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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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 뒤에는 미국이 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의 저격사건이 있었던 때, 난 초등생 이었다. 어떻게 해서 그런일이 일어난 것인지 무척이나 슬프고도 무서웠던 때였다. 하지만 진실은 무엇인지 병풍뒤에 가려진 채 정말 김재규 그가 말한 것처럼 미국의 조정에 의해 꼭두각시 놀음을 한 것인지 궁금했지만 일반적인 사건도 아니고 한 나라의 대통령을 저격한 사건이기에 늘 쉬쉬하면서 그렇게 그렇게 세월이 흘러간듯 하다. 사건이후 참으로 많은 시간동안 우린 민주화의 급물살에 휘말려 이곳까지 왔지만 정말 1026 진실은 무엇인가?

그가 발표하는 작품마다 흥미롭다. 진실이 밝혀지지 보다는 수면위로 떠 오르면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부분들을 그만의 날카로움으로 다루고 있어 더욱 대중적 호응을 얻고 있는 듯 하다. 얼마전에 읽은 <천년의 금서> 또한 재밌게 읽었다. 그는 작품에서 우리의 뿌리와 역사 그리고 진실에 대하여 좀더 가깝게 접근하려는 그만의 방법으로 극적재미를 더 해 주는것 같다. 이 작품 또한 대통령들이 나오고 꺼내 놓으면 '블편한 진실' 이 될 사건이기에 어떻게 받아 들이고 어떻게 풀어나갈지 궁금했다. 어쩌면 책 속 주인공인 변호사인 경훈은 작가 자신의 모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가 밝히려 한 '진실' 처럼 작가 또한 우리에게 속 시원하게 진실을 말해주고 싶었을 것이며 독자에게 '알아야 할 권리' 를 말해주는듯도 하다.

미국 보스턴에서 얼마 있으면 한국으로 돌아갈 변호사 경훈은 후배 수연이 판소리를 하는 모습에 왜 그녀가 판소리를 택하여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하는지 묻는다. 아마도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것처럼 어쩌면 그들에게 이국적인 문화인 '판소리' 가 먹혀 들어갔는지 그녀의 수입은 짭짤했다. 그런 그녀가 어느날 밤 외출이 있다며 꼭 받아야 할 전화라며 그에게 돌려 놓고 외출을 하고 그는 새벽에 갑자기 걸려온 낯모를 남자의 전화를 받는다. 하지만 그 전화는 죽어가는 남자의 '유언' 이었던 것. 그 유언속에는 어마어마한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바..박 대통령... 비밀...10.26..... 비밀을... 내가...수연....하...하... 하우스....으..으...헉.' 그가 남긴 마지막 말에 그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그남자의 유언에 빨려 들듯 비밀을 캐기 위하여 나선다.

'과연 10.26의 진실은 무엇인가? 표면으로 드러난 사실과는 다른 진실이 은폐되어 있다는 것인가? 아니면 그저 한 노인의 헛소리에 불과한가?' 수연에게 노인에 대하여 물어보지만 그녀 또한 노인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다. 하지만 그 노인은 모든 유산을 그녀에게 남겨 놓았다. 과연 그 남자의 정체가 무엇이란 말인가? 겨우 이름을 알아내고 장례를 치르고 집에 찾아가 보지만 그의 정체를 파악해 낼 아무것도 없다. 그렇게 노인을 추적하여 들어가다가 커다란 나무의 뿌리를 발견하게 된 것처럼 거대한 진실들이 쏟아져 나오고 경훈이 몸 담고 있던 곳의 캡틴은 그에게 심부름을 해 달라고 하고는 갑자기 사라진다. 어떤 진실이길래 캡틴도 사라지고 노인은 한국에서 미국까지 피신을 하여 살고 있는 것인가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10.26의 비밀이 무엇이든 간에. 의리의 사나이 김재규가 유독 자주국방론을 잠꼬대 같은 것이라고 폄하했다면 거기에는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박정희 대통령의 '자주국방론' 을 싫어했던 김재규, 그것이 그를 죽인 이유일까. 아님 미국의 배후를 업고 자행한 일인가. 10.26 사건이 있었던 때 왜 '제럴드 현' 은 입원중었고 사건 이후 바로 퇴원 후 미국으로 향하였을까. 그를 담당한 의사는. 그가 미국에서 수집한 고국의 정보는. 경훈은 남들이 생각해내지 못하는 부분들을 사건추리를 영특하게 해 나가고 수연은 꼭 필요할때 그에게 열쇠를 풀 듯 가장 중요한 실마리를 풀어주어 그들은 점점 '10.26사건' 그 속으로 들어간다. 그들이 추적해 낸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제럴드 현, 현강일이라는 남자가 죽음 직전에 밝히려 한 '비밀과 진실' 은 무엇일까? 경훈이 사건을 추적해 나가는 동안 책은 술술 스피드를 더해가며 빨리 읽혀 나간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라는 진실을 평생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가 죽음 직전에 진실을 토해낸 제럴드 현의 진실은 무엇일까? 한반도에서 또 다시 제2의 10.26' 이 일어날 것인가. 소설은 우리나라에 국한된 것이 아닌 태평양을 건너서까지 그 무대를 넓혀 흥미진진하게 진행이 되어 더욱 스릴감이 있다. '대중? 김대중은 있을지 몰라도 그냥 대중은 없는 거요. 대중이란 늘 선전과 공작에 이용당하는 존재들 아니오. 그들이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겠소?' 그의 말처럼 그동안 대중은 없었던 것인가. 진실이 묻혀질만큼 대중은 선전과 공작에 이용을 당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그는 '불편한 진실' 로 지금 대중을 일깨우고 있는 것일까.

오류는 어디에나 있다. 역사에도 진실에도 오류는 있다. '그들은 10.26을 김재규 부장의 우발적 범행으로 규정하고 발표했지만, 정작 기소할 때는 내란 목적 살인죄를 적용했습니다. 김재규의 범행이 우발적이 아닌, 치밀하게 계획하여 대통령과 경호실장을 살해한 범행이라고 봤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젠 오류를 수정할때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진실에 가까운 상상력이지만 잘못된 역사의 오류라면 이젠 바르게 수정되고 '진실' 이 발혀져야 한다. '경훈은 사건의 핵심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필립 최는 그렇게 어설픈 몇 가지 행적에 기초해서 곧바로 사건의 본질을 파헤치는 경훈이 신비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몇가지 드러나는 사건의 행적을 보고도 누군가는 '진실' 을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눈 가리고 아웅할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말하고 있다. 그렇게 역사속에 묻힌 진실들이 얼마나 많을까.

'경훈은 모순으로 점철된 10.26에 대한 결론을 그냥 덮어둘 없었다. 그것은 한민족의 수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자신이 10.26의 진상을 밝히는 것은 단순히 감추어진 현대사를 들춰내는 정도의 일이 아니었다. 부끄러운 민족사를 가다듬고 치유하는 일인 동시에 재발을 막는 일이기도 했다.' 그랬다. 어쩌면 이 소설은 10.26에 대한 치유의 소설이며 재발 방지를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 그런일이 일어난다면 정말 한민족의 수치다. 그런면에서 진실은 더 정확하게 드러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듯도 하다. 정치에 대하여 깊은 내막을 잘 모르고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지만 우리나라 국민처럼 정치에 관심이 많은 국민은 드물다고 한다. 모두가 정치라면 한소리 쓴소리 하루에도 몇 번은 날리며 살 것이다. 하지만 진실은 왜곡되어 국민을 속이고 앙금처럼 가라앉는다면 우리가 갈 미래는 어떻게 될까. 남.북으로 대치되어 있어 늘 불안을 안고 살고 있는 한반도, 더이상의 아픔도 진실을 숨겨서도 안될 것이다. 소설과 현실이 실제처럼 쓰여져 궁금증을 유발하게도 하지만 소설은 소설의 재미로 덮는다. 작가 때문에 다시금 그때의 추억에 젖어보며 흥미진진함 속에 재밌게 읽고 여운을 남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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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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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여행도 낭만적이지만 '자전거 여행' 도 한번은 꼭 해보고 싶은 여행이다. 하지만 난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 자전거 하면 먼저 얼마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난다. 내가 초등학교때 아버지는 늘 자전거로 날 등교를 시키는가 하면 하교시에도 데리러 자주 학교에 오시곤 했다. 농사일을 하시다 오신 아버지의 뒤에서 떨어질까봐 아버지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고 바람을 느끼며 함께 미루나무길을 달리던 그 추억은 정말 잊을수가 없다. 그런 자전거가 내가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이의 출퇴근용이 되면서 자전거는 나와 좀더 친숙한 생활용품이 되었다. 내가 다칠까봐 자전거를 못배우게 했던 아버지에 비해 남편은 이제라도 자전거를 배워 함께 타고 여행을 가자고 하는 것을 보면 자전거란 꽤나 매력적인 것이면서도 산을 하나 넘어야 할 존재로 남아 있다. 

얼마전에는 우리가 가끔 가는 산을 자동차길로 걷기를 하는데 오르막과 내리막이 적절하게 있어 난 걷기에 좋다고 했더니 그는 자전거를 타고 이 길을 혼자서 와봐야겠다고 말하고 있는데 남편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그 길을 매력적인 모습으로 쌩하게 내려가는 것이었다. 우린 오르막이었지만 그에겐 내리막이었다. 그러니 얼마나 스릴을 느꼈을 것일까. 그가 그 내리막을 만나기 위해선 그동안 힘들게 올라왔던 것에 대한 보답처럼 알맞게 경사지면서 구불구불 하던 그 길은 그가 남기고간 '물음표' 의 자태처럼 내게도 물음표로 남겨지게 되었다. 정말 자전거를 배워볼까. 하지만 그 일은 아직은 내겐 먼 이야기다.

늘 한 자 한 자 꾹꾹 연필로 눌러써서 그의 글을 읽다보면 마음을 아리게 하는 작가 김훈, 자전거 사랑이 남다른 그가 1999~2000년에 떠난 자전거 여행, 십여년 전의 글이지만 방금 다녀온듯한 따끈따끈 하면서도 그가 온 몸으로 눌러 쓴듯 하여 가슴에 새겨지는 맑고 흙내음 물씬 풍기는 언어들이 신선한 바람과 함께 마구마구 가슴을 헤집고 들어오는 듯 하여 그와 함께 여행하는 기분으로 읽었다. 얼마전에 그의 신간 <내 젊은 날의 숲>을 읽어서일까 그 소설은 마치 이 에세이의 일부인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 에세이를 읽다보면 그의 작품들을 모두 만나는 기분이 드는 것은 비단 나만의 느낌일까. <칼의 노래>이며 <현의 노래>이며 혹은 <개-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인듯 <바다의 기별> 아님 <밥벌이의 지겨움> 같기도 한 글들이 내포되어 있는 듯 하다. 

'1999년 가을부터 2000년 여름까지 전국이 산천으로 끝고 다닌 내 자전거의 이름은 풍륜이다. 이제 풍륜은 늙고 병든 말처럼 다 망가졌다. 2000년 7월에 풍륜을 퇴역시키고 새 자전거를 장만했다. 이 책을 팔아서 자전거값 할부를 갚으려 한다. 사람들아 책 좀 사가라.' 그렇다면 그는 십년이 지났으니 물론 새로 장만한 자전거 할부값은 모두 갚았을 것이고 혹시 또 다른 자전거로 바뀌진 않았을까. 카메라 마니아이면서 자전거 마니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가 솔직하게 털어 놓은 마지막 말이 너무 솔직담백하여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자전거 여행을 했으면 자전거를 퇴역시켰을까. 그정도로 신나게 달리고 함께 하며 그가 길따라 아니 그가 만든 길로 자전거를 이끌고 다니며 만난 산천과 사람들 이야기는 너무도 인간적이고 역사적이며 지리학적이라 읽은 후에 다시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가족여행으로 다녀왔던 여수의 '향일암' 그가 들려주는 향일암 이야기는 그때의 추억을 다시 되살리게 만들었다. 비에 젖어 우비를 입고 겨우겨우 많은 계단을 오르며 바위사이를 지나 빨간 동백꽃이 반기는 그 길을 지나 바다를 향하여 있던 향일암을 만났던 기억은 정말 잊을수가 없다. '향일암 앞바다의 동백꽃은 사람을 쳐다보지 않고, 봄빛 부서지는 먼 바다를 쳐다본다. 바닷가에 핀 매화 꽃잎은 바람에 날려서 눈처럼 바다로 떨어져 내린다.' 정말 멋진 표현들과 그의 섬세함이 묻어나는 눈길이 느껴지는 글들이 가슴에 꽃잎처럼 떨어져 수 놓인다. 다시금 향일암에 가서 동백꽃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지 매화 꽃잎이 바람에 날려 바다로 떨어지는지 확인을 해봐야할것만 같은 향일암의 글들은 그 길을 차가 아닌 자전거를 타고 갔다면 아름다운 남해에 가다 쉬면서 만났을 다도해가 그에겐 어떻게 비쳤을지 몹시 궁금해진다. 

그의 섬세함은 비단 동백꽃 그 시선에 머무르지 않고 매화 꽃잎 한 장에 머무르지 않고 봄나물을 먹으며 그 깊은 땅 속의 기운마져 끌어 올리듯 하여 몸서리 쳐진다. '냄비 속에서 끓여지는 동안, 냉이는 된장의 흡인력의 자장 안으로 끌려들어가면서 또 거기에 저항했던 모양이다. 냉이의 저항 흔적은, 냉이 속에 깊이 숨어 있던 봄의 흙냄새, 황토 속으로 스미는 햇빛의 냄새, 싹터오르는 풋것의 비린내를 된장 국물속으로 모두 풀어 내놓는 평화를 이루고 있다.' 어디를 읽어도 정말 좋다. 자전거 여행을 하니 흙과 좀더 친숙한 시간이었겠지만 봄국 한사발에 그 긴 이야기를 봄국의 깊은 맛을 우려내듯 풀어내어 쓴 그남자의 가슴속이 궁금해지게 만드는 글이다. 소설속에서 만나던 작가 김훈이 맞는지 물어보고 싶은 요리연구가의 글처럼 맛깔스럽고 빨리 냉이를 넣은 봄국 한그릇을 얼른 뚝 비우고 그 맛을 느껴봐야 할 듯 하며 그 국을 천천히 음미하며 먹고는 나른한 기지개라고 켜야 할 듯 하다.

그의 여행은 사소한 것들 하나도 놓치는 법이 없이 모두 그의 뷰파인더 안에 가두어 놓듯 모든것들을  글 속에 가두어 둔다. 그냥 흘러가는 가는 강이 아닌 그곳에서 살아 숨쉬는 갯지렁이 하나라도 생명이라는 것으로 존재감을 들어내 놓고 그는 또 다른 길을 만들며 떠난다. 그래서 그의 글이 좋은 것일까. 소설 <개>에서 느꼈던 세심함이 이 여행기에서도 여실히 나타나면서도 어느것 하나 소홀히 놔두지 않고 그의 글속에서 살아 숨쉬게 만드는 그만의 재주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갯지렁이의 구멍은 밀물에 쉽게 쓸려버려서 갯지렁이는 끊임없이 흙을 뱉어내며 새 집을 지어야 한다. 갯지렁이의 이 기구한 무주택의 운명이 갯벌에 지속적으로 산소를 불어넣어, 갯벌은 모든 살아 잇는 것들의 터전이 된다. 갯지렁이는 온몸의 마디를 뻘밭에 밀면서 기어간다. 갯지렁이는 죽음을 통과하듯이 온몸을 뒤틀면서 뻘 속을 헤치고 나간다. 갯지렁이가 기어간 뻘 위의 자국은 난해한 문자와도 같고, 고통스런 글쓰기의 흔적과도 같다.' 갯지렁이의 흔적에 비유한 자신의 글쓰기의 고통이 느껴지는 한 줄의 글에서 작가가 남모르게 느꼈던 고통이 전해진다. 

그는 풍륜과 바람을 가르며 산을 넘고 인생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달리듯 길을 달려가며 생명과 숲과 나무와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무엇보다 그가 전해주는 '사람' 이야기가 너무도 인간적인 이야기들이 많아 가슴에 남는다. IMF의 직격탄을 맞고 아직도 방황하는 생활을 살고 있지만 희망을 일구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나 섬진강가에서 희망을 빛내며 반짝반짝 날마다 새롭게 커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도 너무 인간적이라 좋다. 그런가 하면 그의 신간 '내 젊은 날의 숲' 처럼 그의 숲사랑은 '가까운 숲이 신성하다' 편에서 너무도 세세하게 그려진다. '숲은 글자 모양도 숲처럼 생겨서 글자만 들여다보아도 숲 속에 온 것만 같다.' 그 한 줄에서도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숲의 신성은 멀고 우뚝한 것이 아니라 가깝고 친밀해서 사람의 숨결을 따라 몸속으로 스미는 것임을 안면도 소나무숲 속에서는 알겠다.' 해풍을 이겨내는 소나무숲에서 그가 느꼈던 친밀함은 글처럼 숲이 연결되는 느낌이다. '숲의 시간은 헐겁고 느슨하다. 숲의 시간은 퇴적의 앙금을 남기지 않는다. 숲의 시간은 흐르고 쌓여서 역사를 이루지 않는다. 숲의 시간은 흘러가고 또 흘러오는 소멸과 신생의 순환으로서 새롭고 싱싱하다. 숲의 시간은 언제나 갓 태어난 풋것의 시간이다.' 이 글에서 이미 '내 젊은 날의 숲' 은 예견된 글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와 함께 자전거 여행을 한다면 어떤 자연과 우리나라를 만날까.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자연이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으로 빛나며 그 속에서 자연과 함께 숨 쉬고 있는 사람 또한 한 생명으로 더욱 빛날것만 같은 그의 자전거 여행 이야기는 길이 없어도 끝이 없을듯 하다. 전국 어디를 가도 이야기가 있고 자연이 있고 생명이 있고 생명의 냄새가 있고 살아가는 사람들 또한 그가 속한 자연과 닮아 가면서 자연화 되는 그림같은 이야기들이 너무도 인간적이면서 섬세함을 함께 하는 이야기는 풍륜을 타고 가는 물음표의 그의 모습처럼 물음표의 그가 우리에게 주는 희망의 '느낌표' 로 가슴이 훈훈해진다. 그가 가는 길은 언제고 열려 있어 모든 것들이 살아 숨쉴것만 같은 자전거 여행은 십년이 지난 지금에 읽어도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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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취향
이새인 지음 / 청어람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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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엔 젬병인 여자가 있다. 남들이 부러워 하는 남자와 연애를 하다가도 친구에게 빼았기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나 끼,아름다움을 아직 끄집어 내지 못하고 자신안에 가두어 놓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조금은 어리버리 하면서도 떨어지는 듯 하고 너무 순진하면서 도통 연애는 너무도 모르는 그런 미워할래야 미워할수 없는 사랑스러운 그녀가 있다. 스물 아홉의 그녀는 박스티에 무릎이 한참은 기어 나와서도 몇 번은 나온듯한 츄리닝에 운동활르 신고 코끝엔 빨간테 안경을 쓰고는 머리는 질끈 동여매어 여성스러움이란 찾아볼래야 어디에 박혀 있는지 모른다. 그런 박우민, 그녀가 왜 사랑스러운 것일까.

건축설계를 하는 훈남에 포커페이스이며 어디 구김이라고는 한 곳 찾아보려고 해도 없고 모든 일에 각이져 있을 정도로 말끔한 전진호, 그에겐 어린시절부터 집에서 짝을 맞추어 놓아 형제처럼 지내고 있고 당연히 결혼을 할 것이라 생각하는 나혜미라는 여자가 있다.그녀는 엄격하면서도 깔끔한 진호와는 다르게 연애도 그렇고 모든 생활이 너무 개방적이다. 남자문제를 일으키기만 하면 캐나다에 이민을 가서 살고 있는 그녀는 한국에 있는 진호에게 피신을 오듯 와서 몇 개월 지내다 간다.그런 그녀가 갑자기 또 진호를 찾아 쳐들어왔다. 그녀를 피하기 위하여 갑자기 방이 필요했던 진호는 방을 구하러 다니다 건축계에서는 일인자라고 할 수 있는 저명한 교수의 집에 방을 얻어 들어가게 되었다. 그 집은 바로 우민이 부모님이 영국으로 나가셨기에 연애에 지치지 않고 모든 일상에 보탬이 되는 게이남자 룸메이트를 원해 방을 내 놓았는데 그 집에 바로 들어가게 된 것이며 그 집은 다름 아닌 우민의 아버지 박교수가 예전 집을 다시 개축한 것으로 건축계에서는 알아주는 집인데 그 집은 비밀에 쌓여 있는 공개가 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집에 방을 얻게 되었으니 진호는 정말 하늘이 도왔다 생각하게 되는데 그 집의 주인은 다름아닌 그냥 내 놓아도 아무도 집어갈것 같지 않은 털털한 우민이 살고 있는 것, 여자 세입자를 원한다는 말에 자신은 게이이니 관심 끊으라는 말에 그녀는 그녀가 원하는 던 사람을 하늘이 보내 주신듯 넙죽 들이게 된 것이다.

그들의 '적과의 동거' 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진호에겐 십년지기 같은 일을 하는 상준이라는 친구가 있고 우민에겐 디자이너인 인희라는 친구가 있다. 그들은 그들의 동거날에 모이게 되면서 상준은 우민에게 인희는 진호에게 맘을 품게 된다. 하지만 그들이 '게이커플' 임을 어찌하랴. 아쉬움에 헛물만 켜는 것이 아니라 털털하고 조심성 없는 우민은 그와의 동거에 너무 흡족해 하며 그와 이제 밥을 먹을 수도 있고 함께 술도 마실 수 있음에 좋아한다. 아마도 정이 그리웠던 모양이다.하지만 그들은 사사건건 부딪히게 되고 모든 일은 오해와 꼬임으로 그들을 불편한 관계가 되게 만드는데 그러면서 알 수 없는 가슴 울렁거림과 무언지 모를 온 몸에 힘이 들어오는 듯함은 어찌할 것인가.

자신의 이상이 아니라 다해으로 여겼던 우민이 차츰차츰 진호의 눈에 들어오게 되고 게이지만 아깝다며 부딪히던 진호가 가슴을 설레게 하면서 우여곡절을 겪는 그들, 하지만 인연의 끈은 그들을 갈라 놓질 못하고 꼬이면서도 단단하게 엮어간다. 조력자들의 힘을 얻어 둘의 사랑도 확인하고 몸과 마음을 모두 열게 되지만 진호가 일부러 박교수의 '상고재' 에 들어가 그의 상고재를 카피하고 예솔 미술관 공사 일을 따냈다는 오해가 불거짐에 따라 진호는 자신이 모든 일을 뒤집어 쓰고 일을 원상복귀 시키려 하지만 그런 와중에 그의 능력이 들어나고 그가 진실로 우민을 사랑함이 밝혀져 그들이 오해는 풀리고 결혼에 골인, 물론 미술관 공사까지 멋지게 마루리 해 주신다. 저명한 박교수의 사위로 미술관 공사까지 깔끔하게 마루리 했으니 그야마로 그의 유명세는 '승승장구' 그리고 그들의 결혼전선에도 햇빛이 비추어 2세를 가지게 되었다는 이야기.

이야기는 정말 재밌다. 둘의 밀고 당기도 치고 박고 하는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어떻게 시간이 흐르는지 모르게 읽고 만다. 19금의 이야기도 있지만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정말 맛깔나게 잘 그렸다. 밀당을 적당히 하면서 적당히 꼬이면서 꼬인것들이 스스로 풀리게 만드느는 것까지 그리고 해피엔딩이 무엇보다 좋다는 것. 연애엔 젬병일것 같았던 진호와 우민이 알고보니 변강쇠와 옹녀 커플 다음으로 굉장한 커플이었다는 것. 우민이 진호를 게이로 보면서 어쩌면 더 거짓없이 그를 받아 들이게 된 듯 하다. '게이의 취향' 에서 '개인의 취향' 이 된 것이다. 게이라는 것이 정말 아까울 정도로 가슴을 설레게 하는 진호를 갖고 싶지만 어딘지 모르게 꼭 한부분 빠진듯이 하는 그녀가 또한 너무 이쁘고 사랑스러웠던 그들은 너무도 잘 맞는 커플이다. 남녀가 닮거나 비슷한것보다 반대이면 더 잘 맞듯이 우민의 컴플렉스를 진호가 보완해주는 그들은 상호보완의 관계이면서도 찰떡궁합처럼 모든 면에서 잘 맞는 커플이었던 것.요리는 못하는 그녀 대신 핸섬한 그가 앞치마를 두르고 김치찌개를 맛나게 끓인다면 그에 반하지 않는 여자가 있을까. 여자의 로망같은 진호, 그를 한 눈에 사라잡은 어딘가 어리버리의 우민의 좌충우돌 연애사는 정말 재밌고 짜릿하다. 우민의 능청맞은 말들이 너무도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너무 완벽함 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빠지는 듯 하면서도 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능력을 발휘하는, 그녀가 가진 매력이 아닌가 한다. 무릎나온 츄리닝을 벗고 하늘하늘 원피스에 목을 다 들어낸 머리에 반짝반짝 메이크업을 하고 가끔 발목을 삐기는 하지만 하이힐을 신을 줄 아는 그녀, 어찌 사랑스럽지 않은가. 멋진 진호에게 눈을 맞추어 읽어도 재밌지만 '어리버리의 대명사' 인 우민에 맞추어 소설을 읽으면 정말 더 재밌고 웃음이 나오며 가슴이 찡하다. 역시나 연애사나 인간사나 너무 계산적인 것 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덜떨어져 보여도 계산보다는 자신을 마음을 들어낼 줄 알고 진심으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녀에게 한표를 던지지 않을까. '당신과 있으면 나는 게이만큼이나 충분히 금욕적이 될 수 있으니 안심하시죠....불량식품 같은 여자 따위에게 내가 왜..' 그랬던 진호였는데 너무 금욕적이었나 한번에 폭발하듯 터진 욕정을 쏟아내는 진호와 우민, 정말 웃기면서도 사랑스러운 커플이다. 가을이 가기전 이런 로맨스를 한 편 읽어 보는 것도 참 좋다. 나의 사랑전선에 혹은 연애전선에 윤활유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난 소설속 커플도 부럽긴 하지만 소설속에 등장하는 '상고재' 라는 집이 더욱 부럽다. 그 집에 후원과 같은 곳에 있던 툇마루에 우민이 붙인 이름은 '세월의 속삭임' 이다.조상들이 밟고 다녔던 고재를 다시 이용하여 만든 툇마루, ' 아빠도 가끔 일이 안 풀리시면 여기 와서 이렇게 누워 계시곤 했어요. 그러면 모든 사물들과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저도 기분 나쁘거나 슬픈 일이 생기면 여기 와서 이렇게 누워 있곤 했죠. 그러면 마루의 나무들이 삼,사백 년 동안 살아온 얘기를 들려주는 기분이 들어요. 그 얘기들을 마음으로 듣다보면 내가 겪은 일들이 정말 우습고 사소하게 느껴질 때가 많거든요. 좀 더 대범해지고 너그러워진다고 할까?' 그녀는 겉으로만 어리버리 했지만 사실은 속은 꽉 찬 고재처럼 세월의 단단함을 안고 있던 여자였던 것이다. 겉 멋에 치중하는 그런 값싼 여자가 아닌 내면을 더 중요시할 줄 아는 고재와 같은 여자 우민, 그런 여자를 대번에 알아보고 자신의 '불량식품' 으로 삼은 진호 그들은 정말 사랑스러운 커플이다. 한동안 소설의 여운이 잔잔히 남을 듯 하다. 가을은 역시나 로맨스의 계절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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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밥상 - 밥상으로 본 조선왕조사
함규진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읽는 중에 우연하게 티비에서 ’강가자’ 씨의 요리에 대한 것을 뒷부분이라 할 수 있는, 잠깐 보게 되었는데 그녀에 대하여 잘은 알지 못하지만 핏줄은 한국이지만 일본에서 자란듯 하고 현재 멕시코에서 사는지 그곳 신랑신부를 위한 식탁을 차리기 위하여 약선요리와 한국적인 것을 배우는듯 했다. 우리의 요리는 다른나라에 비해 손이 많이 간다. 이 책에도 언뜻 언급되었지만 왕의 밥상에 오르는 음식들도 제 고유의 맛보다는 ’양념’ 에 의한 맛이 강조되는 손이 많이 가는 요리가 많았다고 했다. 그것은 옛날 원재료를 운반하는 운송수단이 느리기도 하고 저장을 할 수 있는 기간이 얼마되지 않으니 멀리 지방에서 올라오다 보면 상하는 경우도 많았기에 그런 음식이 발달하지 않았나 하는 글을 읽었다. 그런데 이 책에도 나왔듯이 ’도미선’ 등 그외 많은 요리들이 나열되었지만 강가자씨가 나오는 프로에서 ’도미선’ 에 대한 요리가 유독 내 눈길을 잡았다. 약선요리가를 찾아가 그녀가 배운 도미요리, 신랑의 원기를 충족시켜주기 위하여 도미에 복분자즙을 발라주고는 호박잎을 밑에 깔고 갖가지 재료들을 얹어 쩌 내고는 다시 그 위에 더 많은 고명을 얹어 보기도 좋고 맛도 좋고 더구나 건강에서 좋은 약선요리를 선보였다. 그 요리를 배워간 강가자씨는 멕시코에서 신랑신부를 위한 요리에 그 ’도미선’ 을 넣었고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요리가 건강을 생각하여 음양오행에 맞추어 한다는 것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들에겐 낯선요리였지만 맛은 만국공통이었는지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우리의 요리는 흔히 오방색을 사용하며 음양의 조화를 맞추어 한다. 그 이야기들이 정치와 관련된 것들도 있어 흥미로웠다.

임금의 수라상으로 읽는 지역경제및 민심
왕의 수라상은 흔히 12첩으로 알고 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수라상의 의미는 조선 말기에 전해진 것이라 하니 아쉽다. 좀더 오래전부터 전해진 ’수라상과 음식 그리고 요리’ 에 대한 풍부가 자료가 있었다면 아마도 우리의 궁중요리나 궁중음식은 더 많은 이야기들로 넘쳐나지 않았을까 한다. 12첩이라 하면 그 많은 반찬들을 모두다 먹지도 못할 듯 한 생각이 들었는데 늘 그렇게 먹는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 일년에 몇 번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 그외에 철선이니 감선 또한 많이 강행을 하였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수라상에 오르는 많은 반찬들이 결코 왕의 입맛을 위한 것이 아닌 지역경제를 밥상으로 읽고 민심 또한 그 밥상으로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이 어찌보면 지금처럼 매체가 발달하지 못한 시대에 ’왕의 밥상’ 으로 모든것을 한 눈에 들여다 볼 수 있음이 경이롭기도 하다. 왕의 밥상을 위하여 많은 식재료가 지역에서 한양으로 올려졌을 터인데 그 재료들이 많이 나고 적게 남으로 하여 그 해의 풍년과 흉년및 백성들이 어떻게 먹고 지내는지 알게 되는 왕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해당 지역에서 올린 보고를 눈으로 읽는 것보다 혀끝으로 느끼는 편이 상황의 심각성을 더욱 절절히 느낄 수가 있다.’

자신을 위한 밥상이냐 아님 백성을 위한 밥상이냐
철저하게 자신을 위한 밥상을 받으려 외국에 귀한 재료들을 들여오도록 한 왕이 있는가 하면 선대에서 맛보던 귀한 것을 잊지 못하여 눈치를 보며 그 음식을 즐겨 먹기로 하고 신하나 그외 백성들의 마음과는 다르게 철저하게 철선이나 감선을 하여 왕의 건강을 해하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을 보며 ’밥상’ 이 얼마나 건강에 중요한지를 읽을 수 있었다. 글을 좋아하는 왕은 글에 열정을 쏟느라 밥상을 소홀히 하여 건강을 해하고 밥상 외에 첩이나 그외 술에 빠진 왕은 그것으로 건강을 해하였다는 것이 지금 우리네와 별반 다르지 않지만 영조를 뺀 나머지 왕들이 결코 긴 삶을 살지 못한 것에는 어쩌면 밥상에 문제가 있는 것도 있겠지만 자신에게 약이 되어야 할 밥상이 자신의 목을 조르는 ’독’ 이 되는 밥상이 되기도 한 경우도 있다는 것이 왕의 자리가 결코 편한 자리가 아니었음을, 늘 누군가가 호시탐탐 노려보는 가운데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해야 얻는 자리임에 그 자리에 앉아 있어도 내 외적으로 결코 편하지 않으면 그 또한 밥상이 해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이 씁쓸하기도 하다.’맛과 건강이라는 두 축을 놓고 보면, 아무래도 왕의 밥상은 먹는 이의 건강을 우선하는 면이 강하다.’

역대 왕들의 밥상 중에서
3대 태종의 밥상 중에서, ’단지 조직만 정비했을 뿐 아니라 음양오행에 맞게 골고루 어선을 마련하는 궁중음식의 기본 원칙도 태종때 기틀이 잡혔을 것으로 추측된다.’ 4대 세종의 경우, 서른에 소갈증을 앓게 된 그는 ’밥상머리에서 책을 읽었다거나 신하들을 압박하기 위해 철선을 감행했다는 것은 그만큼 세종이 ’나날의 밥상’을 소홀히 여겼음을 엿보게 한다. 또 유독 고기반찬만을 찾는 식습관, 과도할 정도의 절식과 폭식을 반복하는 식습관은 양생의 원칙과 맞지 않는다.’ 5대 문종의 경우, ’문종은 더욱 일에 몰두하면서 음식 조절은 하지 않았고, 술도 대부분 끊고 살았다. 결국 그는 세종의 자리를 이어받은 지 2년 반 만에, 불과 열두 살의 아들에게 다시 그 막중한 자리를 물려주고 세상을 떠났다.’ 6대 단종의 경우, 먹골배 설화와 바가지 설화로 비참한 말로를 보여주는 이들이 있지만 그는 무엇보다 유배에 대한 외로움 때문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7대 세조의 경우, ’새조는 조선 왕들 가운데 누구보다도 먹고 마시는 문제를 진지하게 여겼고, 균형 잡힌 식습관이 바람직하듯 일과 오락 문과 무 사이에 적절한 조화가 필요하다 여겼다.’ 그외 전란의 시대를 겪은 선조에서 효종까지 살펴보면 국내외적으로 혼란을 가져온 전란이 그들의 밥상에도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충분히 보여준다. 남한산성에 피신을 갔던 인조는 혹독한 겨울을 그곳에서 나야했으니 먹을것이 어떠했는지, 또한 전란을 이겨내야 하기에 백성들과 그리 별다른 밥상을 받기는 어려웠을 듯 하다. 전란 뒤인 숙종, ’종이 시대가 길 수 있었던 까ㅑ닭은 일단 당시 조선 사회가 마침내 두 전란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안정을 되찾았다는  사실과 맥을 같이 한다. 나라의 안정과 임금의 수명이 무슨 상관이랴 싶지만, 재패가 거듭되고 전란까지 벌어지면 왕은 일단 감선을 해야 하고 심하면 선조나 인조처럼 당장 먹을 끼니도 곤란해지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심각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고민뿐 아니라 왕이된 입장에서 백성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대책을 요구하는 신하들의 압력에서 발생하는 울화와 굴욕감등이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전란중이거나 나라가 안정이 되어도 스스로 받는 스트레스는 자신의 건강을 해할 수 있다. 먹는다는 것은 즐거워야 하는데 밥상에 떨어진 밥 알 한 알도 세듯하던 왕처럼 어찌보면 민심을 생각한듯 하지만 그만큼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는 이야기도 된다. 여러 왕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슬기롭게 ’양생’ 을 한 왕들도 있지만 대부분 나라 안 팎으로 돌봐야 하는 많은 문제들과 자신이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눈들에 의해 결코 즐거운 밥상이 되지 못한 것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왕의 수명을 단축하는 경우도 많았다.’백성들이 하늘처러 소중히 여기는 것인데 어떻게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자신이 즐겨 먹는 음식이 자신의 목을 조르다
’선조의 최후와 관련해서 전해져 오는 또 한 가지 음식물이 있다. 바로 약과인데, 광해군과 내통한 개시 김상궁이 선조에게 독이 든 약과를 올려 독살했다는 설이 한때 파다했다.’ ’고종의 경우, 그의 사인은 뇌출혈이었으나 바로 직전까지도 아무런 예후가 없었다는 점, 시신을 염습하던 사람들에 따르면 시신이 검게 변하고 터질 듯 부풀었으며 입안이 녹아 뭉그러지는 등 전형적인 독살의 증상을 나타냈다는 점 등으로 볼 때 독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 순간 올린 식혜에 독이 들어 있었다고 하는데 식혜를 담당했던 시녀가 의문사를 당함으로써 의혹은 더우 크게 남았다.’ 자신이 즐겨 먹는 음식이 자신을 죽음으로 이르게 하는 길이 되었다는 것이 못내 안타깝다. 그들이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하지 않고 자연적 수명을 누렸다면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그런 반면에 ’조선의 왕이라는 게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며 스스로는 보람을, 나라와 백성에게는 혜택을 줄 수 있는지, 영조는 모법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왕의 밥상이 있었다.’ 섭생이나 양생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규칙적이고 균형잡힌 운동 또한 중요했다고 본다. 음식만으로 충당하지 못하는 그 무엇을 다른 것으로 보충하기 보다는 늘 업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그들은 자연수명으로 가장 긴 수명을 산 영조보다는 너무도 짧은 ’단명의 왕’ 들이 많다는 것이 음식과 적절한 운동이 중요함을 말해준다. 그리고 물론 자신을 옭아매는 ’스트레스’ 에 시달리지 말아야 한다. 왕의 밥상이라고 백성의 밥상과 그리 별다르지는 않다고 본다. 그들 또한 비슷한 수준의 음식을 먹고 좀더 풍족함을 누렸겠지만 마음만은 늘 풍요롭지 못한 것이 또한 화근이 된 밥상인듯 하다.

’조선시대 왕의 밥상의 역사’ 를 통해 보니 왕의 밥상이라고 결코 부러운 것이 아닌 먹는 것이란 누구와 함께 먹느냐와 어떤 마음으로 먹느냐가 더 중요함을 보았다. 아무리 값진 음식이라도 편한 마음이 아니면 그 음식이 ’약이 아닌 독’ 될 수 있음을, 마음이 풍요롭다면 김치에 밥을 먹어도 행복하게 먹어 약이 될 수 있는 서민의 삶이 더 행복임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시대의 민심과 경제를 읽어야만 했던 중압감이 결코 편한 밥상이 될 수 없음이 왕의 밥상에서 보여진다. 지금 전해지는 궁중음식이나 궁중요리가 그 시대의 조선 왕 들의 밥상이 아니어도 우리네 음식문화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서민의 음식이 궁으로 전해졌는지 아님 궁중의 음식이 서민에게 전해졌는지 확실하지 않은 것들도 있지만 탕평채처럼 그 시대를 대변하는 음식들도 있는것을 보면 자고로 한가지 보다는 서로 어우러져 조화를 이룸이 음식이나 사람사는 것이나 그 진실한 맛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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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2010-11-18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서란님!^^ 알찬 책놀이터 잘 구경하고갑니다
저는 이음출판사에서 나왔어요~
저희가 이번에 미국에서 베스트셀러를 연일 차지하여 화제가 되고있는 도서
<모터사이클 필로소피> 한국판 출판 기념으로 서평단을 모집하고있거든요^^
책을 사랑하시는 서란님께서 참여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 이렇게 덧글남기고가요
저희 블로그에 방문해주세요~! :)
 
브리다
파울로 코엘료 지음, 권미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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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다른 길들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인생에서 꼭 만나야 할 운명 같은 소울메이트를 만나야 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만날까. 마법같은 이야기 파울로 코엘료는 ’브리다’ 를 통해 운명같은 사랑인 소울메이트를 만나는 방법을 내 안에 잠재 되어 있던 ’마법’을 통해 찾아간다. <연금술사> 에서는 자신의 꿈을 찾아 나선 소년의 이야기로 신기하면서도 신화적인 이야기로 가슴을 울려 주더니만 이 이야기는 스물의 아가씨 브리다가 사랑과 이별을 몇 번 해 보았지만 확실하게 자신의 사랑이라 확신할 수 없고 사랑에 대한 망설임이나 두려움을 간직하고 있는데 마법을 통해 그 모두를 극복하고 사랑을 찾는 길에 이르는 이야기를 마법을 겻들어 또한 신화적으로 풀어간다. 역시나 그는 대단한 이야기꾼이라는 것을 이 책은 말해주고 있다. 

브리다, 그녀의 곁에는 로렌스라는 물리학과 조교수가 있지만 그를 사랑이라고 확신하기에는 망설여진다. 지금까지 그녀가 겪은 사랑과 이별이 이 사랑 또한 금방 이별을 가져다 줄 듯 하면서 확신이 서지 않는 가운데 숲 속의 마법사를 찾아간다. 그 마법사는 브리다를 보자마자 그녀가 자신의 소울메이트임을 단번에 알아보고는 그녀를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하여 숲 속 바위위에 그녀를 혼자 남겨두고 사라진다. 혼자 남겨졌다는 두려움에 몹시 움츠러 들었던 그녀는 차츰차츰 두려움에서 벗어나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잠이 들고 만다. ’밤은 하루의 일부에 불과했다. 그녀는 빛의 보호를 받고 있음을 느끼듯이, 어둠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느낄 수도 있다.’ 혼자서 숲의 밤의 두려움을 극복하게 된 그녀 안에는 그녀가 모르는 큰 능력이 숨어 있었던 듯 하다. 

숲의 마법사에게 태양의 전승을 받고 싶다고 말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소울메이트임을 아는 마법사는 그녀에게 달의 전승을 해줄 위카를 소개해 준다. ’마법은 다리야...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 눈에는 보이지 않는 세계로 건너가게 하는 다리, 두 세계로부터 배움을 얻게 하는 다리.’ 그 다리를 통해 건너려 하는 그녀는 위카를 만나게 되고 위카 또한 그녀의 능력을 첫 눈에 알아 보지만 내색하지 않고 그녀를 가르쳐 나간다. 과연 브리다, 그녀의 안에는 마녀의 기질이 숨어 있는 것일까. 

자신의 능력이 없음을 감지하고 포기하려는 전화를 위카에게 걸던 그녀에게 위카는 말을 끊임없이 건넨다. 위카의 말을 들어가며 자신도 모르는사이 마법을 경험하게 된 그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신비한 세계에 점점 빨려 들게 되고 그렇다면 과학과 마법은 어떻게 다를까, 로렌스와 대화를 해 보던 그녀는 로렌스와도 많은 부분 통할 수 있음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위카에게서 달의 전승을 받아가며 점점 자신은 태양의 전승자인 마법사에게 끌려 가는 것을 느끼게 되고 위카에게서 브리다 그녀가 ’마녀’ 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알 수 없는 마법에 더 빠져 들게 된다. 그렇다면 로렌스와의 사랑은.

’이제 앞으로 뭔가를 알고 싶으면 그 안에  푹 빠져보도록 해.’ 사랑이나 운명 그리고 마법에 푹 빠져들 수 있을까. 위카를 만나며 신비로운 달의 전승을 받는 그녀는 달의 전승을 마치고 태양의 전승을 받기 위하여 마법사를 찾아가지만 자신이 하려던 맘과는 다르게 행동하던 그녀는 마침내 그와 하나가 되는 의식을 치룬 후에 그가 그토록 찾던 자신의 소울메이트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에게서 전해듣게 되는 그와 위카와의 이야기, 태양과 달의 전승자이지만 함께 하지 않는 그들, 그리고 엄마의 지난 사랑에 대하여 듣게 된다. 짧은 시간 자신의 평생의 사랑을 했던 엄마, 그리곤 눈에서 특별한 광채가 났던 아빠를 만나 ’ 아빠는 늘 내 곁에 있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나는 죽는 날까지 그의 곁에 있고 싶어. 하지만 마음이라는 것은 알 수 없는 것이어서 그날 오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지 이 엄마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이것만은 알지. 그 만남이 내가 아직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가르쳐줬다는 것, 그럼으로써 내가 나 자신에 대한 더 큰 신뢰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자신의 사랑에 좀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된 이야기를 듣게 되는 브리다.

자신의 사랑에 아직 망설이며 두려워했던 브리다, 하지만 자신의 온 마음을 열고 로렌스를 받아 들이던 순간에는 사랑에 대한 확신이 들었음을 알게 된다. 마법사는 그녀에게 ’인생에 대한 믿음’ 에 대하여 알려 주었던 것이다. 사랑 또한 서로에 대한 ’믿음’ 이다. 운명적인 사랑었든 그렇지 않던 간에 서로에 대한 믿음이 마음에서 우러나온다면 서로의 소울메이트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아무리 신이 점 찍어 주듯 첫 눈에 알아볼 소울메이트가 정해져 있다해도 어쩌면 운명적인 사랑은 다른 곳에 있을지 모른다. 로렌스에 대한 사랑에 흔들렸던 그녀가 달의 전승을 통한 마녀 축제로 인하여 마법사와 자신이 완전한 소울메이트임을 알게 되지만 서로 마법사와는 마법을 통한 소울메이트일지 모른다. 자신의 현실의 소울메이트는 지금 곁에 있는 로렌스임을, 그의 사랑에 확신을 가지게 되는 여행길을 마법을 통해서 더 단단히 하게 되는 브리다. 우리는 자신이 선택한 사랑이 ’이게 진짜 내의 사랑일까?’ 한번씩 의심하게 된다. 여자들을 특히나 결혼전에 더 몹씨 흔들린다. 불안전한 미래에 대하여 망설이고 두려워 하다면 자신앞에 나선 자신의 사랑마져 이루지 못한다고 그는 말하는 듯 하다. 

그런면에서 보면 마법이나 삶이나 인생의 한 방법이겠지만 마법을 통해 소울메이트를 찾아 나서는 브리다와 같은 경험도 있겠지만 두려움도 망설임도 풍랑을 만나듯 헤쳐나가다 보면 자신의 사랑에 믿음을 가지게 될 수 있으며 자신이 선택한 사랑에 두려움보다는 먼저 ’믿음’ 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녀가 밤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 또한 마음에 있었듯이 사랑에 대한 믿음 또한 마음에 있다. 자신이 선택한 ’하나의 길’ 다른 모든 길을 포기하고 가지게 된 그 길에 아버지의 말처럼 푹 빠져 볼 일이다. 스무살이면 아직 사랑에 대한 확신보다는 흔들림이나 두려움과 망설임이 더 많은 시기이다. 사랑을 찾아 나서는 망망대해를 헤쳐나가는 항해에서 어딘가에 있을 등대와 육지에 대한 확신이 있지 않다면 그 바다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사랑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내 사랑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나면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모든 것은 환희로 빛날 것이다. 단 몇 시간에 평생의 사랑을 했던 엄마가 짧은 시간의 사랑이 아닌 평생의 사랑으로 선택한 아빠처럼 ’살아가면서 중요한 한가지를 찾았다고 해서 그 때문에 다른 중요한 것들을 포기할 필요가 없다는 것.’ 사랑에 대한 믿음이 없던 그녀에게 마법의 다리를 건너 자신의 사랑을 확신하게 되듯 삶은 언제나 자신 안에 있는 ’ 믿음’ 이 중요한듯 하다. 마법을 터득했어도 선택은 언제나 자신의 몫이다. 사랑 또한 자신의 선택과 믿음에 의해 온전히 내것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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