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기행 - 추방당한 자의 시선
서경식 지음, 김혜신 옮김 / 돌베개 / 2006년 1월
구판절판


백인 사회에서 성장한 많은 코리언 입양아들은 양부모나 지역 사회의 오리엔탈리즘과 인종차별에 시달린다. 자신들의 노란 얼굴은 "부모로부터도 나라로부터도 버림받은 존재임을 나타내는 낙인"이라고 말한 입양아가 있었다. 미희 역시 자신의 출신을 알아내 존엄을 회복하고 싶다는 갈망을 지닌 채 열여섯 살때 양부모의 집를 나왔다. 자립해 생활하면서 예술을 배웠고 처음으로 제작한 단편영화에는 코리언 입양아가 베트남풍의 밀짚모자를 들고 등장한다. 그것은 농담이나 패러디가 아니다. 작가 자신이 당시에는 조선 문화와 베트남 문화의 차이조차 알지 못했던 것이다.-224-225쪽

어린시절. 외국경험. 결국에는 '타자'로서의 위치. 코스타리카라는 중남미 국가에서 외국인학교를 다녔기에 조금 덜 할 수도 있었지만, 어찌보면 더 할 수도 있었던 것. 학교는 차를 타고 1시간은 가야했고, 주5일제와 방학등에는 할일이라고는 집에서 책을 읽는 일 뿐에는 없었다.
당시 학원세계문학전집, 학원한국문학전집을 한국에서 올 때 가져왔어서, 초딩때부터 의미를 알 수 없었어도, 할일이 전혀 없었기에 꾸역꾸역 읽었던 기억이 난다.
러시아의 긴긴 겨울밤이 장편소설의 부흥을 가져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나 또한 일종의 섬에서, 긴긴 낮과 밤들을 소설을 읽어내려갔었다.
여하튼. 너는 '타자'라는 낙인은 그리 쉽게 지워지는 것이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요즘 서경식의 디아스포라 기행 -추방당한 자의 시선을 읽고 있다.

105 식민주의는 타자의 계통적인 부정이며 타자에 대해 인류의 그 어떤 속성도 거부하려는 광폭한 결의이기에 피지배 민족을 절박한 지경까지 몰아넣어 그들이 자기 자신에게 '진정 나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끊임없이 제기하도록 만든다. (Les damnes de la terre, Francois Masper edituer S.A.R.L., 1961)
105-106 계시와도 같은 말이었다. 파농은 프랑스령 마르티니크Martinique에서 태어나 프랑스 본국에서 정신의학을 배운 후 알제리 해방투쟁에 몸을 던졌다. 그 한 사람 디아스포라의 강렬한 말이 동아시아의 디아스포라인 나의 눈을 뜨게 했던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내가 사로잡혀 있는 것은 '식민주의'의 '계통적인 부정' 때문이다. 그것은 나 개인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즉 식민주의에 의해 디아스포라가 된 모두에게 일어나는 일인 것이다. 재일조선인은 세계적인 견지에서 볼 때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며 나는 혼자가 아닌 것이다. 비록 세계의 여기저기에서 디아스포라로서 살고 있는 형제 자매들의 모습이 아직 내 눈에는 선명하게 보이지 않더라도.

물론 나는 그가 말하는 '디아스포라'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인들은 또한, 디아스포라다.

"디아스포라들은 이주한 땅에서도 언제나 '이방인'이며 소수자다. 다수자는 대부분 '조상 대대로 전해내려온 토지 언어 문화를 공유하는 공동체'라는 견고한 관념에 안주하고 있다. 그러한 상황 안에 있는 한 다수자들에게는 소수자의 진정한 모습은 보이지 않으며 그 진정한 목소리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14)라고 한다.

조상 대대로 전해내려온 토지 언어 문화를 공유하는 공동체.

토지? 남북분단. 언어는 변화를 많이 겪었고 소위 '지식인'이라 하는 사람들은 영어를 섞지 않으면 대화를 못 나누는 지경이기는 하지만 일단 패스. 문제는 문화.

조상 대대로 전해내려오는 문화? 그런 것이 있을까?

내 이야기를 해 보자면, 나는 국문학, 그것도 현대문학 박사과정 휴학 중이다. 초2~중2까지 간간히 한국에 오기는 했지만, 여튼 사춘기를 외국에서 보냈다.

내가 국문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것은, 어떤 컴플렉스에서 기인한다. 외국에 있을 때의 친구들이 아이비리그를 갈 때, 나는 고작 '서울대'를 가야 했고, 미국에서 공부한(제대로 한 사람이 몇명이나 있을까. 미국인들과 '동등한' 경쟁과 대우하에) 교수들 밑에서 3류 수업을 받을 수는 없었다.

나는 '국문학'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것이 지금 우리가 무엇인지, 누구인지 말 해 줄 수 있는가? 국문학을 선택하고 보니, '국문학'이라는 것 자체가 근대의 징후를 극명히 들어내주는 사유방식이며 학적 체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란 누구인가'라는 물음이 '민족-국가'로 이어지는 것 또한, 근대적인 것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다음과 같은 의문은 끊이지 않는다.

'근대'라는 보편의 이름하에, 네모난 아파트, 서구식 정치제도, 사고방식에서 살고 있는 우리. 우리는 누구인가. 이를 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고전문학을 전공으로 하지 않고, 망설임 끝에 현대문학을 전공으로 하게 된 것은, '현장감' '바로 지금-여기'라는 문제의식과 무관하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여기에 무엇으로 존재하는 것인가. 한국인이라는 것은, 우리는 무엇인가.

내 애인은 지금 체코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하고 있다. 서울대 인문대학 수석 입학하고 얼마전에 외무고시에 합격해서 조금 있으면 외교관으로 한국을 '대표'할 그녀는, 체코에서 그저그런, 놀러온 시끄럽고 천박한 미국인들을 보면 알 수 없는 열등감을 느낀다고 했다.

왜? 단순하다. 그들이 '미국인'이기 때문에. 그들이 '서구인'이기 때문에.

100년전 쯤, 춘원 이광수가 고백한 것과 똑같이. 서구인들을 보면 열등감을 느낀다. 특히 한국에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춘원이 영어실력을 뽐내며, 조선인들에게 자신이 얻어들은, 일본을 통해 겨우 구입한 미국 원서를 읽으며 지식을 가르치고 그들의 무능에 한탄하고, '계몽'만이 살길이라고 부르짖으며 자신만한 엘리트가 조선에 몇명 안된다고 할 때에도, 그는 서구인의 '얼굴'만 보면 주늑이 들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아무리 잘나봤자, 아무리 영어를 잘 하고, 원서를 많이 읽고, 박사학위가 있어 봤자, '서구인'은 아닌 것.

애인은 영문학이 매력적인 점은, 그 '연속성' continuity에 있다고 했다. 초서에서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서로 참조하고 증폭하며 '이어져내려오는'

나는 그 발판은 제국주의고, 식민지의 착취와 인권유린과 학살이라고 답했다. 더 흥분했을 때는, 서구는 스스로 폭발해버려야 한다고 했다. 그들이 히틀러고, 무솔리니고, 카이사르고, 플라톤이고, 니체고, 맑스고 전부다! 그들이 '인류'다. 그들이 모든 일을 다 했다. 그들은 환경오염, 제노사이드, 핵폭탄이다. 그들이 아프리카의 원인이고, 그들이 중남 아시아의 원인이고, 그들이 북극 빙하가 녹는 원인이고, 아마존의 밀림이 사라져가는 원인이고, 수 많은 동식물 종들이 사라져가는 원인이다. 그들이 인류다. 죽어라.

그러나,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일까. 우리는 약한자요, 피억압자인가? '우리'는 고구려의 말달리던 선구자인가? 우리는 '소중화'이고, 이주 노동자들을 무시하고 놀려먹고, 베트남전에 참전하여 용맹을 떨치고, 이라크에서 단지 '재건'을 돕기 위해 파견을 하고, 경제규모 11위이고, 달러약세와 엔화 약세 때문에 관광을 하러다니고, 동남아에는 '묻지마 관광'을 하는 우리는 무엇일까.

한국문학사의 단절. 그것은 우리의 단절이다. 계통적으로 이제, '우리'라고 하는 신화를 부정하고 애써 코스모폴리탄으로 살 수 있다.

국민이나 민족으로 호명되지 않으며, 호명되는 기제를 애써 부정하며, 항상 소수자의 입장으로, 디아스포라의 처지에서, 주체로 호명될 수 있을까.

분명 나는 그러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라니, 언제적 이야기인가. '민족'이라는 얼마나 오래된 그리고 악의적인 농담인가.

그러나 애인의 체코 유학 이야기를 들으며, 서경식의 책을 읽으며, 나는 계속 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고, 그 '나'는 '한국-민족'이라는 집단의 일원으로 호명되는 것일까.

왜 나는 '국문학'이라는 근대학문 -끝끝내 지속되고 있는-을 탐구하는 하나의 학도로, 사회주의 사상에 친연성을 갖는 한 '시민'으로,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20대 청년으로 스스로를 규정하고, '끝나지' 않을까.

나와 대치되는, 나를 계속 호명하는 것들. 끝나지 않은 '우리 안의 식민주의'.

어떻게 우리는, 아니 나는, 자율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집단적 주체로서 변혁의 에너지에 일원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러한 집단적 주체는 어떻게 비폭력적일 수 있을까. 어떻게 타자를 타자화시키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디아스포라를 만들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우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을까.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7-02-22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기인님 알고보니 겨우(?) 서울대생이시네요 ㅋㅋ 저도 민족주의에 대해서 아주 회의적이지만 민족주의라는게 근대국가 성립에 태생적인 한계(특히 한국에서)이니 그것을 지양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가라타니 고진의 말처럼 국민으로서만이 아니라 세계시민으로도 인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말이야 바른말이지.저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근대국가라는 타이틀을 쓸 수 있는가라는 문제자체가 회의적입니다. 우리가 서구문명의 본질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죠? 민주주의라는 것은? 공화국의 개념은? 군사정부가 끝나고 국민의 선거로 대통령도 뽑으니 이제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다.이제부터 생계(경제)에만 전념하자! 이렇게 외치는 건 놀랍게도 미디어와 우리의 민주주의적 대표자(정치인)들이 아닙니까? 아테네의 야심가들이 민주주의 구도를 깨뜨리기 위해서 가장 먼저했던 일이 광장(아고라)을 페르시아식 바자(시장)로 만들어 사람들의 눈이 오로지 물건들에게만 쏠리게하고 생계에 전념하도록 유도했던 것이 자꾸 오버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직도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도 아니고 서양문명도 알지 못합니다. 포스트 모더니즘! 다 개똥같은 소리입니다 한국에서는.(근대도 오지 않았는데 무슨) 필요한 건 서구문명의 내재화입니다. 여친분의 이유모를 열등감과 우리안의 식민주의는 그런 것이 부족해서 생기는 것이 아닌가합니다. 아직 우린 그들의 문명을 알지 못합니다.저는 어쩔 수 없는 헤겔리안일까요? ㅎㅎ 저는 '서구'라는 지역적 명칭에 방점을 두지 않습니다.오히려 후자인 문명에 두죠.확실히 인류 보편의 문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흡수하고 내재화하는 쪽이 그 문명의 주인입니다. 마치 그리스와 로마인들한테 바바리안 소리를 듣던 저 미개한 야만인(게르만족)들이 지금에 와서 로마와 그리스를 자신들의 문명이라고 주장하듯이.

기인 2007-02-22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제 뿌리 깊은 컴플렉스, 어린 시절의 기억은 서경식의 다음과 같은 구절과도 닿아 있습니다.
백인 사회에서 성장한 많은 코리언 입양아들은 양부모나 지역 사회의 오리엔탈리즘과 인종차별에 시달린다. 자신들의 노란 얼굴은 "부모로부터도 나라로부터도 버림받은 존재임을 나타내는 낙인"이라고 말한 입양아가 있었다. 미희 역시 자신의 출신을 알아내 존엄을 회복하고 싶다는 갈망을 지닌 채 열여섯 살때 양부모의 집를 나왔다. 자립해 생활하면서 예술을 배웠고 처음으로 제작한 단편영화에는 코리언 입양아가 베트남풍의 밀짚모자를 들고 등장한다. 그것은 농담이나 패러디가 아니다. 작가 자신이 당시에는 조선 문화와 베트남 문화의 차이조차 알지 못했던 것이다."
서구 문명의 내재화, 또는 '문명'이라는 보편의 이름의 내재화로 인해 그 주인이 되면 분명 열등감과 식민주의는 없어질 것 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내재화한다면, 그 내재화라는 것은 '우리'가 완전히 그 문화의 주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렇다면 이제 '타자'들은 그 주인이 아닌 것이 되어 우리 또한 일종의 제국적 권력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아직도 일본인들조차도 미국인이나 서구에 대한 환상과 콤플렉스가 있듯이. 게르만들이 짱을 먹은 후에야, 로마와 그리스를 전유할 수 있었듯이.
그러한 내재화은 단지 '서구문명'만을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군사력, 경제력, 정치력등이 서구 최강대국과 동등하거나 더 뛰어나야 될 것 같습니다.
중국은, 스스로 별반 콤플렉스가 없는 것 같아요. 대국의 힘이려나..
여튼 빨리 이 수렁에서 벗어나서 (이것은 역시 과거의 기억과 서경식의 책 때문인데) 민족-국민으로 호명되는 것을 멈추고 다시 평정을 찾아야 겠습니다. ㅋ
영어 원서를 짜증날 속도로 읽고 있는 요즘 제 모습과도 겹치면서 콤플렉스들이 드러나면서 은근 흥분되네요. 흑 소년 시절 인종차별의 아픈 기억;;

비로그인 2007-02-25 0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통 가해를 당한 사람은 가해의 '전가'로 나가기 쉬운법인데 기인님의 성향을 보면 아마도 초자아를 형성하신듯 합니다 ^^ 글쎄요. 중국은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근대의 중국은 아편전쟁 이후로 서양컴플렉스 속에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껍니다. 진독수, 노신, 펑유란 같은 사람의 글을 읽어보면 잘 느껴지지요. 그리고 제가 말한 서구문명의 내재화는 사실 제국주의적 헤게모니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지금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정치체제, 즉 '민주'와 '공화국' 어떤 것이고 어떻게 기능하였으며 그것들을 만들어낸 '원조'에 대한 탐구라고나 할까요? 직접민주제의 원조인 아테네는 국력으로 비교해보면 페르시아에게 상대도 안되지요. 그리고 저 유명한 플라톤이 강대국 이집트를 몹시 흠모했다는 것도한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정언명령의 사나이,인간시계라는 칸트는 몹시 양심적인 사람이였을테지만 국왕의 명령에 너무나 간단히 굴복했습니다. 그러나 아테네의 '시민' 소크라테스는 경비도 없는 허름한 감옥에서 어떠한 탈출시도도 하지 않고 간단히 독배를 들었죠. 그 차이가 무엇이겠습니까? 한나 아렌트는 공적인 삶(vita activa)의 유무의 차이라고 지적하고 있지만. 현대 유럽은 바로 아테네의 vita activa를 현체재에 확립시키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의 과정이였다고 이해하면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교양교육을 시키고 고전 인문학을 가르치며 사람들에게 민주주의의 본질을 인식시키려 노력한 것이죠. 당연히 무료로.. 공화국의 재산은 시민들 자신의 것이니까 (아테네에서는 훌륭한 교육에 장이였던 연극을 보러 오는 가난한 시민에게 돈을 주었다고 하죠?) 그러나 한국은 제가 앞에 댓글에서 지적했듯이 민주주의의 시스템만 도입하면 다 된것처럼 또한 정부가 나서서 국민들에게 그렇게 인식시키고 있는 것이 큰 문제라는 것입니다(유럽에서 거의 무료나 다름없는 대학교육이 우리에겐 너무나도 당당하고 중요한 교육'시장'이지요) 이런 내.재.화가 되있다면 자부심이라는 것, 세계를 주도하는 대국이 아니어도 자연스럽게 생기지 않을까요? 이집트,페르시아 같은 위대한 나라의 '신민'보다 일개 촌구석 도시국가 '시민'이 훨씬 자부심 있으리라는 것은 소크라테스의 독배를 떠올리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해될 것입니다.

기인 2007-02-22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세한 답변 고맙습니다. 그런 내재화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페이퍼로 정리해주시면 좋겠는데요 ^^; 사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그러한 내재화가 어떻게 될 것인가의 문제(실질적인 재원이나 현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 하에서)입니다. 또 그것이 오랜 기간 후에나 가능한 것이라면, 그 동안 '우리'라는 정체성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남한 지식인들 또한 어쩔 수 없이 디아스포라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끊임없이 세계시민의 일원으로, '인류'로 호명되어야 하겠지만, 하루하루 공부를 하고 살고, 특히 '외국'인들과 (이론으로든 실제로든) 마주치게 될 때 가끔씩 '타자'로서 느껴지기도 합니다. 별반 이런 인식이 희미해지다가 (세계시민의 일원으로 자각하다가) 서경식 선생의 글을 읽으니 다시금 이 문제에 대해서 울컥하게 되네요 ^^;
현대 중국에서 부러운 점은, (많은 이들이 경계하고 있는 점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서구에 꿀릴 것 없는 인식과 대국주의죠. 배워도 동등하게 배운다고나 할까, 서구를 은근히 깔본다고 할까. 제가 만나본 사람들이나 다녀본 이미지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요. ^^;

기인 2007-02-22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또 한가지, 실제 서구 국가도 그런 민주주의를 내재화한, '서구 문명'을 내재화한 국가-국민이 있는가 의문스럽습니다. 저는 '민주주의'는 결국 이데아라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이를 구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인류 보편적 가치'라는 것은 있을 수 있고, 있다고 믿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보편으로서의 '서구 문명'과 이의 내재화는 조금 자세히 설명되지 않으면, 오해하기 쉬운 개념인 것 같습니다.

비로그인 2007-02-22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정체성의 문제는 사실 어려운 문제고 저의 좁은 식견으로는 기인님에게 만족할만한 답변을 드릴 수 없을 것 같군요. 그럼 님이 문제 제기해주신 '내재화'한 유럽 국가가 과연 있는가의 문제와 재원문제가 있고 신 자유주의 이데올로기 상태에서 어떻게 가능할까에 대해서 제 생각을 써보지요.

물론 페리클레스 시대의 아테네와 같은 직접민주정치체제를 구현하고 있는 국가는 아마 지구상에서 없겠지요.님이 구현불가능하다는 것이 바로 이러한 민주주의 체제가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이런 체제에 가까워지기 위해서 노력하는 국가는 분명히 있습니다. 예를들면 프랑스같은 나라라고 할 수 있죠. 제가 깜짝 놀란 것은 얼마전 콩드르세를 읽으면서 입니다. 이 사람은 프랑스 혁명정부에도 참여하기도 한 사람인데 이때부터(약 200년전) 교육의 사회적 의무를 주장합니다(즉 무료로 해야한다는 것이죠)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은 인간의 평등을 전제하지 않는 이상 존재할 수 없고 그러한 평등은 모든 시민에게 동등한 교육이 주어지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때부터 꽤뚫어본 것이죠. 또한 훌륭한 교육이란 국가체제를 추종하는 인간을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체제를 합리적으로 비판,반성할 수 있는 시민을 길러내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교육론은 말할 것도 없이 현재 프랑스의 교육이념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콩도르세는 이런 것을 어디서 배웠을까요? 그것은 서양의 기축문명인 그리스와 로마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자라나는 시민들에게 가르치지요. 저는 헌법에 민주주의체제가 명시되어 있거나 포룸같이 거창한 공공장소가 있어야 민주주의국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인본주의적인 민주주의 정서를 공유하고 있는 국민이 있는(그리고 그들이 가는 곳이) 민주국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점에서 우리나라는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 반문하고 싶습니다. 과연 민주주의 국가입니까? 우리의 교육은 분명 조금더 '벌기' 위한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은 아닙니까?

두번째 답은 이 문제와 이어집니다. 근대국가의 특징은 역시 의회제도와 자본주의 국가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죠. 우리나라의 현체제는 민주주의 보다 자본주의에 방점이 찍혀있다고 보면 되겠죠. 기인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러한 체제속에 사고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재원을 따지는 것이죠. 만약 민주주의 국가라면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필수적인 공교육에 감히(?) 재원논의는 일어날 수 없습니다.그것은 지극히 기본적인 상식이요, 전제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자크 아탈리는 미테랑 정부시절 관료로도 재직한바 있는 사람이지만 그 사람의 보고서(정확한 보고서의 명칭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이해해주시길)만 읽어봐도 민주국가를 위한 기본 전제로서 교육의 사회적 의무를 얼마나 중요시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프랑스 인들도 시장 논리가 하버드와 같은 세계최고의 대학을 탄생시킬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사회적 평등이고 민주주의라는 것입니다. 세계 최고의 대학들을 가진 미국은 세계에서 정평이 나있는 불평등 국가 아닙니까? 왠만한 갑부의 자제가 아닌이상 대학 졸업과 동시에 빚쟁이가 되서 나오고 그 나마 돈도 없는 서민들은 대학가려고 이라크에서 거의 용병과 다름없도록 쓰여(?)지고 있지 않습니까?.

과연 민주주의국가는 누구를 위한 것이죠? 자본주의 국가의 왕은 '주주'이지만.

기인 2007-02-22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사실 테츠님의 위 명제들에는 오래전부터 동의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저는 현재의 프랑스라해도, 결국에는 부르주아 독재에 다름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도 안 좋지만, 서구라 해도 좋을 게 하나 없다는 게 제 생각이죠. 그나마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 모델에 대해서는 우리보다는 더 좋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러면 문제는 서구문명의 내재화의 추상적 문제가 아니라, 제 생각에는 사회체제나 혁명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서구 문명 내재화'라고 말씀하시니까, 자본주의 내적 개혁을 뜻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민주주의'라는 이데아로 나아가기 위해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강력한 사회민주주의(민주 사회주의?) 건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고, 이를 지지하는 국회 내 정당도 있으니, 거기서부터 시작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나, '서구 문명의 내재화'라고 말씀하시면, 이제 이는 교육의 문제로 들어가고(물론 교육의 문제는 정말 중요하지만) 그것은 현 체제 하에서 길고도 긴 세월이 걸려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의문은 그 이전(?) 또는 좀 다른 '정체성' 문제였습니다. 사회변혁에 대한 제 생각은 확고하다고 생각합니다.

yoonta 2007-02-23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대화들을 나누고 계시네요.. 기인님의 글도 참 진정성이 느껴지는 좋은 글이었습니다..(은근히 여친자랑도 하시면서 ㅋㅋ) 그런데 테츠님이 말씀하시는 그리스에서 기원하는 보편성으로서의 민주주의가 지금의 서구의 '문명'을 만들었다는 지적에 동의하면서 한편으로는 그것이 '제국주의'와는 무관하다는 의견에는 약간의 반대의견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네요.

yoonta 2007-02-23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구의 소위 '문명'은 테츠님이 말씀하시는 그리스적 liberalism과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태동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긍정적으로 모든 민족이 '내면화'해야만 할 어떤 보편적 가치인가하는 것에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왜냐하면 그리스이후부터 유럽지역에서 내면화한 그러한 그리스적 가치들로 인해 그들은 결국 그들의 타자 즉 아시아나 기타 문명들과 같은 타자들을 열등한 문화나 가치들로 바라보는 우월감으로 이어졌던게 사실이고

yoonta 2007-02-23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한 나르시시즘적인(자기의식적) 우월의식이 서구의 ‘제국주의’의 근원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러한 서구문명을 보다 발본적으로 재검토해보아야 할 필요성이 요구된다고 봅니다. 단순히 “우리는 아직 근대화 혹은 민주주의가 정착 혹은 내면화되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소위 서구에서의 포스트논쟁들을 바라보면서 비록 우리에게 아직 도래하지도 않는 근대이후를 이야기하는 ‘포스트’담론이라고 하더라도

yoonta 2007-02-23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로부터 분명 배워야 할 점이 있고 또한 우리가 지향해야 될 미래가 단순히 지금의 서구가 아니라고 한다면 더욱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저는 기인님이 이번에 주제로 삼으신 ‘디아스포라’와 같은 ‘포스트’콜러니얼리즘 논의도 중요하게 참조되어야할 사항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소위 포스트식민주의는 서구적 근대의 타자를 배제하는 서구의 나르시시즘적인 주체를 되돌아보게하는 효과가 있기때문이죠. 저도 아직은 이 분야에 대해서는 무지한 편이긴 하지만요..^^;;

yoonta 2007-02-23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궁 긴 댓글이 안올라가서 이렇게 분절해서 올릴수밖에 없네요..양해를 구합니다. 기인님, 테츠님 ^ ^;;

기인 2007-02-24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
 
디아스포라 기행 - 추방당한 자의 시선
서경식 지음, 김혜신 옮김 / 돌베개 / 2006년 1월
구판절판


식민주의는 타자의 계통적인 부정이며 타자에 대해 인류의 그 어떤 속성도 거부하려는 광폭한 결의이기에 피지배 민족을 절박한 지경까지 몰아넣어 그들이 자기 자신에게 '진정 나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끊임없이 제기하도록 만든다. (Les damnes de la terre, Francois Masper edituer S.A.R.L., 1961)-105쪽

계시와도 같은 말이었다. 파농은 프랑스령 마르티니크Martinique에서 태어나 프랑스 본국에서 정신의학을 배운 후 알제리 해방투쟁에 몸을 던졌다. 그 한 사람 디아스포라의 강렬한 말이 동아시아의 디아스포라인 나의 눈을 뜨게 했던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내가 사로잡혀 있는 것은 '식민주의'의 '계통적인 부정' 때문이다. 그것은 나 개인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즉 식민주의에 의해 디아스포라가 된 모두에게 일어나는 일인 것이다. 재일조선인은 세계적인 견지에서 볼 때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며 나는 혼자가 아닌 것이다. 비록 세계의 여기저기에서 디아스포라로서 살고 있는 형제 자매들의 모습이 아직 내 눈에는 선명하게 보이지 않더라도.-105-106쪽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 현대 한국인이라면 물어야 하는 물음이 아닐까. 식민주의. 아직 끝나지 않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바람구두 > 마태우스님께...

마태우스님께...

반딧불님의 페이퍼 중에 "그분이 오고 계십니다. 두둥~" 란 제목의 글을 찾아 읽으려고 들어가면서
문득 이거 혹시 "마태우스"님의 컴백 소식이 담긴 페이퍼일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을 품었더랬습니다.
막상 글을 보니 그런 내용이 아니어서 제 주책맞음에 실소하고 말았지요.
그간 인터넷 생활을 해오면서 누구에게도 돌아오란 말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인생사 다 그런게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살고 있기에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는 나름의 냄새나는 철학 같은 걸 가지고 있는 거지요.
사람이 이기적이라면 이기적이어서 제 한 몸 다치지 않기 위해서는 종종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알량한 보호색 하나 정도는 가지고 살아야 하는데, "사람 잡지 말자!"는(물론 중의법입니다. 때려잡지 말자! 붙잡지 말자!) 제 철학이 갑자기 무장해제됩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마태우스님은 제 가장 큰 라이벌인데, 이토록 라이벌의 귀환을 애타게 부르짖는 것은 마태우스님이 알라딘의 대주주라서기 보다는 당신의 유쾌함과 그 유쾌함 뒤에 감춰진 음울한 개성이 그리워서입니다.

물론 제가 언제나 마태우스님 편이었던 것은 아닙니다만,  제가 심하게 마태우스님 편이 될 수 없을 때는 차라리 침묵할지언정  시비는 걸지 않았습니다. 마태우스님이 펼치는 이야기가 때로 마음에 들지 않을 때조차 당신의 이야기는 귀담아 들을 만한 것이었고, 당신과 제 의견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서로 인정할 수 있을 만큼 마태우스님은 도량이 넓은 사람이었습니다. 아마 저보다 연배가 조금 위일 듯 싶습니다만 그간 알라딘에서 누구보다 다정한 이웃이자 평등한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은 인지상정, 인정의 문제입니다.  마태우스님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미덕 가운데 하나도 분명 이와 같은 인정일 것이라 저는 여깁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마태우스님이 이곳 알라딘 서재에서 보여주신 당신의 퍼스낼리티, 인격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이제 당신이 이곳을 등지고 떠난 지도 어느덧 시간이 좀 되었습니다. 저를 비롯한 이곳, 알라딘의 많은 분들이 당신을 그리워하고, 당신의 글을 다시 보고 싶어하는 것도 역시 인정입니다.

당신이 이곳에서 벌어진 일련의 일들로 인해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지켜보는 저 역시 마음이 편치 않았으나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 소란 한 번 없이 그간 무사무탈했던 것이 도리어 신기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일어난 것이기도 하지만, 당신이 느꼈을 실망감이나 인간에 대한 서글픔만으로 다른 많은 사람들 곁을 떠난 것은 인정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당장 저 만해도 이렇게 당신을 찾고 있지 않습니까. 비록 우리가 만난 것은 한 번에 불과하지만, 인터넷이나 당신의 저서들을 통해 마태우스님에 대해 친숙한 감정을 느낍니다.

알라딘마을에 있어  공인이라 불릴 만한 자격을 지닌 최초의 서재 주인이 있었다면 그것은 아마도 마태우스님이었을 겁니다. 이제 마태우스님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서글픔으로부터 벗어나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마태우스님이 결단코 돌아오시지 않겠다면 알라딘 결사대라도 조직해서 천안 캠퍼스로 쳐들어갈지도 모릅니다. 이제 해도 바뀌고 하였으니 심기일전하셔도 내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시 우리 곁에서 특유의 '알라딘 미인예찬론'과  유쾌하고 진지한 이야기들을들려주시기 바랍니다.

멀리 인천에서

당신을 그리워하는 바람구두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디아스포라 기행 - 추방당한 자의 시선
서경식 지음, 김혜신 옮김 / 돌베개 / 2006년 1월
구판절판


일본을 떠나기 전에 "영국에 가는데 묵는 호텔이 미국 대사관 부근"이라고 했더니 "자폭공격의 표적이 되니까 테러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가까이 가지 말라"고 정색을 하고 충고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럴 때 나는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까지 생각했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불운을 한탄하지 않을 자신은 없고, 공격한 자를 증오하지 않을 자신도 없지만, 그 운명을 끔찍하게 부조리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세계에서 '나'라는 존재가 차지하는 위치는 충분히 그와 같은 죽음에 어울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폭공격이라는 행위가 어떤 필연성을 지니고 존재하는 한, 내가 거기에 말려든다는 건 이치에 맞는 일이다.
하나는 일본이라는 '선진국'에 살기 때문에 내가 누리는 기득권 때문이다. 그러나 나와 같은 재일조선인이 일본에서 태어나 자라게 된 것은 우리 자신이 바란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억해두어야 한다.
또 하나는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행위에 종사하면서 이 세계를 바꾸는 길을 개척하는 데 조금의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무력감 때문이다.-46-47쪽

내셔널리즘이라는 근대적 상상력은 '국민'을 하나의 유기적인 신체로 상상한다. 프로이센의 농민 아무개, 작센Sachsen의 장인 아무개, 바이에른Bayern의 공증인 아무개를 일괄해 '독일인'으로 상상한다. 그러기에 라인 강변의 누구누구가 '프랑스인'에게서 상처를 입으면, 프로이센에서도 작센에서도, '우리'가 상처받았다고 분개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타자'를 상상하고, 그들과의 차이를 강조해, 그것을 배제하면서, '우리'라는 일체감을 굳혀간다. 추도의 의례는 그 소름끼치는 국민적 상상력과 깊이 연결돼 있다. 타자와의 싸움에서 '우리'를 위해 자기를 바친 자들의 묘. 그것은 이미 개별적인 사자의 묘가 아니라, '우리'라는 관념, '국민'이라는 관념의 묘인 것이다.-59쪽

인간은 또 '왜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라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귀족과 노예, 지주와 소작인,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대립구도로 인류사회학을 이해하고, 계급투쟁을 통해 사회해방을 지향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거기에서는 '왜,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노예여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왜 검은 피부로 태어났는가? 왜 여자로 태어났는가? 왜 재일조선인으로 태어났는가? '생의 우연성'과 연관되는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을 근대 이후의 합리주의적 사상은 갖고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운명의 불연속성을 연속성으로, 우연을 의미 있는 것으로, 세속적으로 변환시키는 일이 필요하게 된다. 그 '변환 장치'야말로 내셔널리즘이라고 앤더슨은 말하고 있다.
개인들은 운명의 우연성과 유한성으로부터 도망갈 수가 없다. 종교 사상도 이미 의지할 게 못 된다면, 인간은 무엇에 의지해 죽음이라는 궁극의 숙명성을 견뎌내야 하는가. 거기서 영원불사의 존재로서의 '국민'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60-61쪽

1936년, 조선반도에서는 조선총독부 학무국장인 시오바라 겐자부로가 조선 사람들을 향해 "천황 폐하를 위해 신명을 바치는 것은, 흔히 말하는 자기 희생이 아니라, 소아小我를 버리고 크나큰 존엄에 살아 국민으로서 참 생명을 발양하기 위함'이라는 내용의 연설을 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천황을 위해 죽는 것은 참으로 사는 것이니, 참으로 살고 싶으면 죽으라는 것이다. '나'는 유한하지만, '국가'나 '국민'은 무한하다. 따라서 '국가'나 '국민'을 위해 죽으면, 그 '나'는 불사의 존재가 된다. 근대의 내셔널리즘이 만들어낸 '국민'이라는 관념, 국토나 혈연의 연속성, 언어의 문화의 고유성과 같은 환상에 의해 구성되는 이 만만치 않은 관념은, 인간이 갖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불사의 욕망에 의해 지탱된다. 자신의 재산 혈통 문화를 영구히 남기고 싶다는 욕망이, 내셔널리즘의 토대가 된다. 이 관념에 맞서 이기기 위해서는 결국 죽음이라는 숙명과 삶의 우연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61-62쪽

사람은 우연히 태어나 우연히 죽는 것이다, 혼자서 살고 혼자서 죽는다, 죽은 뒤는 무無다. 이런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한지 아닌지에, 내셔널리즘에서 오는 현기증을 극복할 수 있을지 없을지가 달려 있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이는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너무도 힘겨운 일이다.
분명히 마르크스주의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사상이 형성된 배경에서 유대-기독교적인 종말론의 영향을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은, 많은 논자들이 지적하는 바다. 계급투쟁으로부터 공산주의 사회를 거쳐 계급의 소멸에 이르면 그 시점에서 인류의 진정한 역사가 시작된다고 하는 구상은, 일종의 종말론적 유토피아 사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 불사에의 바람을 이러한 구상에 기대어 해소하고자 한 이도 많을 것이다.
그러니까 사회주의 정권 붕괴 이후 거의 모든 나라에서 공산당이 민족주의 정당이나 원리주의 집단으로 변모했던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들은 스스로의 죽음과 불사를 둘러싼 상상을 해소해줄 대상을, 이것에서 저것으로 바꾸었을 뿐이다.-62쪽

바그너의 작품은 물결의 너울거림에 몸을 맡기게 한다는 것, 바로 이것이 특징이다. 개인의 취향이나 취미, 의심이나 비판, 위화감이나 저항 등의 감정을 일단 젖혀두고, 말하자면 몰주체 몰아의 경지로 나아가 거기에 몸을 두고 크나큰 물결의 너울거림에 몸을 맡기는 것, 그것이 바그너의 음악에서 감명과 도취를 얻는 최상의 방법이다. 또 그런 태도만큼 파시즘에 바람직한 것도 없으리라.
'예술과 정치는 별개다'라는 말을 받아들여야 할까?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시대와 사상을 깊이 담지 못한 범용한 예술이라면 오히려 어떤 정치체제하에서도 편히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그너의 예술이 빼어난 것은, 그것이 이 두 가지를 완벽할 정도로 융합해놓았기 때문이다. 바로 거기에서 고민도 시작된다.-71쪽

나는 이전에 1970년대 한국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진정으로 괄목할 만한 움직임을 보였던 한국의 민중신학이 지금은 김지하와 '선민사상'選民思想을 공유해 "일종의 자기중심주의, 나르시시즘"에 전도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우려한 적이 있다 .그리고 재일조선인과 같은 '디아스포라 조선인'을 시야의 밖에 두는 대신 '디아스포라'와 과제를 공유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자기중심주의의 함정을 피하는 하나의 방법이 되리라고 썼다. (.....)
이렇게 말했다고 해서 내가 피억압 민족에 의한 해방과 자립을 위한 운동들이 언제 어디에서나 불가피하게 자기중심주의나 국수주의로 전락할 운명을 지닌다고 결론짓는 것은 아니다. 현실을 외면한 냉소주의라고도 할 수 있는 이런 생각은, 식민지배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피억압 민족의 저항을 눈엣 가시처럼 느끼는 사람들에게만 환영받을 것이다.-76쪽

내셔널리즘을 넘는다는 것은 '선진국'이라는 안락한 장소에서 '선진국'으로서의 기득권을 무비판적으로 향수하면서 타자를 내셔널리스트라고 지칭하는 걸로 되는 것이 아니다. 피억압자가 저항을 위해 내셔널리즘을 필요로 하는 상황, 피억압자를 내셔널리즘에 결집시키는 억압적 구조,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면, 최소한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방향성도 갖고 있지 않다면 그 담론은 '내셔널리즘'이 아닌 '저항'을 무력화하는 힘으로만 작용할 것이다.-77쪽

개인적으로 주요한과 이광수. 사실 그들의 사상을 좇다보면 묶일 수 없는 존재이지만 빈번히 묶이는 이 두 '민족주의자'들이 파시즘으로 회귀한 것. 김지하 시인이나 신비주의적 국수주의로 퇴행하는 이들. '파시즘'의 매력에 대해서 더 공부해 봐야한다. 이 문제는 풀면서, 1920~40년대와 1980~2000년대를 공부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