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미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전 신문을 보다가 깜짝 놀랬다. 십여세 안팍의 소년이 온 몸이 정말 고기의 비늘과 같은 피부로 고생하고 있다는 사진과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그런 아이가 태어날 확률은 정말 흔하지 않은 경우인데 분명 온 몸이 비늘로 덮힌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그런데 피부가 갈라자면서 몹시 아프다고 한다. 그렇다고 어떻게 현대의학으로 고칠 방법도 없다는 것이다.평생 그 피부가 아픔을 덜 느끼게 관리하는 것 뿐인데 소년은 얼마나 아프고 그에 따른 고통이 심할지.그러다 이 책을 손에 들고나니 그 소년의 고통어린 눈이 생각이 났다. 데자뷰처럼 사진으로 보았던 소년의 모습을 겉표지에서 보는 느낌,그리고 소설의 내용이 겹치지는 것은 무얼까? 물고기소년에 대한 이야기와 사진을 본 것은 이 책을 읽으려던 계시였나.

 

이 책은 받아 놓고 건성을 한번 본 후에 많은 이들에게 선물을 주고 정작 난 이제서 읽어 보고 있다는,며칠전에 손에서 놓은 저자의 <파과>를 읽고나니 이 책도 얼른 읽어야지 궁금해서 못 견디겠다. 그래서 얼른 다른책들 제쳐놓고 읽기 시작했는데 소설속처럼 세상 밖은 대낮에도 어두컴컴한 밤과 같고 천둥 번개에 폭우가 쏟아져 내리고 있어 더 실감이 나게 읽었다. 물 속을 헤매이며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청년,아니 그를 인어왕자라 불러야 하나.그에겐 퇴화되듯 흔적기관처럼 '아가미'가 있다. 왜 그에게 아가미와 온 몸에 고기 비늘이 존재하는 것일까? 그는 물 속에서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이며 왜 물 속을 유영하고 있는지. 저자의 소설을 접하다 보면 주인공들의 이름이 정말 특이하다.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이름도 곤,해류,강하,이녕 등 흔한 이름도 아니고 소설과 이름은 하나가 되어 흘러가듯 한다. 소설 <파과>에서는 투우,조각,유기견의 이름은 무용이다. 그 역할에 맞는 이름인데 낯선듯 하면서 읽어나가다 보면 너무도 잘 맞는다.

 

해류는 아픈 엄마를 돌보느라 빨리 집에 가야하기도 해야 했지만 주머니가 너무 가벼워 가진 돈만큼 타고 택시에서 내렸는데 그것이 다리다. 다리를 걷다가 핸드폰을 놓치게 되고 핸드폰을 집으려 하다가 그만 강물에 떨어지고 만다. 강물에 떨어지며 그녀는 죽으리라 생각했지만 물고기와 물고기를 닮은 사람이 나타나 그녀를 구해준다. 정말 인어왕자일까? 그로 인해 그녀는 덤으로 주어지는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그녀를 구해준 그가 궁금하다. 왜 그는 물에서 살고 있는가? 약간은 어눌하지만 인간의 말을 하고 있으니 분명 인간인데 그에게서 어류에 있는 '아가미'를 보고 물고기 비늘과 같은 것의 반짝임도 보게 된다. 그는 물고기 인간일까.

 

아무리 괴롭혀도 도망치지 않는, 실은 그러면서도 정말로 도망치게 놔두기를 원했는지조차 스스로도 혼란스러웠던 당신이란 존재가 나름 불만스럽기도 하고 덜 마른 접착제처럼 불안하며 온몸에 까슬까슬한 촉수를 세운 듯이 초조하기도 했지만, 강하는 그것을 삶의 긴장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며 그래도 받아들이려던 거였어요.

 

곤이 이내천에서 건져지기 전에는 정말 곤궁하면서 사람으로의 삶이 아니었다. 그를 놓고 나간 엄마에 생활비마져 바닥이 나 막다른 골목까지 쫒긴 아버지는 살인까지 저지르고 이내천에 그와 함께 빠졌다. 하지만 작은 몸으로 그곳에서 살아서 밖으로 나온 그의 몸에는 '아가미'가 있었던 것,그를 건져낸 할아버지와 강하의 손에 의해 그들과 가족이 아니면서 가족이 되어 살아가는 곤,곤이라는 이름 또한 강하가 지어 주었다. 그가 읽던 장자라는 책에서 그에 맞는 이름을 발견한것이 '곤'이다. 그렇게 하여 생년월시도 모르지만 그래도 이 땅에 존재한다는 증거라도 되듯 이름하나 얻게 된다. 강하의 삶 또한 곤보다 나은것이 없다. 그를 버리듯 하고 돌아오지 않는 엄마,하여 할아버지와 살게 되니 그가 뱉어내는 말은 험하다.곤에게도 험하게 말을 하지만 그 속은 그를 얼마나 챙기고 가족으로 생각하는지.

 

인간세상에서 그것도 죽음의 호수나 마찬가지인 '이내천'주변에서 물고기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험난한 삶이다.평범한 강하도 힘겨운 삶인데 어류와 인간의 경계처럼 태어난 곤의 삶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는 늘 물이 그립듯 물과 함께 하려하지만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것이 문제가 될 수 있고 이슈가 될 수 있다.숨겨야 잘 살수 있고 이 가족이 흩어지지 않고 살아가는 길이다. 그런 그들의 삶에 엄마 이녕의 귀향은 곤과 강하를 갈라 놓게 된다. 곤이라는 생명체를 이내천에서 떠나 보내야 했는데 그것이 조금 더 일찍,뜻하지 않은 이녕의 죽음으로 앞당겨진 것 뿐이다. 그렇게 세상 속으로 곤을 떠나보내고 할아버지와 함께 살아야 했던 강하,그의 마음 속에서는 늘 곤이 살아 있다. 곤이 아가미를 가졌고 몸에 고기 비늘을 가졌어도 그는 그에겐 동생이나 마찬가지고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자신의 그런 특성을 숨기고 살아가야 했언 곤의 앞에 '해류'가 나타나며 강하의 이야기며 모든 일들이 밝혀지게 되고 그 순간 이후오 곤은 물에서 강하와 할아버지를 찾아 늘 물 속을 헤매인다. 그를 가족으로 받아 들여주었던 할아버지와 강하를 찾는 일에 아가미와 물고기의 특성이야말로 제대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현실과 만나 정말 현실적으로 그것도 장맛비가 지나는 여름에 읽으니 더 실감이 난다. 거기에 '물고기비늘 소년' 사진을 보아서일까 낯설지 않은 형상이 머리속에 그려지며 현실적으로 살아서 움직이듯 영상이 나타나니 비현실속에 있으면서 현실을 보는 이녕처럼 혼상속에서 현실과 마주하는 느낌이 든다. 저자는 <위저드베이커리>에서는 환상 속으로 이끌어 들이더니 이번에는 비현실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에 놓이게 하고 <파과> 에서는 60대 살인업자인 조각의 삶을 통해 육십이라는 나이가 비현실과 같은 삶을 살았다면 이제 현실에 눈 뜨게 해준다. 그녀의 소설은 이렇듯 비현실과 현실의 세계를 왔다갔다 하면서 마치 모든 것이 현실세계인처럼 이끌어가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어찌보면 그녀의 이야기의 현실과 비현실으로 오가는 '흔적기관'으로 '아가미'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현실과 비현실의 '가교' 역할을 해주는듯한 '아가미'라는 호흡기관을 통해 그녀가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생명' 혹은 '가족애' 라고 본다. 태어나 가족이라는 의미를 가져보지 못한 곤에게 아가미를 통해 하나로 연결될 수 있었던 할아버지와 강하의 관계 그리고 해류라는 여성까지 이어지고 그가 물 속에서 건져 올리는 '생명' 의 연결고리를 통해 결코 흔적기관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인 '호흡기관'으로 봐야할 것이다. 어린시절 <인언공주>를 읽고 왕자를 꿈꾸었다면 <아가미>를 읽으면 '인어왕자'를 물가에 가면 찾아봐야 할 것만 같다.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해 준다는 것은 힘든 일인데 어린 강하가 자신과 다른 '곤'의 아가미와 비늘을 인정하고 가족으로 받아 들였듯이 우리도 나와 다름을 인정하며 역지사지를 해 본다면 가족이라는 혹은 넓은 의미의 세상에서 흩어지거나 깨지는 경우는 드물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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