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네 집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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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을 이룬 사람도 있겠지만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아야 더 첫사랑 답고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생각을 한다.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라 더 아련하고 그립고 다시 꺼내 보아도 달콤하고 쌉쌀하고 오래도록 빛이 발하지 않고 그대로인듯 하다. 소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에서 '첫사랑'과 '남편'과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저자가 미군부대에 다니던,집안의 기둥으로 알고 있던 오빠의 죽음으로 인해 갑자기 미성년자에서 한집안의 가장이 되어 경제력을 책임져야만 했던 시절,그녀는 등떠밀리듯 미군부대에 들어가게 되고 왠지 모르게 카탈을 부리던 자신을 닮은듯도 하고 안닮은듯도 한 '첫사랑'과의 만남으로 인해 어쩌면 그 시간을 좀더 슬기롭게 이겨내게 되지 않았을까.

 

사람의 운명은 정말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다고 하는데 저자가 만약에 '첫사랑'과 인연이 되어 결혼을 하게 되었다면 두사람의 운명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만든 그날의 만남이 성사되지 않은 후로 둘은 완전히 다른 길을 된 것이 어쩌면 그 둘의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자신 안에 고이 잠자고 있던 '첫사랑' 에 대한 그 슬프고도 쌉쌀한 추억을 고희가 넘어서 끄집어 내었다니 참으로 대단한듯 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메디슨카운티의 다리'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들고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에서 다 담아내지 못한 첫사랑과 남편과의 만남과 결혼생활,시집살이 등을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이야기 보따리를 술술 풀어내듯 재밌게 담아내어 읽으면서 왠지 모르게 그 이야기 늪속으로 자꾸면 빠져 들어가 발을 뺄 수 없는 상황처럼 연이어 읽게 되었다.

 

시를 줄줄이 외어 들려주고 음악을 좋아하여 섬세함으로 듣던 그와 결혼을 한 것이 아니라 은행원이라는 안정된 직업을 가진 남편과 결혼을 하면서 미군부대생활도 접고 홀시어머니와 함께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지만 음식솜씨가 남다른 시어머니 밑에서 장바구니 들고 나들이 가듯,자신의 현재의 삶에서 자유로운 탈출을 하듯 하는 삶을 과감없이 잘 그려냈다. 월급에서 주급을 받아가며 분명 시어머니와 자신은 비교도 되지 않는 헤택에서 장보기와 겹쳐 첫사랑 그와 만나는 시간은 한참 이슈이던 '자유부인'처럼 자신을 정당화 시켜 나가는 불륜 아니 로맨스를 꿈꾸는 시간처럼 자신을 변화시켰지만 첫사랑과 함께 하던 일탈의 꿈마져 산산이 부서져 버린 후 그가 뜻하지 않게 뇌수술을 받게 되고 실명및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이 뇌 속에 기생하던 '벌레'라는 생각에 첫사랑에 대한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는 그녀,정말 상사병이 아닌 벌레들에 의한 그들의 재회였단 말인가.분명 그 밑바탕에는 서로에게 터 놓지 못한 '첫사랑'에 대한 감정이 기저에 깔려 있을 것이다.

 

자존심과 자만감이 강한 친정어머니와는 다른 시어머니의 생활과 모습,음식에 대하여 깐깐하고 홀로 외아들을 살려 낸 자신의 믿음에 강한 분,박수무당에게 의존하여 아들의 생을 좌지우지 당하고 계셨지만 그것이 시어머니의 믿음이고 또 어쩌면 그렇게 하여 남편이 살아 남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시어머니의 강단진 삶이 비교되기도 하고 그녀는 미군부대에서 자신의 삶을 올바르게 살아 냈다면 그녀가 자리를 내면서 소개를 한 '춘희'라는 여성은 끝내 양공주로 타락하여 동생들을 모두 건사하고 가정을 일으켰지만 자신의 삶은 없는 쭉정이 같은 삶을 살아 온 그 시대의 아픔을 간직한 삶이지 않을까. 그런가하면 친정어머니는 하숙으로 친정올케는 포목집으로 강단지게 집안을 일으켜 나가는 삶을 보면 전란의 힘든 시기를 일구어내고 일으켜 세운 것은 박수근 화백의 그림에 등장하는 임을 인 여인네들의 삶처럼 아마도 여인네들의 힘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지지 않았을까.

 

한국전쟁및 질곡의 시대를 거치면서 할아버지와 오빠의 죽음 이후에 남겨진 것은 '여인네들의 삶' 인듯 하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남자들의 힘이 사라지고 나서 재건에 앞장선 것은 '여인네'들의 강인한 삶이다. 첫사랑마져 상이군인으로 뇌수술로 인해 실명으로 삶이 무너지는 듯 하지만 그녀도 올케도 비록 양공주로 자신의 삶을 잃어버렸지만 여인네들은 꿋꿋하게 생산과 삶을 강인하게 이어간다. 저자의 이야기 속에는 '집'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어머니로부터 이어진 집에 대한 강한 집착이라 할 수 있는 전란의 시대가 안긴 자신의 집에 대한 생각이 그녀 또한 자신의 집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고 집은 가정을 온전하게 지켜 주는 울타리처럼 한집안을 튼튼하게 살아나갈 수 있도록 밑바탕이 되어 준다. 집과 연결된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그 속에서 첫사랑도 있고 동생들을 위하여 몸을 팔아야 되는 양공주가 사연도 있고 자식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버리듯 한 허리가 기역자로 꼬부라진 노모의 이야기도 있고 남편이 먼저 갔지만 보따리 장사로 골목에 포목점으로 생을 튼실하게 일으켜 세운 여인네의 강인한 삶도 있고 자신 또한 배운것은 없었지만 음식과 자식에 대한 남다른 생각과 솜씨를 가진 시어머니로부터 배워 그녀 또한 똑부러진 삶을 이어나갈 생활꾼으로 거듭나고 있는 여인네의 삶을 보여준다.

 

집이 집으로 생명을 다하면 팔고 다른 집을 산다. 그 집은 다시 새로운 이들에 의해 생명을 찾듯 그 집에 맞는 삶으로 채워지고 사람들 또한 집과 함께 성장을 거듭하면서 첫사랑의 아픔도 잊고 자신의 삶에 안주하며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히 펼쳐 나갈 수 있는 듯 하다. 마지막 '춘희'의 취중진담처럼 이어진 이야기가 아마도 그 시대를 살아 온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아닐까. 사람이나 물이나 어느 그릇에 담겨 지느냐에 따라 달라지듯이 집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시간차를 두고 이어져서인지 재밌게 읽어나갈 수 있고 수다쟁이 할머니가 지난 시간을 추억하며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잘 사용하지 않는 우리말도 나오고 격하게 할 말이 그냥 거침없이 쓰여지기도 하여 속 시원하게 읽었다.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 뿐만이 아니라 첫사랑을 간직하고 결혼생활을 이어 나간 그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듯 하여 전란을 헤쳐 나온 그들의 삶이 그릇마다 다 다르게 담겨진 것이 씁쓸하기도 하고 그것이 삶이라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는 듯 하여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첫사랑, 그 사람에 대한 미안함을 어쩌면 이렇게 담아 낼 수도 있었겠다 하는 생각을 가져보며 참 용기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도 들고 그는 그사람 나름대로 또 다른 삶을 잘 살아낸듯 하여 가슴 한 켠이 훈훈해지기도 하면서 아려오는 이야기.자신의 삶을 반추한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인데 그 모든 일들을 오롯이 참 잘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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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과학 - 위대한 석학 16인이 말하는 뇌, 기억, 성격, 그리고 행복의 비밀 베스트 오브 엣지 시리즈 1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존 브록만 엮음, 이한음 옮김 / 와이즈베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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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먼 거리는 '마음에서 머리'라고 했다. 마음은 움직여도 머리가 따라주지 않으면 안되는 일들도 있고 머리로는 행하여도 마음이 깃들이지 않는 일들도 있다. 마음과 머리가 함께 할 수 있다면. 이 책은 '지식의 최전선에 닿는 방법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세련되고 정교한 지식을 가진 사람들을 한 방에 몰아넣은 다음, 스스로에게 묻곤 했던 질문들을 서로 주고받게 하는 것이다. 그 방이 바로 엣지다.오늘날 세상을 움직이는 석학들이 한데 모여 자유롭게 학문적 성과와 견해를 나누고 지적 탐색을 벌이는 비공식 모임인 엣지는 1996년 존 브록만에 의해 출벌했다. 현대 과학이 이룬 지식의 첨단에 다가서기 위해, 과학과 인문의 단절로 상징되는 '두 문화' 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지식과 사고방식 즉 '제3의 문화'를 추구한다.'

 

그야말로 세계적인 석학이라 할 수 있는 이론심리학, 인지과학, 신경과학, 생물학, 언어학, 행동유전학, 도덕심리학 등 관련 분야의 세계 최고 지성 16인이 밝혀낸 최신 이론들을 집대성했다고 볼 수 있다.'마음' 을 이루는, 마음을 완성시키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무엇보다 개개인의 마음을 이루는 요소로는 유전이나 환경을 들 수 있을 듯 하다. 다윈의 갈라파고스 섬에서 밝혀내게된 '환경'이란것이 인간에게도 유용할까. '미 국방부와 군대는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의 죄수 학대 사건이 어느 모로 보아 좋은 통에 나쁜 사과가 몇 개 들어간 탓이라고 말한다. 그 분석은 잘못되었다. 선량한 사람들을 망치는 것은 나쁜 사과가 아니라 나쁜 통이다.' 필립 짐바르도는 식초 통에 든 '오이'를 예로 들어가며 설명한다. 식초 통에서 피클이 되지 않고 혼자 '안돼 난 단맛을 지키고 싶어' 라고 하면서 혼자 오이로 단맛을 지킬 수 있을까? 실험을 통해 얻어지는 정상적이고 인간적이던 사람들이 '비인간화'가 되어가는 것은 '나쁜 통' 이라고 말한다. 환경이 사람의 마음을 지배한다는 것.

 

그런가 하면 '출생 순서'에 따라서도 성격이 변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 출생 순서의 차이는 맏이와 동생이 전형적으로 차지하는 생태지위의 차이를 반영한다. 맏이는 부모와 자신을 더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으며, 부모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간에 공감하는 경향도 보인다. 동생들의 전형적인 전략은 손위 형제가 이미 차지한 생태 지위를 놓고 경쟁하면 성공할 수 있을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즉 형이 활과 화살을 다른다면 동생은 석궁을 고안하는 쪽으로 주의를 돌린다.' 역사는 문제아나 반항아들이 바꾸어 놓는다고 한다. 맏이이게 '문제아나 반항아'가질이 많을까? 그 밑에 동생들에게서 그런 경향이 더 짙게 나타날까. 한 배에서 나온 자식들도 모두가 성격이 다른것을 보면 분명 태어난 순서에도 성격을 좌우하는 무언가가 분명 있다.

 

톡소,인간 행동을 좌우하는 기생생물편에서 '우리가 임신을 하거나 임신한 사람의 곁에 있다면 그 즉시 고양이 똥, 고양이 담요 등 고양이의 모든 것이 꺼림칙하게 느껴질 것이다. 고양이는 톡소를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산모는 톡소플라즈마가 태아의 신경계에 들어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재앙이다.' 자신이 원하지 않았지만 톡소에 감염되어 이상행동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오토바이 사고사망자등을 살펴보면 '톡소'에 감염되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는 것. '현재 톡소에 감염된 사람을 대상으로 신경심리학 검사를 한 연구 결과가 조금씩 나오고 있는데,톡소에 감염되면 좀 더 충동적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상이 발달해 가면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문명이 발달하지 않았던 예전과는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요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 움직인다고 볼 수 있는데 그 또한 사람들을 많이 변화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유전적으로 갖게 되는 성격이나 그외 것들 보다는 문명의 발달로 인해 환경적 외부적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들이 더 많은 시대이다. 문명이 발달하고 시대가 발달할수록 '인간은 무엇인가' '자아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더 하게 되는 것 같다. 생각하는 기능을 빼앗가 가는 기기들에 의해 자아를 잃어버리고 있는 시대,어느 지식인의 '통섭의 식탁'처럼 '통섭'의 진수를 보여주듯 각 분야의 석학들의 학문의 경계를 허물고 한자리에서 비빔밥과 같은 '통섭의 지식'을 만나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한가지로 요약할 수 없는 많은 요인들에 의해 우리 마음은 지배를 받고 있는듯 하다. 식초 통에 들어가 나 혼자 단오이가 되고 싶다면 읽어보시라. 지식의 대향연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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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저장하다

 

 

 

어제 잠깐 외출을 했다 돌아오는 길에도 단풍이 너무 곱게 든 나뭇잎을 몇 장 따서 가지고 왔다.

그리곤 읽던 책에 끼워 두었는데 오늘도 잠깐 집앞 은행에 나가는 길, 아파트 산책길로 해서

일부러 단풍과 낙엽을 즐기며 갔다. 그 짧은 시간이지만 요즘 병원생활 이후로 외출 또한

맘대로 못하고 있으니 이런 짧은 시간의 산책마져도 내겐 호사처럼 느껴진다.

 

요즘 며칠 박완서님의 책을 읽고 있는데 책마다 '가을을 저장'해 두었으니

다음에 누가 읽게 된다면 아마도 반갑게 이 낙엽을 찾게 되지 않을까.

예전에는 낙엽이나 꽃을 따서 책 사이에 많이 끼워 두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줄어 들다가

나이가 들어가니 다시 소녀적 그 감성으로,시간으로 돌아간듯 내가 또 이렇게 하고 있다.

아마도 이 시간이 지나고나면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이 아쉬워서일까..

올해의 가을은 더욱 아쉽고 안타깝고..나가서 즐기지 못하니 더욱 슬픈 가을이다.

빨리 훌훌 털고 일어나 나가고 싶은데 맘처럼 쉽지 않으니...

 

시월은 병원생활 이후로 정말 시간이 빨리 가고 말았다.

병원에 들어갈 때는 푸르던 가로수들이 퇴원하느라보니 빨갛고 노랗게 물들어 있다.

며칠 사이에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듯 뭉텅 잘려나가고 말았다.그래서일까 시월이 더욱 빨리

지나가고 말았다.벌써 말일이 다가오고 있고 딸들 수능도 십여일 앞으로 다가오고 말았다.

주말에 막내가 정기외출을 하였는데 수능에 대한 이야기만 했다. 그날 어떻게 해야하는지

그리고 챙겨가야할 것들을 미리 챙겨가기도 했는데 걱정이다. 두녀석이라.

정해 놓은 시간은 빨리 다가오고 미련없이 최선을 노력을 다 했는지...

노력한만큼 최선을 다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모두들 말이다.

올해 단풍이 무척이나 곱다는데 나 스스로도 그리고 딸들 때문에도 제대로 즐기지 못할 듯..

하지만 그 열매는 누구보다 달것이라고 생각한다...아자 아자...

 

2012.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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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양장) - 성년의 나날들 소설로 그린 자화상 2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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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 살아 생전에도 우리들 앉혀 놓고 하시는 말씀중에 제일 많은 것은 당신이 겪으신 고난의 시간,한국전쟁과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아프시던 일찍 가셨던 그 어려웠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는 잊지도 않고 몇 번을 하셔도 꼭 같은 말씀이지만 어쩜 그렇게 재생을 잘해시는지.그런 아버지의 말씀을 엄마는 옆에서 지겹다며 자식들에게 그런말해서 무엇하냐고 했지만 난 듣기 좋았다.물론 그 모든 말씀이 내가 겪지 못한,할아버지나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호기심에 대한 것도 있지만 아버지가 고난의 시간을 거쳐 지금 우리와 함께 하고 있음이 거져 얻어진 시간들이 아니라는 것을 소설을 읽듯이 옆에서 가만히 앉아 잘 들었던 기억이 있다. 우리는 자신이 힘든 기억은 잊을래야 더욱 잊을수가 없다.그것이 개인사이기도 하지만 역사의 소용돌이와 함께 51하는 것이라면 더욱 기억되고 기록되어 더 많은 이가 나눈다고 해도 흠이 되기 보다는 더 생생이 그 시대를 이해하고 기억하는 기록이 되지 않을까,그런면에서 전작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를 단숨에 읽고 이 책을 망설임없이 집어 들게 되었다.

 

전작은 스무살까지의 기억에 대한 기록이라면 이 소설은 한국전쟁부터 53년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개인사와 맞물려 힘겹게 돌아가던 한국사와 함께 하여 생생함은 물론 그 시대를 좀더 깊숙히 안으로 들어가 혼란의 시대를 이겨냈던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박적골의 유년시절에는  겉껍질만이라도 양반이었던 할아버지와의 기억으로 인해 풍족하고 아버지를 일찍 여읜 설움보다는 할아버지를 기둥으로 박적골이 좀더 풍성하게 그려졌다면 이 소설은 할아버지에서 장손인 '오빠' 로 정신적이 지주가 옮겨짐으로 인하여 모든 것을 오빠로 인해 보여지던 세상이 오빠가 인민군에 끌려가 도망쳐 오게 되고 시민증을 얻지 못해 다니던 학교에서 도민증을 얻으러 갔다가 함께 숙직질에 있었던 군인이 쏜 오발탄에 다리에 맞게 되면서 기울어 가는 오빠와 그런 오빠로 인해 피난을 가지 못해 서울에 와서 처음 뿌리를 내리게 되었던 현저동 집에서의 피난생활,집 앞에 있던 마르지 않던 우물이며 빈집털이를 하여 근근히 이어가던 생활및 어쩔 수 없이 인민위원회에 나가야만 했던 오점의 시간들및 월북을 종용당하고 올케와 어린 조카와 함께 북으로 향하며 마주하는 피난민으로의 생활을 생생히 담아 놓았다.

 

오빠의 다리에 총알이 박히고 팔개월의 삶은 저자의 정신적 지주였던 '오빠'라는 영혼이 서서히 스러져가듯 그렇게 곁에서 점점 빈쭉정이처럼 매말라 간다. 변변한 약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먹는것 또한 부실했으니 환자가 그만한 세월을 이겨냈다는 것도 참 대단한 일인듯 한데 환자와 함께 그 시간을 함께 하고 소리소문없이 오빠의 죽음을 덮어야만 했던 오열의 시간은 그녀를 갑자기 한 집안의 가장이라는 위치로 우뚝 서게 한다. 어린 조카들을 위해서도 한집안의 가장으로 나서야 했던 스무살, 인민위원회에서 만난 인연으로 근처에 살던 언니의 도움으로 들어가게 되었던 피엑스에서의 생활은 이미 작품 <나목>으로도 만났던 이야기지만 그 세세함을 다시 소설을 통해 들여다 보게 되니 먹먹하게 되기도 하고 남편을 일찍 사별하고 하나뿐인 아들에게 기대었던 엄마의 모든 것이 저자에게로 향하는 엄마와 딸의 애증의 시간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올케 또한 든든한 생활꾼으로 일어서는 오뚝이 같은 삶을 통해 혼란의 시간들이 잘 표현되어 있어 그 시간속을 잠시 여행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현저동 피난생활을 이어나가게 해 주었던 집 앞에 있던 겨울에도 마르지 않고 흘러 나오던 우물과 빈집에 남겨져 있던 먹거리와 힘든 세월이지만 동토에도 봄이 오듯 피어나던 하얀 목련, '미쳤어' 라고 밖에 뱉어낼 수 없었던 계절의 만남은 동토에도 봄이 오듯 피난민의 삶에도 한반도에도 봄이 올 수 있을까? 라고 되묻고 있는 듯,아니 희망은 꼭 올것이라는 믿음을 가져다 주기도 했지만 더불어 그동안 기대왔던 오빠의 죽음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집안의 가장으로 생활전선에 뛰어 들어 생계유지를 위해 자신에게 맞지 않은 옷인듯 해도 그 생활에 길들여지며 돈을 벌어야 했고 어머니는 그동안 등지고 있던 집안의 대소사를 떠안게 되시고 올케 또한 든든한 버팀목으로 당찬 생활꾼으로 이어나가는 여인들의 삶에서 전쟁의 무서움보다는 배고픔의 서러움에서 벗어나려는 삶과 그 속에서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저자의 모습을 통해 저자의 이십대를 통해 더 나아가 소설가로서의 삶 또한 살짝 엿보는 기회를 만나볼 수 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이 작품 속에 이어지는 '어머니'의 삶을 통해 그녀의 소설가로서 맥을 이어준 것은 '어머니'가 아니었을까? 물론 파란만장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을 헤쳐나온 저저의 삶 또한 소설의 좋은 소재가 되었겠지만 그녀사 소설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게 해 준것은 '어머니'의 존재인듯 하다. 어머니의 존재가 아니었다면 소설가 박완서가 있었을까? 어머니와 그녀의 관계는 애증의 관계이면서도 억척스럽게 힘든 세월을 이겨낸 어머니의 삶을 통해 그녀 또한 세월과 역사를 보는 눈이 달라진 듯 하다. 홀로 누구보다 억척스럽게 자식들에게 신문학을 공부시키며 '자존심'으러 버티어낸 어머니,자신이 힘든 시간을 이야기로 풀어내면 고난한 시간을 잊으려 했던 그 모든 시간들이 서서히 저자에게는 영양분으로 자리하지 않았을까. 현저동의 마르지 않던 우물과 같은 분이 '어머니' 이기도 하면서 동토의 땅에서 맞 본 '미쳤어' 라는 백목련의 개화는 '소설가로서의 저자의 삶'에 비유하고 싶다.

 

꾸며낸 이야기가 사실적이라 믿고 싶은 소설도 있지만 자신의 생생한 이야기가 이처럼 소설로 재탄생하였으니 믿고 싶지 않아도 한 조각 한 조각 이어진 이야기가 멋진 조각보로 다시 태어난것처럼 저자의 소설들은 읽음과 동시에 믿음이 가는 생생함이라 더욱 편안하고 그녀의 마르지 않는 '우물'에 더 기대고 싶은가보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 또한 오래전에는 모두가 '산' 이었다. 하지만 오래전에는 산동네라고 부르던 곳은 지금은 산은 온데간데 없고 새로운 도시로 탈바꿈하여 제일의 동네가 되었다. 이곳이 산동네라는 것은 아파트 바로 곁에 있는 작은 동산이 말해주고 있다. 그 또한 좀더 큰 산으로 이어져 있었지만 얼마전에 모두를 허물어 내고 일부분만 남겨져 있다. 지금의 동산을 보는 사람들은 오래전 그 형상을 기억하지 못한다. 이곳이 '산'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대부분 힘들거나 어려웠던 시절을 더 빨리 잊고 싶어한다. 자신에게 좋은 기억과 행복한 것만 기억하려 하는데 기억이란 것은 그렇지 않다. 나쁜 것일수록 더 오래 더 많이 기억해낸다. 세 잎의 행복 속에 네 잎의 '행운' 이 숨겨져 있듯이 우리네 기억 또한 힘들고 불행이라고 생각하는 것 속에 행복이 있다는 것을 잊으려 한다. 어쩌면 그런 우리의 기억의 편린을 조각 조각 이어준 '조각보'와 같은 저자의 소설들이 있어 참 다행이고 그런 역사의 날실이 있었기에 그녀의 개인사와 병합한 씨실과 함께 멋진 소설로 탄생할 수 있지 않았을까.

 

저자의 불행한 개인사만 놓여 있는 소설이었다면 참 밋밋하고 재미없었을 것이다. 분명 고난의 시간이었지만 한국전쟁이라는 큰 획이 있어 그녀의 개인사와 씨줄과 날줄로 만나 그녀의 삶과 역사를 탈바꿈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할아버지 이후로 기대었던 오빠의 삶,'오빠도 살아 돌아온 게 아니라 그때 무참히 죽은 것이다. 지금 아랫목에 누워 있는 건 오빠의 허깨비일 뿐 진정한 그는 아니다.' 오빠의 삶이 그러하지 않았다면 어머니와 저자 또한 중심을 자신에게 놓을 수 있었을까. '세상만 자반 뒤집기를 안 하면 사람들은 어떻게든 적응하고 먹고살게 돼있었다.' 오빠의 죽음으로 인해 더이상 미성년자가 아닌 이젠 한가정을 책임질 의무를 짊어진 일꾼으로 그리고 자신을 중심에 놓게 된 삶을 통해 고난의 시간 속에서 활짝 피어나는 백목련처럼 자신의 고난의 개인사를 솔직하게 끄집어내어 '백목련'처럼 활짝 피게 한다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했을 터인데 멋진 작품으로 기록되어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이 참 행운이라 여겨진다. 이 기회에 저자의 다른 작품들을 좀더 만나는 기회를 만들어봐야 할 듯 하다. 소설속의 '어머니'도 저자의 삶도 좀더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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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양장) - 유년의 기억 소설로 그린 자화상 1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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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는 불현듯 싱아 생각이 났다. 우리 시골에선 싱아도 달개비만큼이나 흔한 풀이었다. 산기슭이나 길가 아무 데나 있었다. 그 줄기에는 마디가 있고,찔레꽃 필 무렵 줄기가 가장 살이 오르고 연했다. 발그르슴한 줄기를 꺾어서 겉껍질을 길이로 벗녀 내고 속살을 먹으면 새콤달콤했다. 입 안에 군친이 돌게 신맛이,아카시아꽃으로 상한 비위를 가라앉히는 데는 그만일 것 같았다.' 요즘 아이들은 '싱아'를 알까? 내가 어릴 때는 위의 글에 나오듯이 정말 흔한 풀이었고 간식처럼 뚝뚝 꺾어서 껍질을 벗기고 새콤한 것을 잘도 먹었다. 그때에는 찔레순도 연하게 나오는 철이라 찔레순도 꺾어서 겉껍질을 멋기고 연한 부분을 먹었다. 싱아도 찔레순도 아카시아꽃도 그때의 아이들에게는 간식거리나 마찬가지였고 그때는 흔하디 흔한 풀이었지만 지금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을 보면 그만큼 먹거리가 좋아지고 다양해졌다는 것일 것이다.

 

작가의 맹자의 어머니보다 더한 강한 모성을 소설속에 담아낸 부분을 <나목>에서도 읽었다. 물론 오빠에 대한 이야기도,고난한 지난 삶도 소설속에 고스란히 녹아나 그때의 시대와 실상을 여실히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은 그녀가 개풍 박절골에서의 어린시절과 아들의 공부를 위하여 장손이며 맏이지만 서울행을 강행하여 홀로 삯바느질을 하여 강건하게 아들 공부를 시키고 더불어 딸인 그녀까지 신학문을 공부하게 하는 어머니의 강단진 모습과 여리고 섬세하면서도 집안의 들보노릇을 하는 오빠에 대한 기억과 그 주변인처럼 모든 것을 바라보고 '고발'하듯 담아내는 저자의 모습을 60년대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그때까지 담아낸 소설이다.

 

'이런 글을 소설이라고 불러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순전히 기억력에만 의지해서 써 보았다.'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듯이 혹은 자서전을 쓰듯이 써낸 글이라 저자는 '소설이라 할 수 있을까?'했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냈기 때문에 더 사실적이고 진솔하고 꾸밈없는 글과 현실이 잘 담겨져 있어 어느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한 것 같다. 누구의 인생을 들여다보던 한편의 드라마이고 한 편의 대하소설이겠지만 시대가 시대이고 그녀처럼 또렷하게 '기억'해 내고 '사실적'으로 담아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읽으면서 '어쩜'하고 깜짝 깜짝 놀라며 내 유년의 기억을 떠올려 보지만 그 모든 것들이 생생하게 기억나기란 힘든 일이다. 그런면에서 박적골에서 아버지를 세 살에 여의어 할아버지를 혹은 아버지처럼도 여기면서 생활하는 적나라한 모습들은 내 어린시절과도 겹쳐 보지만 그런 생생함은 간혹인데 너무 사실적이라 그녀가 풀어내는 '자화상'이 아니라 한 편의 다큐를 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실감나서 빠져들며 읽게 된다.

 

저자의 삶을 유지해 준것은 누구보다 생활력이 강하고 어느 아버지보다도 더 강건한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 밑에서 때론 아버지로 때론 아들로 오빠로 가장의 삶과 현실적 사상 속에서 우왕좌왕 하던 '오빠' 가 아니었나. 그녀의 어머니의 삶은 그야말로 '맹모삼천지교'보다 더한 삶인듯 하다. 자식들을 위하여 아니 집안의 기둥인 '아들'을 위하여 해마다 이사를 밥먹듯 해도 힘들이지 않고 하는가하면 삯바느질로 힘겨워도 꾹 참아내며 집장만까지 하는 강인함,한국의 어머니의 모성애와 강인함을 함께 보는 듯 하다. 그런 어머니를 보아오며 자랐으니 그녀 또한 자신도 모르게 어머니를 닮아가는 강인함으로 성장하지 않았을까? 딸들은 자신의 '엄마'를 거울로 삼아 닮고 싶지 않지만 닮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나이가 들어서 보게 된다.

 

'아니 계집애가 집안 망신을 시켜도 분수가 있지,무슨 흉내를 못내 하필이면 덕물산 무당의 작두춤 흉내를 내느냐?'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박적골에서의 유년의 삶이 끝나는가 했는데 그래도 여름방학마다 박적골의 냄새를 잊지 않고 찾아 고향의 푸근함에 훔뻑 취하기도 했던 따뜻했던 시절을 점점 서울깍쟁이처럼 서울생활에 물들어 가고 영혼의 지주와도 같은 오빠의 삶을 통해 좀더 강단진 자신으로 변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자신과 함께 한 기억들을 사진의 필름에 담아 놓듯 정확하게 담아 놓아 훗날 '소설'속에 그대로 담아 내는 노력을 기울였으니 참으로 대단하고 그 노력에 감사할 따름이다. 혼란의 시기를 살아 온 사람들의 '증언'과도 같은 작품들을 읽다보면 우린 너무 쉽게 고난의 시절을 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후손들에게 물려줄 정당한 '기록'을 남겨 놓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게도 된다.

 

오빠의 삶은 왠지 모르게 뭉크의 '절규'를 보는 느낌이다. 어딘지 모르게 그를 따라 다니는 죽음의 그림자가 어딘가에서 그를 노려 보고 있는듯 하지만 '유년의 기억'속에 나오는 저자의 삶은 길가에 흔하디 흔했던 싱아와 같은 잡초의 삶처럼 어디에서도 잘 견디고 생명력을 이어나갈 수 있을만큼의 강인한 힘을 얻고 있는듯 하고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세세하게 잡아내는 '매의 눈'과 같은 날카로움을 어린시절부터 간직하고 그 기억력을 잡아 준 것은 '어머니'의 이야기의 힘과 어머니가 오빠에게로 향하는 대신 그녀를 방치해두듯 했던 시간,그 시간에 만날 수 있었던 책인 고전의 힘이 아니었나 한다. 그녀가 풀어내는 이야기의 힘도 재밌게 빠져들 수 있지만 무엇보다 그녀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책'을 따라 가게 되었다. 힘든 시간을 이겨내게 해준 책의 힘이 무엇보다 저자를 오늘날 우리곁에 있게 해 준듯 하고 저자를 외롭지 않고 잘 이겨내게 만들어주지 않았을까. 자신의 유년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자신이 놓치고 보지 못했던 부분도 볼 수 있고 자신을 또한 개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가져본다. 정말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아니 다 어디로 갔을까? '당신의 유년의 기억은 다 어디에 있느뇨?' 묻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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