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큰달큰 밥도둑 무조림

 

 

친정에서 가져 온 주먹만한 무가 몇 개 있다. 딸들 주말에 깍두기와 생채를 담아 주고 남은 것인데

저녁에 갑자기 [얼큰한 무조림] 이 생각나는 것이다. 옆지기는 삼치나 고등어를 넣고 무조림을

한것을 좋아하는데 옆지기는 늦는다고 하고 난 얼큰한 무조림이 먹고 싶고 그래서 얼른 무 두개를

껍질을 벗기고 싹둑싹둑 큼직하게 썰어서 무조림을 했다. 고춧가루,고추장,청양고추를 넣고 얼큰하게.

추위가 물러설 정도로 얼큰하게 말이다.

 

 

*준비물/ 무 2개(작은 것),편다시마,청양고추,다진마늘,고추가루,고추장,멸치,물엿조금...

 

*시작/

1.무는 깨끗이 씻은 후에 껍질을 벗겨 준다.

2.큼직큼직하게 듬성 듬성 썰어 준다. 그래야 씹는 맛이 있다.

3.썰은 무를 넣고 다진마늘,고추가루3숟갈,고추장2숟갈,느타리버젓,편다시마 물은 조금 넉넉하게

넣어 무가 충분히 익게 뚜껑을 덮고 한소끔 끓여 준다.

4.무가 한소끔 익은 후에 굵은 멸치,청양고추1개를 썰어 넣고 한소끔 더 끓여준다.

5.국물멸치가 아니라 볶아 먹는 멸치로 조금 굵은 것을 넣어 주면 더 구수하고 맛있다.

멸치도 함께 먹으면 생선 맛도 나고 맛있다.

 

 

 

 

 

얼큰달큰한 무조림 정말 밥도둑이다.요거 하나만 있으면 밥한그릇 뚝딱이다.

김장 대 한 겉절이 한접시에 무조림 한접시 놓고 밥을 먹는데 다른 반찬이 필요없다.

무조림 국물에 밥을 비비고 달큰하면서도 얼큰한 무조림 한조각 얹어 먹으면 밥이 꿀꺽,

정말 맛있다.어떻게 밥이 넘어가는지 모르게 한그릇 금세 비우게 된다.

국물멸치보다 약간 작은 멸치를 한상자 사서 놓고 봉지 봉지 담아 냉장고에 넣어 두면

이렇게 조림이나 그외 국물요리를 할 때 멸치 한 줌 넣으면 맛이 더 구수해지고 좋다.

된장찌개에도 한 줌 넣으면 정말 구수하니 좋다.멸치 넣었을 때와 넣지 않았을 때 맛이 달라진다.

가을무는 무얼 해먹어도 맛있다.무채를 썰어 무나물을 해도 맛있고 무밥을 해도 좋고

생선조림에 넣어도 맛있고 어묵탕에 넣어도 맛있다. 시골에서 얼마 가져오지 않았는데

요거 무조림을 해먹으면 금방 먹을 듯 하다. 배추와 무를 조금 더 넉넉하게 가져와야

올겨울 밥도둑을 만들어 먹을 듯 하다.

 

2013.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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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야자 꽃이 피었다

 

 

집안에서 키우는 식물중에 꽃이 피면 기분 좋은 것이 있다.

바로 요녀석인 [테이블야자꽃] 그리고 [행운목꽃] [산세베리아] [관음죽꽃]이다 

울집에서 키우는 식물은 정말 많다.베란다 가득 초록이들이니 하루라도 꽃이 없는 날은

없었던 듯 싶다. 요즘은 바이올렛,제라늄,사랑초,부겐베리아가 피고 있다.

그리고 몇 번이나 요리조리 살펴보면 꽃이 왜 안피나 하고 기다렸던 꽃이

바로 요 [테이블야자꽃]이다.

늘 이맘때 꽃을 피웠던 것 같은데 소식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더 기다려지고..

그러다 반가운 사람과 전화하다 눈을 돌리는데 갑자기 눈에 띈 것,

이거 이거 뭐야.언제 이렇게 꽃이 폈던 거지..

잎사귀 뒤에 숨어서 꽃을 피운 테이블야자,녀석 갑자기 행운이 마구마구 굴러 들어오는 느낌.

정말 기분 좋다.갑자기 집안이 활짝 꽃처럼 피어나는 것 같다.

좋은 일은 이렇게 잎 뒤에 숨어 있다 갑자기 나와도 정말 기분 좋다.

 

2013.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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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둥이 야만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프랑수아 가르드 지음, 성귀수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흰둥이 야만인' 왜 '나르시스 펠티에' 그가 흰둥이 야만인이 되어야 했을까? 이 이야기를 사실을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이다. 나르시스 펠티에라고 하는 인물이 실제 겪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여졌는데 그는 19세기 중반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흰둥이 야만인'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온 몸에 문신을 한 흰둥이 야만인,백인이지만 그는 자신의 언어로 말을 하지 못했고 바람소리와 같은 소리를 내며 옷이라고는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로 섬을 지나는 이들에게 발견되었다.발견될 당시에도 야만인들과 함께 어우러져 있어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섞여 있었으니 그가 섬에 남겨진 후 얼마나 그들과 환경에 잘 적응하고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듯 하다. '나르시스 펠티에' 그는 구둣방을 하는 아버지와 형과 누이를 둔 집안에서 구둣방은 형에게 물려질터이니 자신은 다른 일을 선택해야 해서 뱃일을 하게 된다. 사춘기 나이에 홀로 거친 뱃일에 뛰어 들게 되고 원양어선도 타게 되었나 보다.그런 그가 왜 야만인들이 사는 섬에 홀로 남겨지게 된 것일까?

 

소설은 나르시스 펠티에가 섬에 남겨지게 된 경위와 섬에서 그를 발견하여 물과 먹을 것을 주며 함께 살아가는 야만딘들과의 생활이 그려지는 한편 지리학자 옥타브 드 발롬브룅의 편지와 함께 씨실과 날실처럼 엮이며 그의 인생 이야기를 엮어 나간다. 그가 배를 타기 전까지는 그야말로 문명인이었던 문명생활을 했다. 뱃일을 하니 거친 그들의 삶을 잘 보여주듯 항구에 들러 여자들과도 밤시간을 보내는 일들이 표현되기도 하고 배에서 물을 구하지 못해 죽어 나가는,그야말로 거친 뱃사람으로의 일들과 함께 그가 발을 딛게 되는 섬에서는 물을 구하고 바로 떠나려 했는데 그만 혼자 남겨져 죽음도 삶도 아닌 시간 속에서 야만인과 같은 노파의 도움으로 근근히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고 그는 혼자 남겨졌기에 당연히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자신을 구하러 올것이라 생각을 한다. 실제 펠티에는 사춘기 나이에 섬에 들어와 17년간을 로빈훗 아닌 로빈훗과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현대판 로빈훗이 아니라 그야말로 야만인아니 원주민들과 어울려 그들과 함께 하나가 되듯 자연을 배우고 익히며 그곳에서 '살아내야' 하는 삶을 견디며 살아간다.

 

문명인에서 야만인아니 자연의 삶으로 돌아간 그에게 그가 간직했던 '문명'이란 것은 겉옷처럼 다 벗어버리고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과 하나가 되 듯 그렇게 그들의 삶을 익혀 나가야 했다. 나르시스의 시선에서 보는 '섬에서의 삶'은 그가 어떻게 원주민들과 하나가 되어 살아갔고 어떻게 견디어 나갔는지 작가의 입장에서 그려 놓은 것인데 사실감 있게 다가온다.그런가 하면 시드니 해변에서 발견되어 지리학자 옥타브의 손에 넘겨져 그가 프랑스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프랑스로 돌아가기 위한,부모 형제를 찾아 가기 위한 길과 자신의 뿌리를 찾지만 그들에게는 이미 17년 전에 죽은 생명과 같은 남과 같은 존재,거기에 문명을 모두 잃어 버려 야만인과 같은 존재이니 가족에게는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가족에 돌아간다는 것도 고향에 남겨진다는 것도 별 의미가 없는 상태가 된다. 지리학자 옥타브가 그에게 유아와 같은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치면서 그의 기억 저 편에 남아 있는 문명이 다시금 자신도 모르게 몸이 기억하고 있는 상태로 자연스럽게 밖으로 나오게 되지만 결코 '섬'에서 '야만인'들과의 삶은 밖으로 꺼내려 들지 않는 나르시스,그에게 섬에서의 삶은 무엇이고 왜 자신의 야만의 삶을 꺼내 놓지 않으려는 것인지.

 

문명인들은 야만인들을 만나면 문명으로 야만을 흡수하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야만 야생성이 사라진 이야기가 많이 나오기도 했지만 지금도 우리 가까이에서도 그런 일을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고 야생성을 잃은 이들은 야만도 아닌 문명도 아닌 삶을 살고 있는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혹시 나르시스는 그들의 그런 삶을 존중해서 지켜주려고 더 함구한 것일까? 자신의 과거가 고스란히 묻혀 있는 정글의 삶의 문을 잠금으로 하여 그들을 보호하고 그곳을 그들만의 세계로 남겨 놓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이 이야기를 읽다보니 나르시스의 삶은 정말 누구도 두번 다시 겪지 못할 희한한 삶을 살았지만 정말 인간의 작은 실수에 의해 또한 그런 삶을 살았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문명에서 야만으로 그리고 다시 문명으로. 인간이 얼마나 환경 적응에 탁월한 존재인지 몸소 그가 보여주는 것처럼 문명인으로 뱃사람으로 나르시스가 야만에서는 그야말로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 고양이 눈을 가지고 야만에 잘 적응한 반면에 다시 문명으로 나오게 되면서 다시 자신의 몸에 저장된 문명인의 삶을 하나 하나 끄집어 내는가 하면 문명 속에서 야만인의 삶을 발휘하여 누구보다 밝은 눈으로 정교한 도구를 만들어 식량을 확보하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야만에서의 능력 또한 가진 두 문명의 함께 공존하는 전천후의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 놀랍다.

 

그런 나르시스에게서 야만에서의 삶을 끄집어 내고 싶었던 옥타브,그는 나르시스의 후견인처럼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기울였지만 문명으로 다시 돌아 온 그에게서 야만의 시간을 끄집어 낸다는 것은 어떤 아픔을 들쑤시는 일과 같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부단한 노력으로 미지의 세계였던 부분들이 더 많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나르시스 또한 문명에서의 삶이 좀더 야생성을 간직하고 살아갈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옥타브가 아니었다면 그는 '구경거리' 로 삶이 마감되었을 수도 있다. 온 몸에 야만인의 문신을 하고 자신의 모국어도 잃어버린 그야말로 흰둥이 야만인은 사람들에게는 좋은 이슈가 되었을 듯 하다. 그런가하면 나르시스와 함께 했던 뱃사람들 또한 그가 섬에 남겨지게 된 일을 은폐하려던 것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그가 문명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면서 문명과 야만의 세상은 그의 존재 하나로 모두 시끄럽게 되었지만 인류학적으로는 큰 족적을 남기지 않았을까.지금도 그렇지만 우리는 나와 다른 반문화를 받아 들이고 인정하길 꺼려 하는 이들이 있다.선입견이나 오만함에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생각한다던가 나와 다른 것은 한낱 구경거리로 밖에 여기지 않는 이들 속에서 나르시스가 과연 문명으로 돌아 온 삶을 어떻게 생각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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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깃쫄깃 겨울별미 꼬막무침

 

 

울집에서 겨울에 꼬막을 제일 좋아하고 잘 먹는 사람은 막내딸과 나,겨울에는 마트에 가면 꼭

사와야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꼬막이다. 그래서 늘 말하듯 하는 바람도 '벌교에 가서 꼬막정식

한번 먹어보기'다.꼬막은 해마다 가격이 있어 여유롭지 못하게 먹는데 그래서 더 맛있는 것 아닐까.

어릴 때는 엄마가 이걸 삶아서 그냥 까먹게 많이 사주신 듯 하다. 한 솥 삶아 놓고 까먹으라고 하면

둘러 앉아 언니 오빠들과 까먹었던 생각이 난다.지금 그렇게 하자면 조금 지출을 해야할 듯.올해

처음으로 마트에 가서 딸들 반찬을 해주기 위해 찬거리를 사다가 꼬막 앞에 우뚝 멈추어 섰다. 팩에

담아 놓은 것 중에서 제일 많은 것으로 골랐더니 6800인가 하는데 아저씨가 세일한다고 한다. 그래서

기분도 좋고 세일한 가격보니 '우후~' 그래서 다시 한 팩 골라 잡았더니 알이 굵은 것으로 가져가라고

골라 주시기까지..거기에 센스만점 가격표에 '사망신고 안된 것들이라 책임 못짐' 이라고 적혀 있어

집에 와서 얼마나 웃었는지.13000원 정도 하는 것을 세일해서 10000원 정도에 구매했다.

 

 

*준비물/ 꼬막,간장,고추가루,당근,다진마늘,통깨...

 

*시작/

1.꼬막은 박박 깨끗하게 찬물에 여러번 씻어 준다.

2.끓는 물에 넣고 살짝 익혀준다. 너무 익히면 질기다.

3.한방향으로 저어 주며 익히기,소금을 약간 넣으면 입이 잘 벌어진다.

4.삶은 꼬막을 건져 알맹이만 발라내 준다. 알맹이가 있는 껍질만 발라 줘도 되는데

이번에는 알맹이만 하려고 모두 발라냈다.이때 집게를 사용해서 하면 좋다.빠르고.

5.발라낸 알맹이에 간장,다진마늘,고추가루,다진당근,통깨 등을 넣고 살짝 무쳐 준다.

(갖은 야채를 넣고 초고추장양념에 무침을 해도 맛있다)

 

 

 

만원어치가 겨우 반찬통으로 하나다. 아고 먹고 싶은데 막내딸 반찬해다 주려고 한 것이라 먹지도

못하겠고 옆지기와 두어개정도 먹어 보았는데 역시나 올해의 꼬막도 찰지고 맛있다.쫄깃쫄깃 한

것이 정말 맛있다. 다음에 마트에 가면 좀더 넉넉하게 사다가 삶아서 까먹어야 할 듯 하다.

 

삶아서 요거 또 까는게 일인데 난 집게를 가지고 한다. 집게를 들고 알맹이를 집어 내면 좀더 빠르고

손에서도 덜 냄새가 난다. 알맹이를 모두 빼내고 나니 껍데기만 수북하다. 껍데기로 90%의 돈이 나간

듯 한다. 많은 양념보다는 살짝 해서 먹는게 좋아 간장에 고추가루 다진마늘 다진당근 통깨만 넣고

살짝 무쳤다. 껍데기가 반 붙어 있게 해서 양념을 올려 주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렇게 하면 양만 차지하고

쓰레기만 나올 듯 해서 일부러 모두 발라냈더니 먹기 좋다.금방 먹을 듯 한데 그래도 녀석에겐 서프라

이즈 반찬이다. 옆지기에게 먹어보라 했더니 손대면 쑥 들어갈 듯 하다며 먹지 않겠단다. 그러니 다음에

꼭 사다가 해줘야 할 듯. 겨울에는 정말 몇 번은 먹어야 하는 찰지고 쫄깃한 꼬막반찬이다.

 

2013.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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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3-11-26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저 꼬막 정말 좋아라 하는데 이렇게 레시피도 알려주시니 한번 도전해봐야겠어요. ^^

서란 2013-11-26 20:28   좋아요 0 | URL
ㅋㅋ 저도 정말 꼬막 좋아해요~ 저희집에 둘~~꼬막귀신이 있답니다.
요건 울집 막내딸에게 해 준 반찬인데 저도 침만 흘렸어요~~
꼬막무침 정말 쉬워요~맛있게 해서 드세요~~^^
 
몽실 언니 - 권정생 소년소설, 개정판 창비아동문고 14
권정생 지음, 이철수 그림 / 창비 / 2012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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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삶이 고스란히 '몽실'의 삶으로 옮겨지듯 해방과 함께 다시 한국전쟁의 그 중심에서 몽실의 삶은 참으로 고난의 연속으로 그려진다. 가난이 싫어 가난을 벗어나듯 몽실의 엄마는 몽실이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시집을 간다. 배곯지 않게 하려고 택한 어머니의 선택, 갖은 학대와 험한 말도 모두 참아내며 속으로 삭이며 몽실의 입에 밥숟갈이 들어가는 것으로 만족하는 어머니,그런 어머니에게서 오래 견디지 못하고 고모의 손에 이끌려 다시 집으로 오지만 그 삶 또한 온전하지 못하다. 자신의 친 아버지인 정씨 아버지는 새로운 어머니를 맞이하게 되는데 착하지만 어머니에겐 깊은 병이 있다. 폐결핵, 병으로 인해 몽실이 동생을 낳고는 일어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북촌댁,그가 낳은 딸 난남이를 전장에 간 아버지를 대신해서 동냥젓을 물리듯 동네에서 쌀을 얻어 생쌀을 씹어 암죽을 끌여 먹이고 밥을 동냥해서 동생의 배를 곯지 않게 하지만 어른도 이겨내기 힘든 전시에서 어린것이 어미 젓도 얻어 먹지 못하며 온전히 크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그래도 동생 먼저 먹여가며 피붙이를 향한 몽실의 정성은 난남이를 온전하게 자라게 한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듯 몽실은 두 엄마와 두 아버지를 두게 된다. 친 아버지인 정씨와 어머니가 몽실을 배곯지 않게 하기 위해 재취로 들어간 김씨 아버지,그 사에에서 영득과 영순이 동생을 보게 된다. 두 동생도 살들하게 챙기며 아버지가 다르지만 어머니의 자식이니 동생으로 받아 들여 정성을 다하지만 김씨 아버지는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 몽실 엄마를 대신하여 영득이와 영순이게게 새 엄마를 들이고 서울로 이사를 간다. 전쟁의 아픔처럼 두 엄마는 모두 심장병과 폐결핵으로 핏덩이와 같은 어린 자식들을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난다. 전쟁이 지나고 어린 생명들은 스스로 고난의 시간을 이겨내며 살아야만 한다. 어른이라고 돌아 전장터에서 돌아 온 아버지는 병을 얻어 몽실이의 새로운 부양자가 되고 어린 몽실이게는 난남이도 힘든데 병자인 아버지까지 건사한다는 것은 너무도 힘데 부친 일이다. 힘들어도 그녀는 힘들다는 말 한마디 어디에 못하고 이겨낸다. 난남이도 포기를 못하지만 아버지 또한 포기를 할 수가 없다. 고모도 모두 전쟁으로 잃었다. 부모를 잃거나 자식을 잃거나 정씨 아버지처럼 몸이 전쟁으로 인해 병을 얻거나 피폐해져 모두가 힘든 시기이다.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아야 할 순간에 동네 할머니가 알려주신 부산에 있는 자선병원을 찾아 아버지를 낫게 하겠다고 모시고 가지만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어린 자식들만 남겨 놓고 아버지는 허망히 먼저 가시고 난남이와 몽실이만 남겨지게 되고 그들은 어디 한 곳 의지할곳도 먹을 것도 없다. 겨우 의지하게 된 곳에서 난남이는 어쩔 수 없이 양딸로 보내야 하고 몽실이는 힘들게 살아간다. 새엄마인 북촌댁이 남겨 놓은 핏줄인 난남이를 그녀가 어린 나이에도 엄마처럼 키웠기에 버려진 아이를 보고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 생명을 그러안아 보지만 애석하게도 싸늘함으로 돌아오는 허망함.그런가하면 가난을 어찌할 수 없어 아버지를 버리고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가야했던 어머니를 그녀는 이해하고 용서하는가 하면 어머니가 낳은 아이들을 자신의 동생으로 받아 들인다. 분명 그들도 어머니의 자식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반 핏줄이라도 핏줄을 핏줄이다. 난남이가 자신의 동생이듯이 말이다.

 

몽실 자신의 친 어머니가 있었지만 북촌댁을 어머니로 받아 들이고 그녀가 낳은 난남이를 핏줄인 동생으로 지극 정성을 하다며 키우듯 그녀는 모든 상황과 현재이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받아 들이며 용서하고 인정한다. 전쟁이 낳은 아픔들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지만 그것을 힘들다고 불평하기 보다는 이겨내기 위하여 빈깡통을 들고 거리로 나가더라고 자신이 마땅히 할 일이라 받아 들인다. 전쟁은 자신에게만 아픔을 준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가난과 고통과 아픔을 안겨 주었다. 하지만 살아 있기에 살아야만 한다. 새아버지네에 갔다가 다리를 다쳐 절뚝거리는 절름발이가 된 몽실이지만 그래도 삶은 포기할 수 없다.절뚝이면서 동생들을 만나러 다니고 밥을 구걸하여 연명하고 그리고 소녀가장이 되어 의연하게 동생들을 보살핀다.

 

그시대 '언니'들이 그랬듯이 자신을 희생하면서 동생들은 번득하게 키우고 싶듯 동생의 입부터 챙기고 반듯하게 살기를 원하는 몽실언니,절름발이 인생이라 결혼도 포기하려다 자신처럼 곱추라는 아픔을 가진 남자와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일구고 동생들과 연락을 하며 동생들의 삶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그 시대의 언니 몽실언니의 삶은 굴절 많은 삶이지만 결코 남의 삶이 아닌 우리 바로 위의 부모님들이 살아 온 세월을 대변해 준다. 아무리 전쟁이야기를 해줘도 내가 겪지 않았으면 남의 이야기고 이해가 안가는데 한편의 소설은 저자의 경험이 밑바탕이 되어서일까 아픔을 함께 겪어 내는 것처럼 생생함으로 다가온다.새롭게 이철수님의 그림이 들어가 더 실감나게 읽을 수 있고 어느 세대이건 공감을 불러 일으킬만한 저자의 소설은 다시 읽어도 언제 읽어도 가슴이 뭉클하다. 몽실이에겐 아버지가 둘인것이 어머니가 둘이라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배다른 동생들이 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저 잘 살아가는 것이,생을 이어가는 문제이다.그런 그녀가 가정을 꾸리고 동생들과 마지막까지 잘 연결되며 부모아닌 부모노릇까지 하는 먼 훗날의 이야기까지 이어나간 것은 '희망'을 그리고 싶은 저자의 맘이었을 것이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면 분명 먼훗날에는 부유하진 않지만 그래도 정이 오가는 삶이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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