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네 집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6
박완서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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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현역작가이고 싶다'라는 말이 참 좋았던 작가 박완서,우리 곁을 떠나간지도 벌써 오래전 일처럼 잊혀져 가고 있다. 작가의 책은 많이 구매를 해 놓았지만 읽은 것보다 읽지 않은 책이 더 많다. 그래도 아직 더 구매를 하고 싶은 책도 있다. 며칠 전에 책장 앞에 쌓아 두었던 책이 갑자기 대낮에 거실 한 복판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것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지켜 보면서 한참동안 가만히 놔두었더니 울집 여시가 그 앞을 서성이며 냄새를 맡는다.맡아야 책냄새인데 녀석이 알까? 거기엔 책장에 다 꽂지 못한 [박완서]님의 책들이 반은 차지하고 있다. 책장 한 칸을 박완서님의 책을 꽂아 놓았는데도 다 들어가지 못한 책들이 쌓여 있던 것이다.다른 책들과 함께.한참 후에 책을 다시 쌓아 놓으며 박완서님의 책을 한 권 한 권 보다 [그 여자네 집]을 들었다. [그 남자네 집]은 읽었는데 이 책은 오래도록 보고만 있었던 것이다.그래서 펼쳐 들게 되었다.

 

이 책에는 1995년 1월에서부터 1998년 11월까지 발표되었던 작품들이 실려 있단다.마른 꽃, 환각의 나비, 참을 수 없는 비밀,길고 재미 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 너무도 쓸쓸한 당신, 그 여자네 집, 꽃잎 속의 가시, 공놀이하는 여자, J-1 비자, 나의 웬수덩어리로 모두 열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이중에 난 [환각의 나비]는 독립된 책으로 읽었다. 다른 단편들이 실려 있는 책이었다. 저자의 소설은 단편이나 장편이나 우리네 삶을 돌아보게 한다. 삶이 곧 역사이고 그 속에는 아내와 남편, 엄마와 아들 그리고 딸, 며느리와 시어머니,.. 등 우리네 삶 속에서 만날 수 있는 다채로운 삶의 이야기들이 실제보다 더 현실적으로 실려 있다. 자신의 이야기 일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는 이야기는 정말 작가의 삶이라고 해도 읽다보면 소설이 아닌 현실처럼 우리네 삶 속으로 파고 들어와 '너 어떻게 살고 있니?' 하고 내 자신에게 질문하게 된다. '나 잘살고 있는것인가?'

 

<마른 꽃>, 환갑이 돌아오는 '나'는 몇 폭인지도 모르는 소란스런 비단한복을 입고 대구에 결혼식이 있어 서울에서부터 비단한복을 입고 간다.한마디로 폭 넓은 치마이니 거추장 스럽다.눈에도 확 띄고. 폐백이라도 받으려면 한복이 나을 듯 하여 입고 갔지만 폐백은 하지도 않았고 남들에게 싫은 소리만 듣고 기차역으로 고속버스터미널로 분주하게 왔다갔다 하다가 겨우 고속버스터미널에서 표를 물리려는 것을 겨우 얻게 되었는데 그것이 두 장중에 하나는 자신이 하나는 자신과 비슷한 연배의 노년의 신사가 사서 함께 타고 올라오게 되었는데 버스에서 둘이 이야기를 나누며 설레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서울에 와서야 비로소 둘이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여차해서 함께 데이트를 즐기듯 함께 하다 자식들 눈에 밟혀 재혼을 하네 마네까지 가게 되고 나는 재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그에게 전한다. 환갑나이에 홀로 지낸다는 것은,지금 우리네 현실에서는 그 나이면 '젊은 청춘'이라고 할 수 있다.인생은 육십부터라는 말도 있듯이 한참 자신을 위해 살 나이이고 자식들은 부모로 부터 떨어져 결혼을 하여 독립을 할 나이다. 그런 자식들에게 부모의 재혼은 또 하나의 문제다. 마른 꽃이라고 사랑을 하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소녀처럼 두근두근 다시금 자신의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이 '살아있다'는 것을 말해주는데 주변에서의 생각은 또 다른 것이다. 그것이 결코 남의 일처럼 생각되지 않는 것은 나보 나이를 먹어가고 부모 또한 이제 연로하시니 이야기는 바로 나의 이야기일 수 있다는 것이다.

 

<참을 수 없는 비밀> 마흔의 그녀가 혼자 동해로 여행을 갔다가 바닷가가 보이는 숙소에서 내려 다 본 바다,그곳에 사람들이 몰려 있다.왜 일까? 그녀는 바다로 향하다 그곳으로 향한다.그러다 사람들 가운데 '시체' 가 있다는 것을 감지하는데 그중에 '하얀 운동화'가 눈에 들어오고 그녀는 그곳으로 가 하얀 운동화를 붙잡고 서럽게 운다.왜 일까? 서럽게 울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이 시간 속에서 자시을 감추듯이 그녀는 식당으로 피해 들어가 소주를 마시고 갑자기 허기를 느끼고 무슨 정신에 밥을 먹었는지 모르게 허기를 채운다. 왜 그녀는 '하얀 운동화'의 발을 보고 운 것일까? 꼭 지금의 나이를 반 접은 스무살에 있었던 지을 수 없는 기억속으로 깊숙히 들어간다. 그녀로 인해 그녀의 첫사랑이었던 이가 물웅덩이에 빠져 죽게 되는데 그것이 하얀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그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모두가 자신의 탓인듯 하여 그의 기일에는 꼭 자신이 보고만 있어도 사고가 일어난다고 생각을 하고 자신이 무슨 '죽음의 기운'이라고 몰고 다니는 것처럼 자신을 몰아 부친다. 그렇게 그녀는 이번에도 현실에서 떠나듯 피신겸 여행을 온 것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또 다시 마주한 우연한 죽음과 하얀 운동화,하지만 이젠 이런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시는 그런 피신과 같은 여행을 떠나고 싶지 않다.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 왜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간다고 생각했을까? 누구의 삶이 그렇다는 것일까? 바로 누구도 아닌 자신들의 '엄마'의 죽음을 놓고 하는 말이다. 선을 보는데 남편 얼굴도 제대로 보지 않고 결혼한 엄마,그녀는 오로지 인생을 남편과 시댁을 위해서 소진해 버렸다.그런 엄마가 딸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넌 연애결혼이니까 그런 일은 없겠지만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일러두는 건데, 혹시 첫날밤 네 신랑이 제 부모 잘 모셔야 한다는 소리를 제일 먼저 하거나 계집은 또 얻을 수 있어도 부모는 또 얻을 수 없다는 식의 수작을 하거든, 그 자리에서 그 혼인 파투 치고 나와도 나는 너를 내치지 않으마. 야단도 안 치마. 그쪽만 귀하게 기른 자식인 줄 알지 말거라.너도 똑같이 귀하게 길렀어.' 이 말은 나 또한 내 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고 늘 하는 말이다.울집 딸들이라고 귀하게 키우지 않을까.아들만 귀하고 딸은 귀하지 않은 법이 어디 있는가.모든 부모에게는 아들이든 딸이든 다 귀한 자식이거늘 왜 결혼생활에서 '딸,여자'만 손해를 보는 그런 소리를 들어야만 하는가. 이런 대목은 속이 다 시원하다. 아버지는 딴살림을 차렸었고 어머니는 혼자 열심히 자식을 키우듯 하다가 암에 걸려 죽었다.아내의 암 소식을 듣고 울먹이며 전화로 아내에게 '사랑해,사랑해'라는 말을 한 아버지,하지만 너무 늦었다.그래도 엄마는 가시는 순간까지 그 말의 힘에 의지하며 살 다 가셨다. 정말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난 것 같다. 그렇다고 이제부터 재밌는 영화가 시작이라고 볼 수는 없다.우리네 삶이 그렇다.자신 또한 어머니의 삶처럼 그렇게 살아 갈 것이다.길고 재미없는 영화처럼 말이다.

 

오빠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시종일관 길기만 하고 재미없는 영화가 마침내 끝났구나, 하는 얼굴로 상주 노릇을 했다. 길고 재미없는 영화는 아무도 또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너무도 쓸쓸한 당신> 남편이 교장선생이라 관사에서 사는데 늘 그의 연설은 관사에게까지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그 속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마침 딸이 좋은 학교에 붙고 엄마는 딸과 아들만 데리고 서울 지하방이라도 좋으니 그곳으로 삶을 옮긴다. 남편과 별거 아닌 별거에 들어간 것이다. 그렇다고 넉넉한 살림이 아니다. 그래서 닥치는대로 일을 하기 위하여 하다가 화장품가게를 하게 되고 그것이 잘 되어 아이들을 대학까지 잘 마무리 할 수 있었고 딸은 결혼을 했고 아들고 졸업을 하고 결혼을 하여 공부를 하러 유학을 갈 예정이다. 남편은? 퇴직을 하고 변두리에 사 놓은 집과 땅이 있어 그곳으로 옮겨 홀로 삶을 이어가지만 연금도 늘 아내의 통장으로 꼬박꼬박 들어온다. 하지만 아내는 남편과 합치고 싶은 생각도 없을 뿐더러 떨어져 살게 되다보니 그의 모든 것이 다 싫다. 사사건건 트집을 잡게 되고 추레한 겉모습도 싫다. 아들의 졸업식날에 사돈과 만나는 자리에 나온 그를 보고 타박을 하면서 사돈과 밀당을 하는 사이 더 트러지는 심사, 남편의 손을 잡고 그가 살고 있는 곳으로 가자고 하다가 그와 함께 하는 시간에 숨이 막힐 듯 하여 찾아 들어간 갈비집과 호텔에서 남편의 '쓸쓸함'을 보게 되다. 우직하게 일을 하고 장작개비와 같은 다리를 모기에게 내 맡기며 어떻게 살아 가고 있는 것인지,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그동안의 시간을 보상하듯 그의 모기 물린 다리를 쓰다듬는 아내,정말 마지막이 꼭 이렇게 가슴 울컥하게 울린다.

 

<그 여자네 집> 동명의 김용택의 시로 시작하는 소설은 그의 기억속에 '그 여자네 집'에 어울리는 선남선녀라 할 수 있는 고향의 '만득이와 곱단'을 생각하게 된다. 그들의 순수한 사랑과 마을에서는 혼인을 하지 않았어도 이미 서로 짝으로 알고 있는 사이,그런 그들을 갈라 놓은 사건이 있었으니 만득이는 징용을 곱단이는 정신대를 피하기 위하여 재취로 부랴부랴 시집을 간다. 만득이가 돌아오기 전에 말이다. 하지만 만득이는 곱단이가 시집을 가고 그 이듬해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고 그는 다른 처자인 순애와 결혼을 하게 된다. 만년 문학도였던 만득이는 곱단이와 연애시절 달달한 시도 곧잘 쓰고 연애편지도 잘 썼다.그런 그가 순애의 눈에는 평생 '곱단'의 허울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으로 남게 된다. 하지만 그의 진심이 순애의 죽음 이후에 드러나게 된다.그는 곱단이가 생각난 것이 아니라 그의 어릴적 고향마을이, 그 시절이 그립고 애틋했던 것이다. 지금은 갈 수 없는 땅이 되어 버린 고향,그곳에 묻혀 버린 추억. 이야기는 시대를 이야기하며 우리 현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작가의 말에서 작가가 언급했듯이 다른 책보다 쉽게 읽힌다고 했다. 하지만 쉽게 읽혀도 저자의 소설들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그것이 지금 시대와 많이 떨어져 있어 이질감을 느낄것 같지만 그 속으로 들어가 보면 우리네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요즘 암은 남의 일도 아니다. 나 또한 친정아버지를 폐암으로 보내 드려야 했는데 남의 일처럼 생각했는데 암이라는 큰 병도 연로하신 부모님의 일도 내가 당해보니 남의 일이 아니다.우리가 살면서 부딪히게 되는 우리네 이야기고 우리 이웃의 이야기이며 현재의 이야기나 마찬가리라 실감나게 읽을 수 있다. 이야기 속에는 '여자'가 풀어내는 삶이 그려지면서 그와 연관된 아들 남편 시아버지등 모두가 수평의 관계로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느 삶이 정답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그 인생의 수많은 다채로운 삶을 고스란히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어 더 실감나면서도 저자의 이야기처럼 빠져 들어 읽게 만든다. 저자는 가고 이제 '이야기'만 남았다.남은 주옥같은 이야기들을 더 많이 만나는 기회를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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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 - 어느 여행자의 기억
변종모 글.사진 / 허밍버드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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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후에 기억되는 것은 많은 것이 있겠지만 '사람과 음식' 으로 오래 기억되는 경우가 많다. 여행지에서 만났던 잊지 못할 사람에 대한 추억이 담겨 있다면 그곳은 더욱 잊혀지지 않고 기억의 창고에 저장되어 오래도록 그곳을 놔누지 않게 된다.그런가 하면 그곳의 모든 것은 다 잊었어도 그곳에서 먹었던 '음식의 맛'으로 또한 오래도록 기억되는 여행이 있다. 먹는 것을 즐겨하지 않는 나는 여행을 가면 꼭 옆지기에게 듣는 말이 있다. 나 때문에 그곳의 음식을 제대로 맛을 보지 못한다는, 잘못 먹으면 탈이 나서 고생하는 경우가 있어 꼭 끼니마다 나를 먼저 생각하고 내가 먹을 수 있는지,아니 소화를 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나는 또 그게 몹시 싫다. 못 먹고 소화를 못 시킬것이 없는데 그렇게 한번씩 짚고 넘어가면 그게 또 맘에 걸려 기분이 상한다.기분좋게 먹으려고 했다가도 기분이 나빠 소화를 못 시키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일단 그런 이야기 모두 빼고 기분 좋게 먹어보자고 늘 말한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먹거리를 기분 좋게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찾아가서 먹는 경우도 있고 어찌하다 우연히 들렀는데 생각지도 못한 맛을 찾게 되는 기분 좋은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시간에 쫓겨 밥시간을 넘기고 겨우 식당을 찾거나 먹거리를 찾아 들어가 허겁지겁 먹는 경우도 많다. 한 곳이라도 더 보려는 욕심이 빚은 화이기도 하다. 우리도 그런 경우가 많은데 아이들이 어릴 때 남해여행을 갔을 때 보성녹차밭을 구경 갔던 경우,그곳을 구경하고 여유롭게 그곳 근처에서 맛난 것을 먹으려고 계획을 했다.당연히 주변에 먹을 수 있는 곳이 있겠지 생각을 했다.그땐 스마트폰 시대가 아니었으니 지금처럼 검색해서 바로 갈 수 있지 않았다. 며칠 여행이라 차에 간단한 먹거리와 김치 간식을 가지고 다녔지만 식당이 없어 식겁했다. 밥시간도 한참 늦었고 생각했던 식당도 없고 할 수 없이 휴게소에서 컵라면을 사서 아저씨께 부탁해서 주전자에 끓인 녹차물을 얻어 컵라면을 추운 휴게소 앞 간이 테이블에 앉아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 또한 지금은 추억이 됐고 무척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저자의 책은 처음인데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과 음식이 주는 '포만감'이라고 할까? 포만감이란 많이 먹고 배불러서의 포만감이 아니라 함께 그 시간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자신이 그 시간에 먹을 수 있는 최고의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고 느끼는 마음이다. 우리나라가 아니라 타지를 여행하는 입장이니 게스트하우스에서 할 수 있는 음식이란 그리 많지 않다. 그런가 하면 타지를 여행하다보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고 해도 고향의 음식,엄마의 손맛이 자꾸만 생각나게 마련이다. 그런 속에서 함께 머물렀던 사람의 슬픔도 나누게 되고 그땐 알지 못했지만 자신 또한 그런 슬픔과 대면하게 되면서 그 슬픔을 정말 최고의 음식아라고 할 수 있는 단순한 '감자볶음' 하나에도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여행이 주는 미각적이면서 외로움과 고독을 함께 하는 이들과의 이야기를 참 감성적이면서도 맛깔나게 썼다.

 

고향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남긴 텅 빈 도시의 저녁, 오늘은 그날과 닮았고 그날 혼자 먹던 그것을 나는 오늘 또 혼자 대면하고 있다.하지만 그날과 오늘이 간격은 아득하고 그곳과 이곳은 지구의 반대편처럼 아득하다.  시간을 메우고 거리를 메우는 것에는 많은 양의 추억이 포함된다. 그러므로 다가올 것이 아닌, 이미 지나간 슬픈 추억은 허기지지 않다. 그저 만두처럼 덤덤할 뿐이다.

 

그의 여행이야기에서는 외로움도 고독도 뚝뚝 떨어져 내린다. 하지만 하나도 외롭지 않고 고독해 보이지 않는다. 늘 사람과 음식이 함께 있고 외로움을 혹은 슬픔을 음식으로 채우며 허기진 외로움을 달래듯 고향의 맛으로 달래주고 있어서다. 고향에 가지 못한 그에게 전해진 커다란 만두,아니 힝카리는 우리네 만두와 닮아 있지만 고향에서 먹던 그 맛하고는 다르다. 고향의 맛을 먹고 싶다. 만두국을 끓이기 위해 비슷한 재료를 찾고 무가 아닌 사과를 넣고 달콤한 만두국을 끓여 게스트하우스 사람들과 나누어 먹으며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한다는 '가족' 의 정을 느끼면서 먹는 만두국의 맛은 또 감칠맛나게 그것이 비록 고향에서 먹던 맛과는 전혀 다른 맛이라고 해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고 이상하지 않은 달콤한 맛으로 전해진다. 여행을 하다보면 전문 셰프보다 더 요리사에 가깝게 변하고 현지의 요리와 우리의 요리가 합쳐져 퓨전 요리가 탄생하는 듯 하다. 그 속에서 타지지만 가깝게 고향을 느끼고 어머니의 손맛을 느낄 수 있는 포근함이 달달하게 전해진다.

 

여행이라는 것은 그렇듯 언제나 예상 밖의 일을 예상 했던 것처럼 대면하고 아무렇지 않은 일을 기꺼이 특별하게 받아들이는 일,그리고 그것을 당해내거나 덤덤하게 일상처럼 살아내는 일이 아니겠는가. 내 발로 이곳을 선택했으니 이곳에 머무는 동안 나의 선택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었다.

 

'여행'이 직업이 되고 그것이 일이 되었다. 누가 등 떠밀어서 떠난 여행도 아니고 나의 선택이었으니 좀더 자신의 선택에 최선을 다하는,일상처럼 충실하게 대하는 그의 이야기는 솔직하면서도 뭉글뭉글 나도 이런 여행을 떠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어느 한 곳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 곳을 돌아 다니면 만났던 사람과 맛에 대한 이야기라 시간에 한정되지 않아 읽기 편하고 외로움이 혹은 고독이 '달다'로 표현되기까지 그의 내부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감성적인 연애편지를 읽는 기분도 든다. 때로는 별거 아닌 음식으로 인해 소화시키지 못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곤욕을 겪기도 하고 때론 분위기에 취해 기억해내지 못하는 지난 시간으로 인해 갸웃뚱 하면서도 못내 그 시간을 되새겨보면 행복하기만 시간들,그것이 여행의 추억이고 기억이 아닐까.분명 여행은 일상에 익숙한 것을 경험하려고 떠나는 것은 아니다. 사람도 낯설고 음식도 낯설고 모든 것들이 낯설다. 그 낯설음이 달달함으로 전해지기까지 여행이라는 일상이 점점 그에게 편안한 옷이 되어 가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기분이다. 유명한 여행지를 여행해서라기 보다는 그곳을 기억할 수 있는 사람과 맛이 있다는 것이 참 기분 좋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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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아이들과 한 달 살기
전은주(꽃님에미)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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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여행으로 지난 이월에 올해 대학생이 되는 두 딸들과 함께 우여곡절 끝에 '제주여행'을 2박3일 다녀왔다. 제주란 곳이 2박3일로는 정말 터무니 없이 맛만 보는 여행이 될 수 밖에 없는, 모든 곳을 다 가고 싶고 느끼고 싶고 정말이지 한번 살아보고 싶은 곳이란 것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새록새록 느끼고 있다. 큰딸은 고등학교 때 '싸스' 때문에 해외여행이 취소되어 부득이하게 제주여행을 가야 했고 막내는 일본여행을 다녀왔기에 제주를 가지 않아서 꼭 한번 함께 올레길도 걸어보고 느긋하게 제주여행을 해보자고 한 것이 시간에 쫓기어 겨우 여행일자를 잡고 코스도 제대로 짜지 못한 상황에서 그냥 훌쩍 떠나게 된 여행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가는 날 오전에만 조금 반짝 하다가 점심경부터 안개비처럼 내리더니 급기야 앞도 보이지 않는 날이 되어 오후 5시가 안되었는데도 캄캄하여 초보인 육지인은 길을 잃기에 딱 맞춤이었다. 다행히 그 다음날은 화창해서 제주여행을 제대로 할 수 있었는데 아쉬움이 무척 남는 여행이 되었고 딸들은 '이제 자주 제주여행 갑시다' 로 굳어졌다.

 

 

 

올레길도 걸어보지 못했고 해안도로도 눈 앞에서 그냥 지나쳐야 하는 '변수'들이 많이 생겨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여행을 하자고 여유롭게 다녔던 제주여행, 이 책을 읽다보니 그런 마음이 구석구석 느껴진다. 어른들만 여행이라면 금방 준비하고 나설 수 있지만 그것도 스물고개에 들어선 딸들과 여행이니 녀석들 시계에 맞추어야 한다. 스물이라고 해도 준비하는 것에는 애나마찬가지,늘 우리가 먼저 준비하고 넉넉하게 기다려주어야 서로 얼굴 찌푸리지 않고 여행을 할 수 있다. 그런가하면 스케줄을 빡빡하게 잡아 놓으면 항상 생기는 '변수'에 의해 조급함만 생기기 때문에 옆지기에게 그런 마음을 모두 버리라고 했다.우리가 지금 제주에 있는 것만으로도 가족이 모두 함께 같은 곳에서 같은 시간을 즐기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라고 했다.제주의 바람을 느끼고 제주의 공기를 마시고 있으면 됐고 더 감사한 것은 좋은 곳을 한 두곳이라도 더 다닌다면 행복한 것이라 여기자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여행하자고 했다.욕심을 부리면 또 탈나게 되어 있다.

 

그런데 남편과 함께 하는 제주 한 달 생활이 아닌 '아홉살 딸과 다섯 살 아들'과의 제주 한 달 생활은 쉽고 재밌고 즐겁게 표현해 놓았지만 힘든 상황들이 정말 많았으리라 본다. 한편으로는 그것이 또한 중고등학생이 아니라 초등학교 고학년이 아니라 더 즐기는 여행이 가능하지 않았을까도 생각해 본다. 나 또한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 가족여행을 조금 더 많이 다녔다. 아이들이 기억하건 기억하지 못하건 시간이 허락하면 그때는 그냥 떠나자고 하면서 자유여행을 했다. 아이들이 고학년이 되거나 중고등학교에 들어가면 공부에도 쫓기고 '사춘기'라는 고약한 친구가 찾아와 부모와 함께 하지 않으니 그 전에 한곳이라도 더 여행을 하자며 서둘러 여행을 다녔다. 아이들은 나중에 여행을 다녀 온 곳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하곤 했는데 그것도 잠시인가보다.이제 크고 나더니 그 때 가족과 함께 했던 여행이 정말 좋았던 시간으로 기억된다며 그런 여행을 가보자고 하지만 서로의 시간을 맞추기란 정말 힘들다.

 

 

 

아이들이 어려서 더 가능했던 여행이고 아이들이 어리니 바닷가에서 도서관에서 하는 시간들이 많아 경비가 더 절감되는 이유가 되었으리라. 여행 경비나 그외 것들을 생각하기 보다는 난 엄마가 그런 시간을 마련하여 아이들에게 정말 돈주고는 사지 못하는 귀중한 경험을 해주게 하였다는 것을 높이 평가해 주고 싶다. 어느 부모나 다른 아이들과 함께 뛰는 학원이나 그외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떠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정말 대한민국 부모라면 이런 여행을 '용기'가 필요하다. 조금이라도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하면 '뒤쳐진다'라고 생각하여 불안해 할텐데 그보다 더 다른 세상을 보여주고 경험하게 함으로 하여 아이들에게 자연에서 얻는 자신간을 키워준 듯 하다. 분명 어린시절의 이런 소중한 경험은 훗날 아이들에게 아주 좋은 밑바탕이 되어 나타나리라 본다. 꼭 그래서 선택한 여행은 아니었겠지만 정말 저학년 부모들이 한번은 꼭 읽어보고 내 아이에게 무엇이 옳은 일인가 한번 생각하는 기회가 되길 바래본다.

 

 

 

아이들의 모습에서도 정말 밝은 모습이 자연에서 건강하게 뛰어 놀고 창조하고 발견해 내는 무한 가능성이 보여진다. 학원에 보내서 수학문제 하나 더 풀고 영어 단어 하나를 더 외우게 한다면 좋기야 좋겠지만 그나이에 맞는 눈높이 교육을 실천한 듯 하여 재밌게 그리고 나 또한 우리 아이들에게 이렇게 해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으로 읽었다. 내가 어릴적에는 방학이라고 하면 정말 외가댁에서 한달을 있기도 하고 그랬는데 이렇게 제주에서 혹은 다른 곳에서 살아보는 것도 좋은 세상 경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져보며 우리도 아이들이 다 커서 곁을 떠나게 된다면 이런 방법으로 살아보는 것은 또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의 제주의 속살을 보는 듯하여 너무 좋았다. 가족은 좀더 가까이에서 부대끼다보면 더 정이 들고 우애도 깊어진다. 그것이 아이들이 커서라면 싸우게 되는 일도 많겠지만 어린시절에는 더 많이 챙겨주고 위계질서가 잡히는 듯 하다. 큰아이에게서는 '엄마'의 모습을 볼 수도 있는 것을 나 또한 경험했기에 큰아이가 때론 엄마몫을 하며 동생을 잘 챙겨나가는,그야말로 여행을 통하여 서로 더욱 돈독한 가족애를 느끼고 공감대를 가졌다는 것이 부러움 그 자체였다.

 

아이들이 어릴 때 여행은 정말 이야기거리가 많다. 점점 아이들이 커가면서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도 줄어들고 사춘기라는 고약한 친구가 찾아오면 부모와 이야기는 커녕 사진 찍는 것도 싫어하고 정말 남과도 그런 시간은 없을 것만 같은 서로 개개인의 여행을 하게 된다. 사진 한 장을 찍으려 해도 빌고 빌고 또 빌어서 겨우 찍거나 찍어도 부모 맘대로 못한다. 저희들 맘에 들어야 무얼 한다. 그런데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과 표정 장난감이 없어도 자연에서 놀이를 즐기는 모습이며 낯선 아이와 친구를 사귀는 것이 '아이'는 아이들이다. 그런 것에서는 어른들도 정말 배워야 한다. 나도 그렇지만 부모는 교육적으로 아이들에게 강압적으로 숟가락으로 넘겨 주려고 한다.하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스스로 찾고 어른들과 눈높이가 다르고 호기심이 다르고 중요도가 다르다. 그런 속에서 제주의 속살을 너무도 건강하게 잘 적응하고 보여주고 즐기고 한 아이들이 고맙고 재미난 이야기로 풀어내 주어 언제 나도 이런 시간을 가져보고 싶은 로망을 갖게 만들어 준 저자의 글쓰기도 참 부럽고 내가 알지 못했던 제주의 가고 싶은 곳을 많이 알게 해 주어 고마운 책이다. 다음에 제주여행 기회가 생긴다면 한번 찾아가 보고 싶은 곳도 생겼고 '늦은 때'란 없는 것 같다. 내가 우리 딸들에게 못 해 주었다면 언제 함께 좋은 시간 함께 마련하면 된다. 그렇게 제주를 또 한번 건강하게 즐기고 싶다.관광여행지 제주보다 아름다운 제주를 느끼게 해 주어 고맙고 읽는 동안 행복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제주를 여행하고 있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이년전의 이야기에 이년후의 이야기가 더해져서 더 알찬 이야기로 나온듯 한데 어린 자녀를 둔 엄마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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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뻬 씨의 행복 여행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오유란 옮김, 베아트리체 리 그림 / 오래된미래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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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지금 행복하세요?' 라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템포 쉬면서 생각을 해 본다. '내가 지금 행복한가 불행한가?' 난 생각도 해보지 않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현재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행복하니까 살고 있다. 행복과 불행은 정말 백지 한 장 차이고 동전의 앞면과 뒷면의 차이다.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행복이 될 수 있고 불행이 될 수 있다. 파랑새를 찾아 떠난 아이들은 파랑새가 늘 자기들과 함께 했다는 것을 고난의 시간을 겪은 후에 알아 차리게 된다. 우리하 흔히 찾는 '네잎 클로버'의 행운은 세 잎의 무수한 '행복' 속에 어쩌다 나오거나 발견하게 되는 '행운'이다. 행복을 지나서 행운이 오는데 우린 늘 그 어떠다 오는 '행운'에 더 목을 매듯 한다. '나 지금 행복해' 라고 큰소리로 말하거나 생각하면 행복하다.

 

진정한 행복은 먼 훗날 달성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행복을 찾아 늘 과거나 미래로 달려가지요.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자신을  불행하게 여기는 것이지요. 행복은 미래의 목표가 아니라,오히려 현재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지요. 지금 이 순간 행복하기로 선택한다면 당신은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습니다.

 

올해의 화두는 '행복'이란다. 그래서인지 뉴스를 장식하는 것도 방송에 등장하는 것들도 그리고 출판물에도 '행복'이라는 단어가 더 많이 들어간다. 왜 행복을 강조하는 사회가 되었을까? 그동안은 우리가 불행했다는 것인가? 이 책 또한 한번의 방송으로 인해 들불처럼 서점가및 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화두'처럼 다시 떠오르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화려하게 등장했던 프로는 몇 번 맛을 보기도 전에 폐지되고 말았다.책과 관련된 프로가 생겨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한계가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정말 책을 읽지 않는 국민이라는 것이 증명이 된 것인지.대학가나 학교주변을 가보거나 우리집 또한 옆으로 앞으로 주변이 모두 초중고등학교이지만 서점은 겨우 한두곳이다. 먹거리와 술집이 더 많다. 그것도 서점은 겨우 가끔 드나드는 사람들에 지하에 있어 서점이 있는지 잘 모른다. 한 편으로는 이 책이 좀더 많은 이들에 책에 관심을 갖게 해줘서,아니 '행복'이라는 것을 좀더 생각해 보게 해줘서 고맙기도 하다.

 

요즘은 '행복' 보다는 '힐링'이라는 말이 더 대세이기는 하다. 몸과 마음이 지친 현대인들은 무엇을 해도 '힐링' 이 되는 것을 원한다. 그 속에서 행복을 찾고자 한다. 하지만 행복은 스스로 찾아야 하고 미래가 아닌 현재에서 찾아야 한다. 내가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지만 그것을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난 남들이 '죽을 고비' 라고 하는 내겐 좀 큰 사고를 몇 번 당했다. 산행사고로 인해 죽을 고비를 넘겼고 교통사고로 인해 살아 남은 것이 다행이라고 했다면 작년에는 수술후유증으로 즉음 직전까지 갔다 왔다. 그렇게 죽음에 임박해보니 내 나머지 삶은 '감사'이며 '행복'이라는 것을 알았고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도 그 말을 많이 해준다. 소설에 등장하는 꾸뻬 씨 또한 강도들에게 차를 빼앗겨 벽장에 갇혀 죽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하고는 조금더 자신의 삶에 의연해진다. '행복'에 대하여 한차원 더 발전된 생각을 갖게 된다. 오늘 건강하다고 해도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면 오늘의 모든 일들은 행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뻬는 자신에 대해 만족을 느끼지 못했다.무엇보다 그는 행복하지가 않았는데,그 이유는 자신이 사람들을 진정한 행복에 이르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행복은 타인에 내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나 스스로가 느끼고 만족해야 한다. 행복이란 많이 가진 자보다는 부족함으로 문명이 덜 발달되거나 도시보다는 시골의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는 지수가 높다고 한다. 언제가 '행복지수' 에 대한 다큐프로를 본 적이 있다. 많이 가진자들은 남이 가진 것을 가지고 싶어 오늘 더 열심히 일한다. 그것을 가지기 위하여.하지만 자신이 원하던 것을 가졌다고 그것이 행복일까? 목표달성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우면 비울수록 높은 곳이 아니라 나보다 낮은 곳을 보면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더 느낀다. 사람이 위를 쳐다보면 살 수 없지만 아래를 보면 살아갈 용기와 힘이 생긴다고 했다. 내가 현재 불행하고 살아갈 이유가 없을 때 한번 나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이들을 보라.내가 생각한 모든 것들이 그들에게는 '사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물질만능주의에 젖어 있는 우리들에게 몇 마리의 물고기와 하루 두 번 끼늘 이울 수 있는 것도 행복으로 여기는 이들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행복지수는 그들이 더 높다는 것이다. 그들은 미래에 사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왜 모든 것을 갖고 있고 많은 행운을 누리는 사람들이 사는 지역에 정신과 의사가 더 많은 걸까? 이런 사실이 매우 흥미로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꾸뻬에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꾸뻬는 자신이 불행한 사람들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꾸뻬 씨는 정신과 의사이기에 많은 이들을 더 많이 행복하게 해주고 싶지만 자신에게 오는 사람들로 인해 자신 또한 '과부하' 상태가 되고 뭔가 다른 '행복'을 찾아 보아야겠다는 생각에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가 여행에서 만나며 적는 수첩에는 진료실에서 느끼지 못했던 살아 있는 행복에 대한 생각들이다. 많은 이들을 만나며 경험하고 느끼며 '행복' 에 대하여 새로운 '정의'를 찾아 가듯 하나 하나 늘어가는 그 속에서 행복에 대한 진정한 해답은 없다는 것을 느꼈다. 각자가 느끼는 행복은 다 다르다. 인생에 정답이 없듯이 행복에도 정답은 없다. 하나 하나 행복을 느끼는 요소가 될 수 있지만 꼭 정확한 정답이라고 내세울 수는 없다.모든 것이 다 함께 작용을 해야 할 것이다. '풍요속의 빈곤'처럼 가진 자는 더 가지고자 함에서 현재가 불행하다고 말한다. 그런가하면 행복은 남과 비교하면 얻을 수 없는 것이다. 현재 자신을 받아 들이고 봐야 하며 현재에 행복을 느끼기 보다는 우리는 현재가 아닌 과거가 되어야 비로소 그때가 행복했었구나 하고 느낀다. 행복은 먼 미래의 것이 아니다.신기루처럼 잡히지 않는 것을 좇아가지 보다는 현재를 받아 들이며 본다면 소소한 것들 모두가 행복이다. 나에게 '오늘'은 별 의미가 없는 이들도 있겠지만 어제 죽은 자에게 그토록 원하던 '오늘'이다.그런 생각을 하면 값지게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노승은 꾸뻬에게 태고적부터 있어 온 한 가지 영원한 진리를 전달하고 있었다.그것은 행복에 대한 욕망이나 추구마져 잊어버리고 지금 이 순간과 하나가 되어 준재할 때 저절로 얻어지는 근원적인 행복감이었다. 이 근원적인 행복은 자주 찾아오지 않지만,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으며,세상에서 얻는 다른 모든 행복의 기본을 이루는 것이었다.

 

자신에게 우연하게 찾아 온 '행운'을 행복하게 즐기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자신에게는 행운과 행복이지만 그보다 더 나은 경험을 했던 사람에게는 현재가 불행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가하면 목표를 세우고 주머니를 어느 정도 채운다고 그것이 행복달성이 되는 것이 아니다. 만족은 또 다른 목표물을 찾아 나설 뿐이다. 자신의 주머니에 채우기 보다는 주머니 안에 채운 것을 남들에게 베풀 때 거기에서 얻어지는 행복은 돈으로 값을 따질 수가 없다. 약간은 동양적이고 철학적으로 풀어가기도 했지만 우리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은 사실인듯 하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의미는 무엇인지? 현재 내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을 보게 하기도 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돈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 '현재를 즐겨라' 난 그렇게 정의하고 싶다. 내가 즐겁고 현재를 즐긴다면 현재가 모여 미래가 되는 것이다. 행복 그 정답은 자신의 마음 안에 있다. 지금 불행하다고 느끼는가,그렇다면 꾸뻬 씨와 함께 여행을 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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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시작해 - 개그맨 김영철의 톡톡 튀는 도전기
김영철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개그맨 김영철에서 이젠 작가 김영철 번역가 김영철이 되었다. 그의 이름 앞에는 다른 어떤 직업에 관한 수식어 중에 '개그맨'이란 것이 정말 잘 어울리고 우리에게 익숙하다.그런 그가 '영어정복'으로 인해 얻는 또 다른 꿈의 도전과 꿈을 이룬 이야기는 정말 그의 부단한 노력이 가져온 결과물이 아닐까? 난 그가 다른 곳보다 라이오에서 나와 자신이 그동안 영어에 기울인 노력에 대하여 이야기 할 때 정말 놀랬다.강남에 있는 영어 학원이란 학원은 안가본 곳이 없이 모두 가 보았다는 것이다. 대부분 어디가 잘한다고 하고 그곳에 우르르 몰려 가는가 하면 어떤 선생님이 잘 가르친다고 입소문이 나기라도 하면 수강생들이 몰린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는 정해진 선생님은 없다는 것이다.물론 학원도 마찬가지다. 어느 누구에게나 배울점이 있기 때문에 모두 가 보고 자신에게 맞는 곳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는 자신에게 맞는 영어학원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1만 시간의 법칙,하루에 세 시간 일주일에 이십시간 그것이 십 년이면 꿈을 이룰 수 있다' 는 일만시간의 법칙이 그를 움직였다. 아니 지금도 누군가를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 꿈을 이루지 못해다고,실패했다고 하면 '일만 시간의 노력을 기울여 보았는가?' 하고 묻는다. 정말 일만 시간이면 꿈을 이룰 수 있을까? 그것은 물론 '끝 없는 노력' 에 비유한 말일터지만 그와 같이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직장을 십년 다녀도 슬럼프가 오고 주머니 안에 '사직서'를 몇 번을 꺼냈다 넣었다 할 것이다. 하물며 자신의 꿈을 향해 그렇게 노력하라고 한다면 끝까지 노력을 하는 사람보다는 중도 포기자가 더 많을 것이다. 그는 개그맨이지만 자신이 직업과는 멀거라 생각한 '영어'를 접하면 제2의인생을 살고 있다. 작가 번역가 강의,그것은 그가 개그맨으로 가져보지 못할 직업군이지만 '영어'라는 새로운 꿈을 향하야 일만 시간이라는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의 노력을 기울인것 같은 그의 노력으로 일군 또 다른 세상이다.

 

"영철아,너는 선배들을 보고 배우려고 하고 또 부러워하느라 잘 느끼지 못하겠지만,네 밑의 후배와 동생들은 너처럼 되고 싶어서 노력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니?"

 

자신이 아닌 다른사람을 흉내 내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듯 자신의 본모습이 진짜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했던 부분을 보았다. 그런 그에게 유재석 선배의 말이 그에게 깨달음을 주었다.누군가는 자신을 흉내내는 것이 싫은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게 함으로 하여 자신이 한번 더 기억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받아 들이고 다시 흉내를 내는 사람도 보았다. 늘 웃음만 주는 개그맨인줄 알았던 그에게도 굴곡이 있고 웃음 뒤의 세상이 있었음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이 아닌 타인의 이미지로 그려질 때 그는 또한 어떤 마음일지. 그런 속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너무도 멋지게 그려나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그가 나오는 프로는 조금더 신경써서 보는데 그와 관련된 이야기 들이 많으면서도 지금 한창 20,30대에게 자신의 지난 시간들을 이야기 하며 그들에게 충고 아닌 충고도 아낌없이 해주는 듯 하여 기분좋게 읽었다.

 

그가 번역한 <치즈는 어디에?> 라는 책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꼭 한번 기회가 되면 읽고 싶다. 그 또한 모든 것이 '우연과 같은 기회' 였다. 서수민PD의 말을 듣고 몬트리올에서 열리는 '코미디언 페스티벌'로 향하던 비행기에서 손미나 전 아나운서가 준 책을 읽은 것이 계기가 되었는가 하면 코미디언 페스티벌에서 영어로 하니 귀가 열리지 않아 제대로 알아 듣지 못하고 거짓 액션만 취하다보니 자신 또한 모두와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국제적인 개그맨이 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가진 것에서 그의 영어에 대한 열정은 시작되었다. 인생에는 세 번의 기회가 찾아 온다고 하는데 그 기회를 그냥 흘려 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것이 내게 온 정말 값진 기회구나' 하고 기회를 정말 잘 활용하여 자기것으로 만들는 사람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

 

같은 밥상은 두 번 오지 않는다. 매번 다른 밥상이 들어온다.아마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또한 그렇게 올 것이다. 좋았더 과거의 기억과는 다르게 새로운 모습으로,그래서 번쩍 하는 황홀한 순간이 지금 왔는지 아직 오고 있는지 잘 구별되지 않는 모습으로.

 

다양한 부분에 멀티적인 멘토를 가지고 있는 그,그런가 하면 선배들의 이야기를 그냥 놓치지 않고 귀담아 들어 다시금 되새김질 하는 그는 분명 '노력형' 이다. 하지만 꿈을 향해서는 '현재진행형'이다.아직도 그의 꿈이 어디까지인지 다 드러나지 않았다.이제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개그맨으로 안주하고 완주하는 것이 아니라 그 꿈을 더 크게 더 다양하게 펼치며 자신의 능력의 끝이 어디인지 그 한계에 도전하는 개그맨 같다. 분명 이런 부분은 우리도 본받아야 한다고 본다. 노력해보지 않고 실패를 포기를 너무 쉽게 일삼는 친구들이 많다. 1박2일을 촬영하며 '영어 과외' 때문에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방송보다는 어쩌면 '영어'에 더 열심이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지만 두마리 토끼를 쫓다가 두마리를 다 놓치게 되는 경우가 아닌 두마리를 아니 그 이상의 토끼를 잡는 경우처럼 어느 프로에선가 나와 왜 영어였냐는 MC의 질문에 자신의 '개그 리액션과 영어가 너무 잘 맞았다 ' 라는 이야기를 들어가며 다른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것을 하다보니 또 다른 꿈을 이룬 것은 아닌가 본다. 하지만 그 부분이 해외파도 아니고 그야말로 토종으로 이루기엔 힘든 일임을 안다. 그 밑에는 누구보다 성실하게 자신의 꿈을 향해 노력했던 그의 진실이 있음을 안다.

 

"영철아, 지금처럼 사는 것도 좋지만 네가 꿈꾸었던 영어의 세계에서 한번쯤 가슴 떨리는 삶을 살아보고 싶지 않니?"

 

우리는 살면서 '가슴 떨리는 삶'을 살 수나 있을까? 그런 기회가 얼마나 올까? 아니 그런 기회를 얼마나 만들며 살까? 자신이 이루고자 했던 꿈 안에서 자신의 열정을 다 쏟아가며 가슴 떨리는 삶을 산다는 것이야말로 정말 행복한 삶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은 많이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을 멀리 보면서 만족하지 않아도 현재에 적응하며 길들여지며 살아간다. 자신의 꿈을 향해 치열하게 노력한다는 것은 현재를 벗어난다는 어쩌면 불안과 근심을 낳을 수도 있어 포기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는 분명 누구보다 '가슴 떨리는 삶'을 살고 있다. 누군가 제의한 '강의' 난 그 분야 전문가도 아니고 누구보다 잘하는 것도 아닌데 내가 어떻게 하고 포기를 했다면 또 다른 삶은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도전을 즐기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서 새로운 꿈을 개척하듯 꿈을 이루어 가는 그의 이야기 밑바탕에는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는 '열정적인 독서'가 있었음을 말해준다. 겉모습을 보면 책을 읽지 않을 것만 같은 그이지만 책에 관하여 작가에 관하여 이야기 하는 부분에는 그의 감추어졌던 부분에 해가 들듯 방대한 독서량을 볼 수 있다. 계획하는 사람은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는 글을 보았다. 계획에 앞서 먼저 행동에 옮기는 사람이 더 성공을 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꿈을 이룰 계획만 무성하게 하기 보다는 지금 바로 행동에 옮겨 보는 것이다. '일단 시작해!' 늦었다고 시작할 때가 제일 빠를 때라는 말처럼 머뭇거리기 보다는 일단 시작해 놓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보다 치열하게 노력하고 누구보다 가슴 뛰는 삶을 살아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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