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하루 다른 행복 - 부처 핸섬, 원빈 스님과 함께 가는 행복의 길
원빈 지음 / 이지북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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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은 날은 세상이 아름답고, 기분 나쁜 날은 세상이 암담합니다.'그것'이 달라지니 세상이 달라집니다.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든 이루어집니다. 당신이 보는 세상이 당신의 미래입니다.어떤 세상을 바라보실 건가요? 어떤 세상을 자녀에게, 후손에게 대물림해주실 건가요?

 

올해의 우리의 화두는 '행복'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서점가에도 '행복'이 들어간 제목의 책이 더 많이 우리를 찾아 오는 듯 하다. 우리는 늘 '행복'을 꿈꾸지만 네잎클로버의 '행운'을 세잎의 '행복'을 지나쳐 더 많이 기다리기도 하고 원하기도 한다. 왜 늘 우리가 처한 현실이 '행복' 바탕위에 있는데 그 행복을 지나쳐 행운을 기대하는지. 행복과 불행은 동전의 양면처럼 생각하기 나름이다. 자신이 처한 현재의 상황이 행복이라 생각하면 행복이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불행으로 치닫는다.정말 위의 글처럼 기분이 좋으면 세상 모든 것이 다 아름답게 보이고 기분이 나쁘면 불행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암흑이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에 달려 있다.세상을 기분 좋게 아름답게 볼 수 있는 '창'을 열어 주는 '부처 핸섬', 원빈 스님과 함께 하는 시간 기분 좋았다.

 

연애인과 같은 이름의 원빈 스님,내가 가끔 가는 절과 인연이 있는 스님이라 더 친근감이 가서 친구와 이야기를 하는 기분으로 읽게 되었다. 원빈 스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라 하는데 페친이 아니기에 몰랐는데 가끔 이런 글을 만나면 영양제처럼 하루가 에너지 충만하여 기분 좋은 하루가 될 수 있다. 행복은 타인이 줄 수 없다. 내 안에서 내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내는 '샘물'과 같은 존재이다.하지만 이런 기분 좋은 글을 읽으면 바이러스처럼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글,욕심을 내려 놓고 행복으로 충만하게 만드는 메시지들은 대부분 우리가 지키기에는 어렵지만 읽는 순간에는 내려 놓아야 되는 것을 알기에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기는 것은 좋은 것이고, 지는 것은 나쁜 것이라고 정해놓은 개념들을 위치성이라고 합니다. 이 위성을 놓아버릴 때, 즉 이기고 지는 마음을 초월할 때, 이기는 것에 더 이상 집착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진다고 해서 더 이상 슬퍼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우리는 늘 누군가를 이겨야만 하고 남보다 더 가지기를 원한다. 내가 가진 것을 내가 아직 가지지 못한 것을 '내려놓기'란 정말 힘들다. 내가 가진 것에 대하여 만족을 한다면 행복은 쉽게 얻을 수 있고 인정하게 되지만 내가 가지지 못한 것 때문에 '행복'은 자꾸만 멀어지게 된다.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가까이 내 주변에 있다. 그것을 감지하지 못할 뿐이지 행복은 늘 나와 함께 있는 것이다.현대인들은 너무 바쁘게 살아가고 나를 보고 인정하고 받아 들이기 보다는 남을 따라가거나 남보다 더 '좋은' 위치 더 좋은 것을 원한다. 행ㅂ복을 지나 그 행복을 맛보기 이전에 다른 감정을 만나게 되는 순간이 많다.현재 자신에게 만족한다면 행복은 내 안에 있는데 그 '위치'를 보게 한다.

 

행복해지고 싶지만 불행하기만 한가요?

착각입니다.

아직 행복을 선책하지 않.았.을.뿐입니다.

행복을 선택하고 행복에 대해 배워야 합니다.

우리에게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행복을 선택하고 행복을 느낄 무한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결코 어려운 것들이 아니지만 평상시에 실천하기에 또 힘든 것들이 또한 너무 쉽다고 생각하는 것들일 수 있다. 나의 일상은 단조롭기도 하고 평범하기도 하다. 그 속에서 행복을 찾는 일이란 힘들다고 느끼겠지만 모든 것이 다 행복이라고 생각을 하면 나의 하루는 행복으로 충만하다. 내가 늘 함께 하는 식물들에게서도 어제와는 다른 오늘을 발견하게 되면 그것이 행복이다. 어제까지는 아니 몇 년을 키워도 꽃대를 올리지 않았던 것이라 꽃이 피려니 생각도 못하던 것이 '오늘' 갑자기 보다보니 꽃대가 올라와 있는 경우를 발견하게 되면 무한한 행복으로 빛이 난다.그런 경우가 며칠전에 일어났다. 몇 년 키운 사랑초에 꽃이 피지 않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꽃대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이 지금 꽃을 피우고 있는데 그것만 보아도 행복이다. 그 꽃은 내게 행복을 가져다 주었다. 그것이 결코 큰 것이 아니라 정말 작은,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칠 수도 있을 식물인데 작은 꽃대 하나가 내 우주를 바꾸어 놓았다. 행복은 그런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먼저 연습하세요. 먼저 다가가보세요. 먼저 칭찬해주세요.먼저 사랑을 말하세요. 다가가는 것은 사랑이요,물러서는 것은 두려움입니다. 세상과 자신과 소통하고 싶다면? 한 걸음 더 세상을 향해 다가서세요.

 

부처 핸섬,원빈 스님의 말씀은 그런것 같다. '세상을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가라' 물러서지 말고 두려움을 갖지 말고 다가가 사랑하고 칭찬하고 먼저 안아주는 것이다. 남이 내게 다가 올 때까지 무한정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세상을 향해 한걸음 다가가는 것이다. 사랑은 받을 때도 물론 행복하지만 나눌 때가 더 행복하다. 내 안에 쌓아 놓을 때보다 나누고 베풀 때가 더 많은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요즘은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 놓아 많은 이들과 나누려는 세상이다. 그런가하면 한편에서는 더 많은 부를 축적하기 위하여 해서는 안되는 욕심으로 망치는 사람들도 분명 있다. 행복은 내것을 두레박을 퍼 올리며 남에게 베푸고 나눌 때 더 배가 되고 부풀어 오르는 것이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그런 자신으로 나를 먼저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 내가 바뀌지 않으면서 세상이 바뀌길 기다리는 바보가 되지 말고 먼저 자신을 바꾸면 세상도 바뀐다는 값진 말씀들이 원빈 스님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을 해서 기분 좋게 내 자신을 바라보고 인정하며 행복하게 해준다. 세상을 바꾸려면  힘들지만 내가 바뀌면 참 쉽다.그리고 행복하다.

 

지금까지 내가 소중히 여긴 고집은 나를 힘들게 만든 똥 덩어리일 뿐입니다. 인생이라는 등산, 그 냄새나는 고집을 끝까지 짊어지고 힘들게 가실 건가요? 던져버리고 가뿐하게 즐거운 마음으로 가실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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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D현경 시리즈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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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제목이 참 독특하다. 대부분 우리가 기억하는 국경일이나 그외 큰 사건이 있던 날은 숫자로 많이 불린다. 숫자 속에는 피해를 당한 이들의 고통과 그 고통을 현재진행형으로 껴안고 있는 가족들의 아픔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요코하마 히데오'의 이 작가의 작품은 처음인데 그는 '경찰소설'을 쓰면서 사건이 아닌 '경찰' 그중에서도 외진 곳에서 있는 인물들을 더 부각시키고 사회문제와 함께 결부한 작품을 쓴다고 하는데 이 작품은 여기저기 소문이 대단해서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기회가 왔다.그런데 정말 두껍다. 대부분의 미스터리소설은 '사건'이 주가 되는데 이 작품은 '사람'이 주가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4, '14년 전' 아마미야 쇼코 유괴 살인사건' 을 가리키는 기로호, D현경 관내에서 일어난 강력 범죄사건이었다. 몸값 2천만 엔을 고스란히 빼앗겼고, 납치된 일곱 살배기 소녀는 참혹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아직 범인은 붙잡히지 않았다. 당시 수사1과의 특수범 수사계에 있었던 미카미는 ' 추적반'의 일원으로 몸값 인도 장소로 향하는 피해 아동 아버지의 차를 쫓았다.

 

소설의 시작은 미카미와 그의 아내인 미나코는 가출한 딸이 찾는다.그들은 소녀의 시체가 안치된 곳으로 가서 혹시나 가출한 딸인 아유미의 시신인지 확인을 하며 아유미가 아니어서 안심을 하지만 누군가는 딸의 시체를 보고 무너져 내릴 것이다. 그들은 딸이 어딘가에서 살아 있기만을 바란다. 그렇다면 미카미의 딸 아유미는 왜 집을 나갔을까? '외모' 때문이다. 아빠를 닮아 얼굴 어느 한 곳 자신의 맘에 드는 것이 없던 아유미는 마음의 병까지 얻어 병을 고치기 전에 집을 나가버렸다. 그로 인해 아내마져 마음의 병을 갖게 되었고 미카미는 20여년 동안 형사부에 있가 홍보담당관으로 인사이동을 하고 경찰이라는 조직과 기자라는 조직과 부딪히게 된다. 경찰과 기자, 물과 불의 관계 속에서 그들은 늘 부딪히게 되고 이 난국을 헤쳐 나가야 하는데 형사부에 속해 있던 미카미의 몸속엔 아직도 형사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처럼 자꾸만 형사부쪽으로 맘이 기울게 되는데 소설 속엔 다시 형사부와 경무부의 마찰이 그려진다. 홍보담당관이면서 형사부를 응원하는 그에겐 어쩌다보니 이도저도 아닌 그런 형상이 되고 말았다. 이 난국을 슬기롭게 헤쳐나가려면 누군가는 총대를 메어야만 한다.선구자로 나선이가 미카미일까.

 

홍보실은 창문이다. 그렇게 말할 건 바로 담당관입니다.그런 분이 다른 경찰들과 마찬가지로 조직 편만 들면 어쩌라는 겁니까.바깥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조직에 쓴소리를 할 각오와 객관성을 갖춘 사람이 없으면 경찰은 영영 창문 없는 블랙박스로 남을 겁니다.그래도 괜찮다는 겁니까?

 

'64사건' 이 시효 만료 1년을 앞두고 경찰총장이 피해자 가족을 방문한다고 한다. 하지만 일차적으로 미카미가 피해자 가족을 만났을 때 그는 거절을 한다. 왜 일까? 그의 굳은살이 박힌 손과 그동안 아내가 뇌출혈로 인해 죽었다. 딸의 죽음은 또 다른 피해자를 남긴 것이다. 그리고 아마미야 또한 온전한 삶을 살지 않은것처럼 급노화가 왔다.일곱살 딸의 유괴 살인사건으로 인해 가족 모두가 피해자가 되어 삶을 잃듯 했다. 그 사건은 모두에게서 지워지듯이 아직도 범인을 잡지 못했고 이젠 경찰들의 이권 다툼에 이용되려 하고 있다. 피해자 가족은 잊을 수도 없고 평생 내려 놓을 수도 없는 사건인데 왜 이런 아픔이 남의 이권 다툼에 이용이 되어야 할까? 14년 동안 잠잠했던 사건인줄 알았던 '64 사건' 뒷이야기처럼 그 날의 누군의 잘못으로 인해 사건 관련자인 경찰들이 종적을 감추었거나 은둔자가 되었다. 그런가하면 함구령이라도 내려진 것처럼 쉬쉬하는 부분이 있다. 무엇이 숨겨져 있길래 '64사건'의 문이 닫혀 있는 것일까? 미카미는 그 창문을 활짝 열고 그 속을 들여다 보고 싶다. 은둔자와 종적을 감추었던 이들 그리고 사건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하나 하나 들어가며 '64사건'의 편린을 맞추다 마지막 한조각을 찾아 완벽한 조각을 맞추듯 '숨은그림'을 모두 찾아내게 된다. 그리고 그 사건과 함께 '경찰조직'의 힘에 대하여 알게 된다. 형사로 편하게 살아 왔던 그의 삶이 이젠 홍보담당관으로 살아야 하는데 형사부를 벗어남으로 해서 경무부와 형사부의 '조직'이란 것을 제3자의 눈으로 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앞장서 총대를 메게 된다. 잘못되었다면 누군가는 앞장서서 바꾸어야 한다. 비록 지금 자신이 나설 떳떳한 상황은 아니다. 딸은 가출한 상태이고 아내는 은둔자처럼 되어 가고 있다. 그래도 형사부와 경무부의 '박쥐'가 된다해도 이 물에서 오랜 시간을 견뎌내려면 바꾸어야 한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얼굴, 아무것도 믿지 않는 얼굴이었다. 아마미야가 빼앗긴 것은 감각이나 관념이 아니었다. 사랑 있는 사랑스러운 딸을 잃었다. 그에게는 쇼와도,헤이세이도 없다.아마미야는 딸이 없는 세상을 표류하고 있다.

 

미카미 자신의 딸은 '얼굴',외모가 맘에 들지 않아 병적인 생활을 하다가 가출을 했지만 딸을 잃은 아마미야는 딸의 얼굴이 아닌 '사랑스러운 딸'을 잃었다고 했다. 소중한 것을 잃은 사람의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리고 아내마져 세상을 등졌다. 그에게 남겨진 것은 무엇일까? 그런 아마미야를 통해 미카미는 가출한 딸을 다시 떠올리게 되고 딸과 함께 했던 모든 것들을 되새김질 하며 딸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된다. 살아서 돌아오기만 간절히 바란다. 그렇다면 그의 아내는 못생긴 자신의 외모를 보고도 결혼을 했다면 후회하지 않을까? 그녀는 무척이나 미인인데.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외모지상주의에 젖어 젊은이들이 자신감을 잃거나 자신의 정체성을 잃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목숨도 하찮게 취급하는 사회문제를 그 밑에 깔아 두기도 한다. 그로인해 가정이 와해될 수 있음을 간접적으로 그리기도 한다. 하지만 딸을 잃은 아마미야에겐 외모가 중요한게 아니라 사랑스런 딸로 기억된다. 자신의 인생을 바치듯 모든 것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버린 사건이었다.

 

한편 언론은 보도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스스로 제한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지만,그 반동을 이용해 권력 감시 기능의 중요성을 소리 높여 외치고, 나아가서는 제안을 수락했다는 걸 내세워 수사 정보를 공개하라며 경찰에 요구한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일반적인 취재로는 절대로 수집할 수 없는 대량의 수사 정보가 가만히 있어도 굴러들어 오는 셈이니 언론에 유리한 계약이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기자들은 거의 없다.

 

이 소설에서 미카미의 역할을 크다. 경찰과 기자라는 두 조직 사이에서 완충역할을 하기도 하는가 하면 형사부와 경무부의 완충지대가 되어야 한다. 그런가하면 조직이란 '개인'과 '개인'이 어울려 만든 사회다. 그 조직속에서 개인들이 어떻게 어울려서 큰 힘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조직의 성패가 달려 있다. 그 앞에서 멋진 지휘자 역할을 하는 미카미는 개인대 개인으로 아직 잘 뭉쳐 굴러가지 않던 홍보실을 그야말로 한 조직으로 멋지게 탈바꿈하게 만든다. 비 온 뒤에 땅이 단단하게 굳어지듯이 '64'사건의 재조명으로 인해 홍보실은 그야말로 홍보실로 자리매김하고 형사부가 아닌 홍보실의 담당관으로 미카미는 자신의 자리가 '우연이 필연을 만들듯'이 우연히 인사이동으로 인해 홍보담당관이 되었지만 그 옷을 멋지게 자신의 옷으로 소화해낸다. 그런가하면 '64사건'은 노인이 된 아마미야의 14년 동안 사건을 잊지 않고 기억한 덕분에 미제사건으로 남았던 것을 멋지게 결말을 짓는다.

 

저자는 추리소설 속에 '탐정'이나 '트릭'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경찰', 그 속에서도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그늘에 가려진 사람을 그리고 있다. 이 한편의 소설이 10년의 시간속에 갈고 닦아져 나온 것이라고 하는데 난 하루 온종일 꼬박 앉아서 읽으며 '너무 쉽게 읽는것 아닌가?' 하는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어느나라나 사건이 일어나면 그와 관계된 많은 이들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하여 움직인다. 모두가 잘 움직여 사건이 해결이 나면 좋겠지만 운이 따르지 않아 '미제사건'으로 남는 경우 피해자들은 더욱 큰 고통을 안고 평생을 살아간다. 누군가는 그 사건을 기억해야 하는데 그것이 '공소시효'를 넘기다 보면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져 버리고 만다. 그렇다면 피해자의 아픔은 누구의 것이란 말인가? 그 피해자와 사건을 기억하고 해결하려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건은 미제사건으로 남겨진다고 해도 피해자의 고통과 아픔을 반은 나눈 것이라 본다.

 

미카미는 홍보실은 '창문'이라고 표현을 한다. 그 창문을 누군가 꼭 닫아 놓았다. 안에서 닫았건 밖에서 닫았건 창문이 닫혀 있다. 누군가는 밖으로 나가서라도 함께 열어야 한다고 말을 한다. 경찰은 형사부 경무부와 도시와 지방이 서로 대립하여 싸운다. 그런가 하면 기자와 경찰, 사건과 언론은 서로 대립하여 싸우고 가해자와 피해자 또한 대립하여 있지만 가해자가 피해자의 고통과 아픔을 알까?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그 고통과 아픔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주싶고 밖에서 볼 수 있는 경찰의 창문이 닫혀 있다면 누군가는 나서서 '국민의 알 권리'만큼 열어야 한다고 미카미는 주장하고 있다.사람의 외모가 아니라 그 내면을 봐야 하는 것처럼 조직도 중요하지만 그 속에 있는 개인들의 능력 또한 중요한 것이고 개인과 개인이 뭉쳐야 조직이 굴러가는 것이다. 누군가는 지구대의 창문을 올빼미의 눈으로 광고를 그려내기도 했지만 밤에도 깨어 있어야 하는 시민의 안전을 책임질 경찰, 그 뒤의 그늘에서 활동하는 미카미와 같은 이들이 있기에 우린 좀더 진실성이 있는 '언론' 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사건 앞에서 보도 앞에서 진실해야 하듯이 조직의 직책이 밥그릇 싸움에 무대가 되어서는 안된다. 12년간 신문기자로 활동해서인가 기자와 경찰의 밀당의 상황을 잘 그려내기도 했고 사건에 주가 되는 추리소설이 아닌 그 뒤에서 활동하는 이들을 중심적으로 그려내 그 깊은 속을 보다 더 진실되게 들여다보는 기회를 준 소설이며 그의 딸을 찾지 못한 부분이 남아 있는데 그 또한 다음 소설을 예고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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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여시와 함께 뒷산 산행,아카시아 향기가 너무 좋다

 

 

 

아카시아꽃과 찔레꽃이 핀 뒷산은 아침이면 날마다 날 유혹한다.빨리 산에 오라고.하지만 왜 그리

집에서는 가기가 싫은지,그 마음을 모두 물리치고 얼른 박차고 나가야 하는데 주춤주춤하다보면

어느 날은 산에도 못가고 그냥 주저앉고만다. 오늘도 그러게 생겼다.날은 점점 더워지는데 아침에

얼른 준비하고 가야지 했는데 친구의 전화를 바다가 늦어지고 초록이들 물주고 한바퀴 돌다보니

시간이 훌쩍 점심으로 치달았다.얼른 준비하고 가야지 하면서 청소기 한번 밀고 얼른 메밀차 챙기고

가방을 챙기고 주섬주섬 옷을 입는데 여시가 먼저 현관앞에 나가 낑낑거리며 난리다.오늘 데리고

나가지 않으면 큰일 날것처럼 지지배가 하도 난리를 피워 분리수거를 들고 나가면서 여시까지 안고

낑낑거리며 나갔다.밖에 나가니 나보다 좋아하는 여시,신났다.녀석을 산 초입까지 안고 가서 산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을 다 오른 후에 땅에 내려 놓는데 내려놓자마자 모든 것을 배설해 버리는 녀석,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산을 오른다. 온통 아카사아향이 뒤덮었다.초록세상을 말이다.

 

 

 

 

뒷산은 온통 하얗다. 아카시아 찔레꽃이 산을 뒤덮어 하얗기도 하고 아카시아향기와 찔레꽃 향기로

산행하기에도 정말 좋다. 모처럼 산에 온 여시는 신이나서 '킁킁~~'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얼른 내가 앞장서서 올라갔더니 잘 따라온다. 숲이 우거져서 이젠 그늘도 많아 산에 오면 덮다는 것

보다는 시원하고 상큼하다는 생각이 더 드는데 땀은 비오듯 쏟아져 내린다. 잠시 올랐을 뿐인데

벌써 땀으로 훔뻑 젖었다. 내일부터는 이른 시간에 올라야할 듯 하다는 생각을 가져보며 여시와

쉬엄쉬엄 오르는데 '음~~~이 향기 너무 좋다' 폐부 깊숙히 들어 마시고 또 들여 마시고 해도

향기는 무한대로 쏟아져 나오니 정말 좋다. 아카시아는 벌써 손만 대도 쏟아져 내리는 것도 있다.

길에 하얗게 떨어지기 시작이다. 이렇게 쏟아져 내리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후루룩 후루룩..' 꽃비

처럼 그렇게 쏟아져 내린다. 그 또한 얼마나 낭만이고 그 길을 걷는 기분이 좋은지.

 

노루발풀..아직 안피었다

 

 

 

 

 

여시와 천천히 올랐는데 정상이다. 꽃향기를 맡으며 올라서인가 힘든줄을 모르고 올랐고

땀이 흘러 나오니 몸이 더 가뿐하고 개운하다. 땀을 이렇게 한번씩 줄줄 흘려줘야 노폐물이 나오고

몸이 더 건강해지는 느낌,하루에 한시간씩 뒷산을 산행하며 몸속 노폐물도 빼내고 건강도 다지고

산림욕도 하고 초록에너지를 얻어 가는 것이 얼마나 삶의 에너지를 주는지.여시도 이 맛에 뒷산에

가고 싶어서 난리를 필까. 녀석 정상 근처에 오더니 힘든가 헉헉,그래서 앉고 다녀야 했다. 덕분에

난 더 힘들어진다.더운데 녀석까지 안고 다녀야 하니. 거기에 파리나 그외 곤충들을 쫒아줘야 하고.

암튼 녀석을 데리고 오면 내가 배로 더 힘들다. 그래도 혼자 오면 이녀석이 난리니 가끔 이렇게

녀석에게도 여행과 같은 시간을 선물해준다.

 

 

 

밤나무

 

뽕나무

 

 

정상은 아카시아가 빙 둘러서 너무도 많아 이곳에서는 아카시아 향에 훔뻑 취할 수 있다.

그리고 이곳에 풀처럼 박하가 자라고 있어 몇 개 뽑았다. 화분에 옮겨 심어 보려고 뽑았는데

집에서도 잘 살지. 그리고 여시를 안고 작은 아카시아나무가 있는 곳으로 가서 한번 아카시아꽃전을

해 먹을 양만 아카시아꽃을 땄다. 향이 짙어지니 벌도 많고 그외 다른 곤충도 많고 여시가 힘들어 하

기도 하고 꽃을 따는 일이 수월하지가 않다.가시에도 찔리고 여시를 안고 따니 더 힘들다. 저녁에

옆지기 아카시아꽃전을 해 줄 양인 몇 송이만 따고 하산길로 가려는데 괜히 기분이 묘하고 덥기도하고

여시를 데리고 왔더니 걱정도 되어서 정상에서 그냥 왔던 길로 다시 하산,내려갔다. 산을 얼마 오르지

않은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도 어딘가. 내가 오늘 하고자 했던 목적은 다 이루었다.

 

 

 

 

 

때죽나무꽃

 

 

산수유

 

 

여시를 데리고 산행은 조금 힘들다. 그래도 길동무가 있다고 생각을 하면 좀더 재밋게 산행을

할 수 있다.말도 해가면서 말이다. 녀석과 정상까지만 갔다가 다시 하산을 했지만 그래도 땀은

범벅,기분이 좋다. 산의 초입에 의자에서 물도 나누어 마시고 음악도 듣고 새소리도 듣고 꽃향기도

흠뻑 들이 마시고 그렇게 잠시 시간을 보내다가 내려왔다. 오면서도 '장사익'음악을 들으면서 오니

정말 좋다. 찔레꽃이 활짝 핀 곳에서 장사익의 [찔레꽃]을 듣는 기분,정말 좋다. 그 찔레꽃이

내게로 와서 활짝 피어나는 기분이다. 여시와 함께 산을 내려와 아파트 산책길로 향했다. 산에서

때죽나무가 있는 곳에 가지 않았기에 때죽꽃이 보고 싶어 갔더니 활짝 피었다.녀석을 안고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정말 힘들어 가만히 보니 나무에 목줄을 걸어 놓을 곳이 있어 걸어 놓고 사진을

몇 장 찍었다.그리곤 여시와 함께 산책길을 함께 산책하며 집으로 오는데 기분이 상쾌하다.여시도

그럴까.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데 옆집 아줌마를 만났다. 여시를 데리고 산행을 다녀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시며 묻길래 아카시아꽃을 따러 뒷산에 다녀왔다고 했더니 아카시아꽃을 많이

따다가 효소를 담으라고 하신다. 정말 향이 좋다고.에효 꽃 따는 것이 쉽다면 하겠는데 높은 곳에

있으니 힘들고 난 아카시아전만으로 만족한다고 했더니 아카시아꽃으로도 전을 부쳐 먹느냐며

묻는다. 그렇게 아줌마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집에 들어가니 여시가 너무 좋은가 보다.토끼처럼

깡총깡총 집안을 뛰어 다니다 피곤한지 깊은 잠에 빠졌다. 난 상쾌함 그 자체.초록이 내게로 왔나보다.

 

2013.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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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쉴 틈 - 나만의 지도를 그리며 걷고 그곳에서 숨 쉬는 도시생활자 여행기
김대욱 글.사진 / 예담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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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라는 것은 어딘가로 떠나야 하고 꼭 내가 있는 지금 현재의 공간을 떠나야만 여행이라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숨,쉴 틈>은 그런 고정관념을 깨버리게 만들어 주었다. 내가 눈을 뜨고 맞이한 오늘 하루 그리고 내가 숨쉬고 늘 함께 하는 방이나 집 또한 가만히 들여다보면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을,멀리 가지 않고 내가 속해 있는 현실과 현재의 공간에서 '여행'을 떠난 것처럼 잃어버리거나 잊고 있던 깨알같은 '시간과 추억들을 떠올리게 만들어 준 사진과 글이 참 좋았다.

 

 

 

현대인들은 현재 자신이 있는 곳에서 떠나고픈 생각을 늘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가 요즘은 아웃도어가 상승곡선이 꺾이질 않는다고 한다. 주말이면 고속도로는 어딘가로 떠나고 다시 집을 찾는 사람들로 늘 붐빈다. 대한민국은 365일 전국이 축제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축제의 장소 어딜가나 왜 그리 사람이 많은지.모처럼 나들이 나갔다가 사람에 치이고 차에 치여 더 고생하고 오는 경우가 많다. 남들 안가는 시간에 떠나고 싶지만 그것이 또한 맘처럼 되지 않으니 여유로운 여행보다는 여행뒤에는 늘 여독이 남아 더 힘들기도 하다.

 

그런데 저자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집 혹은 떠나 온 집이나 내가 그동안 함께 했던 물건들이나 시간 속에서 '여행'을 하듯 하나 하나 소중했던 것들을 찾아 나서기도 하고 우리가 잊고 있던 '추억검색'을 하게 만든다. 내가 늘 살고 있는 방과 집이 무슨 여행이야? 하겠지만 그의 글을 읽고 있다보면 내게 주어진 오늘 하루라는 일상이 인생에서는 정말 여행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며 더 소중하고 값지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내가 살아 온 지난 날들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정말 여행과도 같은 시간들이다. 한 곳에서 계속 살아왔다고 해도 분명 모든 것들은 변했고 그동안 나와 함께 했던 많은 것들은 없어지거나 혹은 잊고 사는 것들이 정말 많다. 어린시절부터 생각해보면 많은 것들이 나와 함께 했고 그 시간 속으로 시간여행을 하듯 되짚어보면 정말 오랜시간 머물 수 있는 '이야기거리'가 나온다. 나와 함께 했던 물건,사람,놀이,먹거리.그 속에서 잠시 삶의 여유를 가지고 '숨 쉴 틈'을 만들어 보면 행복감에 젖을 수도 있다. 내가 어린시절에는 마당에 공기돌만 있어도 구슬치기 구멍만 있어도 하루종일 친구들과 재밌게 놀았다. 굴러다니는 돌과 사금파리는 모두가 놀이도구가 되었는데 지금의 아이들은 그런것을 모른다. 컴퓨터나 게임기등이 있어야 어울려 놀 수 있고 그속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기도 한다.하지만 저자는 자신이 살고 있는 작은 방에서도 많은 것들을 찾아내고 그것들을 '생' 으로 전환을 시키며 '시간여행'을 한다. 추억이라는 단 한가지만으로도 멋진 여행을 할 수 있는,일상이 여행이 되는 공간을 만날 수 있다.

 

난 여행을 가거나 산행을 하면서 새소리 물소리 파도소리가 좋으면 녹음을 잠깐씩 해 온다. 그리곤 가끔 그때 들었던 소리들을 통해 다시금 그 추억에 빠져 들기도 한다. 산행을 하며 녹음한 바람소리 계곡의 물소리는 그 장소와 그 때의 기분을 떠 올리게 해주기도 하고 몽돌해변에서 녹음한 세찬파도소리는 다시금 그 바닷가로 날 데려다 주기도 한다.보이는 것만이 여행이 아니라 '소리'도 여행이 되고 그 소리로 인해 추억을 떠 올리거나 상상할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될 수 있음을 느낀다.그런가 하면 여행하면 '맛'으로도 기억될 수 있다. 모든 것들이 여행의 소재가 될 수 있다. 방 안에서 가만히 세상을 향해 귀를 열어 놓고 있으면 하루의 모든 소리들이 다 들린다. 그 소리들은 세상과 나를 연결해 주는 끈처럼 집 안에 있는 나를 밖으로 인도하기도 한다.

 

신기하게도 거기에는 꼭 숨 쉴 틈이 보였다.

나는 그 틈을 통해 숨을 쉬면서 먹먹함을 흘려보내고는 했다.

그건 이 도시에서 벌어지는 나만의 짧은 여행이었다.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시간이라는 크레파스가 이 도시를 얼마나 멋진 여행지로 그려내는지. 그리고 거기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는지.또 얼마나 다양한 거울이 자기를 비춰주고 있는지.그걸 모르는 사람을 위한 글이다.하루를 쪼개는 이 여행기는.

 

내가 살고 있고 숨 쉬고 있는 공간은 누군가에는 '여행지'가 된다. 나 또한 타인들이 숨 쉬고 있는 곳을 그리워하고 그곳으로 떠나고 싶어 하지만 내 공간은 타인에게는 '숨 쉴 틈'이 된다. '끝은 또 다른 시작'처럼 뒤돌아서 보면 내가 떠나왔던 곳은 나에게 다시 여행지가 될 수 있다. 도시 곳곳에 아니 내가 숨 쉬고 있는 모든 곳이 여행지이다. 멀리 찾기 보다는 내 주위를 둘러보며 '숨 쉴 틈'을 찾아 보면 '도시 여행자'가 될 수도 있고 '시간 여행자'가 될 수도 있다. 내 작은 방에서도 멋진 시간 여행을 할 수 있고 추억 여행을 할 수 있다. 나 또한 내 소소한 일상이 여행이고 행복이라 생각하고 늘 기록하고 사진으로 남기고 그 재미에 살아가고 있다.

 

내게 하루는 여행이다. 매 순간이 새롭고, 눈을 돌리면 볼거리 천지다. 사람들은 흔히 반복되는 일상이라며 매일의 지루함을 호소한다.나라고 안 그럴까. 여느 직장인에 비해 새로운 일을 자주 접하는 편이지만 똑같고 지루한 일이 되풀이된다는 것은 비슷하다.이럴 때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지루함을 깨려한다. 나만의 방법은 매일 시간여행을 떠난다는 것.어제와 똑같은 시간,장소라도 그 속에서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없는지,어제와 다르게 말을 걸어오는 것은 없는지 주의를 기울인다.

 

문득 바로 손에서 놓은 <64>라는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 생각난다. 가족도 아내도 없는 노인이 어느 날 누군가가 잘못 걸었는지 자신의 집 전화 응답기에 아무 소리도 없지만 빨간불이 들어와 있는 것을 확인하고 노인은 너무 기뻐한다. 그것이 노인에게는 새로운 희망처럼 즐거운 삶으로 그를 이끈다. 늘 같은 시간 공간의 반복처럼 느껴지지만 똑같은 하루는 없다. 무언가 달라도 다 다른 날들이지만 정지해 있는 듯한 일상에 우린 질려 버린다고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라는 말처럼 주말이 되면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떠나려고 한다.내가 속해 있는 도시와 공간 속에서도 멋진 여행을 할 수 있음을,생각하기 나름이고 무엇이든 보고 듣고 담기 나름인듯 하다.소중한 하루 멋진 여행이 되고프다면 한번 읽어보면 나의 하루가 더욱 소중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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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향 가득한 뒷산 가야지

 

 

 

박하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요즘은 딸들 베란다 창을 열고 먼저 뒷산을 보는게 일이다.

아카시아 찔레꽃이 하얗게 피어 향기도 좋고 보기도 좋은 뒷산,쳐다보고 있으면 설레고 울렁이고

정말 첫사랑에 빠진 여인네처럼 아침부터 울렁울렁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하여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어젯밤엔 내일은 꼭 붙어 앉아 밀린 일을 해야지 했는데 아침이 되니 그 마음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얼른 서둘러 밥을 챙겨 먹고 초록이들 물 주고 스프레이 해주고 그리곤 뒷산에

갈 마음을 챙기고 있는데 친구에게 전화가 와 늦어졌다. 그래도 얼른 챙기고 나가볼 일이다.

 

이맘때가 제일 좋은 듯 하다.아니 언제라도 뒷산에 가는 순간은 모두 좋다. 하지만 초록이 짙고

아카시아와 찔레향이 뒤흔들어 정신을 차릴 수 없이 만드는 요맘때가 제일 좋은 듯 하다. 숲에

있으면 나무냄새 흙냄새 새소리 싱그러운 바람 어느것 하나 맘에 나쁜 것이 없다. 마냥 머무르고

싶고 초록숲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는 시간,오월의 숲이 참 좋다.

 

오늘 뒷산에 가는 목적은 정상부분에 무척 많이 자생하고 있는 '박하'를 몇 개 꺾어다 삽목하려고

한다. 삽목해서 심으면 잘 자란다고 하니 한번 화분에 심어서 꽃도 보고 박하가 잘 자라면 박하차도

만들어 보고 싶다. 박하인가 바질인가 다른 무엇인가 확신이 서지 않아 한참 찾아보고 향기를 맡아

보니 박하가 틀림없다.누가 심은것도 아닌데 정말 많이 자라고 있는 박하,꼭 한번씩 잎을 따서 향을

맡아고 하는데 정말 '쏴...'하니 좋다. 가끔 숲에 가면 모르는 것은 잎을 비벼본다거나 뜯어서 향을

맡아보곤 하는데 그렇게 하면 자연의 냄새를 아니 그 식물의 특성을 좀더 알 수 있을 때가 있다.

이름을 정말 알고 싶은데 알지 못할때는 얼마나 막막한지 늪에 빠진 기분이다가도 이름을 알고 나면

정말 기분 좋고 태양이 '쨍' 하고 난것럼 환하다.그렇게 또 하나 뒷산에서 박하를 발견하고 기분좋은

뒷산행이 되었는데 오늘 같은 날은 박하향이 잘 어울릴 듯 하다. 그 향을 맡으러 뒷산으로...

 

2013.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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