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아워스 - [할인행사]
스티븐 달드리 감독, 줄리안 무어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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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가 처음으로 버지니아 울프의 이름을 안 것은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 였다. 우리나라의 주입식 교육이 반드시 나쁘다고만은 생각하지 않는 이유가, 만일 고등학교 시절 대학입시를 위해 수많은 시들을 접하지 않았더라면 과연 내가 커서 자발적으로 시를 읽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짧지 않았던 시 목마와 숙녀는, 솔직히 말해서 그 당시에나 지금이나 제대로 내가 이해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기억에 남았던 것은, 막연하게 시 전체에 흐르고 있는 슬픈 느낌이 왠지 모르게 낭만적으로 느껴졌고, 버지니아 울프라는 이국적인 이름이 발음할 때마다 아름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는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 버지니아 울프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또 어떤 책을 남겼는지 대강은 알게 되었다. 이 영화는 동명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1923년 영국 리치몬드 교외의 버지니아 울프, 1951년 미국 LA의 로라 브라운, 2001년 미국 뉴욕의 클래리사 본, 이렇게 서로 다른 시공간의 세 여자의 이야기를 교차해가며 보여준다. 세 이야기에 공통으로 흐르는 자살, 불치병 또는 난치병, 동성애 등의 소재들 때문인지, 결국 세 여자는 마치 동일한 인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삶 속에서 질식하는 듯한 여자들의 인생과, 그것을 헤쳐나가는 것에 대한 한 가지 주제가 풍성하게 와 닿는다고 할까. 진짜 내 인생을 사는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20년대의 여류 작가나 50년대의 가정 주부 뿐 아니라 2000년대의 출판 기획자도 느낀다는 것이 참 새롭다. 단순히 시대가 바뀌고 여성의 사회 활동이 늘어났다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삶의 본질적인 문제가 있는 것일까. 그 여성들 주변에 있는 남성들이 전부 여성을 위하며, 일정 정도 자신의 삶을 희생하거나 올인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도 참 흥미로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남성들의 파트너는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가진다니 말이다. 역시 결혼 생활을 해 봐야만 이 영화도, 원작 소설도, 버지니아 울프의 서적과 그녀의 인생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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