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 - 어느 여행자의 기억
변종모 글.사진 / 허밍버드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여행 후에 기억되는 것은 많은 것이 있겠지만 '사람과 음식' 으로 오래 기억되는 경우가 많다. 여행지에서 만났던 잊지 못할 사람에 대한 추억이 담겨 있다면 그곳은 더욱 잊혀지지 않고 기억의 창고에 저장되어 오래도록 그곳을 놔누지 않게 된다.그런가 하면 그곳의 모든 것은 다 잊었어도 그곳에서 먹었던 '음식의 맛'으로 또한 오래도록 기억되는 여행이 있다. 먹는 것을 즐겨하지 않는 나는 여행을 가면 꼭 옆지기에게 듣는 말이 있다. 나 때문에 그곳의 음식을 제대로 맛을 보지 못한다는, 잘못 먹으면 탈이 나서 고생하는 경우가 있어 꼭 끼니마다 나를 먼저 생각하고 내가 먹을 수 있는지,아니 소화를 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나는 또 그게 몹시 싫다. 못 먹고 소화를 못 시킬것이 없는데 그렇게 한번씩 짚고 넘어가면 그게 또 맘에 걸려 기분이 상한다.기분좋게 먹으려고 했다가도 기분이 나빠 소화를 못 시키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일단 그런 이야기 모두 빼고 기분 좋게 먹어보자고 늘 말한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먹거리를 기분 좋게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찾아가서 먹는 경우도 있고 어찌하다 우연히 들렀는데 생각지도 못한 맛을 찾게 되는 기분 좋은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시간에 쫓겨 밥시간을 넘기고 겨우 식당을 찾거나 먹거리를 찾아 들어가 허겁지겁 먹는 경우도 많다. 한 곳이라도 더 보려는 욕심이 빚은 화이기도 하다. 우리도 그런 경우가 많은데 아이들이 어릴 때 남해여행을 갔을 때 보성녹차밭을 구경 갔던 경우,그곳을 구경하고 여유롭게 그곳 근처에서 맛난 것을 먹으려고 계획을 했다.당연히 주변에 먹을 수 있는 곳이 있겠지 생각을 했다.그땐 스마트폰 시대가 아니었으니 지금처럼 검색해서 바로 갈 수 있지 않았다. 며칠 여행이라 차에 간단한 먹거리와 김치 간식을 가지고 다녔지만 식당이 없어 식겁했다. 밥시간도 한참 늦었고 생각했던 식당도 없고 할 수 없이 휴게소에서 컵라면을 사서 아저씨께 부탁해서 주전자에 끓인 녹차물을 얻어 컵라면을 추운 휴게소 앞 간이 테이블에 앉아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 또한 지금은 추억이 됐고 무척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저자의 책은 처음인데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과 음식이 주는 '포만감'이라고 할까? 포만감이란 많이 먹고 배불러서의 포만감이 아니라 함께 그 시간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자신이 그 시간에 먹을 수 있는 최고의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고 느끼는 마음이다. 우리나라가 아니라 타지를 여행하는 입장이니 게스트하우스에서 할 수 있는 음식이란 그리 많지 않다. 그런가 하면 타지를 여행하다보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고 해도 고향의 음식,엄마의 손맛이 자꾸만 생각나게 마련이다. 그런 속에서 함께 머물렀던 사람의 슬픔도 나누게 되고 그땐 알지 못했지만 자신 또한 그런 슬픔과 대면하게 되면서 그 슬픔을 정말 최고의 음식아라고 할 수 있는 단순한 '감자볶음' 하나에도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여행이 주는 미각적이면서 외로움과 고독을 함께 하는 이들과의 이야기를 참 감성적이면서도 맛깔나게 썼다.

 

고향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남긴 텅 빈 도시의 저녁, 오늘은 그날과 닮았고 그날 혼자 먹던 그것을 나는 오늘 또 혼자 대면하고 있다.하지만 그날과 오늘이 간격은 아득하고 그곳과 이곳은 지구의 반대편처럼 아득하다.  시간을 메우고 거리를 메우는 것에는 많은 양의 추억이 포함된다. 그러므로 다가올 것이 아닌, 이미 지나간 슬픈 추억은 허기지지 않다. 그저 만두처럼 덤덤할 뿐이다.

 

그의 여행이야기에서는 외로움도 고독도 뚝뚝 떨어져 내린다. 하지만 하나도 외롭지 않고 고독해 보이지 않는다. 늘 사람과 음식이 함께 있고 외로움을 혹은 슬픔을 음식으로 채우며 허기진 외로움을 달래듯 고향의 맛으로 달래주고 있어서다. 고향에 가지 못한 그에게 전해진 커다란 만두,아니 힝카리는 우리네 만두와 닮아 있지만 고향에서 먹던 그 맛하고는 다르다. 고향의 맛을 먹고 싶다. 만두국을 끓이기 위해 비슷한 재료를 찾고 무가 아닌 사과를 넣고 달콤한 만두국을 끓여 게스트하우스 사람들과 나누어 먹으며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한다는 '가족' 의 정을 느끼면서 먹는 만두국의 맛은 또 감칠맛나게 그것이 비록 고향에서 먹던 맛과는 전혀 다른 맛이라고 해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고 이상하지 않은 달콤한 맛으로 전해진다. 여행을 하다보면 전문 셰프보다 더 요리사에 가깝게 변하고 현지의 요리와 우리의 요리가 합쳐져 퓨전 요리가 탄생하는 듯 하다. 그 속에서 타지지만 가깝게 고향을 느끼고 어머니의 손맛을 느낄 수 있는 포근함이 달달하게 전해진다.

 

여행이라는 것은 그렇듯 언제나 예상 밖의 일을 예상 했던 것처럼 대면하고 아무렇지 않은 일을 기꺼이 특별하게 받아들이는 일,그리고 그것을 당해내거나 덤덤하게 일상처럼 살아내는 일이 아니겠는가. 내 발로 이곳을 선택했으니 이곳에 머무는 동안 나의 선택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었다.

 

'여행'이 직업이 되고 그것이 일이 되었다. 누가 등 떠밀어서 떠난 여행도 아니고 나의 선택이었으니 좀더 자신의 선택에 최선을 다하는,일상처럼 충실하게 대하는 그의 이야기는 솔직하면서도 뭉글뭉글 나도 이런 여행을 떠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어느 한 곳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 곳을 돌아 다니면 만났던 사람과 맛에 대한 이야기라 시간에 한정되지 않아 읽기 편하고 외로움이 혹은 고독이 '달다'로 표현되기까지 그의 내부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감성적인 연애편지를 읽는 기분도 든다. 때로는 별거 아닌 음식으로 인해 소화시키지 못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곤욕을 겪기도 하고 때론 분위기에 취해 기억해내지 못하는 지난 시간으로 인해 갸웃뚱 하면서도 못내 그 시간을 되새겨보면 행복하기만 시간들,그것이 여행의 추억이고 기억이 아닐까.분명 여행은 일상에 익숙한 것을 경험하려고 떠나는 것은 아니다. 사람도 낯설고 음식도 낯설고 모든 것들이 낯설다. 그 낯설음이 달달함으로 전해지기까지 여행이라는 일상이 점점 그에게 편안한 옷이 되어 가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기분이다. 유명한 여행지를 여행해서라기 보다는 그곳을 기억할 수 있는 사람과 맛이 있다는 것이 참 기분 좋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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