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평전 - 개정판
조영래 지음 / 돌베개 / 2001년 9월
구판절판


목숨을 걸지 않는 한 결단은 없다.
한 인간이 아무리 고양된 감정으로, 아무리 절절한 언어로 투쟁을 결의한다 해도 그가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라고 말하지 아니하는 한 그것은 이미 완전한 결단이 아니다. 그것은 언젠가는 가혹한 현실의 벽, 생사의 벽에 부딪혀 힘없이 허물어지고야 말 헛맹세이다.
목숨을 걸지 않는 '투쟁'은 거짓이다. 그것은 소리치는 양심의 아픔을 일시적으로 달래는 자기 위안의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삶의 문제는 결국 죽음의 문제이며, 죽음의 문제는 결국 삶의 문제이다. 비인간의 삶에 미련을 갖는 자는 결코 인간으로서 죽을 수 없고, 따라서 결코 인간으로서 살 수 없다. 전태일이 죽음을 각오한 투쟁을 결단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비인간의 삶에 대한 온갖 미련을 떨쳐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242쪽

그가 이 사회의 밑바닥에서 겪고 보아온 비인간의 삶은 너무나도 '지긋지긋하고 답답한' 것이었다. 그것을 철저하게 인식하였을 때 그는 그것을 철저하게 증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비인간적인 현실의 '덩어리에 뭉쳐지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외쳤다. 그는 "죽음 그 자체를 두려워하기 전에 (비인간의) 삶 그 자체에 환멸을 느낀다"고 고백하였다. 그리고는 아주 단순하게, 아주 분명하게 "나를 버리고, 날르 죽이고 가마"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그는 그러기에 마침내 모든 것을 버릴 수가 있었다. 그가 끝내 버릴 수 없었던 것은, 끝내 버려서는 안된다고 확인하였던 것은 그의 마음의 고향, 저 인간시장의 현장에서 학대받고 수모당하고 짓밟혀 파괴되고 있는 인간성을 위한 투쟁의 길뿐이었다.
이제 마음의 준비는 끝났다.
오직 거짓이 없는 그 순간을 위하여 아무 두려움도 남지 않는 그 완전한 순간을 위하여, 그는 이제 돌아가야 한다. 여기서 전태일 사상은 완결되었다.
남은 것은 오직 행동뿐. 불꽃같은 행동뿐. 한 병약한 인간이 어떠한 굴종의 성채도 파괴해버리는 저 처절한 분노와 사랑의 불길을 여러분은 곧 보게 될 것이다.-242-243쪽

전태일 열사. 분신으로서, 자신의 생명을 태워버림으로서, 사회에 목소리를 내려 했던 그. 점차 큰 목소리로 울려퍼졌던.
그가 분신한 1970년, 그리고 1980년만의 문제일까. 노동운동이 집단 이기주의로 몰아지고, 현재 FTA 협상으로 전국적 시위가 일어나고 있는 지금.
한 노동자가 자신의 목숨과 발언권을 맞바꾸는 사태는 10년, 20년 전에 있었던 '과거 사건'이 아니다. 불과 얼마 전에도, 이들은 자신의 목숨을 발언권과 맞바꾸었지만, 큰 반향도 일으키지 못하고 묻혀지고 말았다.
자신의 생을 바쳐가면서까지, 말하고자 했던 그. 세상의 무심함을 깨뜨리고 돌격하고 싶어했던 그. 36년전 전태일 열사, 그리고 오늘날의 열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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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평전 - 개정판
조영래 지음 / 돌베개 / 2001년 9월
구판절판


흔히들 아무개는 군대에 갔다오더니 '사람 다 되어서 왔다'고 하는 말들을 한다. 군대가 사람 만드는 곳이다. 군대에 갔다오면 사회에 적응할 줄 아는 인간이 된다고 하는 우리가 수없이 듣는 이 말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철저한 상명하복(上命下服). "X으로 밤송이를 까라면 깠지 무슨 이유가 필요하냐?"는 식의 어떠한 불합리하고 비인간적인 명령이라도 아무 이의 없이 지켜져야만 하는 숨막히는 계급사회, 인간적인 존엄이니 자유니 평등이니 하는 것은 한 방울도 찾아볼 수 없는 이 호령과 기합과 '빳다 방망이'의 세계가 '사람을 만든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바로 자신이 얼마나 무력하고 얼마나 왜소한 존재인가를 뼛속 깊이 깨달아 겸손(?)해진 인간, 강자의 지배에 도전하거나 저항하거나 이의를 내세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달걀로 바윗덩어리를 치는' 일인가를 철저히 터득하여 온순해진 지각 있는(?) 인간, 그러한 인간이 군대로부터 만들어져 나온다는 것을 뜻한다. 바로 이것이 '적응할 줄 아는 인간'의 정체인 것이다.-163-164쪽

사회는 이러한 인간을 여러 가지 그럴 듯한 표현을 써서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미화한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설교는 그 대표적인 예의 하나이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란 물론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의 참된 인간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공헌하고 봉사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회사원의 경우는 사장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곧 그것이다. 노동자의 경우는 기업주가 필요로 하는 일 잘하고 말 잘 듣고 부지런한 사람이 바로 그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 이다. 말하자면 지배하고 명령하는 강자의 이익에 가장 잘 봉사할 수 있는 사람, 그것이 바로 강자의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인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존엄하고 독립된 주체적 인간으로서의 모든 내면적 욕구와 의지와 희망의 충족을 포기하고 강자를 위한 하나의 도구 기능 노동력으로 전락해버린 인간상이며, 또 그 참혹한 전락을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인간상인 것이다. "권리보다는 의무를, 자유보다는 책임을" 숭상하라고 하는 요구는 바로 이러한 인간을 만들어내기 위한 그들의 비장의 주문(呪文)인 것이다.-164쪽

전태일 평전을 다시 읽으며, 전태일 열사를 다시금 기억 속에서 호명하고 있다. 그의 열정, 통찰력, 희생...
또, 조영래 변호사의 절제된 분노와 명철하면서도 알기 쉬운 서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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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12-01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습니다.
 

*주의. 이 글은 지나친 일반화와 거짓된 논거를 들고 있어서, 읽어보면 개수작임을 알 수 있음.

서론: 이모티콘의 의미와, 비교문화학적 분석의 필요성

이모티콘(imoticon)이란, 이미지(image)와 아이콘(icon)을 합한 말로, 인터넷에서 먼저 사용되기 시작하여 이제는 오프라인에서도 젊은 친구들의 경우 종종 사용하고 있다. 심지어는 시험 답안에도 이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어서 예를 들어

* 김소월의 '시혼'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그의 '초혼'에서 드러난 영, 혼의 개념에 대해서 쓰라.

라는 문제에 대해

학생1: 샘, '시혼' 안 읽어봤삼 ㅜㅠ;;; 대신 레포트로 쓰면 안될까용? ^^;;;;;;

학생2: OTL 이거 수업시간에 배운거 맞아요? ㅜㅠ;;; 저 대출(대리출석)도 한 번도 안하고 맨날 수업 들어왔는뎅 잉잉~~

같은 답안(?)을 직접 손으로 써서 제출하는 학생도 있으며, 우수답안이라고 하더라도 이모티콘 한 두개쯤은 쓰여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 88올림픽 전후로 태어난 이 땅의 아해들에게 있어 이모티콘은 이미 익숙한 일상의 언어이며 문화이고, 자신들의 내면을 압축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표현법이다.

물론 이는 단순화되고 몰개성적인, 그러나 그래서 효율적이고 직접적인 의사 소통 수단으로서 기능한다. 이러한 이모티콘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우리는 현 젊은 세대의 의식과 무의식, 그리고 이에 반영된 문화적인 심층구조를 파악해보는 것이 이 글의 목표이다. 또 더 나아가, 이모티콘의 서구와 한국에서 큰 차이점을 보인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에 대한 비교문화학적 접근을 통해 한국 사회만의 특질과 차이들을 드러내도록 하겠다.

 

본론 1- 눈웃음과 입웃음: 계층구조에 대한 인식의 차이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모티콘은 이미 젊은 세대의 일상이 된지 오래이다. 특히 그들의 희노애락을 표현하는데 이모티콘이 많이 쓰이며, 그 중에서도 희, 즉 기쁨의 감정을 이모티콘은 잘 드러내준다. 전통적으로 유교적 사회에 있어서 자신의 감정을 크게 드러내는 것은 선비다운 행동이 아니었다. 특히 '기쁨'과 '웃김'에 대한 감정은 글로 드러내는 것을 기피하였고, 이는 어느정도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온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근현대에 와서 글을 읽고 쓰는 계층이 확대되었다고 해도, 얼마전까지만 해도 글을 '쓰는' 계층과 글을 읽기만 하는 계층은 분명 지적, 문화적, 나아가 경제적인 격차까지도 있었음이 사실이라 하겠다. 때문에 이 글을 '쓰는' 계층은 자신의 지적, 문화적 우월성을 권위로 내세우며 점잖지 못한 '유머'나 '기쁨'을 나타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물론 식민지 시기 신문이나 잡지에도 꼭 '유머란'이 있어 웃기는 이야기를 적어놓기는 했지만, 이는 독자들로 하여금 '웃기게'하는 목적으로 수집해놓은, 또는 외국의 유머를 일방적으로 번역해놓은 것에 불과하였다. '저자'가 웃긴 일을 겪은 후에 '욜라 웃기다 껄껄껄'이라는 식의 글은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모든 사람이 글을 생산하고,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마음껏 배포할 수 있는 지금 시점에서, 개콘과 웃찾사, 개그야와 같은 개그프로그램이 대중의 관심을 받고, 영화는 웃겨야 하고, 배우도 웃겨야 살아남는 이 시점에서, 유머와 이를 보고 '웃겨 죽겠다'며 쓰는 글은 이제 '블로그'의 대세 중 하나이다.

이를 반영하듯(혹은 별로 상관없이) 이모티콘에서 '웃음', '기쁨'을 나타내는 표현이 상당수 존재한다. 이 장에서는 이에 대해서 미국/서구와 한국에서 이를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에 주목한다.

미국/서구(이하 서구로 통일)에서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기쁨을 표현한다.

:)        : )

전통적인 '스마일 마크'를 왼쪽으로 90도 돌려놓은 이러한 형태. 이를 자세히 보면,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다. 입꼬리만 올라와 있을 뿐이다. 물론 그렇다고 서구놈들은 눈은 안 웃고 있는 무서운 넘들 이라고 일반화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는 단지 그들은 '웃음'에서 주목한 부분이 '입꼬리'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후술 될 테지만, 이에는 또다른 비밀이 숨겨져 있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기쁨을 표현한다.

^_^         ^^             ^o^             ^.~             *^^*            *^_^*

욜라 다양한데, 공통점은 '눈'에 있다는 것이다. 즉 한국에서 '기쁨'은 입꼬리에 주목하였다기 보다는 눈의 반달꼴 모양에 주목했다. 이는 우리의 하회탈에서 볼 수 있듯이, 눈이 초승달 모양으로 휘어지면서 웃는 모습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또 이는 입꼬리를 그렇게 과격하게 올리지 않으면서 눈웃음치는, 즉 樂而不流哀而不悲(즐거워도 지나치게 흥청거리지는 않고, 애통해 하되 비탄하지는 않는다)는 식으로, 과장되게 웃지 않으면서, 자신이 상대방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정도만을 표현하는 것이다. 여기서 더 웃음의 정도가 높아지만

^^ㅋ     ^^ㅎㅎ            정도로 붙여주지만, 그래도 입꼬리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여기에는 더 큰 문화적 차이와 인식론적인 분절점들이 존재한다. 다시 서구의 웃음을 보자.

: )                    : (                 ; (             

그렇다. 그들은 눈은 그래도 놓아두면서 입꼬리만 반대로 해서 감정을 반대로 만들어 놓는다. 이렇게 '기분 나빠'에서 입꼬리는 그대로 두고 눈만 바꾸면 '울음'이 되는 구조, 즉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한 모든 시에는 처음 중간 끝이 있다는 듯이, 삼중 구조로 변화된다.

이는 사실 그들의 시민혁명적 가치관에 바탕을 둔 계층 인식의 차이를 내재한 것으로, 웃는 이(즉 지배층)은 순식간에 찡그린 이(즉 피지배층)이 될 수 있다는 것. 자유로운 계층 이동의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다. 또한 이는 근대의 T-Model과도 같은 포드시스템으로 대량생산가능하고 마치 공장에서 찍어내듯, 한 부품으로 많은 것을 처리하는 근대적 이모티콘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도 무슨 말 하는 지 모르겠다.)

반면에, 한국의 웃음과 울음을 비교해보자.

^^       ㅜㅠ           

전혀, 저어언혀 다르다. 세종대왕이 무지한 백성들이 어여삐 여겨 맹드신 훈민정음을 그대로 노출시켜서 울음을 만들고 있고, 이는 저 웃음과 전혀 호환가능하지도 않고, 종자도 다르고, 여하튼 완전 다르다. 우리는 분명 알고 있는 것이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다라는 것을. 그 울분을 세종대왕이 '시혜적'으로 만든 훈민정음을 전유하여 그래 너는 왕이고 우리는 '어여쁜 백성'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즉 중세적 이모티콘이라 할 수 있다. 니는 웃어라, 나는 운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다. 나는 네가 될 수 없다는, 이러한 인식. 웃는 놈은 항상 웃고, 우는 놈은 항상 운다는 인식. 이 절망적인 고착적 세계관! 그러나 여기서부터 우리는 출발해야 한다. 본론 2에서는 이러한 중세적 이모티콘이 어떻게 탈근대적이고 혁명적인 이모티콘으로 가치부여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겠다.

중세, 근대, 탈근대를 누구보다도 빨리, 그리고 아직도 동시대적으로 살고 있는 우리가 서구 넘들의 대량 생산된 듯한, 찍어낸 듯한 이모티콘. 지네들은 시민사회에 살고 있다는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으며, 이를 통해 많은 이들을 속이고 있는 저 이모티콘. 이를 우리의 중세적 이모티콘은 어떻게 혁명적으로 극복할 수 있고 하는지....

 

(* 공익 근무를 하니, 할 일 없어서;;;;;; 어쨌든 연구 주제네요. ㅋ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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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6-12-01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구 주제는 모르겠고, 이력서에 이모티콘 넣는 사람은 도무지 이해가 안 가요. -.-;;

로쟈 2006-12-01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형서씨와 합작으로 쓰셔도 되겠군요.^^

기인 2006-12-01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ㅋ 이력서까지요? 대단하네요~~ ㅎㅎ
로쟈님/ 학부 1학년때, 왜 내 앞서서 보르헤스가 있는거야! 했는데. ㅋㅋㅋㅋ

산사춘 2006-12-05 0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글 보구 미쳐 디지겠어여. 생업고객한테 단어외우게 하려고 이모티콘이 감정표현을 위해 emotion에서 파생됐다고 씨부렸는데.............. 전 왜 무식한데 용감하기까지 한 걸까요?

기인 2006-12-05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원래는 산사춘님이 맞을 껄요? emotion + icon ㅋ
이거 유머라고 쓴 거에요 ㅋㅋㅋㅋ 나름 산사춘님, 마태우스님 유머에 자극받아 나도 나만의 유머를 만드려고 ^^;
이모티콘(emoticon)이 맞을껄요 ㅎㅎ

산사춘 2006-12-05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하, 저때 제가 술이 떡이 되어가지고... 독해력이 파이였어요. 아이, 민망혀여...

기인 2006-12-05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뭘요~ 언제 산사춘님과 함께 산사춘 한번 마셔보고 싶네요. :)
 
 전출처 : 산사춘 > KTX승무원과 함께하는 여덟번째 촛불문화제 (금,저녁6:00)

철도공사, ‘취업사기’로 첫 단추 잘못 끼워


KTX 승무원과 함께 하는 여덟 번째 촛불 문화제


- 12월 1일(금) 늦은 6시 세종로 사거리 -




“정년보장은 당연히 되는 것이고 준공무원 대우를 해주겠다고 했다. 정년이 보장되기에 철도가 유럽과 러시아에 갈 때까지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준공무원 대우이기에 하루 8시간 노동은 당연한 것이고 주 5일제가 도입되었기 때문에 일주일에 이틀 이상은 쉴 수 있다고 했다.” - KTX열차승무지부 조합원 A씨 증언.

“입사 초기부터 1년 후에, 철도청이 공사가 되면 공사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준다는 약속을 수도 없이 들었다. 1기 승무원들이 1년 계약기간이 끝나고 재계약서를 작성할 때도 처음과 달리 이것 저것을 물어보는 승무원들에게 '길어야 2~3달이면 철도공사 정규직이 될 텐데 뭘 그렇게 꼬치꼬치 묻냐'고 핀잔을 줬다. 심지어 1기 승무원이 입사한 후 1년 뒤에 2기 승무원이 들어왔을 때 '너희 선배들은 1년도 넘게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공사 정규직이 되는 것인데 2기들은 입사 몇 달 만에 공사 정규직으로 되는 것이니 운 좋은 줄 알고 더 열심히 일하라'는 말까지 했다.” -KTX열차승무지부 조합원 B씨 증언.

(이상 출처: 프레시안, 2006. 11. 28.)



"시속 300KM 꿈의 고속철도 승무원! 지상의 스튜어디어스!"라는 이름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2004년 4월 KTX에 올라탄 여승무원들은, 2006년 12월 차디찬 거리에서 비정규직으로라도 철도공사가 직접고용할 것을 촉구하며 촛불을 밝힙니다.

공사 전환 후 정규직으로 전환해주고 할머니가 될 때까지 일하게 해준다고 약속했던 철도공사는 승무원들에게 외주위탁사의 정규직으로 가라고 등을 떠밀며 문제의 책임을 승무원들에게 넘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문제의 본질을 철저히 왜곡하는 것입니다.

KTX 여승무원들이 파업을 시작한지 무려 276일이 되었습니다. 그간 다섯 차례의 점거와 네 차례의 연행, 온갖 폭력과 위험을 겪었지만 투쟁을 접을 수 없는 것은 ‘우리의 요구가 정당하기 때문’입니다. 철도공사는 채용 과정에서부터 적극적인 속임수로 첫 단추를 잘못 끼워놓고, 지금에 와서는 더 낮은 고용조건과 극심한 고용불안정에 시달려야 하는 외주위탁사의 정규직 제안을 승무원들이 거부하고 있다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바람이 시려도,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로 온 몸에 소름이 돋아도 우리가 촛불을 밝히는 것은 평등한 노동권과 정당한 근로조건을 요구하는 우리의 투쟁이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어느덧 2006년의 마지막 달을 맞이합니다. 여덟 번째로 열리는 촛불문화제에 함께 하셔서 성차별적인 여성노동 현실의 개선과 승무원 직접고용을 위한 의지와 소망을 모아주시기를 요청합니다. 감사합니다.


◎ 일시: 2006년 12월 1일(금) 늦은 6시~

◎ 장소: 세종로사거리 (동아일보사 맞은편, 동화면세점 앞)


◎ 프로그램

  ♠ 문화제 알리기

  ♠ KTX 승무원 투쟁 뮤직비디오 상영

  ♠ 여성 듀오 힙합 그룹 ‘챕터투’ 공연

  ♠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의 지지 발언

  ♠ KTX 승무지부에서 준비한 공연 세트

  ♠ 촛불 행진

  ♠ 시청 광장에서 ‘직접고용’ 만들어내기


(문의: 여성노동네트워크 joylabo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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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라삭스님이 올리신 '양심적 사교육 거부'에 대한 글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한다.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09479

학부1학년 때는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대학생신문의 인터뷰도 했었다.) 결국 '공익'으로 대체복무를 하고 있고, 사교육에 대해서 시간당 페이를 너무 많이 받는 것 같아서 불편해하면서도 꾸역꾸역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 위안 하며 하고 있다.

결국, 몸이라는 것이 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몸이 먼저 변하면 정신도 변한다. 몇일 전에 썼던 페이퍼 중에 '고향에 가서 부르주아를 보다. 그래서 미안하다.'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04712

라는 글이 있었는데, 완전 패배주의적 사고다. 몸이 편한 공익생활과 사교육에 완전히 '적응'해 버렸으니, 정신도 따라갈 수 밖에.

스스로를 '진보'라 규정하는 이들이 논술학원계를 주름잡았다고 하던데, 내가 몸담고 있는(?) 학원에도 사회대 학생회장 이었던 분이 전임강사로 있다. 나도 스스로는 제대로된 사상교육(?)을 시키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합리화하지만, 계급 재생산에 다름이 아님을...

정말 혼란기이다. 몸이 변하니, 정신도 변한다. 내가 옳다고 믿었던 것들은 아직 옳은 것 같은데, 그 방법에 대해서는 회의와 불가지론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럴 때일 수록, 열심히 공부하거나 어떤 단체/조직에 기대야 하는데 시큰둥하다. 회의와 불가지론 속에서 게으름은 늘고, 비겁함은 체질화된다.

요즘 읽는 책들은 논술이나 중고등학생 언어영역을 가르친다는 핑계로 중고등학생을 위한 인문사회 교양서를 중심적으로 읽고 있으니 힘이 빠진다.

그래도 이번 주 까지 전태일 평전을 학생들에게 읽어오라고 했으니, 다시금 새로 읽고, 학생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나도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을지, 읽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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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11-29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보전진을 위해 1보후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비겁한 변명일까요..^^

기인 2006-11-29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그렇게 하루하루 살고 있고, 그 하루하루가 한달한달 일년일년 될 것 같아서 두렵습니다. ^^ 올해 말에 신년을 맞이하며 마음을 다 잡고 계획을 세워보려고요. ㅎ
(헉; 이렇게 1달 미뤄지는 결심 ㅡ,.ㅡ; 요즘은 '적응기'라 생각하며 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