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네 집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첫사랑을 이룬 사람도 있겠지만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아야 더 첫사랑 답고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생각을 한다.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라 더 아련하고 그립고 다시 꺼내 보아도 달콤하고 쌉쌀하고 오래도록 빛이 발하지 않고 그대로인듯 하다. 소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에서 '첫사랑'과 '남편'과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저자가 미군부대에 다니던,집안의 기둥으로 알고 있던 오빠의 죽음으로 인해 갑자기 미성년자에서 한집안의 가장이 되어 경제력을 책임져야만 했던 시절,그녀는 등떠밀리듯 미군부대에 들어가게 되고 왠지 모르게 카탈을 부리던 자신을 닮은듯도 하고 안닮은듯도 한 '첫사랑'과의 만남으로 인해 어쩌면 그 시간을 좀더 슬기롭게 이겨내게 되지 않았을까.

 

사람의 운명은 정말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다고 하는데 저자가 만약에 '첫사랑'과 인연이 되어 결혼을 하게 되었다면 두사람의 운명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만든 그날의 만남이 성사되지 않은 후로 둘은 완전히 다른 길을 된 것이 어쩌면 그 둘의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자신 안에 고이 잠자고 있던 '첫사랑' 에 대한 그 슬프고도 쌉쌀한 추억을 고희가 넘어서 끄집어 내었다니 참으로 대단한듯 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메디슨카운티의 다리'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들고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에서 다 담아내지 못한 첫사랑과 남편과의 만남과 결혼생활,시집살이 등을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이야기 보따리를 술술 풀어내듯 재밌게 담아내어 읽으면서 왠지 모르게 그 이야기 늪속으로 자꾸면 빠져 들어가 발을 뺄 수 없는 상황처럼 연이어 읽게 되었다.

 

시를 줄줄이 외어 들려주고 음악을 좋아하여 섬세함으로 듣던 그와 결혼을 한 것이 아니라 은행원이라는 안정된 직업을 가진 남편과 결혼을 하면서 미군부대생활도 접고 홀시어머니와 함께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지만 음식솜씨가 남다른 시어머니 밑에서 장바구니 들고 나들이 가듯,자신의 현재의 삶에서 자유로운 탈출을 하듯 하는 삶을 과감없이 잘 그려냈다. 월급에서 주급을 받아가며 분명 시어머니와 자신은 비교도 되지 않는 헤택에서 장보기와 겹쳐 첫사랑 그와 만나는 시간은 한참 이슈이던 '자유부인'처럼 자신을 정당화 시켜 나가는 불륜 아니 로맨스를 꿈꾸는 시간처럼 자신을 변화시켰지만 첫사랑과 함께 하던 일탈의 꿈마져 산산이 부서져 버린 후 그가 뜻하지 않게 뇌수술을 받게 되고 실명및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이 뇌 속에 기생하던 '벌레'라는 생각에 첫사랑에 대한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는 그녀,정말 상사병이 아닌 벌레들에 의한 그들의 재회였단 말인가.분명 그 밑바탕에는 서로에게 터 놓지 못한 '첫사랑'에 대한 감정이 기저에 깔려 있을 것이다.

 

자존심과 자만감이 강한 친정어머니와는 다른 시어머니의 생활과 모습,음식에 대하여 깐깐하고 홀로 외아들을 살려 낸 자신의 믿음에 강한 분,박수무당에게 의존하여 아들의 생을 좌지우지 당하고 계셨지만 그것이 시어머니의 믿음이고 또 어쩌면 그렇게 하여 남편이 살아 남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시어머니의 강단진 삶이 비교되기도 하고 그녀는 미군부대에서 자신의 삶을 올바르게 살아 냈다면 그녀가 자리를 내면서 소개를 한 '춘희'라는 여성은 끝내 양공주로 타락하여 동생들을 모두 건사하고 가정을 일으켰지만 자신의 삶은 없는 쭉정이 같은 삶을 살아 온 그 시대의 아픔을 간직한 삶이지 않을까. 그런가하면 친정어머니는 하숙으로 친정올케는 포목집으로 강단지게 집안을 일으켜 나가는 삶을 보면 전란의 힘든 시기를 일구어내고 일으켜 세운 것은 박수근 화백의 그림에 등장하는 임을 인 여인네들의 삶처럼 아마도 여인네들의 힘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지지 않았을까.

 

한국전쟁및 질곡의 시대를 거치면서 할아버지와 오빠의 죽음 이후에 남겨진 것은 '여인네들의 삶' 인듯 하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남자들의 힘이 사라지고 나서 재건에 앞장선 것은 '여인네'들의 강인한 삶이다. 첫사랑마져 상이군인으로 뇌수술로 인해 실명으로 삶이 무너지는 듯 하지만 그녀도 올케도 비록 양공주로 자신의 삶을 잃어버렸지만 여인네들은 꿋꿋하게 생산과 삶을 강인하게 이어간다. 저자의 이야기 속에는 '집'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어머니로부터 이어진 집에 대한 강한 집착이라 할 수 있는 전란의 시대가 안긴 자신의 집에 대한 생각이 그녀 또한 자신의 집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고 집은 가정을 온전하게 지켜 주는 울타리처럼 한집안을 튼튼하게 살아나갈 수 있도록 밑바탕이 되어 준다. 집과 연결된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그 속에서 첫사랑도 있고 동생들을 위하여 몸을 팔아야 되는 양공주가 사연도 있고 자식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버리듯 한 허리가 기역자로 꼬부라진 노모의 이야기도 있고 남편이 먼저 갔지만 보따리 장사로 골목에 포목점으로 생을 튼실하게 일으켜 세운 여인네의 강인한 삶도 있고 자신 또한 배운것은 없었지만 음식과 자식에 대한 남다른 생각과 솜씨를 가진 시어머니로부터 배워 그녀 또한 똑부러진 삶을 이어나갈 생활꾼으로 거듭나고 있는 여인네의 삶을 보여준다.

 

집이 집으로 생명을 다하면 팔고 다른 집을 산다. 그 집은 다시 새로운 이들에 의해 생명을 찾듯 그 집에 맞는 삶으로 채워지고 사람들 또한 집과 함께 성장을 거듭하면서 첫사랑의 아픔도 잊고 자신의 삶에 안주하며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히 펼쳐 나갈 수 있는 듯 하다. 마지막 '춘희'의 취중진담처럼 이어진 이야기가 아마도 그 시대를 살아 온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아닐까. 사람이나 물이나 어느 그릇에 담겨 지느냐에 따라 달라지듯이 집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시간차를 두고 이어져서인지 재밌게 읽어나갈 수 있고 수다쟁이 할머니가 지난 시간을 추억하며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잘 사용하지 않는 우리말도 나오고 격하게 할 말이 그냥 거침없이 쓰여지기도 하여 속 시원하게 읽었다.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 뿐만이 아니라 첫사랑을 간직하고 결혼생활을 이어 나간 그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듯 하여 전란을 헤쳐 나온 그들의 삶이 그릇마다 다 다르게 담겨진 것이 씁쓸하기도 하고 그것이 삶이라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는 듯 하여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첫사랑, 그 사람에 대한 미안함을 어쩌면 이렇게 담아 낼 수도 있었겠다 하는 생각을 가져보며 참 용기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도 들고 그는 그사람 나름대로 또 다른 삶을 잘 살아낸듯 하여 가슴 한 켠이 훈훈해지기도 하면서 아려오는 이야기.자신의 삶을 반추한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인데 그 모든 일들을 오롯이 참 잘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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