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런타인데이의 무말랭이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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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가「일간 아르바이트 뉴스」에 연재한 90여 편의 에세이를 모은 작품집이다. 주제는 '시티 워킹'. 도쿄와 근교 생활에 대한 단상들을 담았다. 삽화는 안자이 미즈마루. 몰랐는데 하루키와 미즈마루 콤비는 에세이 시리즈를 줄줄이 만들었는데, 국내 정식 출간 계약을 거쳐 문학동네에서 전 5권의 시리즈로 출판했다고 한다. 잠깐 출판사가 제시하는 각 책의 소개를 보자.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무라카미 하루키와 안자이 미즈마루 콤비의 첫 공동 작업물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와 『랑게르한스섬의 오후』를 함께 수록한 단행본. 재즈와 록, 팝 음악에서 영감을 받은 짤막한 글들과 센티멘털한 도시 일상의 에피소드가 안자이 미즈마루의 컬러풀한 일러스트와 함께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룬다.

밸런타인데이의 무말랭이

<일간 아르바이트 뉴스>에 연재한 90여 편의 에세이를 모은 작품집. ‘시티 워킹’이란 주제로, 학생 시절부터 작가가 된 지금까지 하루키가 겪어온 도쿄와 근교 생활에 대한 단상들을 담았다. 글의 내용을 재치 있게 살려낸 안자이 미즈마루의 삽화와 부록으로 실린 두 사람의 대담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

세일러복을 입은 연필

<주간 아사히>에 연재한 50편의 에세이를 모았다. 고양이, 야구, 영문학, 두부 요리, 달리기, 맥주 등, 작가가 아닌 생활인 무라카미 하루키를 이루고 있는 갖가지 일상 요소들과 평범하고도 개성 넘치는 주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30대 중후반의 하루키를 엿볼 수 있는 보물 같은 작품집.

해 뜨는 나라의 공장

인체 표본 공장, 지우개 공장에 가발 공장까지, 호기심만으로 고른 공장 일곱 군데를 무라카미 하루키와 안자이 미즈마루 콤비가 습격한다! 어느 날은 소에게 차일 위험을 감수하며 목장을 걷고, 다른 날은 남의 결혼식장을 취재한다. 허를 찌르는 하루키의 독특한 시각이 유감없이 발휘된 유쾌한 공장 탐방기.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양을 둘러싼 모험』에서 『노르웨이의 숲』에 해당하는 시기, 잡지 <하이패션>에 약 5년에 걸쳐 연재한 에세이를 모았다. 한층 진중해진 시선으로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하루키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한편, 사이사이 엿보이는 반짝이는 상상력과 소년적인 감성이 그 매력을 더한다. 국내에 처음 공개되는 에세이 포함 총 32편이 수록되어 있다.

 

 

책 소개만 봐도 설레는데, 실제 책을 보면 더 설렌다. 까만색 바탕에 형광빛이 들어간 빨, 주, 초, 파, 보라색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영문 이름이 책등에 새겨진 표지. 책 정면을 보면 동일한 색으로 책 제목이 새겨져 있다. 이 책에는 흰색 띠지가 둘러져 있는데, 띠지의 경우도 역시 동일한 색으로 하루키의 영문이름과 책 제목이 새겨져 있는데, 반대로 책 등에 책 제목이, 정면에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대칭적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단정해지면서, 한편으로는 가물가물 여러 생각들이 조용히 올라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꼭 하루키와 닮았다.

 

내가 예전에 읽었던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는 1983년, 이 밸런타인데이의 무말랭이는 1984년 copyright로 되어 있다. 아마 시간 순서상 시리즈를 구성한 것 같은데,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는 분량 때문인지 1986년 출판된 랑게르한스섬의 오후와 함께 묶여 있다.

 

이 밸런타인데이의 무말랭이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1973년의 핀볼, 양을 쫓는 모험, 중국행 슬로보트,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를 쓰고 난 후에 나온 수필집이고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빵가게 재습격, 노르웨이의 숲보다는 이전에 나온 수필집이다. 물론 이 수필집은 잡지에 1년 넘게 연재가 된 글들을 모았기 때문에 정확한 순서를 따지는 것은 좀 어려울지도 모른다. 게다가 나는 하루키의 책을 상당 수 읽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구분은 더욱더 무의미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책의 글들을 쓰고 있을 무렵의 하루키는 젊디 젊었다는 것. 1949년 생인 작가가 35살에 나온 책이니 작가 데뷔한 후 얼마 되지 않은 시절, 그리고 30대 초반에 쓴 글이다. 거장이 되기 전, 젊은 하루키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 시티 워킹
아르바이트에 대하여
메밀국숫집의 맥주
삼십 년에 한 번
이혼에 대하여
여름에 대허여
지쿠라에 대하여
페리보트
문장을 쓰는 법
앞날의 일에 대하여
택시 기사
보수에 대하여
청결한 생활
야쿠자에 대하여
또다시 진구 구장에 대하여
이사 그라피티(1)
이사 그라피티(2)
이사 그라피티(3)
이사 그라피티(4)
이사 그라피티(5)
이사 그라피티(6)
분쿄 구 센고쿠와 고양이 피터
분쿄 구 센고쿠의 유령
고쿠분지 이야기
오모리 가즈키에 대하여
지하철 긴자 선의 어둠
더플코트에 대하여
체중 증감에 대하여
전철과 전철표(1)
전철과 전철표(2)
전철과 전철표(3)
전철과 전철표(4)
밸런타인데이의 무말랭이
생일에 대하여
무민 파파와 점성술에 대하여
'대박' 고양이와 '꽝' 고양이
로멜 장군과 식당칸
비프커틀릿에 대하여
식당칸과 맥주
여행지에서 영화를 보는 일에 대하여
빌리 와일더의 <선셋 대로>
개미에 대하여(1)
개미에 대하여(2)
도마뱀 이야기
송충이 이야기
두부에 대하여(1)
두부에 대하여(2)
두부에 대하여(3)
두부에 대하여(4)
사전 이야기(1)
사전 이야기(2)
여자에게 친절을 베푸는 일에 대하여
훌리오 이글레시아스가 뭐가 그리 좋단 말이냐!(1)
훌리오 이글레시아스가 뭐가 그리 좋단 말이냐!(2)
산세도 서점에서 생각한 것
대담에 대하여(1)
대담에 대하여(2)
내가 만난 유명인(1)
내가 만난 유명인(2)
내가 만난 유명인(3)
내가 만난 유명인(4)
책 이야기(1)
책 이야기(2)
책 이야기(3)
책 이야기(4)
약어에 대하여(1)
약어에 대하여(2)
경찰 이야기(1)
경찰 이야기(2)
신문을 읽지 않는 것에 대하여
그리스에서 정보를 나누는 법
미케네의 소행성 호텔
그리스의 식당에 대하여
편식에 대하여(1)
편식에 대하여(2)
편식에 대하여(3)
또다시 비엔나 슈니첼에 대하여
속편 벌레 이야기(1)
속편 벌레 이야기(2)
고문에 대하여(1)
고문에 대하여(2)
고문에 대하여(3)
카사블랑카 문제
베트남전쟁 문제
영화의 자막 문제
<황야의 7인>문제
더티 해리 문제
이 칼럼도 드디어 이번 주가 마지막회
번외편 설날은 즐거워(1)
번외편 설날은 즐거워(2)

· 무라카미 하루키 & 안자이 미즈마루
지쿠라의 아침식사
지쿠라의 저녁식사
지쿠라 서핑 그라피티
남자에게 '이른 결혼'은 손해인가 이득인가

부록(1) 카레라이스 이야기
부록(2) 도쿄 거리에서 도덴이 없어지기 얼마전 이야기

 

목차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작가는 자신이 관심이 가는 주제에 대해서는 몇 번이고 언급하기도 했고, 여러번 다루기도 했다. 그리고 작가의 사생활이 상당히 드러난다는 점도 흥미롭다. 무엇보다 내가 이 책을 즐겼던 이유는, 사소해 보이는 것을 가지고 유머 있게 글을 써 나가는 하루키의 재치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단 2번 이사했을 뿐이지만, 성인이 된 지금은 이사를 즐기는 상황에 대한 이사 그라피티 시리즈나, 두부를 즐기는 생활에 대해 4편의 글을 쓴 것도 모자라 편식에 대하여 3편의 글을 연속해서 쓴 부분은 사소한 이야기들로 피식피식 거리다가 마침내 쿡하고 웃음을 터트리게 되는 그런 매력이 있다. 특히나 표제작으로도 꼽힌 밸런타인데이의 무말랭이는 작가가 밸런타인데이에, 심지어 아내에게조차도 초콜렛을 받지 못하고 무말랭이를 만들었다는 네용이, 요즘말로 하자면 '웃프게' 묘사되어 있다.

 

웰컴 투 무라카미 하루키 월드, 라고 책의 띠지 뒤편에 인쇄되어 있었다. 그 밑으로는 이 출판사에서 나온 하루키의 책들과 함께. 글쎄, 나이를 먹으면서 나도 서서히 하루키의 월드로 들어가게 되는 것일까? 빨리 나머지 수필집들을 읽고 싶은 마음과, 지금 읽은 이 수필집의 감상을 좀 더 음미하고 싶다는 두 생각에서 고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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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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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그의 수필은 좋아할 것 같다.

나 역시 그렇다.

최근작 1Q84도 그렇고... 그가 과대평가 된 것인지 아니면 내가 시대의 흐름에 맞추고 있지 못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의 소설은 나에게 물음표이다.

하지만 그의 수필은 확실히 느낌표이다.

독특하면서도 생산적인 취미, 거침없어 보이지만 다소 소심한 성격이 있다는 것이 얼핏얼핏 드러나는 에피소드를 읽다보면, 하루키는 확실히 수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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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내가 처음으로 이 수필을 읽었을 때 쓴 내용이다.

 

확실히 소설보다는 수필이 좋다고 달아놓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하루키라는 작가에 대한 여전한 의문부호가 있다는 것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글이다.

 

참 흥미로운 일이다. 일정한 시간의 간격을 두고 내가 읽은 책의 느낌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봄과 여름 사이. 밖은 무덥지만 내가 있는 안은 쌀쌀한, 그런 곳에서 나는 때로는 냉수를 마시고, 때로는 뜨거운 차를 마시면서, 세탁기를 돌리면서, 중간중간 잠도 들었다가, 하면서 하루키를 읽었다.

 

2년 전과 지금의 나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 책은 1983년 수필집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와 1986년의 수필집 <랑게르한스 섬의 오후>가 함께 엮인 책이다. 안자이 미즈마루와는 처음 작품을 함께 하게 된 작품들이라고 하는데, 직접적으로 그림과 글이 관련이 없는데도, 묘하게 맞아들어가는 부분이 있어서 재미가 있다.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가 소설로 옮겨지기 직전의 습작 같은 느낌이 든다면, 랑게르한스 섬의 오후는 그야말로 수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수필인 만년필도 그렇고, 마이 스니커 스토리도, 거울 속의 저녁노을도, 마치 한 편의 짧은 소설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소확행,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이제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업으로 삼는 수많은 하루키의 팬들이 이 수필을 인용하며 자신의 소확행을 이야기하는 글을 몇 번이나 보았다. 이것을 살짝 뒤집어, 작지만 확실한 불행을 이야기하는 글도 두 편 본 것 같다. 어쩌면 이 수필 전체의 태반이 소확행에 관한 내용이 아닐까 싶다. 커피를 마시는 것, 존 업다이크를 읽는 것, 스니커즈를 신고 걷는 것, 재즈 음악을 듣는 것, 레스토랑에서 책을 읽는 것, 브람스를 듣고 프랑스 요리를 먹는 것, 여행하는 나라의 셰이빙 크림을 사는 것, 이미 어른이 된 상태에서 고등학생들의 등교 모습을 지켜 보는 것, 지갑 속에 누군가의 사진을 넣고 다니는 것, 지도를 그리는 것, 백화점에 가는 것, 포도를 먹으며 문고판 책을 사서 읽는 것, 사람이 거의 없는, 텅텅 비다 시피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 그리고 학교를 땡땡이 치고 화창한 봄날을 즐기는 것. 그러고보니 랑게르한스 섬의 오후라는 제목은 얼마나 귀엽고, 재치있고,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웃음짓게 만드는 제목인지! 아마도 소확행에는 오늘 같은 날, 잔업에 시달려 체력은 고갈되고 미세 먼지 때문에 실내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머물러야만 하는, 이런 날 하루키의 수필을 읽는 것도 분명히 포함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낀다.

 

 ·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커티삭 자신을 위한 광고
크리스마스
커피를 마시는 어떤 방법에 대하여
존 업다이크를 읽기에 가장 좋은 장소
FUN, FUN, FUN
만년필 
스파게티 공장의 비밀
마이 네임 이즈 아처
A DAY in THE LIFE
쌍둥이 마을의 쌍둥이 축제
마이 스니커 스토리
거울 속의 저녁노을
사보이에서 스톰프를

화가와 작가의 해피엔드

· 랑게르한스섬의 오후
안자이 미즈마루 끼―서문을 대신하여
1 레스토랑에서 책 읽기
2 브람스와 프랑스 요리
3 셰이빙 크림 이야기
4 여름날의 어둠
5 여고생의 지각에 대하여
6 지갑 속의 사진
7 모두 함께 지도를 그리자
8 ONE STEP DOWN
9 세면실에서의 악몽
10 시계는 어떻게 늘어가는가
11 트레이닝셔츠
12 CASH AND CARRY
13 UFO에 대한 성찰
14 고양이의 수수께끼
15 철학으로서의 온더록스
16 백화점의 사계
17 BUSY OFFICE
18 뉴스와 시보
19 소확행
20 포도
21 8월의 크리스마스
22 워크맨을 위한 레퀴엠
23 '핵겨울' 영화관
24 지하철 긴자 선의 원숭이의 저주
25 랑게르한스섬의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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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그림으로 행복해지다
남인숙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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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썩 기대하지 않고 읽었는데, 예상외로 좋은 책이었다.

 

아마도 내가 준 별점 중 반 개는 그 의외성 때문이리라.

 

저자는 미술이라는 분야에서 문외한이다. 머리말에 명백히 스스로 밝혀 놓았다.

그러나 저자가 말했듯이, 저자는 그림을 감상하면서 조금 더 행복해졌고, 그 행복이란 소수의 엘리트가 자기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기호로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봐서 좋은 그림을 보고 거기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으면 좋은 그림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는 화풍, 기법, 재료와 같이 전문적인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뭉크와 샤갈, 고흐와 모네와 같은 화가의 작품 못지 않게, 덜 알려진 작가의 작품도 많이 실려 있다.

 

전문적인 지식을 원한다면 당연히 이 책이 아니라 다른 책을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자신의 목적에 200퍼센트 충실한 책이다. 이 책의 그림을 보는 여자들은, 작가가 짧게 덧붙인 글을 보면서 두배로 행복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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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연애할 때 - 칼럼니스트 임경선의 엄마-딸-나의 이야기
임경선 지음 / 마음산책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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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 쓸데없이 많은 편이다.

 

단순히 불안지수가 높아서 그런 것인지, 매사에 실패하고 싶지 않다는 모범생 증후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아직 오지도 않응 상황에 대해 미리부터 이것 저것 가정하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이 쓸데없는 걱정들 덕에, 간혹 출산이나 임신, 육아에 대해 불안이 증폭될 때면 어김없이 관련된 책을 읽게 된다.

 

젊은이들의 상당수가 결혼을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결혼해도 아이는 낳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한 명 키우는데 억 단위로 돈이 들어간다... 이런 뉴스를 보다 보면 웬만한 강심장 아니고서야 불안에 빠지지 않을 도리도 없다고 생각한다.

 

늘 자신보다 자식을 위해 살았고, 자식이 독립해서야 비로소 누구 엄마에서 벗어나게 된 우리 시대의 엄마들과는 요즘 엄마들은 사뭇 다르고, 또 달라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워킹맘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도 간접적인 시선도 충분하지도 성숙하지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불끈불끈 울분이 생기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저자처럼 집에서 일을 할 수 있는 프리랜서가 부럽기도 하다. 일하면서 아이는 내 시선이 닿는 곳에 둘 수 있으니까.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유년 시절부터 세계 곳곳에서 생활했고, 한국과 일본의 명문대에서 수학했으며, 잘나가는 직장인이었던 그녀는 과연 어떤 육아를 할까, 하는 호기심에 이 책을 집어들었다. 결과는, 내가 막연히 예상했던 것보다 더 방임에 가까웠다는 생각과 함께, 어떤 의미에서는 다른 부모보다 좀 더 뚜렷하고 강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아, 이런 방법도 있구나, 이렇게 아이를 키우면 좋겠구나, 하고 생각이 들다가도, 어떤 대목에 이르러서는 결국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아이가 성장하는 것을 위해 저자 또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자 문득 든 생각, 육아에는 모두에게 들어맞는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결국 부모의 바람이나 성향이 아이의 인격을 형성할 것이라는 것. 중요한 것은 엄마가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을 아이가 매순간 느끼고 있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엄마부터 자신을 사랑하고, 또 행복해져야 한다는 것.

 

즉, 지금의 내가 미래의 불안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나 혼자서도 행복해질 수 있도록 연습하는 것, 그리고 동반자와 함께 행복해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조금씩 연구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

 

저자의 딸이 성인이 되었을 때, 이 책을 읽고 얼마나 기뻐할까? 딸이 태어날 때부터 결혼할 때까지 찍은 사진을 모은 책 <윤미네 집>을 볼 때도, 웹툰 <어쿠스틱 라이프>를 볼 때도, 똑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나중에 내 아이가 컸을 때, 본인은 기억도 못 할 시절에 대한 부모의 꼼꼼한 기록으로 아이에게 행복을 선사해주었으면 하는 막연한 바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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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와 노르웨이 숲을 걷다 - 무라카미 하루키의 하드보일드 라이프 스토리
임경선 지음 / 뜨인돌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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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가게라도 좋으니까, 나 혼자 일해도 상관없으니까 제대로 확실히 일다운 일을 하고 싶었어요. 내 손으로 직접 재료를 고르고, 내 손으로 음식을 만들고, 내 손으로 그것을 손님에게 제공할 수 있는 그런 일 말이죠.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 봤자 재즈카페 정도더라구요. 어쨌든 재즈를 참 좋아했고 재즈와 조금이라도 관련된 일을 정말 하고 싶었으니까요."

 '피터 캣'은 시내 외곽인 데다가 지하에 있었지만 인테리어 하나만은 철저하게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직접 설계뿐만 아니라 마루 시공까지도 도맡아 했다. 가구도 앤티크 숍을 돌아다니면서 직접 골라 모았다. 그래서 테이블마다 가구가 달랐다. 가게의 한쪽 모서리는 피아노와 고양이를 모티브로 한 인테리어 소품들로 장식했다. 구석의 벽에는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고, 마음이 내키면 마르크스 형제의 영화를 비밀리에 상영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느낌이 좋은 바 카운터를 놓았다. 당시의 자료사진을 보면 깔끔하고 모던하다기보다는 손때가 묻은 듯한,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단골 바'의 인상이 강하다.

 

설명만 보아도 가고 싶은 곳, 주인장이 궁금해지는 곳이다. 바로 이 곳은 한때 하루키가 운영했던 재즈바이다. 하루키가 대학을 졸업하고 재즈바를 운영했던 것, 그리고 그 상태에서 썼던 글로 군조문학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명문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을 하지 않고 직접 재즈바를 운영하며, 틈틈이 소설을 써서 문학상을 받고 데뷔했다는 사실은 마치 신화처럼 낭만적이다.

 

 한편, '재즈카페 주인장'으로 산다는 것은 언뜻 낭만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현실적으로는 블루칼라 노동자에 버금가는 고된 노동이 요구되었다. 그는 자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육체노동에 시달렸고, 은행이나 장인에게 진 빚을 하루빨리 갚아야 했기 때문에 다른 것을 여유롭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매일 밤늦게까지 일했을 뿐만 아니라 담배연기와 위스키에 절어 지내야만 했다. 어디 그뿐인다. 술주정뱅이들이 남긴 오물을 치워야 했으며, 취객들을 쫓아 보내고 아침부터 식재료 등을 사러 다녀야 했다. 창문도 없는 어두컴컴한 지하의 작은 공간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재즈음반을 틀고, 피터 캣의 특식인 롤캐비지와 음료를 만들고, 그릇을 닦았다.

 저녁 늦게까지 나쁜 공기 속에서 일하다 보면 뭔가를 차분히 생각할 여유가 생길 수 없었다. 곁에서 보이는 것처럼 만만한 일이 결코 아니었다. 더더군다나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 만한 직업도 아니었다. 7년간 재즈카페를 운영하면서 깊이 깨달은 것은 역시 '밥을 벌어 먹고 살아간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라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오픈 초기에는 계속 가난에 허덕여야 했고, 갚아야 할 빚도 태산이었다. 한번은 매달 정해진 빚을 꼬박꼬박 갚아야 할 날짜가 다가왔는데 아무리 세어 봐도 3만 엔이 비었다. 상심한 채 길바닥에 멍하니 서 있던 무라카미 부부에게 정말 농담처럼 어디선가 바람에 밀려 만 엔짜리 지폐 3장이 날아왔다. 그 돈으로 겨우 그 달의 빚을 갚았다. 정말 거짓말 같은 실화다.

 

그래, 내가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지. 나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남의 호주머니 속의 돈을 내 호주머니 속으로 옮기는 것이 때로는 얼마나 지루하고, 때로는 얼마나 견디기 힘든 일인지 느끼며 살고 있는데 말이다. 하다 못해 월급 받는 직장인이 아니라 스스로 경영자이자 오너라면, 그 스트레스는 말로 못 할 것이다.

 

이 시기를 보내면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내적으로 단단해진 것이 아닐까 싶다. 당시 문인들이 하루키의 재즈바를 종종 방문하였는데, 세 명이 있다가 한 명이 자리를 뜨면 반드시 남은 두 사람이 먼저 일어난 그 사람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고 한다. 어쩌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문단에 데뷔한 후, 기존의 작가들과는 달리 문단과의 관계가 친밀하지 않았던 것은 이때의 경험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타고난 성격 때문일 수도 있다. 오는 손님 모두에게 신경을 써 가면서 잘 보일 필요는 느끼지 못했고, 열 명 중 한 명이라도 다시 오게 된다면 그 한 명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 그것이 재즈카페를 운영하는 올바른 길일 뿐만 아니라 인생 전반에 적용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일치감치 만인에게 사랑받길 원하는 것을 지양했기에, 데뷔 후 숱한 비판이나 평가절하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의 저자 임경선은 자타 공인 하루키 매니아이다. 유년기를 일본에서 보냈고, 도쿄 대학에서 수학하기도 했다고 저자 소개에 나와 있다. 현재 소설과 수필 등 다양한 글을 쓰고 있는 그녀의 롤모델이 하루키인 것은 자연스럽게 보인다. 한국, 일본, 유럽, 남미 등 다양한 나라에서 생활을 한 그녀는 남보다 일찍 고독을 깨쳤을 것이며, 인간의 고독을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하루키에게 끌렸던 것은 당연할 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작가와 상관없는 직업에 종사하다가 전업 작가가 된 것 또한 하루키와 비슷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 곳곳에서 하루키에 대한 애정은 뚝뚝 넘쳐난다.

 

첫째, 익숙하지 않은 것을 처음 시도하는 것이므로 그리 어렵게 고민하지 않는다.

둘째, 글은 1인칭으로 쓰고 주인공은 '나'로 정한다.

셋째, 되도록이면 허구를 쓴다.

넷째, 문장은 최소한 세 번 이상 고쳐 쓴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자기 변명은 절대 하지 않는다.

 

하루키가 가게 문을 닫고 새벽의 어두운 바 카운터에서 매일 조금씩 짬을 내어 글을 쓸 때 스스로 세운 원칙이다. 어쩌면 이 원칙을 보고 저자는 힘을 얻었을 수도, 위로를 받았을 수도, 실질적인 조언에 반가웠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저자는 곳곳에서 하루키에 대한 팬심을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며, 자신과 하루키의 가상 대담까지 구성한다. 그 덕에 이 책을 읽으면 하루키의 책을 읽고 싶어진다. 특히 데뷔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두번째 작품인 <1973년의 핀볼>은 재즈바와 병행하면서 썼기에 글의 호흡이 짧지만, 이후에 나온 <양을 쫓는 모험>부터는 호흡이 길고 힘이 느껴진다는 부분을 보면 당장 하루키의 책을 집어 읽고 싶어질 것이다. 

 

하지만 종종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키의 문학에 대한 진지한 해석까지는 이 책의 방향과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몇 몇 문장들이 실제로 인용을 한다거나, 하루키에 영향을 받았다는 소설가들의 애정 고백을 일부 싣는다거나 하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이 책에 나온 내용 정도는 하루키의 팬들이라면 전부 알고 있을 내용이고, 하루키의 책 전부가 아닌 일부만 읽어 본 나도 한 두 사실만 제외하고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좀 세게 표현하면, 아이돌 그룹을 바라보는 소녀 팬의 모습이 연상된다고 할까. 농담삼아서 '하루키빠'라고 장난스럽게 이야기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정말 농담에 그치려면 읽는 이로 하여금 감탄이 들 정도의 내용이 나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래저래 아쉬운 부분이 많다. 무엇보다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였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얼마 전에 빌 브라이슨의 <셰익스피어 순례>를 읽었는데, 역설적으로 빌 브라이슨의 책이 얼마나 훌륭한지 알겠다. 하루키가 오래 전에 살았던 작가도 아니고, 알려질 만큼 알려진 작가인데 이 책에 실린 정도의 내용은 웹서핑으로 충분히 수집 가능한 정도의 지식이다. 저작권 때문이었을까? 이 책에는 하루키에 관련한 사진 자료가 없는 것도 이상하다. 돈이 문제였다면 저자가 직접 찍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일본이 멀지도 않은데, 그가 운영했던 재즈바가 있던 장소나, 자주 가는 단골집이 있다면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직접 사진을 찍어서 넣었더라면 책이 더 매력적이지 않았을까.

 

"하루키는 늘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죠. '피터 캣'에서 지낸 긴 시간들이 그에게 차분히 관찰할 시간을, 그리고 그곳에서의 힘든 육체노동이 도덕적인 기반moral backbone을 가져다 주었다구요."

 

저자에게 충분한 시간과 발로 뛰는 노동의 기회가 있었더라면 더 좋은 책이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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