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 교향악 펭귄클래식 39
앙드레 지드 지음, 김중현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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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지드의 <전원 교향악> 이 작품을 언제 읽고 다시 읽게 된 것인지. 중학교 때에도 고등학교 때에도 난 유독 '고전'과 '세계문학'에 빠져 도서실 한 귀퉁이에서 두껍고도 세로줄 쓰기의 책들을 탐독하는데 시간가는 줄 몰랐다. 집에서도 늘 끼고 있는 책들이 고전과 장단편문학,하지만 그때 읽고는 다시 집어들 여유가 없었는지 그때 읽은 것으로 만족을 한 것인지 도통 기회가 없었는데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때 읽었던 책들을. 이 작품은 영화로도 보았던 기억이 있고 사춘기시절 무척이나 가슴졸이며 안타까움에 결말이 꼭 그래야했을까? 하며 혼자 한탄하던 작품인 듯 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장애와 비장애'의 차이는 무엇이고 '보인다는 것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지. 그리고 '육체적인 사랑과 정신적인 사랑' 의 그 미묘한 차이를 이 작품에서 다시금 느껴본다.

 

'나는 길 잃은 양을 데리고 온 거요.'

귀머거리 노파의 임종을 지키러 갔던 목사는 노파의 죽음 후에 홀로 남겨진 눈이 보이지 않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제르트뤼드'를 집으로 데리고 온다. 그가 거두지 않으면 거둘 사람이 없다는,목사이기 때문에 여러마리의 길 잃는 양 중에서 자신은 한마리의 양을 데리고 왔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집에는 다섯명의 아이와 아내 아멜리가 있다.아멜리는 갓난아기 때문에도 힘들어 했는데 자신이 데려 온 장애아 때문에 일이 더 늘어나 푸념을 늘어 놓았지만 그는 아내의 그런 말에 귀를 기울이기 보다는 제르트뤼드를 교육시키는데 온 정성을 쏟아 붓는다. 남자들은 어느 집이나 여자들이 하는 일에는 관심이 덜하다.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지 그리고 예감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모른다. 아내는 장애아를 보는 순간에 직감이 좋지 않아 반대를 한 것인데 목사인 남편의 만류를 그녀를 돌보게 되었다.

 

다기망양이라고 했다. 길이 여러 갈래여서 양을 잃고 있다는 것을,자신은 장애아인 제르트뤼드에게 빠져들고 있다는 것을 그는 몰랐다. 마르탱은 목사에게 그녀를 교육하면서 '일기' 같은 쓰길 바랬다. 그녀는 아직 그림이 그려지지 않은 깨끗한 도화지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순수한 영혼이니 모든 것을 잘 받아 들일거라는,그녀의 잠자고 있는 세상을 열어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귀머거리 할머니와 함께 했기 때문에 그녀가 말을 못한 것인지 워낙에 말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던 듯,하지만 그녀는 세상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목사가 들려주는 그대로 세상을 상상하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순수한 영혼에 목사는 세상의 더러운 '죄'와 같은 것을 들려주고 싶지 않아 함께 숲길을 걷거나 음악을 들려주면서 그녀의 또 다른 세상을 열어 나갔다. 함께 음악회에 갔다가 들은 '전원 교향곡' 그곳은 물론 베토벤이 귀가 들리지 않은 시기에 만든 곡이라 알고 있지만 듣을 수 있는 사람보다 더 아름답게 곡을 만들었다. 그녀는 그 곡을 들어가며 세상이 그렇게 아름다운지 묻는다.과연 그럴까?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상상속에 갇힌 세상,목사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의 상상만으로 세상을 판단하는 그녀에게 때를 입히고 싶지 않았던 목사,하지만 세상은 결코 아름다운 것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눈이 보이는 사람들은 자기가 누리는 행복을 모른단다... 그렇지만 볼 수 없는 저는 듣는 행복은 알아요.'

 

'나이를 먹었다고 항상 아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요.'

서서히 자신만의 세상에서 나와 또 다른 세상을 만나는 그녀 앞에 목사와는 다른 젊은 남자인 목사 아들 자크가 나타나고 몰라보게 변한 그녀에게 반한 자크는 그녀와 결혼할 것을 다짐한다.하지만 신앙과 아버지 앞에서 뜻을 굽히는 자크, 그때까지도 자신이 제르트뤼드를 사랑하고 있음을 몰랐는데 아내의 수수께끼 같은 말이 자꾸만 그를 붙잡는다.그랬다. 아내는 그녀에게 향하는 목사의 '진심'을 보았던 것이다. 누가 장애이고 누가 장애자가 아닌지. 아내는 볼 수 있었던 목사의 사랑을 목사인 자신은 눈이 보이지 않는 제르트뤼드처럼 눈을 뜨고도 못보는 그야말로 자신의 사랑에 장애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아니 그는 자신의 사랑을 주님의 사랑으로 밀어 부치려 했다. 종교적 사랑이지 자신의 육체적 사랑이 아니라고 절대적으로 부정을 했던 것이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 했다. 자신의 진심을 자신에게도 제르트뤼드에게도 속일 수가 없었는데 친구 마르탱은 그녀의 눈을 검사 한 후에 그녀가 수술을 받으면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그녀는 수술을 받게 된다.

 

드디어 그녀는 동면의 삶에서 깨어나게 된 것이다. 목사는 자신의 사랑을 부정하려 하면 할수록 그녀에게 향하고 그런 마음을 어쩌지도 못하는 사이 그녀가 수술을 마치고 들어서던 길에 사고가 일어났다. 그녀가 정말로 시냇가에 '물망초'를 꺾기 위하여 몸을 굽힌 것인지 아니면 자살을 하려고 그랬던 것인지 그녀는 물에 빠져 생사의 갈릴길에 서게 되었다. 비로소 드러나는 그녀의 마음, 지금까지 목사를 사랑하고 있는 것인줄 알았는데 세상을 보게 된 순간 깨닫게 된 그녀의 마음은 목사의 아들 '자크'에게 향하고 있었다는 것. 하지만 자크는 아버지와 그녀 때문에 개종을 한 후 였고 그녀는 자신 때문에 일어난 일들에,그리고 자신의 사랑의 미묘함 때문에 죽음을 선택하게 된다. 우리는 흔히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만 보고 산다는 말을 한다. 그렇다면 그녀가 눈이 보이지 않는 순간에는 어떤 세상을 그렸을까? 목사가 다섯아이와 아내가 있는 남편임을 그리고 그의 곁에는 이런 모든 상황을 걱정하는 아내가 있음을 그녀가 보았던 것이다. 눈을 뜨고 처음 그녀가 보게 된 세상은 아름다움이 아닌 자신의 마음안에 있는 '죄'였던 것이다. '제가 처음 본 것은 우리의 과오,우리의 죄였어요.' 목사가 읽어주던 말씀 중에 '만일 너희가 눈이 먼 사람이라면 죄가 없으리라.' 과연 그랬을까? 눈이 보이지 않았던 그때 보지 못하던 '죄와 과오 그리고 걱정어린 아내의 얼굴'을 보면서 제라트뤼드는 자신의 길을 알고 말았던 것이다.

 

목사는 왜 아내의 조언에도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그동안 '눈이 멀어' 있었던 것일까? 눈이 먼 소녀를 치료하고 교육시켜서 개안을 시켜 놓았지만 막상 자신의 눈은 멀어 있는 아이러니한 세상,그리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앞에 무릎을 꿇어야만 했던 제르트뤼드.목사의 옷을 걸치고 종교라는 믿음으로 자신의 사랑을 부정하려 했언 목사, 우린 어쩜 그런 진실한 사랑을 부정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실제 자신안에 존재하는 사랑은 눈이 멀어서 보지 못하고 눈 앞에 급급한 사랑만 좇아 가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마음까지 마음의 눈이 먼 것은 아니다. 좀더 자신의 마음에 충실했더라면,목사의 옷을 벗고 자신에게 진실했더라면 그들의 사랑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니 자크와 제르트뤼드의 사랑은 이루어졌을까? 자신이 사랑하고 있기에,그것을 부정하면서도 마음 안에서는 받아 들였기 때문에 아들과의 사랑을 반대해야만 했던 목사, 결국 소녀의 죽음으로 그리고 아들의 개종으로 그는 두 영혼을 잃게 되고 말았다. 눈을 뜨고 있는 그대,사랑이 보이시나요? 정신적 사랑을 갈구하면서 육체적 사랑을 좇아 가고 있는 당신, 당신의 마음의 소리를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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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른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다
박에스더 지음 / 쌤앤파커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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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 초 큰딸이 수술을 하게 되었다. 진작 겨울방학에 했더라면 수술시간이 날 수 있었는데 너무 늦게 결심을 했고 병원에도 늦은 감이 있게 갔다. 졸업을 하고 갔으니 이월에는 시간이 없다는 것,하지만 빨리 해야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데 마음만 급했다. 병원일정은,아니 의사의 일정은 안되는데.다른 방법이 없을까? 어쩔 수 없이 인맥을 동원하기로 했다. 대한민국에서 인맥을 동원하면 안되는 것도 되는 사회이기에 우리도 한번 힘은 없지만 작은 힘이라도 보태보기로 했다. 아는사람의 건너 아는 사람을 찾아 수술날짜를 앞당겨 줄 수 있는지 물으니 비는 시간이 없다고 하더니만 급기야 된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제 이십의 고개에 올라 선 딸이 실망을 한 듯 꼭 그래야만 하느냐며 따져 물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된다면 해야되는 상황이니 하자고 하여 했는데 우리가 동원한 인맥이 아닌 아주 가까운 곳에 더 큰 인맥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여 모든 것이 수월하게 돌아가고 모든 것은 무사히 끝나게 되었다. 그런 일이 끝나고 이제 성인이 된 딸은 정말 이런 사회라는 것이 싫다는 것이다. 학연 지연에 연줄이 있어야 알아주고 받아주는 사회,그리고 권위주의에 물들어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는 그런 사람들이 정말 싫다는 것이다. 알고나면 별거 아닌 사람들인데 말이다.

 

우리의 교육제도는 '성공지향적'이면서 '경쟁'을 부추기고 붕어빵 기계에서 똑같은 붕어빵을 찍어내듯 그렇게 교육을 시키고 있지만 점점 '나 너 우리'라고 배우던 교과서 속의 나 너 우리에서 탈피를 하여 '나는 나' 너는 너'를 찾아가고 있는 듯 하다. 다름을 이제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에 나가면 자신도 모르게 권위주의와 계급과 규범과 질서들에 길들여지며 '당연'하게 따라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하다가도 나 또한 세월이 가고 짬밥의 수가 늘어날수록 배가 배운대로 똑같이 밑에 사람들에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무서운 시어머니 밑에서 똑같은 시어머니가 나오듯이 배운대로 밑의 세대에게 똑같이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가끔 삶을 무료하게 만들기도 한다.그렇다고 훌쩍 대한민국을 버리고 이민을 갈수도 없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내가 나고 자란 뿌리를 쉽게 버린다는 것은 글쎄? 우리 민족처럼 '뿌리'와 '근본'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다른 곳에서 다름을 인정하며 잘살수 있을까? 물론 잘살수도 있겠지만 어느 순간에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길들여진 습관이라는 것이 무섭듯이 단번에 무얼 고치기에는,그것이 개인일 때도 힘이 든데 '우리'라는 거대한 단체의 입장에서 움직인다는 것은 더 많은 시간을 요할 것이다. 하지만 서서히 변화는 나타나고 있다. 이런 책을 어떻게 예전에는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을 했을까? 읽는 처음부터 나의 가려움을 대신 긇어주고 있는 것처럼 속시원함은 무엇인지. '전시,허세,체면, 이런 다양한 종류의 보여주기 속에서 우리는 항상 내용보다는 형식,업무보다는 의전을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헷갈린다. 뭐가 진짜고, 뭐가 우선인지를 말이다. ' 나 또한 형식을 무척이나 싫어한다. 내용을 중요시하지 형식적으로 무엇을 하라고 하면 반기를 제일먼저, NO를 외치고 나선 사람중에 한 명이다. 그러니 당연히 '싸가지 없는'으로 손가락질을 당할 때도 분명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속이 비었을까? 그것은 아니다. 모두가 옳다고 하고 무조건적으로 형식적인 것을 따라갈 때 그것이 잘못되었다면 고쳐야 한다고 한소리 하고 나서는 사람이 지금까지는 그리 많지 않았으리라.아니 우린 '좋은게 좋은거'라면서 또한 그렇게 따라가는 것이 사회를 잘 버티어 나가는 덕목이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난 정말 내게 맞지 않는 옷처럼 벗어버렸다. 그래도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어느 순간 나이가 들어가다보니 'NO'를 외치면서도 어느 순간에는 나도 'YES'로 기울고 있더라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느끼게 된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승자가 되었다고 꼭 잘사는 법은 없다. 사회는,행복은 성적순이 아닌것처럼 아니 그와 반대로 행복은 성적의 거꾸로 순처럼 일등만 달리던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에 나가서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그런 반면에 학창시절 성적이 좋지 못하던 사람들은 주변에서도 잘 살고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 내자식에게는 '승자'가 되길 강요하고 '대학'이라는 허울 좋은 간판을 따기를 부추기고 있다. 사회가 모두가 타고 달려가는 그 기차에서 벗어나면 낙오자가 될까봐 용감하게 다른 길을 선택하지 못하고 마지못해 '편승'하여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한이 있어도 보통의 사람들이 겪는 그 고통을 고스란히 겪으며 달려가길 바라고 원한다. 그래야만 할까? 딸이 이십이 되고나니 생각이 많아졌다. 꼭 다른 사람과 똑같은 길을 걷게 해야만 할까? 다른 길을 제시해 주었지만 자신만 낙오자가 되는 것 같고 도태되는 것,도피하는 것 아니냐며 싫단다. 그렇다면 꼭 모두가 걷는 길을 걸어가면서 나 또한 똑같은 붕어빵이 되어야 할까?

 

많이 변했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사회에 나가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아직도 학벌이 중요시되고 간판이 중요시되고 학연 지연에 체면이나 형식이 난무하는 사회이다. 나부터가 대학을 가지 않고 다른 길을 갔다고 했다면 먼저 '왜?' 하고 묻게 된다. 하지만 그럴수도 있음을 인정해야 하면서도 그동안 몸에 겹겹이 굳어져 떨어지지 않는 굳은살처럼 되어 버린 것을 하루 아침에 떼어낼 수는 없지만 서서히 너와 내가 다름을 인정하고 형식보다는 내용을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시 하는 그런 사회로 되어 나간다면,우리 그렇게 변화할 수 있게 너와 내가 만들어야 한다. 아니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획일성을 걷어내고 서로가 다름을,차이를 인정하자고 그녀가 나섰듯이 점점 생각이 깨인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싫다고 모두가 떠날 수는 없다. 어느 사회에 가던지 '문제점'은 반듯이 있다. 내가 싫다고 떠나고 나면 그리워지기 마련이다. 다시 그 사회에 돌아가면 잘살것만 같은 그런 '오류(?)' 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다시 자신의 자리에 돌아왔을 때 내가 과연 변해있을까? 위와 앞만 보고 달리지 말고 밑을 보고 옆을 보면 정말 지금보다 더 자신을 인정하며 살수 있다. 늘 승자가 되고 정상에 서는 것만 가르쳐 왔고 그렇게 배워 왔지만 이젠 아래를 보고 옆을 보며 차이를 공감하며 자신부터 변해간다면 살만한 사회이고 세상이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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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엔 봄이 가득,군자란과 제라늄

 

 

 

 

 

 

 

 

베란다엔 정말 봄이 가득이다. 밖에는 바람이 불고 겨울과 봄사이를 왔다갔다 하는데

집안,그것도 베란다는 봄이 가득이니 자꾸만 발길이 베란다로 향한다.

아침에도 차 한 잔을 들고 베란다에 가서 홀짝홀짝이며 꽃들을 바라보고

스프레이를 해주고 물을 주고... 그렇게 녀석들과 데이트를 나누는 시간이 제일 행복한 시간...

 

어제와는 또 다른 오늘을 늘 보여주는 녀석들이다.

내가 키우는 군자란은 정말 생명력이 강해서 좋다.다른 식물들도 생명력이 강한 것이 많지만

이녀석은 봄이면 어김없이 화려한 꽃을 피워주기 때문에 더 이뻐하는지 모르겠다.

이녀석들이 일제히 피어나는 요맘때가 제일 좋다.

 

 

 

 

 

화단엔 더이상 화분을 놓을 자리가 없다. 군자란으로 거진 꽉 들어차듯 했다.

화단안에 들어가지 못한 녀석들이 화단 밖에서 대기중인데 역시나 꽃대를 올리고 피기 시작이다.

올해에 3개정도의 화분을 분갈이 해야한다. 정말 급하다.

꽉찬 화분에는 몇 개의 식구들이 살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꽉 들어차서 꽃대가 시원찮게

올라오는 것들도 있다. 영양분이 부족한 것이다.

 

지난번에 새로 분갈이를 하여 새끼를 모두 떼어낸 것은 지금 잘자라고 있고

꽃대도 튼튼하게 올라오고 있다. 진작 분갈이를 했어야 하는데...

꽃대가 있어 만약에 분갈이를 한다면 조심 또 조심을 해야만 한다.

 

 

 

제라늄

 

 

제라늄도 햇살이 좋아서인지 꽃대가 하나 둘 더하고 있다.

이미 핀 것은 활짝...피기 시작하는 녀석도 있는가 하면 이제 꽃대를 올리고 있는 녀석도 있으니

한동안 제라늄이 창가를 밝게 비추일 듯..

그런가 하면 거실베란다에도 무슨 색인지 모를 제라늄에서 꽃대가 나오고 있다.

올봄엔 좀더 다른 색상의 제라늄 식구를 들이고 싶고

삽목도 더 많이 해서 늘 이쁜 제라늄 꽃을 볼 수 있게 해야할 듯 하다.

 

 

 

 

꽃이 한가지만 펴도 이쁜데 사랑초 군자란 아젤리아 제라늄...

갖가지 꽃들이 서로 조화롭게 어우러져 그야말로 베란다는 봄이다.봄이 한가득이다.

조금 있으면 카라도 올라올텐데...^^

 

이제 봄은 시작이다.

새로 시작하는 것들은 아름답다. 꿈을 안고 있기에...

 

201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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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서 느끼는 봄소식

 

 

 

 

분명 봄이건만 아직도 겨울 속에서 헤매이고 있는 듯 하다.

어젠 한 주 동안 앓고도 아직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감기 때문에 병원에 다녀오기도 했다.

약을 정말 약하게 지어 달라고,더이상 약하게 할 수 없다는 말을 들어가면서까지

약한 약을 지어왔건만 저녁에 약을 먹고 정신을 못차리고 잠들고 말았다.

그렇다고 아침에 평안한 하루의 시작을 한것은 절대 아니다.

아직도 약기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다시 아침 약이 들어가고 나니 헤롱헤롱...

그래도 베란다 햇살이 따듯하여 커피 한 잔 들고 베란다로 나갔다.

아침 차 한 잔은 꼭 베란다를 베회하며 마시게 된다. 꽃들이 피어 나고 있으니..

 

햇살을 쫒아 베란다를 베회하다보니

아뿔싸,벌써 은행나무에 새 순이 나왔다. 손가락 한마디 정도 나와 세상을 구경하고 이녀석,

언제 이렇게 삐죽이 나왔던고... 무엇이 그리 급해 이렇게 일찍 나왔는지..

다른 데는 찾아 보아도 없다. 아니 딱 두군데 잎이 나와 있다.

울집에 은행나무는 3그루,모두 커다란 은행나무 밑에서 가을에 열매가 떨어져 싹을 틔운 것을

뽑아다 화분에 심어서 근 7~8년씩 된 녀석들인데 화분에서 크다보니 그렇게 많이 크질 못했다.

그래도 해마다 봄과 가을이면 계절을 알려주기도 하여 넘 이뻐 하는 녀석들인데

올해도 어김없이 겨울눈도 보지 못한 듯 한데 잎이 나온 것이다.

봄은 봄이다.

 

 

 

지난 가을 아니 겨울인가...친정엄마가 뽑아주신 대파를 그리 크지 않은 스티로폴상자에 심었다.

그렇게 한 계절을 잘 뽑아 먹고 겨울을 그냥 노지에서 견디어낸 대파,

그 대파에서 파릇파릇 새 잎이 돋아 나와 정말 이쁘다.이걸 어떻게 뽑아 먹나

그냥 화초처럼 두고봐야지... 물론 친정엄마는 겨울에 또 한포대 대파를 뽑아 주셨다.

비료포대에 그냥 대파를 뽑아 잔뜩 담아 주셨는데 물을 주면 잎이 웃자라고

썩는 냄새가 나길래 올해는 물을 하나도 주지 않았더니 그냥 마른채로 먹기 딱 좋다.

그녀석도 이젠 날이 따듯해졌으니 밖에 심어 주어야할 듯 하다.

 

장미허브

 

 

장미허브,이녀석은 정말 잘 자란다.  그냥 똑 잘라서 꽂아 놓으면 자란다.

그렇게 하여 포트와 여기저기 화분에서 잘자라고 있는 장미허브,

딸들의 빈 방 창가에 화분을 두개 놓았는데 햇살이 좋아 이녀석을 모두 심어 놓았다.

아니 심는다기 보다는 하나를 꽂아 놓았더니 잘자라서 계속 작은 녀석들 잘라서 꽂아 두었더니

이젠 제법 화분 가득 초록빛 장미허브세상이다.

한번씩 물을 주고 스프레이를 해 줄때마다 손을 한번 먼저 '쓰으윽~~~' 스치면

아~~~~달콤한 향내~~~ 넘 좋다. 초록빛이라 좋고 향기가 좋아서 좋고..

-엄마,난 저 식물이 참 좋더라..향기도 좋고... 이름이 뭐야..

하던 큰딸, '장미허브야' 했더니 이름도 이쁘단다. 녀석은 지금 닭장같은 방에서 살고 있는데

장미허브 하나 심어서 줄까..친구하라고...

 

사랑초

 

 

그리 이뻐하지 않던 사랑초였는데 언제부턴가 내 마음에 들어와 꽃을 피운 녀석이다.

꽃은 그 특성이 다 다르기에 피는 계절도 다르지만 이 녀석은 주구장창 피고지고...

그러니 더욱이쁘다. 사랑초 종류도 많던데 울집엔 딱 두종류가 있다.

짙은보랏빛잎에 이 녀석이 피는 것과 초록잎의 청사랑초가 있는데 한번도 꽃을 보지 못해

무슨색의 꽃을 지니고 있는지 모른다.

 

이녀석은 화분이 6개...그마다 잘 자라고 꽃도 잘 피고..

잊을만하면 꽃을 올리고 피고 지고.

그렇게 사랑이 시들만 하면 다시 피고 시들만 하면 다시 피고...

한창 여기저기 화분에서 꽃대가 올라오고 있고 꽃이 피고 있다.

봄은 정말 봄이다.

 

201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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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 주홍색 연구 펭귄클래식 58
아서 코난 도일 지음, 에드 글리네르트 주해, 이언 싱클레어 작품해설, 남명성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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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아니었다면 현장에 가지 않았을 수도 있고, 결과적으로 다시없을 연구 기회를 놓칠 뻔했습니다. 바로 주홍색 연구 말입니다. 약간 학술적으로 둘리는 말을 사용한다고 해서 안 될 것은 없겠죠? 잔뜩 뒤엉킨 흐릿한 삶 속에 이러저리 얽힌, 살인이라는 주홍색실이 보입니다.' 영화 <셜록홈즈>에서도 왓슨과 홈즈가 만나게 된 이야기가 나오기는 했지만 책으로 읽은 것은 너무 오래되어서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은 나온지 120년이 되었고 왓슨과 홈즈가 환상의 팀을 이루게 된 배경이 나온다. 의사이며 군의관이었던 왓슨박사가 아프카니스탄 전쟁에서 고통과 약해진 몸으로 인해 부대를 떠나게 되면서 호텔생활을 하다가 연금이 얼마 못 견딜 듯 하여 룸메이트를 구하던 중 우연하게 홈즈라는 사람이 같은 이유로 집을 함께 쓸 사람을 구한다는 이야기를 지인으로부터 듣게 되고 그는 홈즈를 보고는 그와 함께 살게 된다.

 

하지만 홈즈는 정말 무어라고 단정지을 수 없을 정도로 난해한 사람이기도 했다. 왓슨박사는 홈즈에 대한 기록을 해나가던 중 지금까지 자신이 보아 오던 사람들과는 다른,홈즈에게 특별한 무언가가 있음에 끌리기 시작했고 그가 끝없이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것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된 듯 하다. 그들의 동거는 서로 다른 듯 하면서도 서로에게 윈윈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다. 의사였던 왓슨이나 살인사건을 파헤쳐 들어가 살인범을 잡는 탐정역할을 하는 홈즈,정말 금상첨화의 조하가 아닌가. 사람을 잠깐 보고도 그가 어떤 직업의 어떤 사람인지를 단번에 알아낼 수 있는 홈즈,그렇게 되기까지는 홈즈의 쉼없는 노력 덕분이겠지만 그는 눈앞에서 보고도 믿기지 않을 수밖에 없다.

 

홈즈는 자신을 드러내놓고 활동을 하기 보다는 음지에서 자신의 노력으로 '주홍색 연구'를 하는데 현직의 경찰들이 그를 찾아와 조언을 구할정도로 이쪽에서는 유명한 사람임을, 같이 하면서도 왓슨은 놀랄뿐이다. 그렇게 함께 동거를 하면서 직관력이 뛰어나고 누구보다 냉철하며 관찰력 또한 다른누구보다 더 뛰어남에 사건을 풀어나가는 그의 두뇌회전이 남들보다 앞서나간다는 알고는 그와 함께함을 기꺼이 한다. 그런 가운데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잘차려 입은 신사의 죽음, 그리고 그 사건을 파헤쳐 나가던 중에 다시 한 건의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경찰은 엉뚱한 방향에서 이 사건을 수사하지만 홈즈는 그만의 방식으로 실마리를 잡아 나가지만 왓슨은 무엇보다 '현장'에 나가봐야 한다며 그와 함께 살인현장에 가게 된다. 그렇게 하여 홈즈는 처음으로 공식적인 자리에 얼굴을 드러내게 된다.

 

연결이 안될 것 같던 구 건의 살인사건,그리고 그 살인사건이 일어나게 된 역사적 배경이 장황하게 이어진다. 오래되고 먼 시간 속으로 여행하듯 이야기는 먼 미국의 이야기로 이야기속 남자와 어린아이가 어떻게 죽음이라는 상황에서 살아남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느 집단(모로몬도교)에 의해 살아가게 되었는지, 그리고 아이가 성장하여 숙녀가 되고 그녀를 보고 첫눈에 사랑하게 된 남자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겁잡을 수 없이 발전을 하게 되고 급기야 그녀를 놓고 벌이게 되는 '사랑싸움' 과 같은 이들에 의해 그녀와 의붓아버지는 희생양이 되면서 그녀를 진실로 사랑했던 '제퍼슨 호프'가 그녀를 아내로 삶으려 했던 모로몬도교의 두남자를 쫒게 된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막과 황폐한 곳에서도 복수를 위해서는 살아남아야 했던 호프,그는 자신에게 곧 죽음이 닥칠것을 알면서도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을 위해서 복수의 끝을 놓치 않는다. 그리고 모로몬도교의 두남자를 자신의 방식대로 처벌을 하고는 그는 죄값을 받기 위하여 감옥게 가지만 그 또한 죽고 만다. 그렇다면 이 살인사건은 어떻게 봐야할까? 살인범인 호프를 잡았지만 그 또한 자신의 방식대로 정정당당하게 두남자에게 '벌'을 내린 것이다. 두남자는 살인자다. 살인자를 쫒아 살인을 하고 그도 살인자가 되었고 그도 죽는다면 남는 것은? 아니 호프를 살인자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갖게 하는 열린 결말을 남기는 사건, '로마의 구두쇠가 한 말처럼 말입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놀려도 나는 집에 돌아와 금고 안에 든 돈을 보며 홀로 기뻐한다.' 라는 말처럼 홈즈 그가 모두 풀어낸 '살인사건'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현 경찰들인 레스트레이드와 그레그슨이 모든 공을 다가져간다. 하지만 홈즈는 마지막 구두쇠의 말로 자신은 흡족함을 남긴다.

 

'인간이 연구해야 할 대상은 인간이다'

왓슨박사와 홈즈가 함께 하게 된 그 '뿌리' 가 나오기도 했지만 두 살인사건도 겉으로 드러난 것이 아닌 그 '뿌리'를 캐고 올라가 속시원하게 파헤쳐 주기 때문에 어쩌면 주홍색 연구라는 것은 사건의 그 '뿌리'가 중요함을, 겉으로 드러난 것을 보고는 수박 겉 핥기식 사건해결이 아닌 진짜 그 속을 파고 들어가 진정한 사건해결을 해야 한다는 그 진실됨을 남기기도 하지만 그런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천재적으로 타고 나는 능력이 아니라 늘 노력하고 연구하는 진실된 자신의 노력으로 이룰 수 있음을 말해준다. '이 세상에서 실제로 뭘 하느냐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믿게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신경쓰지 마십시오.'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홈즈는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현직의 형사들은 결과에 대한 공을 치사하지만 자신은 공을 쫒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주홍색 연구' 를 쫒아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받치는, 그야말로 노력파임을 몸으로 보여준다. 천재는 끊임없이 노력하는 노력파를 이길 수 없다고 했다. 홈즈가 늘 부단하게 노력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그의 명성이 지켜질 수 있었을까.결과만 좇는 우리들에게 어쩌면 일침을 가하는 그 무언가가 이야기 속에는 분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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