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보급판 문고본)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의 책을 한 권 한 권 대할 때마다 살아생전보다 더한 그리움이 물밀듯이 다가온다. 예전에 왜 다 읽어보지 못했던 것인지. 이제서라도 한 권 한 권 읽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큰 행복으로 다가온다.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는 90년대 이전에 쓴 단편과 같은 짧은 수필을 45편 모아 놓은 책이다.이런 책들은 좀더 재판이 되어야 하는데 [품절]이라는 것이 마음 아프다. 중고책박에서 뒤적여 사 놓은 것들이 그나마 내게 위로를 준다.

 

지난번에는 <그 여자네 집>을 읽었는데 이 책은 단편이고 하기엔 그렇고 짧은 '생각'과 같은 작가의 그 시대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 좀더 작가를 가까이 느끼고 70~90년대 까지의 시대상과 그 시대에 어떤 일들과 작가는 작은 것 하나에도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 하는 '틈새'를 볼 수 있어 더 귀하게 다가온다.그것이 생전이 아니라 더 귀하게 다가오나 보다. 먼저 책의 제목이 된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는 무언가 답답함과 우울함으로 가득하던 날 집으로 가던 버스 안에서 그 답답함은 더욱 배가 된다. 버스가 아니 다른 차들도 정거장이 아닌데 서듯 모두 정지해 있는 것이다.왜 그런가하고 안내양에게 물었더니 '마라톤대회'가 있어서 그렇단다. 아직 집까지의 거리는 멀었지만 안내양에게 화장실이 급하다며 문을 열어 달라고 해서 버스에서 내려 마라톤 그 현장으로 달라겨듯 가지만 우승자를 보고자 했던 기대감과는 거리가 멀게 '꼴찌'와 마찬가지인 사람들을 보게 된다. 하지만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그동안 자신을 무겁게 누르고 있던 것을 털어 버리게 된다. 우리 사회는 승자에게 박수를 보내지 꼴찌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는다.하지만 인생은 마라톤이다. 진정으로 자신의 힘으로 지나 온 시간들은 모두 박수를 받을 가치가 충분히 있는 것이다.

 

그러나 뜻 밖의 장소에서 환호하고픈 오랜 갈망을 마음껏 풀 수 있었던 내 몸은 날듯이 가벼웠다. 그 전까지만 해도 나는 마라톤이란 매력 없는 우직한 스포츠라고 밖에 생각 안 했었다. 그러나 앞으론 그것을 좀더 좋아하게 될 것 같다. 그것은 조금도 속임수가 용납 안 되는 정직한 운동이기 때문이다. 또 끝까지 달려서 골인한 꼴찌 주자도 좋아하게 될 것 같다. 그 무서운 고통과 고독을 이긴 의지력 때문에.

 

저자의 다른 소설들도 몇 권 읽어 보았지만 감정 표현이 참 냉철하면서도 거짓이 없이 진실되서 참 좋다.그런가 하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내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토해낸다. 조분조분 수다를 떨 듯이 말이다. <내가 잃은 동산> 에서 자신도 물론 개풍이 고향이기에 어린 시절 시골에서 보내고 서울로 와서 공부하게 된 이야기는 다른 책에서도 많이 나왔지만 이 글에서도 드러난다. 고향이 북이라고 해도 북한 땅이 보이는 곳에서 오열을 하거나 심하게 울지 않았던 그가 다른 이들의 심한 오열을 나무라고 심한 말을 하면서 잠재우듯 하던 그도 어느 순간에 멈출 수 없는 울음을 울게 된다. 그게 바로 고향을 잃어 버린 사람들의 같은 마음이 아닐까.고향을 눈 앞에 두고도 가지 못하는 서러움,그 고향에 다 놓고 온 어린시절이면 모든 것들이 아직 눈에 선한데 바라만 보아야 하는 안타까움이 내 어린시절도 추억하게 만든다. 눈 감으면 그 시절 아버지와 함께 하던 그 모든 시간들이 눈에 잡힐 듯 한데 아버니는 먼 길을 먼저 떠나 가셨다. 사진 속 아버지는 금방이라도 껄껄 웃으시며 호인처럼 말씀 하실 듯 한데 곁에 없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고 그 현실을 믿어야만 한다. 감칠맛 나는 글 속에서 내 어린시절도 살짝 들추어 보게 되었다.

 

저자의 '여행기'는 아직 읽어보지 못한 듯 한데 짧은 글 속에서 잠깐 잠깐씩 만나는 것도 참 재밌다. 고스란히 그 때의 아주 사소한 감정 하나 놓치지 않고 다 담아 놓아 글 읽는 재미가 남다르다. 별 기대를 하지 않고 간 <이박 삼일의 남도 기행> <부드러운 여행>등에서 보면 여행에 맞지 않는 구두를 신고 가서 고생을 하면서도 어릴적 시골의 그 맛을 잊지 않고 경험하듯 하는 잔잔함에 빠져 들게 한다. 별 기대를 하지 않게 하다가도 '여행이란 이런거야' 라고 말해주듯 술술 풀어 내는 이야기 보따리에 폭 빠져 들게 한다. 해외여행을 하면서 우리나라는 내세울 것이 없다고 느끼던 생각들이 별 기대를 하지 않은 짧은 여행에서 '이런 것이 우리 것이고 우리 땅이다' 라는 것을 다 담아낸다. 우리 것이라 우리 눈에는 귀하게 보이지 않지만 해외에 나가면 애국자가 되듯이 나가서 고생을 하고 와봐야 우리 것이 더 소중하게 보이는 법, 요즘은 둘게길도 그렇고 지역마다 이야기거리를 만들어 여행소재를 참 많이 만들어 내 놓고 있지만 그 시대에는 아직 여행이 그렇게 대중화가 되지 않았는데 맛깔나는 글 속에서 그때의 시대상을 들여다 보는 '창' 인듯 해서 재밌게 읽었다.

 

저자의 글을 가만히 읽고 있다보면 집 안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 하나 놓치지 않고 글 속에 모두 담아냈는가 하면 이웃과 함께 하는 잘잘한 것들도 모두 담아 내어 '수다쟁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풀어 내면서 자신 안에는 '화' 쌓아 두지 않듯 모두 글로 풀어내며 기록,기억을 함께 보여주고 있는 느낌이다. 자신이 자식들과 혹은 손주들과 함께 하면서의 사소한 것들이 고스란히 글로 드러났는데도 이상하기 보다는 점점 빠져 들며 읽게 되는,칼칼하고 깐깐하면서도 시대상을 녹여내서 일까 그렇게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닌데도 요즘은 스마트폰 하나로 모두가 되는 세상이라 그런지 먼 옛날의 일처럼 생각된다. 장발단속,미니스커트,노상방뇨, 경범죄... 정말 읽다 보면 이런 시대가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지만 그것이 또한 우리가 살아 온 길이고 그 속에서 우리가 살았고 한시대는 소멸해 갔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도 다음 세대가 기록하면 아마도 '옛날 이야기'처럼 들리고 보여지겠지만 그것이 역사이고 우리네 삶인듯 하다. 숨김없이 덧칠함 없이 고스란히 진실되게 보여주는 이야기 속에서 저자의 생각과 깐깐함을 작은 것에도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됨됨이를 보게 되기도 하고 사회상을 보게 되기도 하고.아버지의 낡은 사진첩을 꺼내 보는 느낌이 들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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