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평전 - 개정판
조영래 지음 / 돌베개 / 2001년 9월
구판절판


흔히들 아무개는 군대에 갔다오더니 '사람 다 되어서 왔다'고 하는 말들을 한다. 군대가 사람 만드는 곳이다. 군대에 갔다오면 사회에 적응할 줄 아는 인간이 된다고 하는 우리가 수없이 듣는 이 말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철저한 상명하복(上命下服). "X으로 밤송이를 까라면 깠지 무슨 이유가 필요하냐?"는 식의 어떠한 불합리하고 비인간적인 명령이라도 아무 이의 없이 지켜져야만 하는 숨막히는 계급사회, 인간적인 존엄이니 자유니 평등이니 하는 것은 한 방울도 찾아볼 수 없는 이 호령과 기합과 '빳다 방망이'의 세계가 '사람을 만든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바로 자신이 얼마나 무력하고 얼마나 왜소한 존재인가를 뼛속 깊이 깨달아 겸손(?)해진 인간, 강자의 지배에 도전하거나 저항하거나 이의를 내세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달걀로 바윗덩어리를 치는' 일인가를 철저히 터득하여 온순해진 지각 있는(?) 인간, 그러한 인간이 군대로부터 만들어져 나온다는 것을 뜻한다. 바로 이것이 '적응할 줄 아는 인간'의 정체인 것이다.-163-164쪽

사회는 이러한 인간을 여러 가지 그럴 듯한 표현을 써서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미화한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설교는 그 대표적인 예의 하나이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란 물론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의 참된 인간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공헌하고 봉사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회사원의 경우는 사장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곧 그것이다. 노동자의 경우는 기업주가 필요로 하는 일 잘하고 말 잘 듣고 부지런한 사람이 바로 그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 이다. 말하자면 지배하고 명령하는 강자의 이익에 가장 잘 봉사할 수 있는 사람, 그것이 바로 강자의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인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존엄하고 독립된 주체적 인간으로서의 모든 내면적 욕구와 의지와 희망의 충족을 포기하고 강자를 위한 하나의 도구 기능 노동력으로 전락해버린 인간상이며, 또 그 참혹한 전락을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인간상인 것이다. "권리보다는 의무를, 자유보다는 책임을" 숭상하라고 하는 요구는 바로 이러한 인간을 만들어내기 위한 그들의 비장의 주문(呪文)인 것이다.-164쪽

전태일 평전을 다시 읽으며, 전태일 열사를 다시금 기억 속에서 호명하고 있다. 그의 열정, 통찰력, 희생...
또, 조영래 변호사의 절제된 분노와 명철하면서도 알기 쉬운 서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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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12-01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