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권이란 것이 단지 왕족의 여자와 결혼하는 데 따른 부수적인 소득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엣날 덴마크의 역사가 삭소 그라마티쿠스는 스코틀랜드의 전설적인 왕비 헤르무트루드의 입을 빌려 왕권에 관한 이런 견해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녀의 말이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여기서 우리가 살펴보듯이 그 말이 픽트 왕가의 실제 관습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헤르무트루드는 말한다. "물론 그 여자는 왕비였다. 그러나 성별만 아니라면 그녀는 왕으로 인정받았을 것이다. 아니, (더욱 진실에 가까운 것은) 그녀가 자기 침대에 걸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면 누구든 당장에 왕이 되었고, 그녀는 자기 자신과 함께 자기 왕국까지 넘겨주었다. 이를테면 그녀의 왕홀과 혼약은 함께 갔던 셈이다."-190-191쪽
때때로 왕녀와 혼인하여 왕위를 차지하는 권리를 경주로 결정할 때도 있었다. 알리템니아의 리비아인은 가장 빨리 달리는 자에게 왕국을 넘겨 주었다. 고대 프로이센에서는 귀족 후보자에게 말을 타고 왕에게 달려가게해서 가장 먼저 도착하는 자에게 귀족 칭호를 주었다. 전설에 따르면, 올림피아에서 열린 최초의 경기는 엔디미온이 왕국을 놓고 자기 아들들에게 달리기 시합을 시킨 것이었다. 그의 무덤은 경주자들이 출발했던 경주로 한 지점에 있었다고 한다. 펠롭스와 히포다메이아에 관한 유명한 이야기는, 아마도 올림피아 최초의 경기가 왕국을 상으로 건 달리기 경주였다는 전설의 또다른 판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192쪽
이와 같이 처녀, 특히 왕녀와 결혼할 권리는 종종 운동경기에서 이긴 승자에게 주는 상과도 같은 것이었던 듯하다. 따라서 로마 왕들이 딸을 혼인시키기 전에 장래 사위 겸 후계자의 개인적 자질을 시험하기 위해 그런 고대의 방식에 의존했다 하더라도 놀랄 이유는 없을 것이다. -193-194쪽
동화들에서 되풀이 되는, 다소 천한 출신이지만 똑똑한 '막내'가 공주의 병을 치료하거나 경주에 이겨서 공주와 결혼하고 왕국을 차지한다는 이야기는, 지금 관점에서 보면 황당할 수도 있다. 왕자가 없다는 전제 하에서도, 근대사는 왕의 사촌이나 조카들이 때거지로 몰려드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동화가 고대의 모계 중심의 제도를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고대의 모계 중심성에서 파생된 이야기가, 민중의 소망과 부합되어 전승되는 방향으로 구비로 전래되다가 이야기로 정착되었을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재미있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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