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크로이드 살인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12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용성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평점 :
품절


"어떤 한 남자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아주 평범한 남자입니다. 그가 살인을 하리라고는 생각할 수조차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는 어딘지 나약한 성품이 있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 이제까지 한 번도 겉으로 드러내 본 적 없는 나약한 마음이지요. 아마 앞으로도 두 번 다시 드러내지 않을지 모릅니다. 만일 그 나약한 마음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누구나 다 존경하고 그 역시 죽을 때까지 편할 겁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생겼다고 합시다. 그는 돈에 몹시 궁했지요. 아니, 궁한 정도가 아니라 아주 꽉 막혀 버렸다고 합시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어떤 비밀을 알아냈습니다. 어떤 사람의 생사에 관계되는 비밀을 말입니다.

그 남자는 처음에는 이것을 공표하여 선량한 시민의 의무를 다하려 했지요. 그러나 여기서 그의 나약한 성격이 머리를 쳐들고 일어납니다. 이건 돈이 생길 좋은 기회다. 더욱이 막대한 큰돈이다라고요. 그 남자는 돈 때문에 몹시 난처해 있습니다. 어떻게든 돈을 손에 넣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돈이 눈앞에 놓여 있습니다. 더구나 그 돈을 얻기 위해 아무 노력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침묵만 지키면 되는 겁니다. 이것이 시작입니다. 돈에 대한 욕망은 점점 커져 갑니다. 더 많이, 더 많이! 남자는 발 밑에 금광에 그만 취해 버립니다. 그리고 탐욕으로 눈이 어두워집니다."

 

"아마 이번 일도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돈이 자꾸 나오는 바람에 너무 지나치게 쫓았던 거지요. 영국의 격언과 같이 금덩이를 낳는 거위를 죽여 버린 격입니다. 그러나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남자는 사실이 폭로될 위기에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현재의 그는 벌써 과거의 그, 1년 전의 그가 아닙니다. 이제 도덕 관념도 흐려져 있습니다. 자포자기가 되었습니다. 점점 지고 있는 싸움에서 그는 수단을 가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실의 폭로란 바로 그 자신의 파멸을 의미하는 것이었지요. 그리하여 단검이 꽂혀졌던 것입니다."

 

"그 단검이 뽑혀진 뒤 그는 다시 여느 때의 평범하고 동정심 많은 남자로 돌아갔겠지요. 그러나 만일 필요할 때는 다시 단검을 휘두를 겁니다."

 

 

이 책을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다른 버전인 황금가지 출판사의 크리스티 전집으로 이미 읽었다. 따라서 반전을 정확히 알고 읽었다.

이 책이 반전을 알고 나면 반응은 딱 두 가지로 나뉘게 되는데, 하나는 교활한 속임수를 썼다고 비난했던 반 다인과 같은 반응, 하나는 앨러리 퀸과 같이 극찬하는 반응이다. 중간은 없다. 당연히 없다.

개인적으로는 후자였다. 물론... 정통 미스터리 트릭이 아니라는 점에서 비판의 여지가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독서의 재미라는 측면에서만 놓고 보면 단연코 이 소설은 압권이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그 반전 때문에 멍해졌는데, 시간이 한동안 흐르고 나서 반전을 다 안 상태에서 책을 다시 읽으니 책 전체에 교묘하게 깔아놓은 복선이 보였다.

다 알고 봐도... 재미있다. 정말 재미있다. 추리 소설은 읽다 보면 그 반전과 트릭에 치여서 지치는 경우가 있다. 무엇보다도 소설의 의무이자 책임은 재미이거늘... 지나치게 추리물의 트릭의 정교함에 집중하다 보면 소설 자체의 재미는 어느 순간 사라진다.

크리스티의 작품은 그냥 막 읽어도 재미있다. 사건도 재미있고, 사건이 밝혀진 이후 사건의 진짜 모습도 재미있고, 거기까지 가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인물의 대화도 재미있고... 어쩌면 크리스티의 작품들이 지금까지 살아 있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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