운 가면놀이를 하고 있던 그들. 그러나 남자 주인공은 보다 철저히 아비투스를 매개로 상류계급의 일원에게 인정을 받지만, 스칼렛의 유일한 무기는 그녀의 미모였을 뿐. 스칼렛은 버려지고, 남자 주인공은 결혼에 성공한다.
이제 문제는, 바로 '불륜' 혹은 일부일처제의 비인간성(?).
'불륜'은 말그래도 '윤리가 아니다'라는 것. 그러나 사회생물학적으로, 일부일처제는 과연 옳은 것일까. 끊임없이 불륜이 문제시 되는 이유, 뜨악한 한국영화 제목 '훔친 사과가 더 맛있다' 혹은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는 것? 그 이상의 사회생물학적인 이유들이 있을까.
사회생물학은 매우 매력적인 학문분과(?)이다. 에드워드 윌슨이 '지식의 대통합'으로서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합치되어야 하고 합치될 수 있는 매개로 내세운 것이 바로 '사회 생물학'이다. 사회학, 인문학 또한 넓게 보아 생물에 대한 학이며, 생물에 대한 학으로서 인간과 사회가 설명될 수 있다는 것!
어쨌든 영화에서 너무 멀리 나왔으니 다시 되돌아가자면, 여기서 주인공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안온한 삶과 매력적인 정열적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지만. 결국은 전자를 선택한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장면 중 하나는 '운'에 대해 남주인공-상류층 여성/스칼렛-상류층 남성이 모여서 나누는 대화이다. 상류층 사람은 '열심히 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스칼렛과 남주인공은 '운'이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논한다. 일반인이 보았을 때, 상류계급은 특히 2세의 경우 '운' 때문에 그들은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을 누리는 것이 아닌가. 이 생각을 진전시키면, 이 사회의 불평등성에 대해서 논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반면에 상류계급의 인간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자신의 현재 위치를 차지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 맑스 할아버지께서 보았으면 그들의 '착취'에 대해서 일장 연설을 하셨으리라.
결국 주인공의 범죄도 '운'에 의해서 봉합이 된다. 첫장면에 테니스에서 네트에 공이 맞았을 때, 이것이 상대편 네트로 넘어가면 승리요 네트를 넘지 못하면 패배이고 이는 순전히 운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과 마지막에 주인공의 아기에 대해서 상류계급의 일원들도 '운'이 이 아기와 함께 하기를~이라고 언급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아아... 결국은 운 좋은 놈이 장땡이란 말인가....
결국 실력으로 모든 것을 이겨낸다는 것은 만화에서만 가능할 뿐인가! (재미있게도 '해피'라는 만화에서 주인공이 연습하는 첫번째 필살 샷은 의도적으로 네트를 맞추는 것!)
아니면 만화에서는 '실력으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다'라는 지배이데올로기를 배포할 수 밖에 없는, 배포 해야만하는 '대중예술'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