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와 노르웨이 숲을 걷다 - 무라카미 하루키의 하드보일드 라이프 스토리
임경선 지음 / 뜨인돌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작은 가게라도 좋으니까, 나 혼자 일해도 상관없으니까 제대로 확실히 일다운 일을 하고 싶었어요. 내 손으로 직접 재료를 고르고, 내 손으로 음식을 만들고, 내 손으로 그것을 손님에게 제공할 수 있는 그런 일 말이죠.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 봤자 재즈카페 정도더라구요. 어쨌든 재즈를 참 좋아했고 재즈와 조금이라도 관련된 일을 정말 하고 싶었으니까요."

 '피터 캣'은 시내 외곽인 데다가 지하에 있었지만 인테리어 하나만은 철저하게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직접 설계뿐만 아니라 마루 시공까지도 도맡아 했다. 가구도 앤티크 숍을 돌아다니면서 직접 골라 모았다. 그래서 테이블마다 가구가 달랐다. 가게의 한쪽 모서리는 피아노와 고양이를 모티브로 한 인테리어 소품들로 장식했다. 구석의 벽에는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고, 마음이 내키면 마르크스 형제의 영화를 비밀리에 상영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느낌이 좋은 바 카운터를 놓았다. 당시의 자료사진을 보면 깔끔하고 모던하다기보다는 손때가 묻은 듯한,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단골 바'의 인상이 강하다.

 

설명만 보아도 가고 싶은 곳, 주인장이 궁금해지는 곳이다. 바로 이 곳은 한때 하루키가 운영했던 재즈바이다. 하루키가 대학을 졸업하고 재즈바를 운영했던 것, 그리고 그 상태에서 썼던 글로 군조문학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명문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을 하지 않고 직접 재즈바를 운영하며, 틈틈이 소설을 써서 문학상을 받고 데뷔했다는 사실은 마치 신화처럼 낭만적이다.

 

 한편, '재즈카페 주인장'으로 산다는 것은 언뜻 낭만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현실적으로는 블루칼라 노동자에 버금가는 고된 노동이 요구되었다. 그는 자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육체노동에 시달렸고, 은행이나 장인에게 진 빚을 하루빨리 갚아야 했기 때문에 다른 것을 여유롭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매일 밤늦게까지 일했을 뿐만 아니라 담배연기와 위스키에 절어 지내야만 했다. 어디 그뿐인다. 술주정뱅이들이 남긴 오물을 치워야 했으며, 취객들을 쫓아 보내고 아침부터 식재료 등을 사러 다녀야 했다. 창문도 없는 어두컴컴한 지하의 작은 공간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재즈음반을 틀고, 피터 캣의 특식인 롤캐비지와 음료를 만들고, 그릇을 닦았다.

 저녁 늦게까지 나쁜 공기 속에서 일하다 보면 뭔가를 차분히 생각할 여유가 생길 수 없었다. 곁에서 보이는 것처럼 만만한 일이 결코 아니었다. 더더군다나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 만한 직업도 아니었다. 7년간 재즈카페를 운영하면서 깊이 깨달은 것은 역시 '밥을 벌어 먹고 살아간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라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오픈 초기에는 계속 가난에 허덕여야 했고, 갚아야 할 빚도 태산이었다. 한번은 매달 정해진 빚을 꼬박꼬박 갚아야 할 날짜가 다가왔는데 아무리 세어 봐도 3만 엔이 비었다. 상심한 채 길바닥에 멍하니 서 있던 무라카미 부부에게 정말 농담처럼 어디선가 바람에 밀려 만 엔짜리 지폐 3장이 날아왔다. 그 돈으로 겨우 그 달의 빚을 갚았다. 정말 거짓말 같은 실화다.

 

그래, 내가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지. 나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남의 호주머니 속의 돈을 내 호주머니 속으로 옮기는 것이 때로는 얼마나 지루하고, 때로는 얼마나 견디기 힘든 일인지 느끼며 살고 있는데 말이다. 하다 못해 월급 받는 직장인이 아니라 스스로 경영자이자 오너라면, 그 스트레스는 말로 못 할 것이다.

 

이 시기를 보내면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내적으로 단단해진 것이 아닐까 싶다. 당시 문인들이 하루키의 재즈바를 종종 방문하였는데, 세 명이 있다가 한 명이 자리를 뜨면 반드시 남은 두 사람이 먼저 일어난 그 사람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고 한다. 어쩌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문단에 데뷔한 후, 기존의 작가들과는 달리 문단과의 관계가 친밀하지 않았던 것은 이때의 경험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타고난 성격 때문일 수도 있다. 오는 손님 모두에게 신경을 써 가면서 잘 보일 필요는 느끼지 못했고, 열 명 중 한 명이라도 다시 오게 된다면 그 한 명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 그것이 재즈카페를 운영하는 올바른 길일 뿐만 아니라 인생 전반에 적용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일치감치 만인에게 사랑받길 원하는 것을 지양했기에, 데뷔 후 숱한 비판이나 평가절하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의 저자 임경선은 자타 공인 하루키 매니아이다. 유년기를 일본에서 보냈고, 도쿄 대학에서 수학하기도 했다고 저자 소개에 나와 있다. 현재 소설과 수필 등 다양한 글을 쓰고 있는 그녀의 롤모델이 하루키인 것은 자연스럽게 보인다. 한국, 일본, 유럽, 남미 등 다양한 나라에서 생활을 한 그녀는 남보다 일찍 고독을 깨쳤을 것이며, 인간의 고독을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하루키에게 끌렸던 것은 당연할 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작가와 상관없는 직업에 종사하다가 전업 작가가 된 것 또한 하루키와 비슷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 곳곳에서 하루키에 대한 애정은 뚝뚝 넘쳐난다.

 

첫째, 익숙하지 않은 것을 처음 시도하는 것이므로 그리 어렵게 고민하지 않는다.

둘째, 글은 1인칭으로 쓰고 주인공은 '나'로 정한다.

셋째, 되도록이면 허구를 쓴다.

넷째, 문장은 최소한 세 번 이상 고쳐 쓴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자기 변명은 절대 하지 않는다.

 

하루키가 가게 문을 닫고 새벽의 어두운 바 카운터에서 매일 조금씩 짬을 내어 글을 쓸 때 스스로 세운 원칙이다. 어쩌면 이 원칙을 보고 저자는 힘을 얻었을 수도, 위로를 받았을 수도, 실질적인 조언에 반가웠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저자는 곳곳에서 하루키에 대한 팬심을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며, 자신과 하루키의 가상 대담까지 구성한다. 그 덕에 이 책을 읽으면 하루키의 책을 읽고 싶어진다. 특히 데뷔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두번째 작품인 <1973년의 핀볼>은 재즈바와 병행하면서 썼기에 글의 호흡이 짧지만, 이후에 나온 <양을 쫓는 모험>부터는 호흡이 길고 힘이 느껴진다는 부분을 보면 당장 하루키의 책을 집어 읽고 싶어질 것이다. 

 

하지만 종종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키의 문학에 대한 진지한 해석까지는 이 책의 방향과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몇 몇 문장들이 실제로 인용을 한다거나, 하루키에 영향을 받았다는 소설가들의 애정 고백을 일부 싣는다거나 하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이 책에 나온 내용 정도는 하루키의 팬들이라면 전부 알고 있을 내용이고, 하루키의 책 전부가 아닌 일부만 읽어 본 나도 한 두 사실만 제외하고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좀 세게 표현하면, 아이돌 그룹을 바라보는 소녀 팬의 모습이 연상된다고 할까. 농담삼아서 '하루키빠'라고 장난스럽게 이야기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정말 농담에 그치려면 읽는 이로 하여금 감탄이 들 정도의 내용이 나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래저래 아쉬운 부분이 많다. 무엇보다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였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얼마 전에 빌 브라이슨의 <셰익스피어 순례>를 읽었는데, 역설적으로 빌 브라이슨의 책이 얼마나 훌륭한지 알겠다. 하루키가 오래 전에 살았던 작가도 아니고, 알려질 만큼 알려진 작가인데 이 책에 실린 정도의 내용은 웹서핑으로 충분히 수집 가능한 정도의 지식이다. 저작권 때문이었을까? 이 책에는 하루키에 관련한 사진 자료가 없는 것도 이상하다. 돈이 문제였다면 저자가 직접 찍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일본이 멀지도 않은데, 그가 운영했던 재즈바가 있던 장소나, 자주 가는 단골집이 있다면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직접 사진을 찍어서 넣었더라면 책이 더 매력적이지 않았을까.

 

"하루키는 늘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죠. '피터 캣'에서 지낸 긴 시간들이 그에게 차분히 관찰할 시간을, 그리고 그곳에서의 힘든 육체노동이 도덕적인 기반moral backbone을 가져다 주었다구요."

 

저자에게 충분한 시간과 발로 뛰는 노동의 기회가 있었더라면 더 좋은 책이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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