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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뻬 씨의 행복 여행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오유란 옮김, 베아트리체 리 그림 / 오래된미래 / 2004년 7월
평점 :
'당신은 지금 행복하세요?' 라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템포 쉬면서 생각을 해 본다. '내가 지금 행복한가 불행한가?' 난 생각도 해보지 않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현재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행복하니까 살고 있다. 행복과 불행은 정말 백지 한 장 차이고 동전의 앞면과 뒷면의 차이다.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행복이 될 수 있고 불행이 될 수 있다. 파랑새를 찾아 떠난 아이들은 파랑새가 늘 자기들과 함께 했다는 것을 고난의 시간을 겪은 후에 알아 차리게 된다. 우리하 흔히 찾는 '네잎 클로버'의 행운은 세 잎의 무수한 '행복' 속에 어쩌다 나오거나 발견하게 되는 '행운'이다. 행복을 지나서 행운이 오는데 우린 늘 그 어떠다 오는 '행운'에 더 목을 매듯 한다. '나 지금 행복해' 라고 큰소리로 말하거나 생각하면 행복하다.
진정한 행복은 먼 훗날 달성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행복을 찾아 늘 과거나 미래로 달려가지요.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자신을 불행하게 여기는 것이지요. 행복은 미래의 목표가 아니라,오히려 현재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지요. 지금 이 순간 행복하기로 선택한다면 당신은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습니다.
올해의 화두는 '행복'이란다. 그래서인지 뉴스를 장식하는 것도 방송에 등장하는 것들도 그리고 출판물에도 '행복'이라는 단어가 더 많이 들어간다. 왜 행복을 강조하는 사회가 되었을까? 그동안은 우리가 불행했다는 것인가? 이 책 또한 한번의 방송으로 인해 들불처럼 서점가및 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화두'처럼 다시 떠오르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화려하게 등장했던 프로는 몇 번 맛을 보기도 전에 폐지되고 말았다.책과 관련된 프로가 생겨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한계가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정말 책을 읽지 않는 국민이라는 것이 증명이 된 것인지.대학가나 학교주변을 가보거나 우리집 또한 옆으로 앞으로 주변이 모두 초중고등학교이지만 서점은 겨우 한두곳이다. 먹거리와 술집이 더 많다. 그것도 서점은 겨우 가끔 드나드는 사람들에 지하에 있어 서점이 있는지 잘 모른다. 한 편으로는 이 책이 좀더 많은 이들에 책에 관심을 갖게 해줘서,아니 '행복'이라는 것을 좀더 생각해 보게 해줘서 고맙기도 하다.
요즘은 '행복' 보다는 '힐링'이라는 말이 더 대세이기는 하다. 몸과 마음이 지친 현대인들은 무엇을 해도 '힐링' 이 되는 것을 원한다. 그 속에서 행복을 찾고자 한다. 하지만 행복은 스스로 찾아야 하고 미래가 아닌 현재에서 찾아야 한다. 내가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지만 그것을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난 남들이 '죽을 고비' 라고 하는 내겐 좀 큰 사고를 몇 번 당했다. 산행사고로 인해 죽을 고비를 넘겼고 교통사고로 인해 살아 남은 것이 다행이라고 했다면 작년에는 수술후유증으로 즉음 직전까지 갔다 왔다. 그렇게 죽음에 임박해보니 내 나머지 삶은 '감사'이며 '행복'이라는 것을 알았고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도 그 말을 많이 해준다. 소설에 등장하는 꾸뻬 씨 또한 강도들에게 차를 빼앗겨 벽장에 갇혀 죽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하고는 조금더 자신의 삶에 의연해진다. '행복'에 대하여 한차원 더 발전된 생각을 갖게 된다. 오늘 건강하다고 해도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면 오늘의 모든 일들은 행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뻬는 자신에 대해 만족을 느끼지 못했다.무엇보다 그는 행복하지가 않았는데,그 이유는 자신이 사람들을 진정한 행복에 이르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행복은 타인에 내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나 스스로가 느끼고 만족해야 한다. 행복이란 많이 가진 자보다는 부족함으로 문명이 덜 발달되거나 도시보다는 시골의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는 지수가 높다고 한다. 언제가 '행복지수' 에 대한 다큐프로를 본 적이 있다. 많이 가진자들은 남이 가진 것을 가지고 싶어 오늘 더 열심히 일한다. 그것을 가지기 위하여.하지만 자신이 원하던 것을 가졌다고 그것이 행복일까? 목표달성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우면 비울수록 높은 곳이 아니라 나보다 낮은 곳을 보면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더 느낀다. 사람이 위를 쳐다보면 살 수 없지만 아래를 보면 살아갈 용기와 힘이 생긴다고 했다. 내가 현재 불행하고 살아갈 이유가 없을 때 한번 나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이들을 보라.내가 생각한 모든 것들이 그들에게는 '사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물질만능주의에 젖어 있는 우리들에게 몇 마리의 물고기와 하루 두 번 끼늘 이울 수 있는 것도 행복으로 여기는 이들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행복지수는 그들이 더 높다는 것이다. 그들은 미래에 사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왜 모든 것을 갖고 있고 많은 행운을 누리는 사람들이 사는 지역에 정신과 의사가 더 많은 걸까? 이런 사실이 매우 흥미로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꾸뻬에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꾸뻬는 자신이 불행한 사람들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꾸뻬 씨는 정신과 의사이기에 많은 이들을 더 많이 행복하게 해주고 싶지만 자신에게 오는 사람들로 인해 자신 또한 '과부하' 상태가 되고 뭔가 다른 '행복'을 찾아 보아야겠다는 생각에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가 여행에서 만나며 적는 수첩에는 진료실에서 느끼지 못했던 살아 있는 행복에 대한 생각들이다. 많은 이들을 만나며 경험하고 느끼며 '행복' 에 대하여 새로운 '정의'를 찾아 가듯 하나 하나 늘어가는 그 속에서 행복에 대한 진정한 해답은 없다는 것을 느꼈다. 각자가 느끼는 행복은 다 다르다. 인생에 정답이 없듯이 행복에도 정답은 없다. 하나 하나 행복을 느끼는 요소가 될 수 있지만 꼭 정확한 정답이라고 내세울 수는 없다.모든 것이 다 함께 작용을 해야 할 것이다. '풍요속의 빈곤'처럼 가진 자는 더 가지고자 함에서 현재가 불행하다고 말한다. 그런가하면 행복은 남과 비교하면 얻을 수 없는 것이다. 현재 자신을 받아 들이고 봐야 하며 현재에 행복을 느끼기 보다는 우리는 현재가 아닌 과거가 되어야 비로소 그때가 행복했었구나 하고 느낀다. 행복은 먼 미래의 것이 아니다.신기루처럼 잡히지 않는 것을 좇아가지 보다는 현재를 받아 들이며 본다면 소소한 것들 모두가 행복이다. 나에게 '오늘'은 별 의미가 없는 이들도 있겠지만 어제 죽은 자에게 그토록 원하던 '오늘'이다.그런 생각을 하면 값지게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노승은 꾸뻬에게 태고적부터 있어 온 한 가지 영원한 진리를 전달하고 있었다.그것은 행복에 대한 욕망이나 추구마져 잊어버리고 지금 이 순간과 하나가 되어 준재할 때 저절로 얻어지는 근원적인 행복감이었다. 이 근원적인 행복은 자주 찾아오지 않지만,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으며,세상에서 얻는 다른 모든 행복의 기본을 이루는 것이었다.
자신에게 우연하게 찾아 온 '행운'을 행복하게 즐기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자신에게는 행운과 행복이지만 그보다 더 나은 경험을 했던 사람에게는 현재가 불행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가하면 목표를 세우고 주머니를 어느 정도 채운다고 그것이 행복달성이 되는 것이 아니다. 만족은 또 다른 목표물을 찾아 나설 뿐이다. 자신의 주머니에 채우기 보다는 주머니 안에 채운 것을 남들에게 베풀 때 거기에서 얻어지는 행복은 돈으로 값을 따질 수가 없다. 약간은 동양적이고 철학적으로 풀어가기도 했지만 우리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은 사실인듯 하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의미는 무엇인지? 현재 내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을 보게 하기도 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돈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 '현재를 즐겨라' 난 그렇게 정의하고 싶다. 내가 즐겁고 현재를 즐긴다면 현재가 모여 미래가 되는 것이다. 행복 그 정답은 자신의 마음 안에 있다. 지금 불행하다고 느끼는가,그렇다면 꾸뻬 씨와 함께 여행을 해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