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양장) - 유년의 기억 소설로 그린 자화상 1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불현듯 싱아 생각이 났다. 우리 시골에선 싱아도 달개비만큼이나 흔한 풀이었다. 산기슭이나 길가 아무 데나 있었다. 그 줄기에는 마디가 있고,찔레꽃 필 무렵 줄기가 가장 살이 오르고 연했다. 발그르슴한 줄기를 꺾어서 겉껍질을 길이로 벗녀 내고 속살을 먹으면 새콤달콤했다. 입 안에 군친이 돌게 신맛이,아카시아꽃으로 상한 비위를 가라앉히는 데는 그만일 것 같았다.' 요즘 아이들은 '싱아'를 알까? 내가 어릴 때는 위의 글에 나오듯이 정말 흔한 풀이었고 간식처럼 뚝뚝 꺾어서 껍질을 벗기고 새콤한 것을 잘도 먹었다. 그때에는 찔레순도 연하게 나오는 철이라 찔레순도 꺾어서 겉껍질을 멋기고 연한 부분을 먹었다. 싱아도 찔레순도 아카시아꽃도 그때의 아이들에게는 간식거리나 마찬가지였고 그때는 흔하디 흔한 풀이었지만 지금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을 보면 그만큼 먹거리가 좋아지고 다양해졌다는 것일 것이다.

 

작가의 맹자의 어머니보다 더한 강한 모성을 소설속에 담아낸 부분을 <나목>에서도 읽었다. 물론 오빠에 대한 이야기도,고난한 지난 삶도 소설속에 고스란히 녹아나 그때의 시대와 실상을 여실히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은 그녀가 개풍 박절골에서의 어린시절과 아들의 공부를 위하여 장손이며 맏이지만 서울행을 강행하여 홀로 삯바느질을 하여 강건하게 아들 공부를 시키고 더불어 딸인 그녀까지 신학문을 공부하게 하는 어머니의 강단진 모습과 여리고 섬세하면서도 집안의 들보노릇을 하는 오빠에 대한 기억과 그 주변인처럼 모든 것을 바라보고 '고발'하듯 담아내는 저자의 모습을 60년대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그때까지 담아낸 소설이다.

 

'이런 글을 소설이라고 불러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순전히 기억력에만 의지해서 써 보았다.'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듯이 혹은 자서전을 쓰듯이 써낸 글이라 저자는 '소설이라 할 수 있을까?'했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냈기 때문에 더 사실적이고 진솔하고 꾸밈없는 글과 현실이 잘 담겨져 있어 어느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한 것 같다. 누구의 인생을 들여다보던 한편의 드라마이고 한 편의 대하소설이겠지만 시대가 시대이고 그녀처럼 또렷하게 '기억'해 내고 '사실적'으로 담아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읽으면서 '어쩜'하고 깜짝 깜짝 놀라며 내 유년의 기억을 떠올려 보지만 그 모든 것들이 생생하게 기억나기란 힘든 일이다. 그런면에서 박적골에서 아버지를 세 살에 여의어 할아버지를 혹은 아버지처럼도 여기면서 생활하는 적나라한 모습들은 내 어린시절과도 겹쳐 보지만 그런 생생함은 간혹인데 너무 사실적이라 그녀가 풀어내는 '자화상'이 아니라 한 편의 다큐를 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실감나서 빠져들며 읽게 된다.

 

저자의 삶을 유지해 준것은 누구보다 생활력이 강하고 어느 아버지보다도 더 강건한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 밑에서 때론 아버지로 때론 아들로 오빠로 가장의 삶과 현실적 사상 속에서 우왕좌왕 하던 '오빠' 가 아니었나. 그녀의 어머니의 삶은 그야말로 '맹모삼천지교'보다 더한 삶인듯 하다. 자식들을 위하여 아니 집안의 기둥인 '아들'을 위하여 해마다 이사를 밥먹듯 해도 힘들이지 않고 하는가하면 삯바느질로 힘겨워도 꾹 참아내며 집장만까지 하는 강인함,한국의 어머니의 모성애와 강인함을 함께 보는 듯 하다. 그런 어머니를 보아오며 자랐으니 그녀 또한 자신도 모르게 어머니를 닮아가는 강인함으로 성장하지 않았을까? 딸들은 자신의 '엄마'를 거울로 삼아 닮고 싶지 않지만 닮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나이가 들어서 보게 된다.

 

'아니 계집애가 집안 망신을 시켜도 분수가 있지,무슨 흉내를 못내 하필이면 덕물산 무당의 작두춤 흉내를 내느냐?'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박적골에서의 유년의 삶이 끝나는가 했는데 그래도 여름방학마다 박적골의 냄새를 잊지 않고 찾아 고향의 푸근함에 훔뻑 취하기도 했던 따뜻했던 시절을 점점 서울깍쟁이처럼 서울생활에 물들어 가고 영혼의 지주와도 같은 오빠의 삶을 통해 좀더 강단진 자신으로 변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자신과 함께 한 기억들을 사진의 필름에 담아 놓듯 정확하게 담아 놓아 훗날 '소설'속에 그대로 담아 내는 노력을 기울였으니 참으로 대단하고 그 노력에 감사할 따름이다. 혼란의 시기를 살아 온 사람들의 '증언'과도 같은 작품들을 읽다보면 우린 너무 쉽게 고난의 시절을 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후손들에게 물려줄 정당한 '기록'을 남겨 놓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게도 된다.

 

오빠의 삶은 왠지 모르게 뭉크의 '절규'를 보는 느낌이다. 어딘지 모르게 그를 따라 다니는 죽음의 그림자가 어딘가에서 그를 노려 보고 있는듯 하지만 '유년의 기억'속에 나오는 저자의 삶은 길가에 흔하디 흔했던 싱아와 같은 잡초의 삶처럼 어디에서도 잘 견디고 생명력을 이어나갈 수 있을만큼의 강인한 힘을 얻고 있는듯 하고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세세하게 잡아내는 '매의 눈'과 같은 날카로움을 어린시절부터 간직하고 그 기억력을 잡아 준 것은 '어머니'의 이야기의 힘과 어머니가 오빠에게로 향하는 대신 그녀를 방치해두듯 했던 시간,그 시간에 만날 수 있었던 책인 고전의 힘이 아니었나 한다. 그녀가 풀어내는 이야기의 힘도 재밌게 빠져들 수 있지만 무엇보다 그녀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책'을 따라 가게 되었다. 힘든 시간을 이겨내게 해준 책의 힘이 무엇보다 저자를 오늘날 우리곁에 있게 해 준듯 하고 저자를 외롭지 않고 잘 이겨내게 만들어주지 않았을까. 자신의 유년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자신이 놓치고 보지 못했던 부분도 볼 수 있고 자신을 또한 개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가져본다. 정말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아니 다 어디로 갔을까? '당신의 유년의 기억은 다 어디에 있느뇨?' 묻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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