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지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지음, 이용대 옮김 / 한겨레출판 / 2003년 1월
구판절판


(...) 왕권이란 것이 단지 왕족의 여자와 결혼하는 데 따른 부수적인 소득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엣날 덴마크의 역사가 삭소 그라마티쿠스는 스코틀랜드의 전설적인 왕비 헤르무트루드의 입을 빌려 왕권에 관한 이런 견해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녀의 말이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여기서 우리가 살펴보듯이 그 말이 픽트 왕가의 실제 관습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헤르무트루드는 말한다. "물론 그 여자는 왕비였다. 그러나 성별만 아니라면 그녀는 왕으로 인정받았을 것이다. 아니, (더욱 진실에 가까운 것은) 그녀가 자기 침대에 걸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면 누구든 당장에 왕이 되었고, 그녀는 자기 자신과 함께 자기 왕국까지 넘겨주었다. 이를테면 그녀의 왕홀과 혼약은 함께 갔던 셈이다."-190-191쪽

때때로 왕녀와 혼인하여 왕위를 차지하는 권리를 경주로 결정할 때도 있었다. 알리템니아의 리비아인은 가장 빨리 달리는 자에게 왕국을 넘겨 주었다. 고대 프로이센에서는 귀족 후보자에게 말을 타고 왕에게 달려가게해서 가장 먼저 도착하는 자에게 귀족 칭호를 주었다. 전설에 따르면, 올림피아에서 열린 최초의 경기는 엔디미온이 왕국을 놓고 자기 아들들에게 달리기 시합을 시킨 것이었다. 그의 무덤은 경주자들이 출발했던 경주로 한 지점에 있었다고 한다. 펠롭스와 히포다메이아에 관한 유명한 이야기는, 아마도 올림피아 최초의 경기가 왕국을 상으로 건 달리기 경주였다는 전설의 또다른 판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192쪽

이와 같이 처녀, 특히 왕녀와 결혼할 권리는 종종 운동경기에서 이긴 승자에게 주는 상과도 같은 것이었던 듯하다. 따라서 로마 왕들이 딸을 혼인시키기 전에 장래 사위 겸 후계자의 개인적 자질을 시험하기 위해 그런 고대의 방식에 의존했다 하더라도 놀랄 이유는 없을 것이다. -193-194쪽

동화들에서 되풀이 되는, 다소 천한 출신이지만 똑똑한 '막내'가 공주의 병을 치료하거나 경주에 이겨서 공주와 결혼하고 왕국을 차지한다는 이야기는, 지금 관점에서 보면 황당할 수도 있다. 왕자가 없다는 전제 하에서도, 근대사는 왕의 사촌이나 조카들이 때거지로 몰려드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동화가 고대의 모계 중심의 제도를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고대의 모계 중심성에서 파생된 이야기가, 민중의 소망과 부합되어 전승되는 방향으로 구비로 전래되다가 이야기로 정착되었을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재미있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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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8시 다 되어서 빵을 먹었지만, 오늘 수영을 하고 난 결과 몸무게는 현상 유지. 확실히 요즘은 식욕이 준 것을 느낀다. 사실 나는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올라가면서부터 먹는 것이 주는 즐거움을 알게 된 것. 어렸을 때는 먹는게 싫어서 밥을 안 먹고 사탕을 먹고 하다가, 밥을 3일 동안 굶기도 하는 등, 정말 지금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밥 먹는 것을 싫어했다. 그 때는 잠 자는 것도 싫어했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부터, 식사와 잠이 유일한 기쁨으로 변모, 고3때 엄청나게 살이 쪘다. 재수때 헬스를 시작하고 독한 마음을 먹고 7시 이후는 아무것도 안 먹는 등의 노력을 하고 대학교 1학년 때는 더 독한 마음을 먹고 (주위에 여성 동지들을 좇아다니느냐) 3시 이후에는 밥을 안 먹는 노력을 하고 2학년 때는 사귀던 친구와 헤어져서 밥맛을 잃고 죽어라 운동만 해서 63kg 정도의 날씬한 몸매를 뽐냈(?)었다.

그런데 다시 고3보다 훨씬 더 스트레스를 받는 논문을 쓰면서, 또 세계시인대회를 준비하면서 신라호텔 부페에서 1주일 가량 밤새고 일하고 밥먹고 하는 바람에 몸무게가 80kg에 육박하게 되었다. 그런데 논문을 마무리하면서부터, 헬스를 열심히 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니까 식욕도 없어졌다. 쩝.

예전에는 술 마실 때 안주먹느냐 바빴는데, 이제는 안주도 시큰둥.

그런데 이게 나이가 드는 것일까, 아니면 우울증의 초기 증세일까. 요즘 읽고 있는 <두 여자 사랑하기>라는 소설에서 50대 초반의 남성은 항상 자신의 성욕과 섹스 능력 감퇴에 대해서 걱정하면서 '늙음'에 대해서 두려워하는데,

나 또한 요즘 식욕, 성욕 모두 확실히 감퇴하는 것을 느낀다. 그래도 수면욕은 그대로;;; 나이가 들면 수면욕도 없어진다는 데..

식욕, 성욕, 수면욕은 재생산 욕구의 기본인데, 나이가 들 수록 재생산보다는 그냥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지는 것 같다. 아, 갈 길이 먼데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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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7-06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만 놀아요.
애인님과 좋은 곳 기차여행 해 보시길..^^

기인 2006-07-06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사실, 계속 놀고 있습니다 ㅜㅠ
 
 전출처 : 마립간 > 이벤트 서문

* 이벤트 서문 *


 2005년 겨울 이벤트를 하다가 언제가 마무리를 하겠다고 말씀드렸는데, 가을산님의 알라딘 마을과 외부 세상의 차이를 느끼면서 ‘실망... 실망... 우울모드’라는 글을 남기셨고 이를 핑계로 하려고 했던 이벤트를 실시합니다. 바람구두님은 이벤트를 통해 주간 ‘서재의 달인’ 1위에 오르셨는데, 저는 그나마 이벤트를 마무리를 지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갑니다. (혹시 이 이벤트 끝나고 마을에서 퇴출될지도 모르고. - 민망해서)


* 형식안내


 첫 번째 이벤트형식 객관식 시험문제로, 두 번째 이벤트는 각막기증으로, 세 번째 이벤트는 논술 형태로


 이번 형식은 ‘이벤트 알라딘에게 묻습니다.’ 이 형식은 지금은 일반화된 것이지만 제 기억에는 1978년 또는 1979년 TBC 방송에서 황인용씨의 사회로 진행된 TV 쇼 ‘퀴즈 100인에 물읍시다.’입니다. ‘어느 어느 동네에 사는 초등학교 6학년 학생 100명에게 설문조사를 했는데, 이번 생일에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은?’ 패널들(한 가족이 팀을 이룸)이 정답을 맞추면  점수를 획득하고 상품을 타가는 프로그램으로 설문조사 첫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문제는 15개 정도이고 알라디너의 의견을 투표로 묻고 알라디너 의견의 정확하게 근접할 수록 점수는 높고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은 한 분에게 3만원 상당의 알라딘 상품을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예를 들면 ‘마립간을 결혼을 할 수 있을까, 없을까?’라는 질문에 투표를 실시하고 완전히 종결되기 전 예상 %를 답으로 제시해야 합니다. 만약 ‘할 수 있다. 80%’라고 답을 제출하면 (이것은 할 수 없다. 20%와 동치입니다.) 실제투표 결과 60% 차이의 20만큼 100점에서 감점하여 80점이 획득한 점수입니다. (마립간 2005년 12월 21일 페이퍼 ‘결혼’ 참조)


* 질문내용


 대부분의 질문은 정답이 없습니다. 내용은 저의 ‘좋은 책을 추전 받고자’ 카테고리 안에 있는 페이퍼 계통입니다. 같은 질문도 있고 그 당시 못다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 몇 가지 규칙


 이벤트가 홍보될 때까지 투표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지루할지 모르겠습니다. 투표는 투표마감날짜까지 진행되지만 답안 제출 기간은 명시가 됩니다. 또한 투표인원이 4인 미만의 문제는 없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점수는 소수점 아래 한자리까지 계산됩니다. (동점의 경우 3만원 우승자로 나누겠지만 동점자가 나오기는 매우 힘들 듯 합니다.) 답안 공개해도 되지만 cheating을 방지하기 위해 ‘서재 주인에게만 보이기’로 하는 것 좋겠습니다.


* 연습문제 (그야말로 연습문제이므로 점수 없습니다. 본 문제는 내일부터)


 나는 특별한 일(예를 들어 휴가, 출장)이 없는 한 매일 알라딘 마을을 방문한다. ; 답안 마감 시한 페이퍼 등록 후 48시간

투표기간 : 2006-07-04~2006-07-11 (현재 투표인원 : 8명)

1.
87% (7명)

2.
12%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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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자 사랑하기
빌헬름 게나찌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06년 6월
절판


나의 다음번 종말론 강연의 핵심은, 머지않아 그야말로 최후의, 신종의 종말론적 파시즘이 우리를 덮칠 거라는 내용이 될 것이다. 이 파시즘은 별로 사람들의 저항을 받지 않을 것이므로, 신속하게 도래할 것이다. 사회 분위기가 이미 이런 파시즘에 아주 유리하게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전의 어떤 파시즘보다도 더 열렬히 이 새로운 파시즘을 환영할 것이다. 이 종말론적 파시즘은 대중에게 지속적으로 오락을 제공해주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점차 전체적(또한 전체주의적)인 경향을 드러내는 대중오락을 저지하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국민의 복지를 추구한다고 주장해왔는데, 이런 모순은 적어도 삼십년쯤 전에 이미(이 부분은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발견되었어야 했다.-63-64쪽

(그리고 나는 이렇게 첨언할 것이다.) 매일 서너 시간씩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사고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좀더 일찍 깨달았어야 했다. 나는 국가를 점점 견고해지는 얼음덩어리에 비유할 것이다. 이 얼음덩어리는 매일 저녁 뉴스 시간에 우리 앞에서 유유히 유영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만질 수도, 이해할 수도, 평가할 수도 없다. 이것은 자신에게 속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주변의 모든 것을 칼날처럼 날카로운 모서리로 잘라낸다. 모든 파시즘은 특정한 희생자 집단을 용인하도록 사회를 조종하는 데서 시작하며, 이러한 용인은 대중오락의 비호를 받으면서 부지불식중에 관철된다.-64쪽

나는 이러한 사실들을 내 쎄미나의 참가자들에게 부각시킬 것이다. 오락파시즘은 이미 특정 집단들 (실업자, 노숙자, 노동기피자, 노인, 장애자, 희생자, 만성환자 등)을 겨냥하고 있다. 형제애를 고무하는 척하는 텔레비전 쇼들은 이들을 집중조명해 슬그머니 배제해버린다. 이제 얼음덩어리 파ㅣ즘에게 남은 일은 이런 희생자들의 배제를 용인하면서 즐거워하고, 이들에게 은근슬쩍 죄를 덮어씌우면서 만족감을 느끼는 대중을 더 많이 만들어내는 일뿐이다. 그렇게 되면 파시즘의 메커니즘(지목되지 않은 사람들이 지목된 사람들에게 자발적으로 죄를 덮어씌우는 메커니즘)은 더이상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사회에 깊이 뿌리박힐 것이다. 일단 파시즘이 관철되고 나면, 익숙해진 배제의 메커니즘을 제거할 어떤 수정도 불가능할 것이다.-64-65쪽

경청할 만한 내용. 그리고, 우리나라만 '파시즘'이라는 개념을 과다 사용하는 것은 아니군. 하긴, 독일은 정말 상황이 심각하다고 들었다. 스킨족들과 네오나찌들을 마주치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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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철학 1 - 서문과 서론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지음, 강유원 옮김 / 사람생각 / 1999년 9월
평점 :
품절


이 책에 대해서 간단한 지적만 하겠다. 물론 이는 헤겔의 <법철학>에 대한 지적이라기보다는, 이 책 '자체'에 대한 지적이다.

1. 강유원 선생의 번역인데, 알라딘에는 역자가 안 뜬다. 강유원 선생의 다른 책들을 검색할 때도 결과로 도출될 수 있으면 좋겠다.

2. 강유원 선생이 1999년에 이 서문과 서론을 출간했고, 이후 후속 작업을 약속했는데 후속 작업이 없다. 그 이유는? 다음 번호들이 그 이유 중 하나일 수도 있을 것 같다.

3. 헤겔을 번역판으로 읽는 사람은 누구일까? 철학을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원서로 읽을 것이다. 아쉽지만 아직 우리의 번역 상황은 전공자로 하여금 번역서를 읽게 하지 못한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그러나 나 같이 철학을 전공하지는 않지만, 철학의 사촌(?) 비슷한 문학도로서는 헤겔을 읽을 필요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요즘의 인문학도들은 독어를 잘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라고 나의 상황을 보편화시켜 본다. -_-; ) 그럴때 가능한 것은 영역판을 주 텍스트로 하면서 국역판을 이용하는 것.

4.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헤겔의 <법철학> 국역판은 이 강유원 선생의 판 -물론 서문과 서론만이다. 와 홍신문화사에서 나온 권응호 선생이 옮김 <법철학 강요>가 있다. 강요라고 해서 다른 책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철학 전공자도 있다;;, 아니다. 같은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은 중역으로 추정된다. (정말 어이없게도 어떤 판본을 번역했는지 책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영문과 교수가 번역했으니 영역판을 중역했다고 생각할 수 밖에...) 그리고 절판된 책으로는 지식문화사에서 나온 책이 있다. 내가 대조해본 결과, 어찌됬든 권응호 선생의 번역이 훨씬 읽기 쉽다. 이는 어쩌면 강유원 선생이 '직역'을 중시해서 일수도 있다. (역자의 말에 그런 대목이 나온다.)

5. 어쨌든, 이 책을 선택하려는 독자라면, 자기가 왜 이 책이 필요한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만약 순전히 한국어로 헤겔을 읽으려고 결심했다면........... 사실, 포기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독어를 할 줄 아는 철학도라면 나의 글이 필요 없을 테고, 나처럼 비철학도로서 독어를 못하고 일정 시간과 노력을 투여할 준비가 되어있다면 영역판을 바탕으로 국역판의 주석들과 번역을 참조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잘 읽히는 것과 전체를 번역한 것은 (비록 중역이지만) 홍신문화사의 판본이다.

ps. 오타 지적. 158면.

또한 이 구분은 여러 부분의 역사적 개요로 간주될 수 있도 있다. (구분의 원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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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6-11-12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역자로는 검색이 안되는 책이군요. 절판된 것도 아닌데...

기인 2006-11-13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역시 별 상관 안 하는 듯 ^^;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