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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집
박완서 지음, 이철원 그림 / 열림원 / 2013년 8월
평점 :
더이상 저자의 글을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이 참 슬픈 일이다.하지만 인생은 짧아도 예술은 긴 것인가,글은 오래도록 우리 곁에 남아 끝나지 않은 저자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올해는 좀더 저자의 책을 많이 읽어보려고 많이 쌓아 둔 책 속에서 저자의 책을 골라 한 권 한 권 빼들고 읽었다.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을 것만 저자의 이야기,깐깐한 때로는 칼칼하면서도 구수한 된장찌개와 같은 맛이기도 하다가 어느 날은 늘 마시던 보리차와 같은 맛이기도 한 정말 삶은 있는 그대로 잘 보여주는 작가의 글에 빠져 허우적 거린 시간이 참 행복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이 책도 좀더 빨리 만나보고 싶었지만 읽어야 할 책들이 밀려 있어서 이제 겨우 읽게 되었다.
저자의 책으로 읽은 것은 <나목> <두부> <호미> <그 여자네 집> <그 남자네 집> <그 많던 싱아가 누가 다 먹었을까>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환각의 나비> <잃어버린 여행가방> <못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세상에 이쁜 것> <나의 아름다운 이웃> <어른 노릇 사람 노릇> <아주 오래된 농담>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친절한 복희씨>.생각나는 대로 적어 보았는데 많이 읽은 듯 하지만 내 책장에는 읽지 못한 책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늦게 문단에 등단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현역이고 싶다는 작가의 말처럼 늘 글로 삶을 다스린 듯 많은 글들이 퍼내도 퍼내도 끝나지 않은 우물물처럼 늘 새롭게 고여드는 듯 하다.
마나님은 영감님이 혹시라도 아무도 대작할 이 없이 쓸쓸하게 막걸리를 들이켜는 일이 생긴다면 그 꼴은 정말로 못 봐줄 것 같아 영감님보다 하루라도 더 살아야지 싶고, 영감님은 마나님의 쭈그렁바가지처럼 편안한 얼굴을 바라보며 이 세상을 뜰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 요즘 들어 부쩍 건강이 염려스러운 것.그건 그들만의 지극한 사랑법이다.
<노란집>은 작가의 마지막 아치울통신이라고 봐야하나.아직도 곁에 있는 듯 한데 시간이 많이 흘러갔다. 섭섭한 마음과 안타까움이 늘 작품을 대하면서 아쉬움으로 자리할 때 이 책이 나와 주어서 좀더 저자의 여운에 오래도록 머물 수 있어 좋았다. 이 책에는 어떻게 보면 '노년의 삶' 이라고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어 글을 읽으며 나의 부모님,특히나 아버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친정아버지 또한 내 곁을 떠나신지 벌써 삼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병마와 싸우시면서도 아픈 내색 한번 안하고 있다가 마지막 순간에 한말씀 하신 것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눈물짓게 한다. 아버지는 큰 병을 앓으셨는데 당신이 아프신 것보다 평생 짓던 농사일을 예전처럼 하지 못하는 것을 더 힘들어 하셨다. 손수 농사를 지어 자식들 먹거리를 모두 챙겨 주셨던 아버지인데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곁에서 모든 시간을 보살펴 드렸는데 아버지의 다리는 그야말로 마른 장작개비처럼 뼈만 남아 앙상했다.아니 정말 마른 장작개비를 만지는 것과 같아 속울음을 얼마나 울었던지.소설속에서 영감님과 마나님의 이야기가 꼭 내 부모님의 그 모습처럼 정겹기도 하고 가슴 한 편이 아리기도 했다.감정의 어느 한 곳을 날카로운 칼로 베어낸 것처럼 강한 통증에 마비되는 듯 하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감정,노작가의 마지막 통신에서 그렇게 아버지를 만나듯 해서 다시금 그 시간들을 되새김질 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누더기 옷에서 이 잡던 때를 그리워하는 소리를 해도,그럼 그렇고말고.맞장구를 쳐줄 수 있는 것도,궁상스러운 비위생이 좋아서가 아니라 식구들 사이에 체온의 교류가 있었던 시절에 대한 안타까운 추억 때문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저자도 그렇지만 친정아버지도 비슷한 해에 태어나셨기에 질곡의 역사와 함께 했으니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기억되는,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어렵고 힘든 시절의 이야기일 것이다.아버지 또한 늘 우리를 앉혀 놓고 하시는 말씀이 당신이 힘들게 지나온 시간에 대해서,전쟁중이거나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핏덩이 동생들을 어린 나이에 부모처럼 키워야 했던 이야기를 말씀 하시고 또 하시고 그렇게 새뇌를 시키듯 말씀 하셨었다. 다른 것은 잊으셔도 그 시절의 시간은 어제의 일처럼 또렷하다고 늘 말씀 하셨는데 저자의 글을 보면 반복되는 지난 이야기들이 사골을 우려내듯 하지만 그 맛과 풍미에 빠져들면 헤어나오질 못한다. 질곡의 역사와 함께 했기 때문에 우려내도 또 다시 뽀얗게 우려날 수 있는 힘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가하면 아치울의 노란집은 그야말로 개풍의 어린시절 집을 생각하듯 자연과 함께 하는 여유와 삶의 뒤안길에서 느끼는 평화로움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을 준다.
현재의 인간관계에서뿐 아니라 지나간 날의 추억 중에서도 사랑받는 기억처럼 오래가고 우리를 살맛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건 없다. 인생이란 과정의 연속일 뿐,이만하면 됐다 싶은 목적지가 있는 건 아니다.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사는 게 곧 성공한 인생이다.
많이 가져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을 느낄 수 있어서 행복한 것처럼 찾고 느끼고 만끽하고 그렇게 노년의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받아 들이며 타인의 삶까지 안고 가듯 그렇게 평범한 일상 속에서 행복을 보여준다. 하얀 쌀죽에 얹어 먹는 육젓의 칼칼함처럼 그 때 그 시절에는 느끼지 못했던 그 칼칼한 맛을 이제는 그리움처럼 혀끝에 맴도는 아니 가슴 안에만 남아 있는 추억의 맛을 되새김질 하듯 저자의 글 속에서 여유롭게 머물게 한다. 작은 것 별거 아닌 것이 행복이었다는 것을 그 때에는 모르다가 세월이 흐른 뒤에 한참 지난 후에는 알게 되는 그런 아련한 맛이라고 할까. 소탈하게 웃는 그 웃음이 참 좋았는데 이젠 먼 기억속에 저장해 두어야 한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글 중간 중간에 있는 삽화가 저자의 모습을 담기도 했지만 따뜻함을 전해줘서 잠시 담장에서 쉬고 있는 따뜻한 햇살처럼 양지녁에서 해바라기라도 해야할 것처럼 따뜻함으로 머무르게 해준다. 저자의 글을 읽다보면 삶을 정말 사랑해야 한다는 것,어느 것 하나 소홀하게 흘려 버릴 수 없다는 것을 많이 느끼게 된다. 일상의 어느 한 순간 아니 마당에 무심히 난 잡초 하나 이유없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해서 빠져들게 한다. 이제는 먼 그리움이 된 저자의 아직 읽지 못한 글을 좀더 빨리 꺼내볼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