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타트렉 Deep Space Nine 의 첫번째 화 'Emissary(使者)'는 흥미롭다. 은하연방은 60년간 식민통치에서 풀려난 '베이조'의 요청에 따라 이들을 보호하게 된다. 이 베이조 행성의 궤도를 도는 소위 '우주정거장'(이라기 보다는 우주 소도시)의 사령관이 주인공이다. 쉽게(?) 말하면 일제 식민통치가 끝나고 독립을 하려는데 미국이 와서 보호라는 명목에 위탁통치를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기존 독립운동가들 중 화끈한 사람들은 이에 반대를 하고 (예를 들어 우리의 김구 선생처럼), 정세를 계산할 수 있는 이들은 외세의 힘을 얻으면서도 빨리 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려 하게될 것이다. (사실 김구가 해방정국에서 어느정도의 정세파악을 하고 있는지 정말 미지수다. 고등학교 교육에서는 김구를 위대한 민족운동가 중 거의 대표격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정확한 정세파악과 정치적인 힘에 있어서는 역시 여운형이 대세가 아니었을까 싶다. 따른 이야기이지만.)


어쨌든 이런 상황 속에서 초점화자로 '미군 사령관'이 설정이 되었으니, 역시 미국이 자랑하는 드라마이다. 변방 제국의 탐사를 우주탐사라는 알레고리로 묘사한 점, 정말 재미있지 않은가. 이제 전지구적 제국이 이루어졌으니, 우주로 나가는 수 밖에.

그리고 스타트랙에서 묘사하고 있는 '제국' 또는 '연방'은 그렇게 드러내고 폭력적이지는 않다. 그들은 도움을 요청할 때만 도움을 두고, 중립적인 위치에 서고자 노력한다. 이라크의 미국과는 물론 전혀 다른 것이다.

이러한 전체적인 스토리 상에서, 첫번째와 두번째화는 '기억'과 정체성의 문제를 다룬다. 기억은 아스만이 지적한 것처럼 '정체성'의 문제와 직결한다. 드라마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고 외계 생명체와 만났을 때 인간은 경험의 총체요, 선형적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생물이라고 답하는 것이 바로 이를 말한다.

이 괴생명체는 '시간'이라는 것을 모르고, '육체'를 지니고 있지도 않다. 그래. 이것이야말로 '외계'생명체라고 할 수 있지 않는가. 스타트랙에 등장하는 '영어'를 쓰는 대부분의 외계인은 '인간형'으로 미국 배우들이 분장을 하고 탈을 뒤집어 쓴 것에 불과하다. 스타워즈의 '요다'는? 이 또한 마찬가지 아닌가. 그저 '인종'들의 차이에 불과할 정도로, 비스무리 짬뽕하게 생겼다. 진짜 '외계' 생명체라면 우리와는 다른 차원에 살고, 다르게 구성이 되있는 존재여야 하지 않을까? 마이클 크라이튼이 묘사한 것처럼 말이다.

이번화에서도 제법 '외계'스러운 존재가 나타난다. 그는 '시간'이라는 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따라서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그를 이해시키기 위해 주인공은 갖은 애를 다 쓴다. 이 와중에 만약 주인공이 이 '외계'존재를 이해시켰다면, 이것이야말로 미국 제국주의적 사유이다. '계몽'을 통해 타자를 자신의 사유와 동일화 시킬뿐, 자기는 전혀 바뀌지 않는다. 이것이말로 계몽의 폭력성이고, 제국주의적 사유의 핵심이다. 자신은 '이성'을 지녔고, 이를 통해 '야만'인들을 '계몽'시킬 수 있다는 것. 결국은 '야만'의 파괴일 뿐인 것을.


그러나 이 드라마가 역시 '건강'할 수 있는 것은, '외계'존재들을 이해시키려고 하면서 결국은 스스로가 자신이 '선형적 존재'가 아님을 깨닫는 다는 것이다. 즉, 인간은 '현재'를 살지 않는다는 것. 시간은 단지 지나가버리고 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 속을 살며, 때로는 '미래' 속을 산다. 우리가 어떠한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언제나 '그 곳'에 존재하는 것. 첫사랑을 회상하고, 이제 사라진 소중한 것들을 추억할 때 그것은 우리와 함께 '존재'하는 것이며, 우리는 '과거'에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기대하고, 예상하고 상상하고 들떠있을 때, 우리는 '미래'에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깨달음은 '외계'존재와 주인공을 '소통'하게 한다. 1~2화는 여기까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