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윌리엄 폴 영 지음, 한은경 옮김 / 세계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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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떤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제대로 사랑한다는 의미야...


이 책을 읽으며 과연 맥의 입장이라면 딸을 살해한 범인을 '용서' 를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용서>라는 것은  타인을 용서하는 것일까 자신을 용서하는 것일까..자신의 마음을 옭아매고 있던 미움의 울타리를 거두어 내고 <마음에 자유>를 안겨주는 것처럼 <용서>라는 것은 타인보다는 나 자신을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미워하고 증오한다면 자신 또한 평생을 마음의 감옥안에서 어둠속에서 살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 어둠밭에서 빛을 보지 않고 살기 보다는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더 나으리라.

맥은 바쁜 아내를 대신하여 아이들을 데리고 가족여행을 떠난다. 친구들 가족과 함께 캠핑을 가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던 중 케이트가 카누를 타다가 아빠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던 순간에 모든 슬픔이 시작되었다. 카누가 뒤집히면서 아이들이 물에 빠지고 구조원을 했던 경험이 있는 맥은 물에 뛰어 들어가 간신히 아이들을 구해 내지만 '거대한 슬픔'은 그 뒤에 일어난다. 막내딸 '미시'가 감쪽같이 사라진것. 그들이 야영하던 캠핑장 주변을 찾아 보지만 미시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고 수소문 하던 끝에 낯선자가 미시를 유괴해 갔음이 밝혀지고 그가 남긴 증거물은 연쇄살인범임을 알아내지만 미시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유괴해가던 차를 쫒던 중에 오두막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발견하는 피 묻은 미시의 빨간 원피스를 찾아 내지만 여섯살난 미시는 없다. 그 슬픔을 간진한채 살아가던 맥에게 어느날 전해진 쪽지 한 장, 그곳엔 오두막에 오라는 파파가 보낸 글이 쓰여 있고 그는 아내와 아이들이 여행을 떠난 후에 오두막으로 향하여 슬픔의 장소에서 뜻하지 않게 '파파' 를 만나게 된다. 하느님은 우리가 늘 생각하는 비슷한 그림의 형상을 생각하는데 이곳에서 만난 파파는 우리의 생각을 뒤집어 놓는다. 흑인에 중년의 뚱뚱한 아줌마. 파파와 함께 있는 예수와 그외 사람들과 맥은 지난 이야기와 신비한 체험을 하듯 시간을 보내며 그동안 자신이 속에 얽히어 있던 실타래를 풀듯 상처를 조금씩 치유하며 자신이 가장 증오하는 자마져 '용서'를 하는 법을 배운다. 

'여기는 바로 당신의 영혼이에요. 이 혼란스러운 정원이 바로 당신인 거죠! 당신의 마음 밭에서 우리가 함께 목적을 갖고 일했어요. 비록 거칠지만 아름답고 완벽하게 진행되고 있어요. 당신이 보기에는 엉망 같아도 나에게는 완벽한 패턴이 형성되고 있는게 보여요. 생기가 넘치는 게 느껴져요. 그야말로 살아 있는 차원 분열 도형이죠.' 

'어둠 속에서는 두려움과 거짓말과 후회의 실체 크기가 가려지죠. 그런 것들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이기 때문에 어둠 속에서 더 크게 보일 뿐이에요. 당신 안에 있는 그런 것들에게 빛을 비추면 실제 모습이 보이겠죠.' 

'당신이 내 존재를 느끼건 아니건 간에 당신은 언제나 나에게 말을 걸 수 있고 나는 언제나 당신과 함께 있을 거예요.'

우린 어려움에 처하면 자신도 모르게 '아이고 하느님..' 이란 소리를 할때가 있다. 위에 언급한 말처럼 하느님이란 존재는 우리가 느끼건 못 느끼건 간에 우리안에 늘 함께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기독교나 크리스천이란 소리는 아니다. 종교를 떠나서 무한의 존재로 느끼는 하느님에게 알게 모르게 넋두리처럼 혼잣말을 할때가 있다. 몹시 대화가 하고 픈데 들어줄 사람이 없다던가 '영적인 존재'에게 털어 놓으면 꼭 들어줄것만 같아 꼭 그분이 아니어도 공간안에 숨쉬고 있는 어느 존재에게 자신만의 마음을 담아 소원을 빌 때, 우린 정형화 되지 않은 하느님을 만난다. 소설속처럼 아픔을 간직한 맥이 형상화된 하느님을 만나서 자신안에 고여 있던 아픔을 토로해 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의 상처가 아물 수 있었을까. 그 하느님이 할아버지든 할머니든 중년의 흑인 여성이든 간에 자신의 아픔을 표출해 내고 그들과<대화> 를 나누었기에 상처가 소독이 되지 않았나 싶다. 

<오두막> 은 자신에게는 상처였지만 그 상처를 치유하게 해 준 장소이며 공간이다. 그가 '거대한 슬픔'의 장소로 <오두막>을 그냥 방치해 두었다면 그의 상처는 영원히 아물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자신을 갉아 먹었을 테지만 영적인 존재와 만남에서 자신안에 고여 있던 아픔을 모두 짜내어 새살이 돋아 나오게 하였기에 어둠속에서는 아픔의 상처가 커 보였지만 밝은 빛에서는 실제 자신의 존재를 볼 수 있었던,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커다란 아픔이 되었던 장소나 사건이 일어났던 곳에 누가 다시 가고 싶겠는가.하지만 나 또한 경미한 사고로 끝났지만 아픔의 장소가 있다. 그 장소와 이름만 들어도 아픔이 다시 밀려오는 듯 했지만 그 아픔을 잊는 가장 빠른 방법은 그 장소에 가서 사고 현장을 다시 들여다 보는 것이다. 상처를 덮어 놓거나 기피하기 보다는 부딪히다 보면 더 빨리 치유할 수 있다는 작가만의 치유 방법이 하느님과의 대화로 이어지지만 그가 현실을 받아 들이고 부딪힌 것이 더 빨리 치유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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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양피지 - 캅베드
헤르메스 김 지음 / 살림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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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물이란 소중한 것이지만 소가 마시면 젖이 되고 뱀이 마시면 독이 되기 때문이지....


기적의 양피지 캅베드, 무언가 소원을 이루어줄 이야기가 숨어 있는 듯하여 무척 관심이 갔던 책이다. 우연히 이즈미르 바닷가에서 만난 노인 아리에게서 그의 인생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는 윌리엄 게이츠, 이 이름이 먼저 나왔다면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책을 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은 글쎄, 뭔가 허전하다. 기적의 양피지는 다른 힘을 빌리기 보다는 자신의 발로 직접 뛰어야 얻을 수 있는 <노력의 댓가>이며 그 댓가를 매우 유용하게 활용할줄 알아야 한다는 반전을 전해주는 것 같다.

선박왕 오나시스, 그에 관한 이야기는 예전에 가끔 뉴스로 전해들었던 기억이 나서 책속의 이야기들을 이해하는데는 어렵지 않았다. 윌리엄이 바닷가에서 우연히 만났던 노인은 자신이 억만장자라고 하는 오나시스였던 것이다. 그는 우연하게 한 노인으로 부터 17살에 양피지를 하나 얻게 되고 그 양피지에 적힌 대로 열심히 공경하고 노력하여 남들이 이루지 못한 거대한 부를 이룬다. 맨손으로 일어난 그에게는 배경이 그리 든든하지 못해 아내나 그외 연애인,정치인등을 배경으로 이용하지만 남들은 그가 그들을 존경해서라고 하지만 그는 존경이 공경이라 한다. 존경은 댓가를 바라지 않지만 공경은 댓가를 바라고 하는것이라 그는 평한다. 그가 그의 인생의 발판으로 삼았던 사람들은 양피지에 나온 글귀처럼 다른 계단으로 올라갈 발판으로 삼기 위하여 공경을 했던 것인데 그에 따른 막대한 이익이 붙어왔던 것이다. 

놀랍지 않소,사람이 미래는 그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대로 된다는 사실이?...
그의 인생은 이 한마디에 함축되어 있는것 같다. 전화교환기 교체공에서 연초장사로 사장으로 운송업까지 발을 넓혀가더니 선박업에 포경선이며 그가 손을 대지 않은 사업이 없는듯 하다. 그가 이루고자 하면 무엇이든 그의 앞에서는 식은죽먹기처럼 쉽게 이루어진것이 결과로 보면 남들 눈에는 쉽게 보였지만 뒤로는 그만의 <남과 다른 노력> 이 있었기에 가당한 일이었다. 하지만 부의 축적에도 제대로 활용을 하지 못했다. 점점 자신에게 자만하여져 자신을 기만하고 신을 존경하지 못했기에 아내와 이혼하게 되고 아들이 일찍 죽게 되고 실질적인 자신의 울타리가 없어 삶의 무미건조해 보이는 아리노인의 지난 생. 자신이 양피지를 잘못 사용했지만 윌리엄에게는 자신이 밟아온 과오를 저지르지 않게 하기 위해 들려준 이야기들.

소설은 아리의 이야기에 대한 반전처럼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세계 제일의 부자 빌 게이츠가 나온다. 오나시스와 게이츠의 인생은 너무도 다르다. 게이츠는 물러날때를 알아 물러나고 자신의 부를 사회에 환원하여 혼자만의 부를 누리지 않았다는 것. 부자들에게는 어쩌면 ’기적의 양피지 캅베드’처럼 그들에게만 전해지는 캅베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물을 누가 마시느냐 따라 젖과 독이 될 수 있다는 예를 들어 보인것 같다. ’돈을 잃는 것은 적게 잃는 것이라네. 그러나 명예를 잃는 것은 크게 잃는 것이지.더더욱 용기를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거야..’  위기가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되듯이 용기를 잃지 말고 어려움에도 당당히 일어서 노력을 하여 행복을 얻으라는 말처럼 희망을 전해주려는 양피지이다. 

당신은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에요. 당신이 할 줄 아는 것은 능숙한 연기뿐이지요. 당신 인생은 그자체가 당신이 창조해낸 연기일 뿐이에요.. 오나시스의 삶은 과장된 연기의 삶이라 표현한 말이 지금 나 또한 연기의 인생을 살고 있는것은 아닌지 뒤돌아 보게 한다. <사람이 자기자신을 공경하면 행복을 얻는다. 왜냐하면 행복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공경하면 부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을 얻게 된다. 왜냐하면 부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캅베드의 문장처럼 오늘 부터 행복을 얻기 위해 자기 자신을 공경해 보는 것도 괜찮은것 같다. 소설속 아리처럼 인생이 목적이 행복에 있다고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지만 인생의 목적이 그하나만은 아니란것을 제시해주고 있다. 내 인생이 목적이 무엇이든 ’성공이란 여우의 귀가 가르쳐주고 사자의 발이 가져다주는 것이오.’ 란 말처럼 지금부터 열심히 노력하며 최선을 다하며 내 인생의 행복의 주문을 걸며 발빠르게 뛰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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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마음을 만지다 - 시가 있는 심리치유 에세이
최영아 지음 / 쌤앤파커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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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단비에 젖은 듯한 마음......촉촉하고 시원해서 좋다.


워낙에 詩를 좋아하고 시를 쓰기를 좋아했다. 책을 읽다보니 내가 시를 쓰고 싶다고 느끼고 쓰게 된것도 마음을 다치고 나서부터인것을 알았다. 심하게 마음을 다치고 나서 아픈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난 혼자 넋두리처럼 시를 쓰기 시작했다. 글쓰기를 좋아했고 낙서하는것을 좋아했기에 시가 내 마은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을줄은 몰랐다. 아이 낳고 살림하다가 우연하게 시작했으니 식구들은 모두 믿질 않았다. 그렇다고 전공한것도 아닌데... 날마다 아이들은 '진짜 엄마가 쓴거야..' 하면서 물어 보았지만 난 쏟아 내놓고 나면 마음이 비워지는 것을 느껴 날마다 무슨 일과처럼 하루에 3편정도의 시를 쓴것 같다. 여고시절이나 예전에는 좋아하는 시들을 줄줄이 외고 다니기도 하고 문학소녀 아닌 이가 없겠지만 유독 시를 좋아했다. 그래서일까 잠재되어 있던 언어처럼 줄줄이 엮이어 나오는 단어들은 날 행복하게 만들었다고 봐도 좋다.

어느날은 작가의 말처럼 내가 쓴 시를 소리내어 읽어보기도 하고 프린트를 하여 식구들에게 자랑을 하기도 했다. 그것이 나의 스스로의 치유방법이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시와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면 우울증으로 힘들었을것 같은 시기, 그 시기를 벗어나지 못했을것 같다. 옆에서 지켜보았던 친구들도 대단하다며 어떻게 치유를 했는지 묻곤 했는데 역시 난 '시를 썼기에 그 시간을 넘긴것 같다.' 아무 의미없이 말하곤 하였는데 책을 읽다보니 마음에 상처를 치유해주는 시의 능력을 내 마음은 어떻게 알고 스스로 치유능력을 키웠던 것일까.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마음이 다치는 일이 일어났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는데 일은 커지고 타인에 의해 안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말았다. 정말 뚜껑이 열리는 기분으로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을때 책을 들었다. 한줄 한줄 읽다보니 내가 지금 단비를 맞고 있는 것처럼, 소나기가 내리는 빗속을 지나쳐온 것처럼 책을 읽으며 스스로 치유를 해 나가고 있었다. 한편 한편 읽다보니 마음이 가라앉고 스스로 정화가 되어 있었다. 좋은 구절을 옆에 있는 남편에게 읽어주며 함께 하다 보니 '좋은 책은 혼자서 읽지 말고 나누자..' 하는 남편. 시가 마음을 만지고 지나간것일까...

처음에는 그냥 읽던 시들이 작가의 말을 따라 한번 소리내어 읽게 되었다. 소리가 내게 와서 콕 콕 박히는 느낌, 나의 소리이지만 소리에 익숙하기 보다 정말 문명의 이기때문에 소리를 점점 잊고 살아가는데 시를 읽다보니 아름다운 소리를 찾은듯한 느낌이다. <'이' 발음은 심장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가가 있고 '아'라는 발음은 폐와 관계가 있기 때문에 가슴속에 맺혀 있는 감정을 풀어준다. 마음이 답답할때 '아아아..'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우' 하는 소리는 생식기에 자극을 주어 짜릿짜릿한 느낌이 들게 한다는 것이다'> 하고 소리가 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읽어 주었더니 그런것 같단다. 앞으로는 날마다 하루에 한편 시를 읽어야 겠단다.

인생을 파괴시키는 것은 혀와 말만으로도 충분하다.
쉽게 뱉어내고 쉽게 지나쳐 버렸던 말들이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한마디 말이라고 꼭꼭 씹어 뱉어야 할것 같은 것처럼 소중하게 다가오기도 하고 감정을 억제하며 내 안에 쌓아두기 보다는 내뱉어 내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것을 한번 더 느껴본다. '울고 싶을 땐 울어라. 참으려고 안간힘을 쓰지 마라.우아하게 소리 없이 눈물만 뚝뚝 떨어뜨리지 마라. 고여 있는 것을 퍼내야 된다. 울고 싶을 땐 큰소리로 엉엉 목 놓아 울어라. 실컷 울고 나면 울음이 조금씩 잦아 들면서 마음은 서서히 평안을 되찾아갈 것이다.' 그래서 였을까.. 어린시절 엉엉 울다보면 어느새 새근새근 자고 있었던, 지금은 언제 그렇게 엉엉 큰소리로 울어보았나 까마득하다. 그만큼 마음의 찌꺼기들을 내 안에 쌓아두고 살았던것 같다. 이제는 내 몸의 노폐물을 뱉어내야 할것 같다. 한편의 시를 소리 내어 읽어보기도 하고 감정의 억제하기 보다는 감정에 솔직하며 그렇게 살고 싶어졌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정말 마음이 개운해졌다는 것이다. 소나기 내리는 빗속을 한차례 지나쳐 온것 같기도 하고 단비에 젖은것 같은 느낌, 비는 소리와 함께 온다고 하더니 <시가 마음을 만지다>라는 책은 비와 같은것 같다. ' 우리는 살기 위해 사랑해야 하고, 사랑하기 위해 살아야 한다.' 오늘부터 내 삶을 더 사랑하며 살아야 할것 같다. 책에 소개된 시중에 한편의 일부분인 박노해의 너의 하늘을 보아中에서 옮겨본다. 너무 힘들어 눈물이 흐를 때는/ 가만히 네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가 닿는/ 너의 하늘을 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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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만경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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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빠지다' 라는 의미는 자기가 사라지고 영혼을 빼앗긴다는 것이다.
'빠지다'라는 말과 '탐닉하다' 라는 말은 전혀 다르다.
'탐닉하다' 는 감각적인 문제지만 '빠지다'라는 건 영혼의 문제다.



요시다 슈이치,그의 책들을 읽다보니 빠져들었는가 싶으면서도 한권을 끝내고 나면 허전하다. 그의 소설이 로맨스가 아닌 연애소설이라 그런가보다. 사랑의 감정이 싹트는가 싶으면 끝나는 조금은 건조한듯 하면서도 연애나  일상을 섬세하게 그려냈다는 것이 그에게 빠지는 이유인듯 하다. 

주인공 료스케는 메일로 한여자를 만나게 된다. 그녀를 만나기 전 고등학교대 선생님과 일년여간 동거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떠나 버린 그녀때문에 사랑에 데인 상처를 안고 산다. 그런 그가 만난 여자 료쿄는 마음이 끌리면서도 그녀 또한 메일사이트를 통해서 만나서인지 이름이며 직업들을 그에게 숨긴다. 첫만남 이후 별 이유없이 헤어졌는가 했는데 료스케가 얼마후에 보낸 메일로 그들은 다시 만난다. 하지만 그때 료스케는 미오라는 여자와 사귀듯 만나던 시기였는데 료쿄를 만나기 시작하며 그녀에게 이별을 통고하였다. 료스케의 이별을 믿을수 없는 그녀는 셋이서 사귀자는 제안까지 하지만 료스케와 료쿄는 그들만의 세계로 빠져든다. 하지만 서로의 영혼을 빼앗기듯 빠져든것이 아니라 육체를 탐닉하듯 겉만 도는 연애를 한다. 료쿄는 직장동료에게 말했듯이 '마치 자신이 료스케가 아니라 료스케의 몸에 반한 것 같다' 는 말처럼 그의 가슴에 난 화상까지도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소설속의 소설 '동경만경' 이 화근이 되어 그녀는 잠시 료스케에 떨어져 지내지만 다시 료스케를 찾게 된다. 료스케 또한 고등학교시절 선생님께 데인 사랑이 상처때문에 사랑은 언젠가는 끝이난다는, 내리막길의 생각에서 벗어나 그녀 료쿄, 미오를 바로 보게 된다. 료쿄도 또한 사랑한번 해보지 않았기에 그저 료쿄의 몸만 탐닉하다가 주위 사람들의 말에 의해 비로소 자신의 사랑을 보게 된다.

이 소설은 특이하게 소설속에 동명의 소설인 <동경만경>이 함께 진행이 된다. 그 또한 료스케가 주인공이며 그가 일하는 부둣가 선착장이며 그녀가 사귀는 여자 역시 메일사이트에서 알게된 여자이다. 작가는 료스케를 인터뷰한뒤에 그를 소설속에 그대로 들어내놓는다. 작가 자신은 사랑을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소설속의 이야기는 어느덧 현실이 되고 료스케 또한 자신이 현실에서 느끼지 못한 감정을 소설을 통해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도 하면서 소설과 함께 감정이 진행이 된다. 

그들의 직장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보듯 하고 있다. 바다가 없었다면 돌아갈 필요가 없었을텐데 도쿄만이라는 그들사이의 장벽때문에 연애 또한 한참을 돌아서 가야 한다. 자신들이 가진 상처와 사랑에 대한 결정된 판단때문에 서로를 탐닉하기만 하고 빠져들지 못하지만 그들을 더 자세하게 알고 있는 주위사람들에 의해 자신들의 사랑을 바로 보게 된다. '마리를 안을 때면 가끔씩 눈앞에 떠오르는 광경이 있다. 해수가 모두 말라버린 도쿄만 풍경이다. 햇빛을 받은 수면 밑바닥은 마치 폐허와도 같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내 마음인데도 누군가가 스위치를 켜지 않으면 ON이 되지 않고, 거꾸로 누군가가 그 스위치를 끄지 않으면 OFF가 되지 않는 거지. 좋아하기로 마음먹는다고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싫어하기로 작정한다고 싫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그의 품안에서 자유롭게 몸을 해방시킬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문득 그의 소설을 손에서 놓으며 '겨울눈' 이 생각이 난다. 온갖 풍상을 이겨내고 봄이 오고야 비로소 새로운 잎이 되는 겨울눈, 그의 소설은 혹독한 시간을 이겨내고 있는 겨울눈 같다. 이제 봄을 기다리고 봄이 오는가 싶으면 소설은 끝이나고 허전함에 내려놓다 보면 그의 다른 소설들을 집게 된다. 연애감정을 이렇게 건조하면서도 그 건조한 연애조차 일상임을 강조하는 그의 섬세한 문체,그래서 그에게 빠져드는가 보다. 도쿄만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듯 서로를 찾고 있을 그들을 찾을 수 있을것만 같은 표지의 사진이 책을 읽고나면 다르게 보인다. 우리와는 문화적인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사람 살아가는 방법은 다 똑같은가 보다. 연애하다 지치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다 지치면 결혼하게 되고...사랑보다는 연애가 더 진부하지 않아서 좋다.좀더 깊숙히 헤엄쳐 들어갈 공간이 남아 있기에 여유를 부리듯 자신의 전부를 들어내지 않고 탐닉하는 그 시간이 그만의 건조함으로 이루어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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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온천
요시다 슈이치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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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랑은 무엇일까...


요시다 슈이치,요즘 이 작가에게 필이 꽂혔다. 처음 접한 책은 <사랑을 말해줘>이지만 구매를 해 놓고 읽지 않다가 <7월 24일 거리>부터 읽었다. 무언가 색다르면서도 섬세함이라고 해야할까.짧막하면서도 결코 짧지 않은 이야기처럼 한편의 그림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사랑을 말해줘>도 그렇고 <첫사랑 온천>도 영화와 같은 느낌의 이야기다. 글을 읽으면 곧 영상으로 떠오를듯 한 이야기들이 뿌연 일본이 온천과 함께 그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 같다.

일본의 온천이나 일본 여행을 가보지 않았지만 방송매체에서 많이 접했던 혹은 그런 풍경을 연상하며 소설을 읽으면 문득 소설속 다섯 커플의 뒤를 따라 온천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글인 ’첫사랑 온천’, 첫사랑인 아내 아야코와 함께 남부럽지 않게 삶을 일군 시게타. 아내와 소원해진듯 하여 온천여행을 가자고 하지만 그녀는 ’이혼’을 요구한다. 그들의 삶에서 사랑은 어떤 것이었을까.’바람이 불어오는 온천’ 또한 외도를 하는 남자의 미묘하나 심리가 잘 나타나 있다.

’흰 눈 온천’에는 옆방에 투숙한 사람들에게 신경을 쓰는 20대 커플이 자신들의 사랑을 재 발견하는 하며 <망설임의 온천>은 30대 주인공들이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과 멀어지는 이야기며 ’순정온천’은 10대인 고등학생 남녀가 온천여행을 가는데 남학생의 풋풋함이 잘 들어난 이야기다 소설에 나왔던 커플들의 사랑을 보면 30대의 불같던 사랑도 시들해져 이혼의 문턱에 오고 20대 30대의 바람과 같은 사랑에 흔들리는 고뇌와 마지막의 10대의 풋풋한 순정적인 사랑을 배열해 놓은것을 보면 사랑은 바람에 흔들리는 흰 눈과 같지만 그 속엔 진실된 순정이 있다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랑도 마음도 머무르지 않고 흘러감을 건조한 문체에 습기어린 온천의 풍경과 맞물려 묘한 느낌을 자아내준것 같다. 건조한듯 하면서도 그의 소설의 문을 열고 들여다 보면 뭔가 다른 느낌이 도사리고 있는, 안개 속에 숨겨진 진실이 담겨 있음을 읽을 수 있다. 

그의 책을 접하면 접할수록 왠지 모르게 한발 더 담그고 싶은 욕심이 다른 책들을 찾게 만든다. 이 책은 품절된 책인데 인터파크 헌책방에서 새책과 같은 느낌으로 만나 읽게 되었으니 행운이라 여긴다. 아직 작가의 속을 다 들여다보진 않았지만 <아쿠타가와상 수상 작가>란 수식어가 수식어로 끝나지 않는것 같다. ’결혼이란 건 말이야, 아내가 오는지 안 오는지 살피면서 인터넷으로 성인 사이트를 보는 긴장감이야.’ -망설임 온천에서.. 읽고 나니 맞는 말인것 같다. 긴장과 스릴감이 있는 사랑과 결혼에 대한 그의 마음이 위트넘치게 이 문장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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