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미루지 마라 - 하버드대 긍정심리학 보고서
탈 벤 샤하르 지음, 권오열 옮김 / 와이즈베리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나중에 밥 한 번 먹자.. 다음에 한 잔 할까? 젊어서 고생하고 나중에 놀러 다니지 뭐.' '나중에,다음에..' 나중에 밥 한 번 먹자고 하고 그 '나중'을 지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통계로 보면 지켜지는 예가 드물다는 글을 읽었다. 왜 나중에 할 수 있는 일을 지금은 안된다는 것일까? 왜 미루어나 하나? 인사치례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정말 마음에 있어 '나중에 꼭 해야지' 했다가 지켜진 약속이 얼마나 될까?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라는 노래가 있다. 정말 젊어서 다리가 성할 때,관절이 성할 때 놀러도 다니도 여행도 다니는 것이지 지팡이 짚고 다리가 후둘후둘 하는데 여행 다닐 수 있을까? 행복 또한 현재가 행복해야 행복한 것이지 미래를 위해 행복을 미룬다면 현재는 불행해도 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미래를 행복하기 위하여 현재를 불행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현재도 행복하고 미래도 행복하고 싶은 것이 우리 모두의 맘이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의 행복을 보기 보다는 '네 잎 클로버 숨은 세 잎의 행운' 을 찾기 위하여 현재의 행복을 지나치듯 그런 삶을 사는 경우도 많다. 행복은 자신이 현재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요즘 날이 정말 덥다. 더운 날에는 시원한 물을 자꾸 자꾸 마셔도 목이 마르고 갈증이 난다.아니 아이스커피로 대신해 볼까? 한 잔의 아이스커피를 받은 순간은 정말 시원하고 행복하다.하지만 자꾸 마시다보면 줄어드는 아이스커피의 시원함, 반 잔이 남았다면 그 반 잔을 바라보는 마음은 다 다를 것이다. '벌써 다 마셔 버렸네' 하는 사람도 있고 '반 잔이나 남았네.' 하는 사람도 있다. 현재를 부정적으로 혹은 긍정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맘도 달라진다. 요즘은 '긍정심리학' '힐링' 이라는 말이 참 많이 들린다. 나도 그렇지만 현대인들은 스스로 스트레스에 갇히고 현재의 행복보다는 미래에 잘 살기 위하여 더 열심히 산다. 하지만 오 년이 지나고 십 년이 지나도 삶은 나아지기 보다는 마이너스가 안되면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그래도 모으는 재미를 느끼고 살았지만 고등학교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니 정말 하루하루가 부대낌의 연속이다. 얼마를 가져야 풍족하다고 할 수 있는 개개인의 기준치가 없기는 하지만 마이너스 나지 않고 한 달 잘 버티면 정말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개개인 씀씀이가 큰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 하루하루 행복을 저축하여 미래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한 듯 하다.

 

지금 등에 짊어지고 있는 불필요한 짐을 내려 놓아라. 용서하고 더 가볍고 더 평화롭고 더 행복하게 인생길을 여행하라.

 

저자는 어느 날 버거운 자신의 현실과 마주한다. 피해야 할까? 부딫혀야 할까?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라는 말처럼 그는 현재를 기꺼이 받아 들이며 '긍정적'으로 현실과 마주한다. [행복은 당신의 선택에 달렸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간다'는 말도 있지만 우리는 하루에도 150번이나 선택의 귀로에 선다고 한다. 어느 쪽을 선택해야 정말 잘 가는 길이고 행복할까? 누구나 자신이 가지 않은 길에 대해서는 후회하고 미련을 가지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현재 선택한 길이 잘된다는 보장도 없다면 가지 않은 길에 대하여 더욱 미련이 남을 것이다. 그런가하면 '안전 혹은 행복'을 위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하여 울퉁불퉁한 삶에 맞기는 사람도 있지만 보통은 많은 이들이 지나간 안전한 길을 선택하면서 내가 가지 않았던 길에 대한 미련을 평생 지니고 살아 간다. 행복 또한 선택에 달려 있다. 그런가하면 한번 큰 사고나 아픔을 겪고 나면 내 삶에 더 감사하게 되고 현재에 감사하게 된다. 현재에 감사하며 살게 되면 긍정적이고 현재를 행복하다고 더 느낄 수 있다. 늘 불만을 품고 있다면 세상이 온통 먹구름이지만 긍정적인 사람은 현재의 먹구름 뒤에 있는 무지개를 보고 웃는다. 현재 아무리 힘들어도 말이다.

 

인생이란 시내에서 황금빛 순간들은 빠르게 흘러가고 우리가 보는 것은 모래뿐이다. 천사들이 찾아오지만, 우리는 그들이 떠나 버린 뒤에야 그들이 왔다 갔음을 안다. -조지 엘리엇

 

챕터 하나 하나 읽어 나가다 보면 '긍정' 이 자꾸만 쌓여 긍정적 마인드로 중무장되듯 자꾸만 마르지 않는 긍정의 샘물을 퍼 올리는 기분이 든다. '인생이 속도를 높이면 행복은 멀어진다.' '부정적인 사고 습관에서 벗어나라.' ''칭찬은 상대방의 가슴을 기쁨으로 채워 준다.' '현실의 고통을 직시하고 분투하라.' 현재의 자신의 고통을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려 하면 자꾸만 고통이 물귀신처럼 잡고 늘어져 하루하루 부정적이고 불행한 하루로 만들어 버린다. 하지만 인정하며 순순히 받아 들이고 부딫히면 현재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도 빠르다. 고통 없이 항해하는 삶이 있을까? 모두가 한꼭지씩 모두 고통을 등에 지고 나아가고 있다. 고통이 내게 왔을 때는 무척 크게 느껴지지만 남의 고통일 때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 다 지나가리라.' 이다. 현재는 모두 지나간다는 것이다. 고통도 지나간다. 행복도 물론 지나간다. 하지만 기억의 창고에 쌓이고 쌓여 미래를 더욱 웃음짓게 만든다.

 

병이 든 사람만이 인생에 유머를 덧칠하고 행복과 관계와 건강을 개선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당신의 일상에 가벼움과 유머를 유입시켜라.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보고 인터넷에서 우스갯소리를 찾아 읽어나 당신을 웃게 만드는 친구와 자주 만나라.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하여 '긍정적 마인드'를 가지고 '꿈'을 가지고 살아야 하며 '운동'을 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내 자신을 부정하는데서는 절대로 행복이 올 수 없다. 남에게도 칭찬과 격려를 해줘야 좋지만 내 자신에게도 칭찬과 격려를 해 줘야 한다. 가끔 자신에게 '정말 멋진데..정말 잘했어.대단해.' 라고 한마디 해주면 더욱 힘이 난다.가끔 지치고 힘들 때 거울 앞에서서 거울 속의 자신을 보고 한번 씨익 웃어줘 보라.그러면 거울 속의 나도 따라서 웃는다.그리곤 힘차게 '너 정말 대단해' 하면 정말 거울 속에 대단한 녀석이 날 보고 웃는 것 같다. 그렇게 현실속 내 자신도 대단한 사람처럼 에너지가 충만해 진다. 그런 상태에서 부정적인 말들보다는 긍정적인 말과 행동이 더 나오게 되어 있다. 저자 자신이 경험이 우러난 글이라 그런가 더 와 닿기도 하고 저자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구가 느끼는 감정들이고 가진 자 보다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들이 더 나누고 웃고 행복하다는 것.행복지수 또한 선진국보다는 우리가 정말 못산다고 하는 그런 나라에서 더 높게 나오는 것을 보면 자본주의의 우리는 행복도 저축하려 하고 있지만 현재를 즐겨라.그리고 행복을 미루지 마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둥번개에 소나기,시원하네

 

 

 

 

장마가 지났다고 하는데 요즘 낮에 소나기가 장난이 아니다. 주말에도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천둥과 번개 정말 무섭게 치더니만 낮이 아니라 밤과 같은 어두움 그리곤 폭우가 내렸다.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에 외출할 일이 있었는데 나가지 않고 미룬게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는

한치 앞도 안보이게 내렸다가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하늘이 말갛다. 비가 내려서일까 더 깨끗하고

빛이 더 무섭게 내리찌길래 집 앞 병원에 나가는 길 양산을 들고 나갔다. 잠깐 사이에 온통 딴

세상이 되었다. 올 여름은 햇빛알레르기 때문에 너무 고생을 하고 있다. 밖에 잠깐 아파트 화단만

한바퀴 나무 그늘로 돌아 산책하고 들어와도 온통 팔에 햇빛알레르기로 2~3일은 고생을 하니

팔이 설할 날이 없고 겹치는 부분은 아토피처럼 발진이 생겨서 없어지질 않는다. 면역력이 떨어

졌는지 올해가 정말 심하다. 그래서 어젠 양산을 다시 하나 주문했다. 햇빛차단으로.

 

천둥이 계속적으로 이 쪽에서 쾅 저쪽에서 우르르쾅하니 울집 여시가 잠을 통 못자고 소리에

깜짝 깜짝 놀란다.녀석이 두어번 큰 사고를 겪더니 소리에 더욱 민감해져서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서 도망친다. 옆에서 박수를 살짝만 쳐도 놀라는 녀석인데 천둥이 치니 깜짝 놀래서 나만

바라보고 내 발꿈치만 따라 다닌다. 그러다 밖에 나가서 산책도 못하고. 폭우가 한차례 지나고 나니

바람이 선선하게 가을같다. 늦은 시간 저녁을 먹고 치운 후에 여시를 잠깐 데리고 화단에 내려가

오줌을 뉘는데 춥다. 밖에 나온 사람들이 시원하다고 모두가 한마디씩 한다. 이제 남은 것은 '더위'

인가. 비가 오지 않으면 뒷산에라도 가려 했는데 이렇게 비가 갑자기 내리는 날씨가 연일 계속 되고

있어 가기가 좀 그렇다. 집주변이라도 산책하고 싶은데 비를 만날까봐 망설여진다.그래도 옆지기는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갔다가 다행히 퇴근시간 쯤에 비가 그쳐 잘 타고 왔다. 근처 복숭아 과수원에서

나와 파시는 할머니가 있어 복숭아를 사왔다고 하는데 비가 많이 내려서일까 별맛이 없다.너무 많은

비가 내려서 과일의 당도도 떨어진다. 비가 이제 그만와야 할텐데.

 

2013.8.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아가미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전 신문을 보다가 깜짝 놀랬다. 십여세 안팍의 소년이 온 몸이 정말 고기의 비늘과 같은 피부로 고생하고 있다는 사진과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그런 아이가 태어날 확률은 정말 흔하지 않은 경우인데 분명 온 몸이 비늘로 덮힌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그런데 피부가 갈라자면서 몹시 아프다고 한다. 그렇다고 어떻게 현대의학으로 고칠 방법도 없다는 것이다.평생 그 피부가 아픔을 덜 느끼게 관리하는 것 뿐인데 소년은 얼마나 아프고 그에 따른 고통이 심할지.그러다 이 책을 손에 들고나니 그 소년의 고통어린 눈이 생각이 났다. 데자뷰처럼 사진으로 보았던 소년의 모습을 겉표지에서 보는 느낌,그리고 소설의 내용이 겹치지는 것은 무얼까? 물고기소년에 대한 이야기와 사진을 본 것은 이 책을 읽으려던 계시였나.

 

이 책은 받아 놓고 건성을 한번 본 후에 많은 이들에게 선물을 주고 정작 난 이제서 읽어 보고 있다는,며칠전에 손에서 놓은 저자의 <파과>를 읽고나니 이 책도 얼른 읽어야지 궁금해서 못 견디겠다. 그래서 얼른 다른책들 제쳐놓고 읽기 시작했는데 소설속처럼 세상 밖은 대낮에도 어두컴컴한 밤과 같고 천둥 번개에 폭우가 쏟아져 내리고 있어 더 실감이 나게 읽었다. 물 속을 헤매이며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청년,아니 그를 인어왕자라 불러야 하나.그에겐 퇴화되듯 흔적기관처럼 '아가미'가 있다. 왜 그에게 아가미와 온 몸에 고기 비늘이 존재하는 것일까? 그는 물 속에서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이며 왜 물 속을 유영하고 있는지. 저자의 소설을 접하다 보면 주인공들의 이름이 정말 특이하다.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이름도 곤,해류,강하,이녕 등 흔한 이름도 아니고 소설과 이름은 하나가 되어 흘러가듯 한다. 소설 <파과>에서는 투우,조각,유기견의 이름은 무용이다. 그 역할에 맞는 이름인데 낯선듯 하면서 읽어나가다 보면 너무도 잘 맞는다.

 

해류는 아픈 엄마를 돌보느라 빨리 집에 가야하기도 해야 했지만 주머니가 너무 가벼워 가진 돈만큼 타고 택시에서 내렸는데 그것이 다리다. 다리를 걷다가 핸드폰을 놓치게 되고 핸드폰을 집으려 하다가 그만 강물에 떨어지고 만다. 강물에 떨어지며 그녀는 죽으리라 생각했지만 물고기와 물고기를 닮은 사람이 나타나 그녀를 구해준다. 정말 인어왕자일까? 그로 인해 그녀는 덤으로 주어지는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그녀를 구해준 그가 궁금하다. 왜 그는 물에서 살고 있는가? 약간은 어눌하지만 인간의 말을 하고 있으니 분명 인간인데 그에게서 어류에 있는 '아가미'를 보고 물고기 비늘과 같은 것의 반짝임도 보게 된다. 그는 물고기 인간일까.

 

아무리 괴롭혀도 도망치지 않는, 실은 그러면서도 정말로 도망치게 놔두기를 원했는지조차 스스로도 혼란스러웠던 당신이란 존재가 나름 불만스럽기도 하고 덜 마른 접착제처럼 불안하며 온몸에 까슬까슬한 촉수를 세운 듯이 초조하기도 했지만, 강하는 그것을 삶의 긴장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며 그래도 받아들이려던 거였어요.

 

곤이 이내천에서 건져지기 전에는 정말 곤궁하면서 사람으로의 삶이 아니었다. 그를 놓고 나간 엄마에 생활비마져 바닥이 나 막다른 골목까지 쫒긴 아버지는 살인까지 저지르고 이내천에 그와 함께 빠졌다. 하지만 작은 몸으로 그곳에서 살아서 밖으로 나온 그의 몸에는 '아가미'가 있었던 것,그를 건져낸 할아버지와 강하의 손에 의해 그들과 가족이 아니면서 가족이 되어 살아가는 곤,곤이라는 이름 또한 강하가 지어 주었다. 그가 읽던 장자라는 책에서 그에 맞는 이름을 발견한것이 '곤'이다. 그렇게 하여 생년월시도 모르지만 그래도 이 땅에 존재한다는 증거라도 되듯 이름하나 얻게 된다. 강하의 삶 또한 곤보다 나은것이 없다. 그를 버리듯 하고 돌아오지 않는 엄마,하여 할아버지와 살게 되니 그가 뱉어내는 말은 험하다.곤에게도 험하게 말을 하지만 그 속은 그를 얼마나 챙기고 가족으로 생각하는지.

 

인간세상에서 그것도 죽음의 호수나 마찬가지인 '이내천'주변에서 물고기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험난한 삶이다.평범한 강하도 힘겨운 삶인데 어류와 인간의 경계처럼 태어난 곤의 삶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는 늘 물이 그립듯 물과 함께 하려하지만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것이 문제가 될 수 있고 이슈가 될 수 있다.숨겨야 잘 살수 있고 이 가족이 흩어지지 않고 살아가는 길이다. 그런 그들의 삶에 엄마 이녕의 귀향은 곤과 강하를 갈라 놓게 된다. 곤이라는 생명체를 이내천에서 떠나 보내야 했는데 그것이 조금 더 일찍,뜻하지 않은 이녕의 죽음으로 앞당겨진 것 뿐이다. 그렇게 세상 속으로 곤을 떠나보내고 할아버지와 함께 살아야 했던 강하,그의 마음 속에서는 늘 곤이 살아 있다. 곤이 아가미를 가졌고 몸에 고기 비늘을 가졌어도 그는 그에겐 동생이나 마찬가지고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자신의 그런 특성을 숨기고 살아가야 했언 곤의 앞에 '해류'가 나타나며 강하의 이야기며 모든 일들이 밝혀지게 되고 그 순간 이후오 곤은 물에서 강하와 할아버지를 찾아 늘 물 속을 헤매인다. 그를 가족으로 받아 들여주었던 할아버지와 강하를 찾는 일에 아가미와 물고기의 특성이야말로 제대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현실과 만나 정말 현실적으로 그것도 장맛비가 지나는 여름에 읽으니 더 실감이 난다. 거기에 '물고기비늘 소년' 사진을 보아서일까 낯설지 않은 형상이 머리속에 그려지며 현실적으로 살아서 움직이듯 영상이 나타나니 비현실속에 있으면서 현실을 보는 이녕처럼 혼상속에서 현실과 마주하는 느낌이 든다. 저자는 <위저드베이커리>에서는 환상 속으로 이끌어 들이더니 이번에는 비현실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에 놓이게 하고 <파과> 에서는 60대 살인업자인 조각의 삶을 통해 육십이라는 나이가 비현실과 같은 삶을 살았다면 이제 현실에 눈 뜨게 해준다. 그녀의 소설은 이렇듯 비현실과 현실의 세계를 왔다갔다 하면서 마치 모든 것이 현실세계인처럼 이끌어가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어찌보면 그녀의 이야기의 현실과 비현실으로 오가는 '흔적기관'으로 '아가미'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현실과 비현실의 '가교' 역할을 해주는듯한 '아가미'라는 호흡기관을 통해 그녀가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생명' 혹은 '가족애' 라고 본다. 태어나 가족이라는 의미를 가져보지 못한 곤에게 아가미를 통해 하나로 연결될 수 있었던 할아버지와 강하의 관계 그리고 해류라는 여성까지 이어지고 그가 물 속에서 건져 올리는 '생명' 의 연결고리를 통해 결코 흔적기관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인 '호흡기관'으로 봐야할 것이다. 어린시절 <인언공주>를 읽고 왕자를 꿈꾸었다면 <아가미>를 읽으면 '인어왕자'를 물가에 가면 찾아봐야 할 것만 같다.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해 준다는 것은 힘든 일인데 어린 강하가 자신과 다른 '곤'의 아가미와 비늘을 인정하고 가족으로 받아 들였듯이 우리도 나와 다름을 인정하며 역지사지를 해 본다면 가족이라는 혹은 넓은 의미의 세상에서 흩어지거나 깨지는 경우는 드물것이라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침대의 목적
다나베 세이코 지음, 조찬희 옮김 / 단숨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침대가 주는 의미나 느낌은 무엇인가? 내가 침대를 사용하게 된 것은 스물살이 되던 해에 혼자 독립된 삶을 위하여 '더블'로 장만하게 되었다. 침대를 산다고 주위에서 무어라 했지만 내가 편하기 위하여 나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하였기에 남에게 양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장만한 침대는 조카의 놀이터가 되어 난감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밤에는 확실한 내 공간이었지만 내가 없는 시간에는 조카의 놀이터로 변해 모든게 엉망이 되곤 했다. 그렇게 해서 가족의 골이 깊어지기도 했던 시간이 었었다. 하지만 침대에서의 시간은 더없이 편하고 좋았다. 옆에 누군가를 위한 잠자리가 아니라 오로지 나만을 위한 것이라 더없이 혼자 넓은 그 공간을 유영을 했던 시간이었고 지금은 넓은 침대보다는 바닥에서 혼자 뒹굴뒹굴 자는 것이 더 편한 삶이 되었다.누군가와 붙어서 자는 것도 한때다. 특히나 여름에는 서로 떨어져 지내는 것이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피해를 주지 않는 일이라 편한대로 공간분할을 한다.

 

이렇게 신경 쓴 침대 에 눕힐 남자인데 너무 엉성하면 안 되겠지.침대의 목적, 참 낯부끄럽다.

 

'와다 아카리' 그녀는 서른할 살의 노처녀라 할 수 있다. 독신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하고 싶어하지만 아직 마땅한 상대를 만나지 못했다.남자가 없는 것도 아니고 늘 그녀 주위에는 남자가 있지만 딱히 자신에게 맞는 상대를 고르지 못하고 있고 또 아직 콩깍지가 씌워지지 않아서일까 상대를 못 만났다. 그런 그녀가 여성전용 원룸에서 과감히 나와 5층 빌라,그것도 오각형의 특이한 형태의 집으로 이사를 한다. 혼자 살기엔 안성맞춤인 곳에 그녀를 위한 가구,아니 누군가를 위한 가구를 들여 놓게 된다. 바로 '침대'.그녀 혼자서 자기에 침대가 필요 없는 물건이기도 하지만 그녀는 침대를 사기로 한다.그것도 원목으로 정성들여 만든,누군가 주문해 놓고 가져가지 않아 그녀에게 오게 된 침대를 산다. 그리고 다른 가구와 가전제품도 들여 놓으며 자신만의 공간을 꾸민다. 모든 것을 다 갖춘듯 한데 아직 마땅한 남자가 없다는 것,정말 남자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녀 주변에는 그녀를 좋아하거나 그녀가 좋아하는 남자가 있지만 아직은 아닌듯 하다.

 

"우와, 침대 엄청나게 편해 보여."

라고 말하며 침대에 앉는다. 누가 재워줄 줄 알아? 한 잔만 내어주고 쫒아낼 거야.

 

연애에 적합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연애와 결혼은 별개라고 하듯이 결혼하고픈 사람은 따로 있는 것이다. 연애는 그야말로 즐기는 상대이고 결혼은 언제고 함께 있고 싶은 상대다. 그런 그녀에겐 그녀가 좋다며 아니 그녀를 보면 섹스파트너 쯤으로 아는 연하남이 있다.그는 그녀를 만나기만 하면 침대로 곧장 달려갈 생각만 한다. 그런 그가 그녀는 싫지 않다.하지만 이젠 그러고 싶지가 않다. 새로 장만한 침대는 특별해서 꼭 자신의 맘에 맞는 그와 함께 하고 싶다. 그녀가 눈여겨 보게 된 또 한사람,회사 동료다. 옆자리에 앉아 늘 함께 하기에 손발이 척척 맞는 그들은 이야기 파트너로 정말 잘 맞는다.그러나 그남자 그녀를 침대에 내동댕이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런가하면 그녀를 좋아하는 또 한사람,유부남이다. 그는 너무 능숙능란하다. 어느 여자에게나 손을 내미는 능숙함에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만 외로울 땐 그라도 부르고 싶다.

 

결혼,결혼, 하면서 집착하고 있는 사이에 꽃이 활짝 핀 시절도 흘려 보내고, 신이 내린 보물을 가지고도 헛되이 썩히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고 해도 결혼 없는 남은 인생을 생각해보면, 생각만으로도 외로워지는걸. 집착해서 이룬다 한들 그곳에서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는 것이고......

 

그녀가 사는 원룸은 주변에 건물로 막혀 있듯 한데 앞에 학원이 자리하고 있고 그 학원에는 정말 무식한 학원선생이 있다.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나듯 아이들에게 심한 말을 한다. 손님이 찾아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그의 심한 말이 대화를 끊어 놓기도 해서 그녀는 참다 참다 소리를 지르게 된다.하지만 그는 듣지를 못했는지 열심히 강의를 하고 있다.도대체 저 남자 뭐야 하던 그가 어느날 그녀가 주워 오던 쇼파를 들어다 주게 되고 고쳐주고 그리고 작은 티테이블로 만들어 준다. 그런데 이 남자 보기하고는 정말 다르다. 순진하기도 하고 듬직하기도 하고 손재주도 뛰어나다. 그런가 하면 그녀가 지금까지 만났던 이들과는 다른 편안함을 그녀에게 준다. 정말 아닐것 같은 그 남자가 그녀의 눈에 쏙 들어왔다.

 

'다나베 세이코'는 '일본 연애 소설의 여왕' 이라고 불린다.그녀의 소설 <노리코,연애하다>와 <서른 넘어 함박눈>을 읽었고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을 영화로 보면 일본 영화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달달한 영화를 보기 시작했었다. 그런 그녀의 이 작품은 1985년 작이라 하는데 지금이나 그때나 연애와 결혼 방식은 별반 다르지 않은 듯 하다. 요즘 트렌드가 '연상연하커플'인데 이 작품에 나오는 연하남은 연상녀를 좋아한다. 우리문화와는 조금 달라 성에 대한 개방성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녀는 연애를 참 달달하면서도 그녀만의 위트로 재밌게 풀어내면서 끝에는 달달한 반전의 결만을 준다. 아카리가 00파트너와 같은 연하남과 이어지나 했는데 절에 음식여행을 떠나면서 사랑의 작대기는 서로 어긋나 그어지고 그녀만 혼자 남게 된다. 그녀가 한번씩 그렸던 남자와 친구들은 그녀를 빼 놓고 자신들끼리 서로 달달하게 연결이 되어 진행되고 있고 홀로 남겨진 그녀는 외로움을 느낀다. 너무 당당하고 자신만만해서 아니 틈이 없어서 자신에게 맞는 남자를 찾지 못했던 것일까? 그녀 주변에 있는 남자들은 그녀를 너무 잘 알기도 하지만 그녀 또한 그들의 장단점을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것이 흠이 되어 선택을 못했는데 학원선생은 어쩌면 신선함과 투박함 속에 가려진 순진함이 그녀의 매력을 끌었는지 모른다.

 

연애에도 변수가 있지만 정말 결혼에는 '변수'가 많다. 설마 하던 이들이 이어지는가 하면 꼭 이뤄질 것 같은 커플은 잘 연결이 안될 때가 있다. 너무 믿어서일까.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옆자리의 남자가 수다파트너로 그녀와 잘 어울릴 듯 했는데 남자는 그녀를 보지 않고 다른 곳을 본다.그러다 그녀의 친구와 연결이 되는 것을 보면 그녀가 너무 틈을 보여주지 않았다. 너모 완벽해 보여 '남자'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그런데 학원샘은 늘 욕만 듣고 있었는데 그의 강직하면서 숨겨진 내면을 보게 되면서 진정한 짝으로 연결이 되는 것을 보면 결혼의 짝은 따로 있는가 보다. 서른한 살이라고 하면 1985년도에는 노처녀 중에서도 '골드 미스'라고 할 수 있는 나이라 할 수 있을텐데 골드미스라고 해도 어디 하나 꿀리지 않고 당당하면서도 자신의 소신을 끝까지 잘 이끌어 가면서 남자들 사이에서도 자신의 뜻을 똑바로 펴며 휘둘리지 않고 골대를 향하여 열심히 나아가는 당당함이 재밋으면서도 연애소설의 여왕이 그린 이야기라 그런지 노련하다. 와다의 침대가 이제 비로소 짝을 만난 해피엔딩이라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청혼
배명훈 지음 / 문예중앙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청혼,단어의 어감만으로도 정말 아름답고 설레는 우주와 우주가 연결되는 기분이 드는 단어이다. 청혼을 어떻게 했는지 내겐 까마득한 이야기이고 이렇다할 '청혼' 이 있었나? 하고 의심이 들 정도로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요즘은 이벤트로 청혼을 많이 하지만 옆지기는 그런 것에 익숙하지 않았고 난 안해도 된다고 생각을 했는데 살면서 생각해보니 내가 손해보고 사는 느낌이 들어 두고두고 우려가며 옆지기에 청혼을 왜 안하고 결혼했냐고 묻고 또 묻는다.지금이라도 해보라고.쑥스럽게 웃기만 하는 그, 하지만 <청혼>에 나오는 것처럼 우주에서 우주로 이어지는 청혼을 어떨까?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을 한다는 것은 남자와 여자가 살았던 두 세계가 만나는 것이다. 서로 다른 세상이 만나는 것이기에 '마찰음' 이 있을 수 있고 그래야 마땅한 것이다. 마찰음없이 처음부터 서로 잘 어우러진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삐그덕 삐그덕 마찰음을 내기 마련이다. 지구의 여자와 우주의 남자가 만난다면,그들은 170여시간을 달려가야만 만날 수 있다. 우주에 가서 만나려고 하면 얼굴은 빵빵하게 부풀어 지구에서와는 다른 모습이다. 그래도 사랑하고 만나고 싶다면 모든 것을 감수하며 달려가야 한다,빛의 속도로 말이다.

 

저자의 책은 처음이다. <타워>라는 책을 읽어보려 했지만 기회가 되지 않았는데 이 소설은 독특하다. 남녀의 사랑이 어쩌면 다른 세계가 서로 도킹하는 것이라 생각을 해서일까? 영원히 깨지지 않을 반지를 우주에서 만들어 여자에게 편지와 함께 보낸다. 그 편지가 제대로 갈지 아니면 중간에 다른 곳으로 갈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그의 온 마음을 다 담아 그녀에게 보낸다. 그가 하는 싸움이란 우주에서 정체도 드러나지 않는 상대편을 향한 싸움이다. 성과도 그 무엇도 없지만 그들은 싸우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싸움에도 지치듯 그의 고향과 같은 그녀에게 가고 싶다. 그녀가 바로 그의 고향이고 정착지다. 더이상 광활한 우주에서의 허공에 헛발질 하는 싸움은 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그건 정말 현실감 없는 싸움이었어. 소리라도 들렸으면 좀 달랐을 텐데,우주에는 대기가 없어서 박에서 아무리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도 이 안은 그저 고요하기만 하거든. 아무 예고도 없이, 별 긴장도 느끼지 못한 채, 나도 모르게 삶과 죽음이 갈라지는 거야.중간과정도 없이 그냥 사라지는 사람들.마지막 변론도 죽음을 정당화하는 과정도 전부 생략된 채 신속하게 진행되는 최후의 즉결심판.

 

궤도연합군에서 작전 장교로 몇 번의 싸움을 거치는 동안 점점 지위가 올라가지만 누구를 향한 싸움인지 의문이 든다. 그녀가 나를 만나러 먼 시간을 날아왔지만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정말 짧다. 자신은 점점 그녀에게서 멀어져 가고 있는 느낌이 들고 광활한 우주의 끝은 무엇인지 혹은 자신들과 같은 상대를 향한 싸움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현실감 없는 싸움에 지쳐간다.  광활한 우주만큼이나 텍스트도 여백이 더 많고 삽입된 일러스트를 보다보면 자꾸만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무언지 모르겠다가 읽으면 읽을수록 허무하게 빨려 들어간다. 우주라는 공간에서의 허무한 싸움이라 그런가 정말 소설은 소리도 없고 잔해도 없이 그저 사라지거나 영원할것만 같다. 저자를 처음 접한 소설인데 처음엔 뭔가 감이 오지 않는 듯 하다가 읽다보면 자꾸 빠져들것만 같다. 이 소설은 단편을 중편으로 그리고 이 책으로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단편을 장편으로잘 바꾸는 무라카미 하루키 그의 <1Q84>는 단편에서 장편으로 탄생한 소설이라 알고 있다.우리나라는 그런 소설들이 드믄듯 한데 단편에서 중편으로 그리고 장편으로 나왔다니 저자의 노력이 대단하다. 그만큰 우주에 대한 천문학자의 조언을 받아 우주에 대한 것들이 더 보완되었다는데 우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일까 아직 우주라는 공간이 낯설다. 그래도 사랑이 아름답다. 하늘에 빛나는 별만큼이나 아름다운 사랑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알고 보니 그 신호는 대부분 우주 저편에서 날온 거였어. 우주 어디에선가는 늘 끊임없이 대폭발이 일어나니까. 그러니까 어떤 건 수백억 년 전부터 날아온 거고, 또 어떤 건 몇십만 년을 날아온 거였겠지. 가시광선영역만 놓고 따지면 우주는 늘 암흑으로 가득한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의 눈으로 보지 못하는 다른 영역에서는 늘 그런 떠들썩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