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의 연애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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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작품은 처음이라 낯설다.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 이진, 그리고 그녀와 꼭 결혼을 하고 싶은 아니 계약결혼이라도 해서 살고 싶은 남자 이현의 사랑법이다. 한 여자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처럼 평생을 약속하지 못하는 남자 이현,그는 이번이 네번째 결혼이다. 하지만 상대는 정말 특이한 여자이다. 아버지는 당대의 시인이지만 은둔하여 지내는 사람이고 그렇다고 딸을 애지중지 하는 사람이 아닌 그의 모든 재산은 사회에 환원처럼 그녀에게는 한푼도 물려주지 않는다. 재산 뿐만이 아니라 그들은 부녀지간이라 볼 수 없을 정도로 서로간에 교감도 없고 공감도 없다. 왜 그렇게 부녀지간에 간극이 생긴 것일까.

그에 반해 이현이라는 남자는 여섯 살에 본 결혼식,다름아닌 이진의 부모님의 결혼식을 보고는 신부에게 반해 그들의 딸인 이진과 결혼하고 싶어한다. 그때 느꼈던 살구빛 향기를 그가 근무하는 재정경제부 매점에서 백치미처럼 계산도 어둡고 무엇하니 제대로 하는 것 없지만 그녀가 그곳에 있음으로 해서 이상하게 매상이 올라가는, 아니 모두가 그녀를 한번이라도 더 보기 위하여 찾아가는 그곳에서 그 또한 그녀에게 반해 여섯살 그가 품었던 그 마음을 전달하고는 그녀와 계약결혼을 하자고 한다. 삼년 이란 시간 동안 서로에게 얽매이지 않고 터치하지 않으며 결혼생활을 해나가면 그녀에게 자립할 수 있는 경제력을 주겠다는 것이고 그녀가 살아 있는 영혼들을 만나고 기록하는 일을 터치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 사랑이 가능할까? 아니 여섯살 때 보았던 결혼식의 신부의 느낌을 어찌 그의 딸에게 느끼며 결혼을 결정할 수 있을까? 그런 사랑과 결혼은 과연 어디까지 가능할까?

이진 그녀가 기록하는 영혼들의 이야기와 이현과 이진의 이야기가 씨실과 날실처럼 겹쳐지면서 무언가 다른 듯 하면서도 이야기는 어느 순간에 하나로 이어져 나간다. 죽은 영혼들의 이야기가 아닌 살아 있는 영혼들의 이야기를 쓰는 여자 이진,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면서 그들의 삶 속으로 파고드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삶 안으로 끌어 들이는 것도 아니다. 그저 바라보는 입장에서 기록되어지는 이야기들, 그들의 삶은 어느 순간 한계치에 다다른다. 그리고 분출시키려고 아니 분출되어야만 할 듯 한 순간에도 삶은 이어진다.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이현과 이진의 삶 또한 그 한계점을 향해 달려간다. 서로에 대한 터치가 없이 잘 이어져가던 그들의 결혼생활,삼년이라는 시간이 다 되어가는 시간이 닥쳐 오면서 그들에겐 한가지 문제점이 발생한다. 이현 그가 정치계로 입문하려고 하고 부총리가 그를 이끌어 주려고 하는데 문제의 인물인 부총리는 요즘 이진이 기록하고 있는 인물이다. 왜 그의 삶이 그들의 결혼생활까지 파고 든 것일까. 부총리는 그들의 결혼생활을 어떻게 좌지우지 할까.

이현은 지난 결혼생활에서 애를 갖지 않기 위하여 수술을 했다. 그렇기에 이진과의 결혼생활에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마지막 순간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이진의 임신' 아니 그녀를 꼭 닮은 아이를 그가 맞게 되었다는 것, 어떻게 된 것일까.분명히 자신은 수술을 받아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입장이었는데 죄의 씨앗은 죄를 낳 듯 이진의 엄마가 그녀와 똑같은 '이진' 을 낳았듯이 이진 또한 그녀는 사라지고 그녀와 똑같은 '작은 이진'을 남겨 놓고 죽고 말았다. 이세공의 마지막 말인 '잘해봐라.' 가 아니 그의 맘을 이제서야 절실히 깨달을 수 있고 그만이 그를 이해해 줄것만 같다. 이 비극은 어디에서부터 시작일까. 부총리의 삶을 기록하던 이진,그런 그녀의 기록을 들춰부게 되고 그녀가 기록한 것을 찢으며 강하게 거부했던 순간이 그에겐 마지막 이었다. 그리곤 그녀는 그 순간 그녀의 몸에서 '생' 이 모두 빠져 나가듯 '임신중독증' 으로 인해 사망에 이른다. 아기만은 포기할 수 없다는 의사진들은 그의 결정을 무시하고 그에게 작은 이진을 안겨 주었다.이세공은 왜 그에게 '잘해봐라' 라고 했을까. 그 많고 많은 말중에서 아니 살아 생전 그들의 결혼생활도 딸인 이진의 삶도 받아 들여주지 않았던 부정, 죽는 그 순간까지 떨쳐버리듯 했던 딸과 사위인 그들에게 잘해봐라라니 그와 똑같은 삶을 살아보라는 것인가.나 또한 딸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너도 시집가서 너랑 똑같은 딸을 낳아 고생좀 해봐라' 라고 말하면 딸들이 난리인데 그와 같은 의미인 듯 하지만 비극이 똑같은 비극을 낳아서 더 애처롭다.

그런 삶에서 둘은 벗어날 수 없었을까.'그땐 몰랐다네.저네처럼 터무니없이 희망에 들떠 있었지.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는 마음이 없어. 지구상에서 가장 못돼먹은 애완동물이야. 사랑을 베풀어도 고마워할 줄도 모르고, 오히려 상대방을 괴롭히거든. 고양이라도,영혼을 기록하는 여자보다는 은혜를 알 게야.'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는 '마음이 없다.' 정말 상대에 대한 마음이 없었을까,아님 서로 사랑하는 방법이 달랐을까.부부는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라 했는데 그들이 바라보는 것은 서로 달랐던 것일까?  동상이몽처러 같은 이불을 덮고 있으면서 다른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그들은 '부부' 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었지만 둘처럼 늘 나뉘어져 있었던 사람들,그들이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 교감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그래도 결혼생활은 무난했고 세월이 흘러가면서 서로에게 점점 적응해 간다고 생각했는데 그녀의 마음이 영혼들에게 빼앗긴 것일까,아님 너무 자신에게 애정이 없었거나 무지했던 것일까? 어찌 그럴수가 있지. 아무리 남자가 수술을 해서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입장이라고 해도 그 시간이 지나도록 임신사실을 모를수가 있을까,채식하는 사람이라고해도 말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생각이 났다. 철저하게 채식을 하면서 자신은 식물이라고 생각하는 여자, 이진은 엄마부터 육식은 거리가 먼 그런 DNA를 가지고 태어난 듯 하다.그렇게 해야만 영혼과의 거리감이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아니 꼭 다른 영혼들에 대한 기록을 해야만 했을까. 그녀가 떠나고 그녀를 잊지 않기 위해 '기록을 하는 남자,이현'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아니 그녀의 딸에게 어머니를 남겨 주기 위하여 기록을 하는 남자로 전락한 남자 이현, 그의 사랑법을 이해한다는 것은 힘들지만 우리 또한 살아가다보면 그런 메마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처음엔 살구빛 향기든 다른 그 무엇으로 강하게 이끌렸다 해도 점점 처음의 생각과는 거리가 멀게 빛이 바래 가는 것이 사랑이고 삶이다. 서로의 삶에서 '교감이나 공감' 이 없어지면 서로에게 무의미해진다. 그럴수록 교집합이 될 수 있는 부분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데 그런 삶에 점점 익숙해져 가는 것이 보통의 삶인 듯 하다. 그리고 그 삶은 대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그녀를 다른 작품에서 더 만나봐야 할 듯 하다. 이 작품으로 해갈하기엔 모자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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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산을 오르다






아침부터 다림질에 다른 날과 드르게 아침을 시작하고 나니 아침이 무척이나 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피곤하기도 한데 오늘은 딸들이 집에 오는 정기외출날이고 큰놈이 감기가 무척 심한 듯 하여 그러지 않아도 알러지비염 때문에 환절기를 힘들게 나는데 요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데 감기까지 겹쳐 힘들어 하는 듯 하여 대청소를 시작했다. 청소기 돌리고 스팀청소까지 하고 나니 땀이 나는데 그 길로 그냥 물 한 병 담아 들고 뒷산으로 향했다. 필 받았을 때 운동을 해야지 내일 내일 미루다 이 가을 또 다가고 말 것 같아 잠깐 이라도 올라갔다가 내려와야지 하면서 나가는데 덥다. 또한 여시는 엘리베이터를 누르고 기다리는데 그때까지 저를 안데리고 나간다고 현관앞에서 우는 소리가 한참동안이나 들린다.

더울것 같아 여름조끼를 걸치고 나왔는데 햇볕도 따가운듯 하고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오가는 사람도 없다. 혼자서 산에 오르는데 코스모스가 바람에 한들한들 반겨주니 기분이 좋다. 어제 그제 한참 코스모스와 조우를 했으니 오늘은 그냥 내쳐 올라간다.전날에는 많이 피어 있던 나팔꽃도 많이 지고 코스모스도 사람들이 꺽어서 버린 것이 길에 떨어져 시들어 있는 것도 보이고 역시나 풀벌레 들은 여기저기서 펄쩍펄쩍, 가끔 깜짝놀라며 뒤돌아 볼 때도 있다. 혼자서 산을 오르다 보면 '무서움증' 이 가끔 엄습할 때가 있는데 오늘 특히나 그렇다. 그래도 꿋꿋하게 오르는데 반가운 현수막이 눈에 들어온다. 선재스님이 가까운 곳에 오신다는 글을 만나니 내가 오늘 이것을 보려고 산에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풀벌레 소리와 새소리를 들어가며 쉬지 않고 오르다 중간쯤에서 내려오시는 할아버지들을 피하느라 잠깐 멈추어 섰다.잠바차림이지만 정장에 가까운 차림이다. 구두까지 신으시고는 이 산을 오르셨는지 오르막은 괜찮을지 몰라도 구도로는 내리막은 미끄러울 듯 하다. 아니나 다를까 조심조심 내려가시는 모습을 한참을 서서 바라 보았다. 그러다 내 길을 가며 혼자서 벤치에 앉아서 쉬며 증거사진도 찰칵,앞 바위에 디카를 놓고 셀프타임을 눌러 증거사진을 남겨 본다. 산에 혼자 있다고 생각하니 이런 사진까지 찍고 혼자서 웃으며 올라보는데 쉼터에도 아무도 없고 적막하니 좋다. 바로 정상에 도착하여 크게 숨을 들이켜고는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가는데 호젓하니 좋다.

밤나무 밑에도 둘러 보았고 여기저기 지난 날에 둘러 보았기에 오늘은 그냥 내리막길을 그냥 내려간다. 시간이 정말 많이 절약된 산행, 이렇게 산행하고 나면 재미가 없는데 그래도 오늘은 간략하게 산행을 해 본다.그리곤 오솔길에 접어 들어 룰루랄라 허밍으로 노래를 부르다 벌개미취가 있는 곳에 다다라 나비들이 꽃과 조우하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 다시 뒤돌아 오던 길을 되집어 나오는데 아가배나무에 열매가 보인다. 몇 년 전만해도 아가배가 무척 많이 열렸는데 지난해에도 그리고 올해는 정말 아가배가 찾아봐야 눈에 보일 정도이다. 올해는 특히나 비가 많이 와서 꽃이 얼마 피지 않은 듯 하다. 그래도 아가배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오늘의 산행미션은 완료.

그리곤 다시 벤치가 있는 곳으로 왔는데 학생 한 명이 서서 운동기구를 타고 있는데 장애아이다. 어떻게 혼자 왔을까 했는데 아파트 바로 옆 학교에서 체육시간에 산을 올랐는지 한참후에 여학생들의 소란스런 소리와 함께 줄줄이 내려오는 친구들, 여학생들은 몸이 불편한 친구를 돌아 가며 산을 내려가고 더 많은 친구들이 줄줄이 내려와 길을 비켜 주듯 그녀들을 보내고 코스모스와 잠시 조우한 후에 음악을 들어가며 내려오다보니 정말 기분이 좋다. 한시간여 혼자만의 산행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 몸도 첫날보다 더 가벼워진 듯 하고 산에 혼자 있는 그 시간도 넘 좋고 하루가 다르게 가을이 깊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산, 그런 산이 곁에 있어 좋다. 기다릴 때는 오지 않던 택배가 산행중에 왔다고 하여 경비실에 맡겨 두라고 했기에 택배를 찾아 집으로 향하는 발길이 가볍다. 내일은 옆지기와 함께 올라야 할 듯 하다.

2011.9.23
























나비가 접었다 폈다 하는 그 박자를 세고 있다가 찰칵~~






이게 뭘까요...ㅋㅋㅋ 아가배나무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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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줄기김치






 


고구마줄기 한 단에 삼천원 오이고추 이천원어치 사 온 것을 무생채를 하고는
생채를 소로 넣고 오이고추김치를 담고도 오이고추가 많이 남았다.
고구마줄기를 살짝 삶아 볶아 먹으려다가 새로운 '고구마줄기김치' 를 담아 보기로 했다.
연한 것으로 해야 아삭아삭 하니 맛있다고 하는데 지금은 조금 질기기도 할텐데 그냥 해보기로...

고구마줄기를 물에 씻어 알맞은 크기로 잘라 놓은 후에
먼저 겉절이양념처럼 다진마늘 생강가루 새우젓 다시마 통깨 까나리액젓 슈가약간 고추가루를 넣고
양념을 버무려 놓은 후에 오이고추를 반 갈라 어슷어슷 네다섯개를 잘라 놓으 후 양파도 채썰고
하여 모든 재료를 넣고 버무렸다. 과연 맛이 어떨까... 버무려 맛보니 아차차 천일염을 빼놓아
이것저것 들어가 약간만 넣은 후에 버무려 하나를 맛보니 맛이 괜찮다. 질길줄 알았는데
먹을만 한것이 아삭아삭하다. 오이고추도 어슷하니 썰어 넣은 것이 아삭하니 맛있다.

이런것은 많이 해 먹는 것보다 조금 하여 얼른 먹는 것이 더 맛있다.
많은것보다 양이 적어야 더 맛있는 것처럼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한번 먹어보고 맛있으면
담엔 더 많이 사다가 담아야 할 듯 하다.

** 저녁을 먹고 들어 온 옆지기에게 맛보라 하고는 하나만 집어 먹어보라 했더니
-맛있는데..맛있다. 오이고추도 아삭하니 맛있고..괜찮네...
나도 맛보니 간이 배고 맛이 배들었는지 맛있다.애들 입맛은 어떨지 모르지만
옆지기와 내가 맛있으니 우리끼리라도 맛있게 먹으면 되지...

201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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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삭아삭 오이고추김치






 


 


생채를 담기 위하여 오늘 마트에 가서 커다란 무를 두개 사왔다. 깍두기도 담고 생채도 담기 위하여
그런데 마트에 들르기 전에 은행에 잠깐 갔는데 그 앞에서 할머니들께서 직접 농사 지으신
농작물을 가지고 나오셨는데 '오이고추'다. 그리고 고무마줄기...나박김치도 담아서 나오신 할머니들,
서너분이 옹기종기 앉으셔서 손님을 기다리고 계신데 오이고추가 눈에 들어와 마트에서 장을 보고
은해 앞으로 가서 오이고추를 사려고 물어 보는데 한무더기에 '천원'이다.
-할머니 그러면 두무더기 주세요..고구마줄기는 얼마네요..
-삼천원이여~~.이거 김치 담으면 맛있는데 많이 좀 사가..
-그럼 오이고추 이천원어치랑 고구마줄기 한봉지해서 오천원어치 주세요..집에 가서 오이고추김치랑
고구마줄기김치 담게요. 어떻게 해야 맛있어요...하고 물어 보았더니
-고구마줄기는 겉절이 담듯이 양념먼저  버무려 놓은 후에 담는거여..그럼 아삭아삭하니 맛있지.
하신다. -알았어요.집에 가서 한번 담아봐야겠어요..

그렇게 집에 와서 깍두기와 생채를 담았다. 오전에 마늘을 잔뜩 까 놓았기에 마늘 갈고
김치를 담으려고 무를 깍둑썰기를 해 놓고 생각하니 고추가루가 없다. 어쩌지...냉동실을 다 내놓고
뒤졌더니 아버지 살아 계실 때 주셨던 고추가루가 남아 있다.아휴....다행이다.
깍둑썰기 한 통 해 놓고 생채거리 한 통 해 놓고 양념을 다 넣은 후에 깍두기부터 버무렸다.
그리고 생채를 버무리다보니 오이고추가 많으니 김치를 담아볼까...
하며 금방 오이고추 배를 가르고 천일염을 뿌려 살짝 절구듯 한 후에 바로 생채를 비벼 놓은 것을
오이고추 소로 넣었다... 그러고보니 맛나 보인다. 그냥 익게 놔두는 것 보다 찰쌀풀을 쑤어 넣어야
할 듯 하여 찰쌀풀을 묽게 쑤어 뜨거운 것을 오이고추김치에 부었다. 천일염을 넣고 고추가루물을 살짝
하여 넣었더니 더 맛나보인다.익으면 아삭아삭 할 듯...
옆지기가 오이고추를 무척 좋아하는데 이 오이고추김치 좋아할 듯 하다.

201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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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또는 유년의 기억 펭귄클래식 110
조르주 페렉 지음, 이재룡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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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루주 페렉의 <사물들>도 독특한 소설이었는데 이 소설 또한 독특하기도 하고 읽으면 읽을수록 '뭘까' 했는데 그의 유년시절을 이해하고 읽는다면 소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듯 하여 먼저 작품해설을 읽고 읽으니 소설의 맥을 잡지 못하고 있는 듯 하면서도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수 있음이 이제 겨우 조금 작가에게 가깝게 다가간 듯 하다. 그래도 여전히 내겐 낯설고 이해하기 힘든 작가이기도 하다.

양친은 1920년대 폴란드에서 파리에서 이주한 유대인이며 아버지는 40년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했고 어머니는 43년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하니 이 소설의 그 주된 이야기가 자신의 유년시절에 얽힌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군대에서 탈영한 뱅클레를 찾아 온 '오토 아펠스탈' 에게서 그에게 이름을 빌려준 사람이 '누구' 인가에 대하여 아는냐는 말에 그는 아펠스탈에게서 자신에게 이름을 빌려준 인물에 대하여,아니 그들과 사건에 대하여 이야기를 듣게 된다.자폐증세가 있던 소년을 치료하기 위해 요트여행을 하던 그들이 모두 죽음을 당하고 오로지 소년만 행방불명, 죽은 시체도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은 소년을 찾아 나섰가다 'W라는 섬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 W 라는 곳에서 소년을 찾았다든지 그외 앞의 사건과 이어지는 내용이 아닌 그곳은 '올림픽선수촌' 같은 올림픽촌이라는 이야기가 점점 세세하게 나온다.'W섬의 마을은 우리가 '올림픽선수촌'이라 부르고, 고대 올림픽에서 레오니트옹이라 불렸던 곳,혹은 한 나라, 또는 여러 나라 선수들이 중요한 국제경기를 앞두고 컨디션 조절을 하기 위해 체류하는 훈련 캠프와 거의 동등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나에겐 유년의 기억이 없다.' 라고 이어지는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옮긴 다른 소설은 그의 지난 기억을 더듬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나가듯 유년의 편린들을 찾아 조각을 맞추어 나가듯 이야기를 이어간다. 유태인이 어머니를 떠나 보내야 했던 소년,그리곤 어머니와 헤어 진 후 떠돌이 삶처럼 남의 손에 의해 아님 정착지가 불분명하게 떠돌았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작가의 지난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그렇다면 자전적인 '유년의 기억'과 'W' 라는 이야기는 어떻게 어어진다는 것일까? 두 이야기는 평행선처럼 계속적으로 똑같은 거리감을 두며 이어진다. 무얼까 'W' 가 의미하는 것은? 유년의 기억이 없다고 했지만 유년의 기억을 어떻게 해서든 더듬으며 찾아내려고 한다.그런가 하면 'W' 라는 올림픽과 그 속에서 살아 남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머니를 앗아 간 '전쟁과 수용소' 를 빗대어 그려내고 있다. '두 개의 V자의 꼭짓점을 이으면 X자가 되고, X자의 가지를 동일한 길이로 수직으로 연장하면...... 동일한 기호로 철 십자를 대테한 사실에 놀랐던 것이 기억나는 것도 이러한 관점에서였다.(96p)' 글에서 보면 이곳이 그가 표현하려는 어떤 곳인가에 대하여 나온다. 히틀러와 나치에 대하여 말하는 그,그가 표현하려던 'W' 라는 곳은 어머니를 빼았아 간 전쟁이며 나치이다. 그로 인해 그는 유년의 기억도 아버지를 전쟁에서 잃었고 어머니 또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죽었기에 그의 정신속에서는 전쟁과 나치 정당하지 못했던 베를린올림픽이 겹쳐 'W'라는 이야기가 탄생한 듯. 스포츠란 전쟁처럼 승리자만 살아 남는다. 승리자가 되기 위하여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하는지,남을 밟고 올라가야 하는지 그 치열함을 'W' 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W에서 스포츠 위주로 삶이 조직화된 것이 노리는 유일한 최종 목표는 경쟁을 과열시키고, 혹은 다른 표현을 쓰자면 승리를 찬양하기 위한 데에 있다.' 승자가 되어서 얻는 것이 무엇일까? 승자가 아닌 패자의 가지게 되는 것은, 그는 패자의 입장이나 마찬가지이니 유년의 기억도 잃고 아버지도 어머니도 잃어다. 그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신적 아픔에 시달렸던 그는 무엇이든 풀어내야 했을 것이다. 자신의 유년시절을 들여다 봄으로 해서 어쩌면 자신을 찾고자 한 것은 아닐까? 전쟁으로 인해 부모를 잃고 홀로 남겨져 치열한 전쟁터와 같은 삶에서 승자가 되기 위하여 그 또한 치열하게 살아야 했지만 그에게 남겨진 아픔은 늘 트라우마처럼 그를 따라 다닌 것은 아닐까? 'W의 삶을 처음 발견했을 때 그것은 사실 꽤 끔찍한 광경이다. 초심자는 경기장,훈련장,트랙을 두루 돌아다닌다. 아직 차분하고 자신감에 찬 청소년에 불과해서 그때까지의 삶이란 수많은 동료들과 나눈 따듯한 우정으로 넘쳐흘렀던 반면 화려한 축제와 환호, 승리의 음악, 하얀 새들의 비상과 연관되었던 이미지들은 이제 참을 수 없는 비참한 현실로 드러날 것이다.' 전쟁은 승리자도 패배자도 모두 '비참한 현실'과 맛서게 됨을 말하고 있다. 모두가 피해자인 것이다. 그에게 남겨진 것도 피해자이며 아픔이듯이 승리를 쟁취한 이들에게도 현실은 비참할 뿐이다. 그런 유년의 기억과 'W' 를 그는 소설에서 조우하면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려 했던 것은 아닌지.

한참 이성이 성립되는 사춘기에 아니 그 이전에 부모를 잃은 것도 큰 슬픔인데 전쟁으로 피폐해져 여기저기 떠돌며 그의 정신은 얼마나 많은 아픔을 겪었을까? '똑같은 글은 쓰지 않겠다' 라고 했듯이 <사물들>에서도 사물들을 통해 '행복과 자유' 에 대하여 그 깊숙히 빠져들게 하더니 이 소설에서 또한 자신의 전쟁으로 부모을 잃은 유년시절과 공정하지 못하게 치른 베를린 올림픽을 전쟁및 경쟁에 빗대음으로 하여 현실이 얼마나 각박한지,살아 남았어도 그 아픔은 끝나지 않았음을 '유년의 기억' 을 통해 말해주고 있다. 낯설게만 느껴지던 그의 유년의 기억을 통해 좀더 가까이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나로 바꾸어 놓는다. 아니 좀더 그와 친숙해지게 만든다. 악동같은 표정의 사진이 말해주듯 그 속에는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아픔이 자리하고 있음을 소설을 통해 알게 되고 나니 그의 삶이 안쓰럽기도 하고 현실의 내가 행복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기도 한다. 페렉에게 전쟁은 유년시절과의 단절이다. 그리고 그 단절은 현실을 좀더 치열하게 살게 해 준 원동력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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