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집
박완서 지음, 이철원 그림 / 열림원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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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저자의 글을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이 참 슬픈 일이다.하지만 인생은 짧아도 예술은 긴 것인가,글은 오래도록 우리 곁에 남아 끝나지 않은 저자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올해는 좀더 저자의 책을 많이 읽어보려고 많이 쌓아 둔 책 속에서 저자의 책을 골라 한 권 한 권 빼들고 읽었다.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을 것만 저자의 이야기,깐깐한 때로는 칼칼하면서도 구수한 된장찌개와 같은 맛이기도 하다가 어느 날은 늘 마시던 보리차와 같은 맛이기도 한 정말 삶은 있는 그대로 잘 보여주는 작가의 글에 빠져 허우적 거린 시간이 참 행복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이 책도 좀더 빨리 만나보고 싶었지만 읽어야 할 책들이 밀려 있어서 이제 겨우 읽게 되었다.

 

 

저자의 책으로 읽은 것은 <나목> <두부> <호미> <그 여자네 집> <그 남자네 집> <그 많던 싱아가 누가 다 먹었을까>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환각의 나비> <잃어버린 여행가방> <못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세상에 이쁜 것> <나의 아름다운 이웃> <어른 노릇 사람 노릇> <아주 오래된 농담>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친절한 복희씨>.생각나는 대로 적어 보았는데 많이 읽은 듯 하지만 내 책장에는 읽지 못한 책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늦게 문단에 등단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현역이고 싶다는 작가의 말처럼 늘 글로 삶을 다스린 듯 많은 글들이 퍼내도 퍼내도 끝나지 않은 우물물처럼 늘 새롭게 고여드는 듯 하다.

 

마나님은 영감님이 혹시라도 아무도 대작할 이 없이 쓸쓸하게 막걸리를 들이켜는 일이 생긴다면 그 꼴은 정말로 못 봐줄 것 같아 영감님보다 하루라도 더 살아야지 싶고, 영감님은 마나님의 쭈그렁바가지처럼 편안한 얼굴을 바라보며 이 세상을 뜰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 요즘 들어 부쩍 건강이 염려스러운 것.그건 그들만의 지극한 사랑법이다.

 

<노란집>은 작가의 마지막 아치울통신이라고 봐야하나.아직도 곁에 있는 듯 한데 시간이 많이 흘러갔다. 섭섭한 마음과 안타까움이 늘 작품을 대하면서 아쉬움으로 자리할 때 이 책이 나와 주어서 좀더 저자의 여운에 오래도록 머물 수 있어 좋았다. 이 책에는 어떻게 보면 '노년의 삶' 이라고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어 글을 읽으며 나의 부모님,특히나 아버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친정아버지 또한 내 곁을 떠나신지 벌써 삼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병마와 싸우시면서도 아픈 내색 한번 안하고 있다가 마지막 순간에 한말씀 하신 것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눈물짓게 한다. 아버지는 큰 병을 앓으셨는데 당신이 아프신 것보다 평생 짓던 농사일을 예전처럼 하지 못하는 것을 더 힘들어 하셨다. 손수 농사를 지어 자식들 먹거리를 모두 챙겨 주셨던 아버지인데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곁에서 모든 시간을 보살펴 드렸는데 아버지의 다리는 그야말로 마른 장작개비처럼 뼈만 남아 앙상했다.아니 정말 마른 장작개비를 만지는 것과 같아 속울음을 얼마나 울었던지.소설속에서 영감님과 마나님의 이야기가 꼭 내 부모님의 그 모습처럼 정겹기도 하고 가슴 한 편이 아리기도 했다.감정의 어느 한 곳을 날카로운 칼로 베어낸 것처럼 강한 통증에 마비되는 듯 하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감정,노작가의 마지막 통신에서 그렇게 아버지를 만나듯 해서 다시금 그 시간들을 되새김질 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누더기 옷에서 이 잡던 때를 그리워하는 소리를 해도,그럼 그렇고말고.맞장구를 쳐줄 수 있는 것도,궁상스러운 비위생이 좋아서가 아니라 식구들 사이에 체온의 교류가 있었던 시절에 대한 안타까운 추억 때문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저자도 그렇지만 친정아버지도 비슷한 해에 태어나셨기에 질곡의 역사와 함께 했으니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기억되는,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어렵고 힘든 시절의 이야기일 것이다.아버지 또한 늘 우리를 앉혀 놓고 하시는 말씀이 당신이 힘들게 지나온 시간에 대해서,전쟁중이거나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핏덩이 동생들을 어린 나이에 부모처럼 키워야 했던 이야기를 말씀 하시고 또 하시고 그렇게 새뇌를 시키듯 말씀 하셨었다. 다른 것은 잊으셔도 그 시절의 시간은 어제의 일처럼 또렷하다고 늘 말씀 하셨는데 저자의 글을 보면 반복되는 지난 이야기들이 사골을 우려내듯 하지만 그 맛과 풍미에 빠져들면 헤어나오질 못한다. 질곡의 역사와 함께 했기 때문에 우려내도 또 다시 뽀얗게 우려날 수 있는 힘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가하면 아치울의 노란집은 그야말로 개풍의 어린시절 집을 생각하듯 자연과 함께 하는 여유와 삶의 뒤안길에서 느끼는 평화로움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을 준다.

 

현재의 인간관계에서뿐 아니라 지나간 날의 추억 중에서도 사랑받는 기억처럼 오래가고 우리를 살맛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건 없다. 인생이란 과정의 연속일 뿐,이만하면 됐다 싶은 목적지가 있는 건 아니다.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사는 게 곧 성공한 인생이다.

 

많이 가져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을 느낄 수 있어서 행복한 것처럼 찾고 느끼고 만끽하고 그렇게 노년의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받아 들이며 타인의 삶까지 안고 가듯 그렇게 평범한 일상 속에서 행복을 보여준다. 하얀 쌀죽에 얹어 먹는 육젓의 칼칼함처럼 그 때 그 시절에는 느끼지 못했던 그 칼칼한 맛을 이제는 그리움처럼 혀끝에 맴도는 아니 가슴 안에만 남아 있는 추억의 맛을 되새김질 하듯 저자의 글 속에서 여유롭게 머물게 한다. 작은 것 별거 아닌 것이 행복이었다는 것을 그 때에는 모르다가 세월이 흐른 뒤에 한참 지난 후에는 알게 되는 그런 아련한 맛이라고 할까. 소탈하게 웃는 그 웃음이 참 좋았는데 이젠 먼 기억속에 저장해 두어야 한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글 중간 중간에 있는 삽화가 저자의 모습을 담기도 했지만 따뜻함을 전해줘서 잠시 담장에서 쉬고 있는 따뜻한 햇살처럼 양지녁에서 해바라기라도 해야할 것처럼 따뜻함으로 머무르게 해준다. 저자의 글을 읽다보면 삶을 정말 사랑해야 한다는 것,어느 것 하나 소홀하게 흘려 버릴 수 없다는 것을 많이 느끼게 된다. 일상의 어느 한 순간 아니 마당에 무심히 난 잡초 하나 이유없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해서 빠져들게 한다. 이제는 먼 그리움이 된 저자의 아직 읽지 못한 글을 좀더 빨리 꺼내볼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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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넘브라의 24시 서점
로빈 슬로언 지음, 오정아 옮김 / 노블마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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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요즘은 다양해졌다. 종이책을 좋아하고 책냄새에 취해 헌책방을 찾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종이책과 오프라인 서점만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요즘은 오프보다는 온라인서점을 더 이용한다. 그리고 e북도 가지고 있지만 난 e북 보다는 종이냄새가 좋고 한 장 한 장 넘기는 그 소리와 책을 읽으며 맘에 드는 부분은 연필로 밑줄을 긋기도 하기에 사각사각 연필쓰는 소리도 좋아하기에 e북을 이용하지는 않는다.온라인서점을 이용하다보니 오프는 가끔 시간과 기회가 되면 가는 상황이다. 예전에는 오프서점이 온기가 있고 좋았는데 지금은 낯설다.그만큼 온라인서점에 더 적응되어 가고 더 많이 이용한다는 것이다.

 

페넘브라 서점은 책들을 위한 일종의 고아원같은 곳인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그러나 서점에서 한 달 가까이 일한 지금은, 이곳이 그보다는 좀더 복잡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두 번째 서점이 완전히 다른 종류의 손님을 받는 것만 봐도 그렇다. 이상한 달들처럼 서점의 궤도를 도는 작은 집단.그들은 옆집 노스페이스와는 완전히 달랐다.다들 나이가 많고 자신들만의 주기에 따라 서점을 방문한다.

 

책 아니 인쇄술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500년 동안 불이 꺼지지 않은 서점이 있다면 아니 500년간 누군가가 한 권의 책에 담긴 '비밀'을 풀기 위하여 비밀스런 움직임을 하고 있었다면? 이 책은 저자가 트위터의 140자 글자 중에서 "이런, 방금 24시간 도서 반환통을 24시간 서점으로 잘못 읽었네" 라는 문구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24시간 도서 반환통' 이 '24시간 서점'으로 잘못 읽은 문구에서 그는 '24시 서점'을 생각해냈고 그 서점에 비밀을 부여하여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만나게 해 놓았다. 아날로그는 아날로그만의 장점이 있고 디지털은 그야말로 '속도' 와 정보의 바다에서 혼자 정보를 찾는 것이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아 정말 눈깜짝 할 시간에 결과를 찾아낼 수 있다는 잇점이 있다. 우리가 잘 쓰는 '초록언니'의 검색엔진 또한 많은 이들이 이용하며 A는 B다 라는 답을 그대로 믿는 이들이 많다. 그야말로 인터넷이 답인 경우가 우리 생활 깊숙히 들어와 있다.

 

요즘은 어딜 가도 스마트폰은 손에서 놓지 않은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종이책을 펼쳐 들고 읽는 사람은 드물다. 나 또한 종이책을 외출 할 때는 가져가서 어디에서나 읽는데 모두가 이상한 나라에서 온 사람처럼 보는 경우가 있다. 늘 책을 읽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기에 장소와 시간에 아랑곳하지 않고 읽는 편인데 달나라에서라도 온 사람취급 하는 경우가 있다.그만큼 우리 곁에서 종이책은 멀어져가고 오래전에는 서점이 즐비하던 것이 지금은 서점을 찾아 보기도 힘들다.우리 동네만 해도 점점 서점이 줄고 있고 서점이 어쩌다 들어서면 놀란다. '서점 운영이 될까?' 우리나라 대학가에는 서점보다는 술집과 식당이 더 많다. 그러니 헌책방도 찾아 보기 힘들다. 점점 책냄새가 우리 생활에서 멀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그런데 그런 우리 곁에 24시간 서점이 있다면 참 편할 듯 하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나 찾을 듯 하다. 그런 서점에 일자리를 잃은 '클레이 재넌'이 살기 위하여 밤시간에 하는 일에 도전을 하게 된다. 그는 책과 친한 것이 아니라 디지털에 친하다. 웹디자이너인 그는 경력도 쌓지 못하고 베이글을 만드는 곳에서 일을 하다 그만두게 되었는데 이 서점에서는 그야말로 자신의 능력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서점은 한산 하기도 하고 책을 빌리러 오는 사람들은 비밀과 같은 코드만 대고는 책을 빌려 간다. 그런가하면 서점에서 일을 하려면 책을 펼쳐보면 안된다.앞서가와 뒷쪽 서가가 있는데 비밀에 쌓인 뒷쪽 서가의 책들은 무슨 비미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맞아.15세기 말엽의 일이지. 알두스 마누티우스 베네치아에 있는 자신의 인쇄소로 필경사와 학자들을 모아들였어. 거기서 고전들의 초판을 제작했지. 소포클레스,아리스토텔레스,플라톤,베르길리우스,호라티우스,그리고 오비디우스의 책들을."

 

이 서점 주인인 페넘브라씨도 의문의 사나이다. 그러다 그는 어느 날 이서점을 3D작업을 한다. 데이터화 하면 좀더 편할까 아니 그는 디지털과 친하기 때문에 작업을 하는 하다가 서점의 비밀에 한발짝 다가간다. 늘 오는 회원들에게서 비밀코드를 읽게 된 클레이는 룸메이트와 함께 그 비밀에 좀더 다가가려 하는가 하면 그가 구글에 광고한 것을 보고 온 구글직원인 캣과도 이 비밀을 나누게 된다. 이 서점의 비밀은 정말 무엇이고 회원들은 무슨 비밀을 풀기 위하여 이 서점을 드나드는 것인지.그러다 그들의 데이터의 움직임 속에서 찾아내게 된 '얼굴',페넘브라는 그것을 보고 자취를 감추게 되고 서점은 불이 꺼지게 된다. 무슨 일인가? 그는 자신의 일자리를 찾기 위하여 페넘브라도 찾고 서점의 비밀을 찾아 친구들과 함께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소통의 길에 클레이가 있다. 어떻게 될까? 서점은 어떤 비밀을 숨기고 있고 페넘브라는 어떤 인물인지.

 

책과 인연이 없던 클레이가 점점 책과 책의 역사에 빠져 들어 '부러지지 않은 책등' 회원들과 싸우며 그들과 맞써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들이 풀지 못한 비밀을 풀어내기도 하지만 자신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찾아가기도 하는 희망적이기도 한 이야기다. 미스터리적 기법과 함께 마법과 같은 이야기가 펼쳐져서 첫 장을 펼치고는 마지막 장을 덮으며 일어날 수 있었다. 올드한 것과 새로운것이 만나는 이야기라고 할까. 책은 세월이 갈수록 점점 변해가기도 하고 요즘은 디저털과 맞써 더욱 크게 요동치고 있다. 그렇다고 종이책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종이가 존재하는 한.디지털이 주는 장점이 있겠지만 아날로그와 같은 책의 매력에 빠진 이들이 분명 있다. 아날로그가 좋다 디지털이 좋다라기 보다는 책을 읽는 것을 습관화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결말은 조금 아쉬운감도 있었지만 책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한번 읽어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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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의 여자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오후세시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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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히데오의 '범죄 스릴러'라고 하여 그의 책을 간만에 읽어볼까 하고 예약판매를 할 때 바로 주문을 해서 받은 책이다. 오쿠다 히데오는 <공증그네> <면장선거><스물살 도쿄> 등 많은 책을 가지고 있지만 <공중그네> 의 느낌이 많이 남아 있어 다른 책들은 그저 소장만 하고 있는 상태다.그런면에서 이 책은 뭔가 강한 끌림에 의하여 이끌려 갔다고 볼 수 있다. 워낙에 스릴러를 좋아하니 어떤 이야기일까 궁금함에 읽어보게 되었는데 저자가 녹여내는 '인간 심리' 에 자꾸 빠져 들며 읽게 된 소설이다.

 

이야기의 중심 축이 되는 '이토이 미유키' 그녀의 시작은 잔잔한,수면에 드러나지 않는 너무도 평범한 여자에서 대학 때 갑자기 그녀의 '변신' 이 이루어졌다.그녀가 왜 갑자기 백팔십도 변해야 했을까? 부모님의 이혼일까? 남동생의 야쿠자생활일까? 가정의 파괴로 인해 그 힘든 시간을 스스로 이겨내기 위하여 택해야 했던 삶이 그녀를 '팜므파탈'의 길로 이끈 것은 아닐까? 소설은 '커더라 통신' 에 의해 그녀의 지난 과거가 드러난다.하지만 그 삶이 진짜인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은 상태의 뼈대만 갖추어진 상태에서 점점 살이 붙고 아기미도 가지고 부레도 가지고 지느러미도 갖추면서 물 속을 유영하는 진짜 한마리 고기가 되어 헤엄을 치며 세상을 헤집어 놓는다. 그것도 큰 도시가 아니라 지방 소도시이다.그러니 '카더라통신'은 그야말로 이름만 캐내면 얼기설기 얼킨 그물망처럼 무언가 월척은 아니어도 건져 올릴 수 있다.

 

그런가하면 우리는 대부분 나의 이야기보다는 '남의 이야기'를 즐기고 그런 이야기로 삶을 살아간다고 볼 수 있다. 남의 이야기가 더 재밌고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티끌과 같았던 이야기도 바람에 굴러가다보면 스스로 형체를 갖추며 완벽을 기하게 되기도 한다. 소문에는 실체보다는 '거짓'이 더 비중이 크고 완벽함을 갖춘다. 평범한 고등학교 생활을 하던 그녀가 대학을 가면서 외제차를 가진 남자가 교문앞으로 데리러 오고 그녀는 이쁘거나 섹시하지 않지만 남자를 보면 그녀의 페르몬은 강하게 반응을 하듯 하여 남자가 그녀에 빠져든다. 정말 그럴까? 그런가하면 그녀는 남자를 발판으로 삶듯 하여 한계단 한계단 수직상승하듯 올라간다.그런 그녀에게 의심이 가는 일이 있으니 그녀와 만나거나 사귀던 '있는 남자'가 '의문사'를 한 일이 발생한다. 중고차매장 사무원에서 마작 방 여자로 요리교실 여자로 맨션의 여자로 ... 기모노의 여자로 비밀 수사의 여자로 스카이트리의 여자로 그녀는 증발을 해 버린다.왜 모두의 관심사에서 갑자기 증발해 버린 것일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않고 말이다.

 

"대체 뭐야, 우리 회사? 간부들이 죄다 제 집안 식구잖아. 그럼 우린 하인이야? 진짜 못 해 먹겠다. 못 해 먹겠어."

 

열 편의 '~~ 여자' 이야기는 점점 눈덩이처럼 하나로 뭉쳐진다. '미유키' 그녀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는 하지 않지만 누군가의 이야기의 중심 축에 그녀가 있다. 잘못된 일을 보면 불의를 참지 못하듯 나서서 바로 잡는 일을 하는 여자이며 자신이 '여자' 인 것을 잘 활용(?) 하여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상대를 헌팅하듯 자기 것으로 만든 후에는 또 다시 다른 삶, 전에 살던 삶이 강에서 였다면 바다로 나가는 삶으로 이어 나간다.점점 그녀의 삶은 누구도 쫒아 오지 못할 정도로 커져 나가고 그런 삶에서 희생(?) 되는 의문사의 궁금점,정말 그녀가 범인일까? 우리와는 문화가 다른 일본의 이야기라고 해도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 곁에서도 벌어 지고 있는 일들이고 이슈가 되는 일들이 한데 뭉쳐 있기에 가볍게 볼 수만은 없다.그러면서도 웃음이 난다. 오쿠다 히데오만의 유머감각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미유키가 하는 일들이 '악녀' '팜므파탈' 이라고 욕하기 보다는 '통쾌하다'라고 느끼는 것은 무엇일까? 아버지의 재산만 노리는 배다른 형제들 이야기, 그 속에서 무척 많은 나이차를 가지고도 결혼을 하겠다는 그녀는 남편의 애도 아닌 애로 한방에 모든 것을 가진다. 씁쓸하지만 자식들 또한 부모의 재산만 노렸기에 뭐라 딱히 할 말이 없다.

 

미사토는 그 모습을 남의 일처럼 쳐다보았다. 이 억 엔이라면 물론 큰돈이지만 그게 없다고 내 주위의 누군가가 힘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리혀 내 지갑 속의 이만 엔이 훨씬 더 절실하다.

 

미유키의 삶이 결코 잘 살아가는 삶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녀가 행하는 일들이 나쁜 일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요리교실에서 잘못된 것을 바로 잡기도 한다. 그런 그녀의 행동을 보고 '카더라 통신'은 또 살을 붙인다. 무언가 뒤로 받았을 것이라고.내 일이 아니고 남의 일이라면 촉을 세우며 점점 부풀리는 것이 우리들 삶이다. 우리 주위에서 평범하게 일어나거나 뉴스 거리 속에서 정말 '인간의 본질'이 무엇일까 미유키라는 인물을 통해 아니 그녀가 거쳐가는 사건속의 인물들을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 자신을 보게 한다.선과 악으로 나뉘는 경계에서 '악의 축'을 그려 놓았지만 결코 악이 아니라 웃음이 나는 것은 오쿠다 히데오의 능력이 아닐까? <공중그네>의 '이라부'가 웃음을 주었다면 '미유키'는 한편의 여자들에게는 통쾌함도 안겨준다.내가 해보지 못한 삶,가져보지 못한 것들을 그녀는 누군가의 편이 되어 모두 이루고 가지고 그리고 홀연 사라진다. 그녀가 진정 원한 삶은 무엇일까? 우리가 진짜 원하는 삶은 무엇일까? 얼마나 가져야 만족을 하며 살까? 인생의 '덫'과 같은 그녀,하지만 우린 살면서 덫에 스스로 걸려 들기도 하고 스스로 덫을 놓기도 한다.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소문처럼 무성하게 쑥쑥 커갔던 미유키,우리 속에는 하나의 '~~여자' 는 존재한다고 본다.그것이 악보다는 선을 표면화 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세상은 살만한 곳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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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보급판 문고본)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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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책을 한 권 한 권 대할 때마다 살아생전보다 더한 그리움이 물밀듯이 다가온다. 예전에 왜 다 읽어보지 못했던 것인지. 이제서라도 한 권 한 권 읽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큰 행복으로 다가온다.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는 90년대 이전에 쓴 단편과 같은 짧은 수필을 45편 모아 놓은 책이다.이런 책들은 좀더 재판이 되어야 하는데 [품절]이라는 것이 마음 아프다. 중고책박에서 뒤적여 사 놓은 것들이 그나마 내게 위로를 준다.

 

지난번에는 <그 여자네 집>을 읽었는데 이 책은 단편이고 하기엔 그렇고 짧은 '생각'과 같은 작가의 그 시대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 좀더 작가를 가까이 느끼고 70~90년대 까지의 시대상과 그 시대에 어떤 일들과 작가는 작은 것 하나에도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 하는 '틈새'를 볼 수 있어 더 귀하게 다가온다.그것이 생전이 아니라 더 귀하게 다가오나 보다. 먼저 책의 제목이 된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는 무언가 답답함과 우울함으로 가득하던 날 집으로 가던 버스 안에서 그 답답함은 더욱 배가 된다. 버스가 아니 다른 차들도 정거장이 아닌데 서듯 모두 정지해 있는 것이다.왜 그런가하고 안내양에게 물었더니 '마라톤대회'가 있어서 그렇단다. 아직 집까지의 거리는 멀었지만 안내양에게 화장실이 급하다며 문을 열어 달라고 해서 버스에서 내려 마라톤 그 현장으로 달라겨듯 가지만 우승자를 보고자 했던 기대감과는 거리가 멀게 '꼴찌'와 마찬가지인 사람들을 보게 된다. 하지만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그동안 자신을 무겁게 누르고 있던 것을 털어 버리게 된다. 우리 사회는 승자에게 박수를 보내지 꼴찌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는다.하지만 인생은 마라톤이다. 진정으로 자신의 힘으로 지나 온 시간들은 모두 박수를 받을 가치가 충분히 있는 것이다.

 

그러나 뜻 밖의 장소에서 환호하고픈 오랜 갈망을 마음껏 풀 수 있었던 내 몸은 날듯이 가벼웠다. 그 전까지만 해도 나는 마라톤이란 매력 없는 우직한 스포츠라고 밖에 생각 안 했었다. 그러나 앞으론 그것을 좀더 좋아하게 될 것 같다. 그것은 조금도 속임수가 용납 안 되는 정직한 운동이기 때문이다. 또 끝까지 달려서 골인한 꼴찌 주자도 좋아하게 될 것 같다. 그 무서운 고통과 고독을 이긴 의지력 때문에.

 

저자의 다른 소설들도 몇 권 읽어 보았지만 감정 표현이 참 냉철하면서도 거짓이 없이 진실되서 참 좋다.그런가 하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내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토해낸다. 조분조분 수다를 떨 듯이 말이다. <내가 잃은 동산> 에서 자신도 물론 개풍이 고향이기에 어린 시절 시골에서 보내고 서울로 와서 공부하게 된 이야기는 다른 책에서도 많이 나왔지만 이 글에서도 드러난다. 고향이 북이라고 해도 북한 땅이 보이는 곳에서 오열을 하거나 심하게 울지 않았던 그가 다른 이들의 심한 오열을 나무라고 심한 말을 하면서 잠재우듯 하던 그도 어느 순간에 멈출 수 없는 울음을 울게 된다. 그게 바로 고향을 잃어 버린 사람들의 같은 마음이 아닐까.고향을 눈 앞에 두고도 가지 못하는 서러움,그 고향에 다 놓고 온 어린시절이면 모든 것들이 아직 눈에 선한데 바라만 보아야 하는 안타까움이 내 어린시절도 추억하게 만든다. 눈 감으면 그 시절 아버지와 함께 하던 그 모든 시간들이 눈에 잡힐 듯 한데 아버니는 먼 길을 먼저 떠나 가셨다. 사진 속 아버지는 금방이라도 껄껄 웃으시며 호인처럼 말씀 하실 듯 한데 곁에 없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고 그 현실을 믿어야만 한다. 감칠맛 나는 글 속에서 내 어린시절도 살짝 들추어 보게 되었다.

 

저자의 '여행기'는 아직 읽어보지 못한 듯 한데 짧은 글 속에서 잠깐 잠깐씩 만나는 것도 참 재밌다. 고스란히 그 때의 아주 사소한 감정 하나 놓치지 않고 다 담아 놓아 글 읽는 재미가 남다르다. 별 기대를 하지 않고 간 <이박 삼일의 남도 기행> <부드러운 여행>등에서 보면 여행에 맞지 않는 구두를 신고 가서 고생을 하면서도 어릴적 시골의 그 맛을 잊지 않고 경험하듯 하는 잔잔함에 빠져 들게 한다. 별 기대를 하지 않게 하다가도 '여행이란 이런거야' 라고 말해주듯 술술 풀어 내는 이야기 보따리에 폭 빠져 들게 한다. 해외여행을 하면서 우리나라는 내세울 것이 없다고 느끼던 생각들이 별 기대를 하지 않은 짧은 여행에서 '이런 것이 우리 것이고 우리 땅이다' 라는 것을 다 담아낸다. 우리 것이라 우리 눈에는 귀하게 보이지 않지만 해외에 나가면 애국자가 되듯이 나가서 고생을 하고 와봐야 우리 것이 더 소중하게 보이는 법, 요즘은 둘게길도 그렇고 지역마다 이야기거리를 만들어 여행소재를 참 많이 만들어 내 놓고 있지만 그 시대에는 아직 여행이 그렇게 대중화가 되지 않았는데 맛깔나는 글 속에서 그때의 시대상을 들여다 보는 '창' 인듯 해서 재밌게 읽었다.

 

저자의 글을 가만히 읽고 있다보면 집 안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 하나 놓치지 않고 글 속에 모두 담아냈는가 하면 이웃과 함께 하는 잘잘한 것들도 모두 담아 내어 '수다쟁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풀어 내면서 자신 안에는 '화' 쌓아 두지 않듯 모두 글로 풀어내며 기록,기억을 함께 보여주고 있는 느낌이다. 자신이 자식들과 혹은 손주들과 함께 하면서의 사소한 것들이 고스란히 글로 드러났는데도 이상하기 보다는 점점 빠져 들며 읽게 되는,칼칼하고 깐깐하면서도 시대상을 녹여내서 일까 그렇게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닌데도 요즘은 스마트폰 하나로 모두가 되는 세상이라 그런지 먼 옛날의 일처럼 생각된다. 장발단속,미니스커트,노상방뇨, 경범죄... 정말 읽다 보면 이런 시대가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지만 그것이 또한 우리가 살아 온 길이고 그 속에서 우리가 살았고 한시대는 소멸해 갔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도 다음 세대가 기록하면 아마도 '옛날 이야기'처럼 들리고 보여지겠지만 그것이 역사이고 우리네 삶인듯 하다. 숨김없이 덧칠함 없이 고스란히 진실되게 보여주는 이야기 속에서 저자의 생각과 깐깐함을 작은 것에도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됨됨이를 보게 되기도 하고 사회상을 보게 되기도 하고.아버지의 낡은 사진첩을 꺼내 보는 느낌이 들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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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서 보낸 산야초 효소 이야기 지리산에서 보낸 시리즈
전문희 지음, 김선규 사진 / 이른아침 / 201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잔병을 많이 앓아 본 사람이 오래 산다고 한다.아니 그런 몸이 더 면역력이 강하다고 한다. 건강했던 사람들이 한번 쓰러지면 한순간 그냥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프지 않고 건강하던 몸은 면역력이 약하기 때문에 큰 병에 한번 걸리면 이겨내질 못한다고 한다. 나 또한 어려서부터 잔병치레를 하며 컸지만 성인이 되서도 큰 고비를 무척 많이 넘겼다. 남들은 한두번 겪는다면 난 그보다 몇 배는 더 병원신세를 지며 큰 고비를 넘겨야 했다. 좀더 건강해지기 위하여 내가 택한 것은 '뒷산' 처음엔 잘 오르지도 못했고 몇 발짝만 가면 힘들어서 쉬곤 하다가 뒷산을 오르고 주변에 있는 산을 쉬엄쉬엄 가기 시작했다.욕심부리지 않고 그날 갈 수 있는 만큼만 가면서 차츰차츰 높여가다보니 처음보다는 나아지기도 했지만 지금은 철마다 다른 자연을 보고 싶어 산을 가곤 한다.

 

산을 쉬엄쉬엄 가다가 07년에 산행 사고를 겪고 다시는 산에 가지 못할줄 알았다. 내가 갈 수 없다는 것은 '무서움과 두려움'이다. 하지만 다행히 두려움을 극복하고 다시 산을 찾게 된 것은 '야생화' 와 '나무' 였다. 하나 하나 야생화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내가 보지 못한 세상을 보게 되고 그것이 점점 빠져들게 되어 산에 가지 않으면 몸살이 날 것 같아 뒷산이라도 가야했던 시간들이 이어지면서 도감에서만 보던 것들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되고 효능도 찾아 보고 나물도 가끔 뜯기도 하면서 내 방식대로 산과 자연을 즐기다 보니 너무 좋은 것이다. 지난해 연말에 큰 수술을 하고 겨울을 무척 힘들게 보내고 다시 뒷산을 찾으며 건강에 조금 자신을 가지게 되었고 나 얼굴 또한 밝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건강한 먹거리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땀을 흘리며 움직여줘야 한다는 것을 요즘 절실히 느끼고 있다. 정말 아파 본 사람은 스스로 건강해지기 위하여 건강한 먹거리를 찾는다던가 운동을 한다. 저자 또한 그런 삶으로 '지리산' 에서 살아가며 자연에서 나는 것들로 '차'와 '효소'를 담아 자신 뿐만이 아니라 타인에게도 건강한 먹거리를 나누어 주는 삶을 살고 있는 듯 하다.

 

요즘 산에 가보면 '효소열풍'으로 인해 봄에는 새순이 남아 나지 않는다.아니 새순 뿐만이 아니라 뭐가 어디에 좋다는 이야기만 나오면 정말 멸종을 해도 좋은것처럼 모두들 뿌리채 뽑아가 버려 찾아 볼 수가 없다. 내가 자주 가는 뒷산에도 뽕나무가 두그루 있다. 봄에는 뽕잎을 다 따갔더니 나무가지도 남아 나지 않고 꺾어 가 버리고 열매도 남아 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엄나무 몇 그루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무분별하게 채취하거나 꺾어 가버리면 안되는데 자신을 위하여 자신만 생각하는 이들이 때로 있다. 자연이 살아 있어야 그 속에 인간도 실아 갈 수 있는데 자연이 주는 만큼 자신이 필요한 만큼 채취하는 것이 아니라 좋다면 모든 것을 다 가져 버리려 하는 이기심이 자연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 저자의 이야기 속에서 그런 면들이 자주 자주 보인다. 그래서 더 어느 것이 어디에 좋고 어떤 효능이 있는지 머뭇 거린 흔적이 보인다.

 

도시에서 살던 그가 자연에서 선택한 삶은 '감사' 와 '나눔'의 삶이다. 자신 혼자 살아 남기 위한 삶이 아닌데 혹여 저자의 이야기가 그런 쪽으로 해석이 될 수도 있고 이용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나 또한 충분히 이해한다.그런가 하면 그런 저자의 삶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들 또한 절박함에 한줄기 동앗줄처럼 희망으로 잡고 싶어 매달렸겠지만 떠난 자리가 아름답게,자신의 이기심을 놓고 떠나지 말았으면 하는 맘도 있다.  자연에서 얻어지는 것들은 주인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욕심을 부린다. 그렇다고 그 모든 것을 다 내것으로 만드냐면 그렇지도 않다. 나 또한 친정엄마가 직접 농사 짓고 수확한 먹거리를 주시면 그것의 반도 먹지 못하고 버리는 것이 더 많을 때도 있다. 욕심을 부리지 않고 내가 필요한 만큼만 달라고 해도 그게 또 그렇지가 않다. 자연은 늘 넉넉함으로 우리에게 주는데 인간의 욕심이 더해져 고갈되고 황폐하게 만든다.

 

아무리 좋은 음식, 보약을 먹어도 효소가 없으면 소화시키지 못해 흡수되지 못하고 몸 밖으로 빠져 나간다. 효소가 음식물을 적절히 분해시켜놓으면 위나 장이 영양분을 흡수해 혈액과 세포를 만드는데 이때 효쇼가 작용한다. 효소가 없으면 지방이 연소되지 않아 살이 찐다. 효소는 수면 중에서도 대사작용을 통해 노화된 세포를 건강세포로 교체함으로써 몸의 면역력을 높인다. 효소의 독소 배출 기능이 왜 중요하냐면 혈액을 맑게 해 건강 체질로 바꿔주기 때문이다. 효소의 역할과 응용을 다 꼽자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

 

우린 너무 간편한 음식과 인스턴트와 고기에 길들여져 있어 스스로 소화해내기 보다는 다른 힘을 원한다. 몸이 망가질대로 망가진 후에야 자연을 찾는 것처럼 그동안 몸에 좋지 않는 것을 즐기다 이제 우리가 찾는 것은 '자연과 효소'다. 철마다 피고 지는 것들이 모두 제철 재료가 되겠지만 좋다고 과용해서 안될 것이다. 그런가 하면 제대로 알고 채취를 해서 효소를 담아야 할 것이고 자연 앞에서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저자가 지리산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는 모두가 로망하는 건강하고 행복한 전원생활이다. 자연과 벗하며 건강한 먹거리로 거듭난다는 것은 '효소' 한가지만으로 이우러지는 것이 아니라 맑은 공기 바람 자연 함께 하는 사람들등 모든 것이 함께 할 때 얻어지는 것들이다. 철마다 다른 효소 이야기와 효소와 자연으로 인연되는 사람들과의 이야기가 푹 곰삯은 효소의 깔끔한 맛처럼 진하게 우러나 있어 읽는 동안이 '힐링' 그 자체이다. 현대인들의 지친 몸과 마음을 읽는 것만으로도 풀어 줄 수 있고 '건강'이란 것은 욕심을 내려 놓아야 비로소 내게 온다는 것을 느낀다.

 

" 이 맛을 뭐라고 해야 할지. 야생과 자연이란 이런 맛이구나. 그런 느낌이 드네요." 찻잎이 워낙 귀한 것이라 이 발효녹차를 마시고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좀 더 맛을 음미해봐야 알겠다는 듯이 일제히 침묵속에서 차만 마셨다. 좋은 음식은 좋은 마음으로 먹어야 몸에 보약이 된다.

 

요즘 산에 다니며 나도 이것저것 채취하여 '효소'를 담아 볼까 하는 생각도 가져 보았지만 '산에 있어야 진정 아름다운 것' 이 자연이다. 내가 가져온 다고 온전히 내것이 될 수 없는 것이 자연이고 아직은 효소라는 것에 욕심을 부리고 싶지 않다. 매실이 나올 때는 매실을 사서 '매실청'이나 '매실장아찌'를 담곤 하는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가끔 전 해에 만들어 놓은 매실액으로 매실차를 만들어 한 잔 하면 정말 깔끔하니 좋다. 한번 담아 놓은 매실청은 두루두루 널리 쓰이기도 하고 객지에 나가 있는 딸들은 음료로 혹은 배앓이를 할 때 먹는다고 늘 가져가곤 한다. 자연에서 내가 원하는 만큼 얻으려고 하면 나도 베풀어야 한다.효소이야기 보다는 자연에서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이 너무도 여유롭고 기분 좋게 다가와 나 또한 지리산의 맑은 공기와 산야초로 힐링을 하듯 읽었다. 좋은 것은 좋은 마음으로 느끼고 나누고 함께 할 줄 알아야 한다.넉넉하고 여유롭고 건강한 이야기 속에서 진하게 발효된 '내려놓음' 으로 정화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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