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옮긴 글은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가 아우어바흐의 <<미메시스>> 영문판 발간 50주년 기념으로 찍은 새로운 판에 붙인 서문이다. 말이 서문이지만 꽤나 길었던 글로, 번역한 글이 실린 <<세계의 문학>> 114호를 들춰보니 33페이지나 됬다. 사실 왜 <<오리엔탈리즘>>으로 유명한 사이드가 고전적 문학연구의 하나로 인정받는 <<미메시스>> 영문판 서문을 붙이게 되었을까부터 궁금증이 생겼다. 물론 이 '궁금증이 생겼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보니 궁금증이 든다는 것이다. -_-; 사실 이 글을 번역할 때 나는 석사 1학기 신입생. 바짝 긴장해서 수업을 듣던 나로서는, 수업을 듣고 발표문을 준비하면서 이 글을 번역하느냐고 죽을 뻔 했다.

물론 학부때 '영산문 강독' 같은 수업에서 번역을 해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공개'되는 글을 번역하기는 처음이라서 매우 긴장했던 기억이 난다. 딴에는 학부때 라틴어를 1년반 남짓 열심히 -열심히만- 공부했던 나이고 <<미메시스>>와 <<오리엔탈리즘>>도 부분부분 읽었던 기억이 있었다. 또 이 글의 번역을 맡기신 선생님이 글이 어렵지 않다고 했기에 나는 매우 기쁜 마음으로 번역을 해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내심 영어 실력에 자신도 있었고 말이다. 그러나 왠걸. 번역은 영어 실력이 문제가 아니었던 것.

나는 중2때까지 외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어느정도까지는 영어로 사유하는 '직독직해'가 된다. 그런데 문제는 영어로 사유한 것이 한국어로 매끄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 내 속에 두 언어 주체가 있어서 서로 '소통'은 되지만 이는 언어 이전의 단계인 것 같은 막막함.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이것을 한국어로 바꾸려니 애가 타는 것이었다. 번역 관련 '지도서(?)'들이 항상 강조하는 것처럼, 문제는 옮기기 전의 언어가 아니라 옮기려는 언어라는 것. 즉 문제는 '한국어'라는 것이다.

나는 자랑스럽게도 (-_-;)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지만, 국문과에서 배우는 커리큘럼에서 번역에 도움 될 것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무래도 다른과 사람들보다는 정확한 문법을 강조당했고(그러나 나는 비문투성이의 반항아(?)적 국문과 생) 많은 글들을 읽고 쓰게 된다는 것은 장점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 연습은 다른 어문학과에 비해서 절대적으로 적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정확한 한국어로 옮기기 막막한 문장들 앞에서 한없이 작아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이드 선생의 문장들은 의도적인 '탈식민주의'적 문장인지 그의 문체는 한없이 비틀어지고 만연체라서 죽을 맛이었다. 또 아우어바흐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개념이었던 'figura'라는 것의 정확한 의미를 알기 힘들어서 신학에 관련된 책들도 참고해야만 했다.

역시 번역은 눈물나는 공부였다. 우리나라 학계의 문제점으로 항상 제시되는 것이 학자들이 번역을 등한시한다는 것이다. 이는 구조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학자의 업적을 평가할 때 우리는 번역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 것이다. 번역은 상당히 많은 에너지와 노력을 투자해야 되는데, 이것이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니 1류급 학자들은 번역을 기피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번역의 질은 한없이 낮아져만 갈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꾿꾿히 양질의 번역을 행하는 학자들이 있다. 그들의 노고와 사명감에 그래도 한줄기 희망을 본다.

어쨌든 이를 계기로 나에게 번역을 맡기신 선생님께서 이 글의 번역이 여러가지로 공부가 될 것이라는 말씀을 잘 이해하게 되었다.그럼 이제 변죽은 그만 울리고 본격적으로 내가 번역했던 글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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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균 2006-04-30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안합니다 근데 평가받지 못하니 1급들이 번역을 기피한다니 그 사람들 1급 맞나요! 차라리 특급하세요, 레벨이 중요하면. 114호 공들여 다시 읽겠습니다.

기인 2006-04-30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감사합니다. 정말 우리나라에 천병희 선생님이 안 계셨더라면, 희랍어 원문 번역이 몇 년, 아니 몇 십년 늦어졌을지 생각만해도 아찔합니다.

로쟈 2006-08-15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었던 글이네요. 원문도 갖고 있었는데, (원문 자체가) 생각만큼 인상적이진 않더군요. 그래도 번역에는 꽤 품이 들어갔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