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의 연애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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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작품은 처음이라 낯설다.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 이진, 그리고 그녀와 꼭 결혼을 하고 싶은 아니 계약결혼이라도 해서 살고 싶은 남자 이현의 사랑법이다. 한 여자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처럼 평생을 약속하지 못하는 남자 이현,그는 이번이 네번째 결혼이다. 하지만 상대는 정말 특이한 여자이다. 아버지는 당대의 시인이지만 은둔하여 지내는 사람이고 그렇다고 딸을 애지중지 하는 사람이 아닌 그의 모든 재산은 사회에 환원처럼 그녀에게는 한푼도 물려주지 않는다. 재산 뿐만이 아니라 그들은 부녀지간이라 볼 수 없을 정도로 서로간에 교감도 없고 공감도 없다. 왜 그렇게 부녀지간에 간극이 생긴 것일까.

그에 반해 이현이라는 남자는 여섯 살에 본 결혼식,다름아닌 이진의 부모님의 결혼식을 보고는 신부에게 반해 그들의 딸인 이진과 결혼하고 싶어한다. 그때 느꼈던 살구빛 향기를 그가 근무하는 재정경제부 매점에서 백치미처럼 계산도 어둡고 무엇하니 제대로 하는 것 없지만 그녀가 그곳에 있음으로 해서 이상하게 매상이 올라가는, 아니 모두가 그녀를 한번이라도 더 보기 위하여 찾아가는 그곳에서 그 또한 그녀에게 반해 여섯살 그가 품었던 그 마음을 전달하고는 그녀와 계약결혼을 하자고 한다. 삼년 이란 시간 동안 서로에게 얽매이지 않고 터치하지 않으며 결혼생활을 해나가면 그녀에게 자립할 수 있는 경제력을 주겠다는 것이고 그녀가 살아 있는 영혼들을 만나고 기록하는 일을 터치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 사랑이 가능할까? 아니 여섯살 때 보았던 결혼식의 신부의 느낌을 어찌 그의 딸에게 느끼며 결혼을 결정할 수 있을까? 그런 사랑과 결혼은 과연 어디까지 가능할까?

이진 그녀가 기록하는 영혼들의 이야기와 이현과 이진의 이야기가 씨실과 날실처럼 겹쳐지면서 무언가 다른 듯 하면서도 이야기는 어느 순간에 하나로 이어져 나간다. 죽은 영혼들의 이야기가 아닌 살아 있는 영혼들의 이야기를 쓰는 여자 이진,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면서 그들의 삶 속으로 파고드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삶 안으로 끌어 들이는 것도 아니다. 그저 바라보는 입장에서 기록되어지는 이야기들, 그들의 삶은 어느 순간 한계치에 다다른다. 그리고 분출시키려고 아니 분출되어야만 할 듯 한 순간에도 삶은 이어진다.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이현과 이진의 삶 또한 그 한계점을 향해 달려간다. 서로에 대한 터치가 없이 잘 이어져가던 그들의 결혼생활,삼년이라는 시간이 다 되어가는 시간이 닥쳐 오면서 그들에겐 한가지 문제점이 발생한다. 이현 그가 정치계로 입문하려고 하고 부총리가 그를 이끌어 주려고 하는데 문제의 인물인 부총리는 요즘 이진이 기록하고 있는 인물이다. 왜 그의 삶이 그들의 결혼생활까지 파고 든 것일까. 부총리는 그들의 결혼생활을 어떻게 좌지우지 할까.

이현은 지난 결혼생활에서 애를 갖지 않기 위하여 수술을 했다. 그렇기에 이진과의 결혼생활에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마지막 순간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이진의 임신' 아니 그녀를 꼭 닮은 아이를 그가 맞게 되었다는 것, 어떻게 된 것일까.분명히 자신은 수술을 받아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입장이었는데 죄의 씨앗은 죄를 낳 듯 이진의 엄마가 그녀와 똑같은 '이진' 을 낳았듯이 이진 또한 그녀는 사라지고 그녀와 똑같은 '작은 이진'을 남겨 놓고 죽고 말았다. 이세공의 마지막 말인 '잘해봐라.' 가 아니 그의 맘을 이제서야 절실히 깨달을 수 있고 그만이 그를 이해해 줄것만 같다. 이 비극은 어디에서부터 시작일까. 부총리의 삶을 기록하던 이진,그런 그녀의 기록을 들춰부게 되고 그녀가 기록한 것을 찢으며 강하게 거부했던 순간이 그에겐 마지막 이었다. 그리곤 그녀는 그 순간 그녀의 몸에서 '생' 이 모두 빠져 나가듯 '임신중독증' 으로 인해 사망에 이른다. 아기만은 포기할 수 없다는 의사진들은 그의 결정을 무시하고 그에게 작은 이진을 안겨 주었다.이세공은 왜 그에게 '잘해봐라' 라고 했을까. 그 많고 많은 말중에서 아니 살아 생전 그들의 결혼생활도 딸인 이진의 삶도 받아 들여주지 않았던 부정, 죽는 그 순간까지 떨쳐버리듯 했던 딸과 사위인 그들에게 잘해봐라라니 그와 똑같은 삶을 살아보라는 것인가.나 또한 딸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너도 시집가서 너랑 똑같은 딸을 낳아 고생좀 해봐라' 라고 말하면 딸들이 난리인데 그와 같은 의미인 듯 하지만 비극이 똑같은 비극을 낳아서 더 애처롭다.

그런 삶에서 둘은 벗어날 수 없었을까.'그땐 몰랐다네.저네처럼 터무니없이 희망에 들떠 있었지.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는 마음이 없어. 지구상에서 가장 못돼먹은 애완동물이야. 사랑을 베풀어도 고마워할 줄도 모르고, 오히려 상대방을 괴롭히거든. 고양이라도,영혼을 기록하는 여자보다는 은혜를 알 게야.'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는 '마음이 없다.' 정말 상대에 대한 마음이 없었을까,아님 서로 사랑하는 방법이 달랐을까.부부는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라 했는데 그들이 바라보는 것은 서로 달랐던 것일까?  동상이몽처러 같은 이불을 덮고 있으면서 다른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그들은 '부부' 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었지만 둘처럼 늘 나뉘어져 있었던 사람들,그들이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 교감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그래도 결혼생활은 무난했고 세월이 흘러가면서 서로에게 점점 적응해 간다고 생각했는데 그녀의 마음이 영혼들에게 빼앗긴 것일까,아님 너무 자신에게 애정이 없었거나 무지했던 것일까? 어찌 그럴수가 있지. 아무리 남자가 수술을 해서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입장이라고 해도 그 시간이 지나도록 임신사실을 모를수가 있을까,채식하는 사람이라고해도 말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생각이 났다. 철저하게 채식을 하면서 자신은 식물이라고 생각하는 여자, 이진은 엄마부터 육식은 거리가 먼 그런 DNA를 가지고 태어난 듯 하다.그렇게 해야만 영혼과의 거리감이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아니 꼭 다른 영혼들에 대한 기록을 해야만 했을까. 그녀가 떠나고 그녀를 잊지 않기 위해 '기록을 하는 남자,이현'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아니 그녀의 딸에게 어머니를 남겨 주기 위하여 기록을 하는 남자로 전락한 남자 이현, 그의 사랑법을 이해한다는 것은 힘들지만 우리 또한 살아가다보면 그런 메마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처음엔 살구빛 향기든 다른 그 무엇으로 강하게 이끌렸다 해도 점점 처음의 생각과는 거리가 멀게 빛이 바래 가는 것이 사랑이고 삶이다. 서로의 삶에서 '교감이나 공감' 이 없어지면 서로에게 무의미해진다. 그럴수록 교집합이 될 수 있는 부분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데 그런 삶에 점점 익숙해져 가는 것이 보통의 삶인 듯 하다. 그리고 그 삶은 대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그녀를 다른 작품에서 더 만나봐야 할 듯 하다. 이 작품으로 해갈하기엔 모자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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