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밥상 - 밥상으로 본 조선왕조사
함규진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읽는 중에 우연하게 티비에서 ’강가자’ 씨의 요리에 대한 것을 뒷부분이라 할 수 있는, 잠깐 보게 되었는데 그녀에 대하여 잘은 알지 못하지만 핏줄은 한국이지만 일본에서 자란듯 하고 현재 멕시코에서 사는지 그곳 신랑신부를 위한 식탁을 차리기 위하여 약선요리와 한국적인 것을 배우는듯 했다. 우리의 요리는 다른나라에 비해 손이 많이 간다. 이 책에도 언뜻 언급되었지만 왕의 밥상에 오르는 음식들도 제 고유의 맛보다는 ’양념’ 에 의한 맛이 강조되는 손이 많이 가는 요리가 많았다고 했다. 그것은 옛날 원재료를 운반하는 운송수단이 느리기도 하고 저장을 할 수 있는 기간이 얼마되지 않으니 멀리 지방에서 올라오다 보면 상하는 경우도 많았기에 그런 음식이 발달하지 않았나 하는 글을 읽었다. 그런데 이 책에도 나왔듯이 ’도미선’ 등 그외 많은 요리들이 나열되었지만 강가자씨가 나오는 프로에서 ’도미선’ 에 대한 요리가 유독 내 눈길을 잡았다. 약선요리가를 찾아가 그녀가 배운 도미요리, 신랑의 원기를 충족시켜주기 위하여 도미에 복분자즙을 발라주고는 호박잎을 밑에 깔고 갖가지 재료들을 얹어 쩌 내고는 다시 그 위에 더 많은 고명을 얹어 보기도 좋고 맛도 좋고 더구나 건강에서 좋은 약선요리를 선보였다. 그 요리를 배워간 강가자씨는 멕시코에서 신랑신부를 위한 요리에 그 ’도미선’ 을 넣었고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요리가 건강을 생각하여 음양오행에 맞추어 한다는 것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들에겐 낯선요리였지만 맛은 만국공통이었는지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우리의 요리는 흔히 오방색을 사용하며 음양의 조화를 맞추어 한다. 그 이야기들이 정치와 관련된 것들도 있어 흥미로웠다.

임금의 수라상으로 읽는 지역경제및 민심
왕의 수라상은 흔히 12첩으로 알고 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수라상의 의미는 조선 말기에 전해진 것이라 하니 아쉽다. 좀더 오래전부터 전해진 ’수라상과 음식 그리고 요리’ 에 대한 풍부가 자료가 있었다면 아마도 우리의 궁중요리나 궁중음식은 더 많은 이야기들로 넘쳐나지 않았을까 한다. 12첩이라 하면 그 많은 반찬들을 모두다 먹지도 못할 듯 한 생각이 들었는데 늘 그렇게 먹는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 일년에 몇 번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 그외에 철선이니 감선 또한 많이 강행을 하였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수라상에 오르는 많은 반찬들이 결코 왕의 입맛을 위한 것이 아닌 지역경제를 밥상으로 읽고 민심 또한 그 밥상으로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이 어찌보면 지금처럼 매체가 발달하지 못한 시대에 ’왕의 밥상’ 으로 모든것을 한 눈에 들여다 볼 수 있음이 경이롭기도 하다. 왕의 밥상을 위하여 많은 식재료가 지역에서 한양으로 올려졌을 터인데 그 재료들이 많이 나고 적게 남으로 하여 그 해의 풍년과 흉년및 백성들이 어떻게 먹고 지내는지 알게 되는 왕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해당 지역에서 올린 보고를 눈으로 읽는 것보다 혀끝으로 느끼는 편이 상황의 심각성을 더욱 절절히 느낄 수가 있다.’

자신을 위한 밥상이냐 아님 백성을 위한 밥상이냐
철저하게 자신을 위한 밥상을 받으려 외국에 귀한 재료들을 들여오도록 한 왕이 있는가 하면 선대에서 맛보던 귀한 것을 잊지 못하여 눈치를 보며 그 음식을 즐겨 먹기로 하고 신하나 그외 백성들의 마음과는 다르게 철저하게 철선이나 감선을 하여 왕의 건강을 해하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을 보며 ’밥상’ 이 얼마나 건강에 중요한지를 읽을 수 있었다. 글을 좋아하는 왕은 글에 열정을 쏟느라 밥상을 소홀히 하여 건강을 해하고 밥상 외에 첩이나 그외 술에 빠진 왕은 그것으로 건강을 해하였다는 것이 지금 우리네와 별반 다르지 않지만 영조를 뺀 나머지 왕들이 결코 긴 삶을 살지 못한 것에는 어쩌면 밥상에 문제가 있는 것도 있겠지만 자신에게 약이 되어야 할 밥상이 자신의 목을 조르는 ’독’ 이 되는 밥상이 되기도 한 경우도 있다는 것이 왕의 자리가 결코 편한 자리가 아니었음을, 늘 누군가가 호시탐탐 노려보는 가운데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해야 얻는 자리임에 그 자리에 앉아 있어도 내 외적으로 결코 편하지 않으면 그 또한 밥상이 해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이 씁쓸하기도 하다.’맛과 건강이라는 두 축을 놓고 보면, 아무래도 왕의 밥상은 먹는 이의 건강을 우선하는 면이 강하다.’

역대 왕들의 밥상 중에서
3대 태종의 밥상 중에서, ’단지 조직만 정비했을 뿐 아니라 음양오행에 맞게 골고루 어선을 마련하는 궁중음식의 기본 원칙도 태종때 기틀이 잡혔을 것으로 추측된다.’ 4대 세종의 경우, 서른에 소갈증을 앓게 된 그는 ’밥상머리에서 책을 읽었다거나 신하들을 압박하기 위해 철선을 감행했다는 것은 그만큼 세종이 ’나날의 밥상’을 소홀히 여겼음을 엿보게 한다. 또 유독 고기반찬만을 찾는 식습관, 과도할 정도의 절식과 폭식을 반복하는 식습관은 양생의 원칙과 맞지 않는다.’ 5대 문종의 경우, ’문종은 더욱 일에 몰두하면서 음식 조절은 하지 않았고, 술도 대부분 끊고 살았다. 결국 그는 세종의 자리를 이어받은 지 2년 반 만에, 불과 열두 살의 아들에게 다시 그 막중한 자리를 물려주고 세상을 떠났다.’ 6대 단종의 경우, 먹골배 설화와 바가지 설화로 비참한 말로를 보여주는 이들이 있지만 그는 무엇보다 유배에 대한 외로움 때문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7대 세조의 경우, ’새조는 조선 왕들 가운데 누구보다도 먹고 마시는 문제를 진지하게 여겼고, 균형 잡힌 식습관이 바람직하듯 일과 오락 문과 무 사이에 적절한 조화가 필요하다 여겼다.’ 그외 전란의 시대를 겪은 선조에서 효종까지 살펴보면 국내외적으로 혼란을 가져온 전란이 그들의 밥상에도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충분히 보여준다. 남한산성에 피신을 갔던 인조는 혹독한 겨울을 그곳에서 나야했으니 먹을것이 어떠했는지, 또한 전란을 이겨내야 하기에 백성들과 그리 별다른 밥상을 받기는 어려웠을 듯 하다. 전란 뒤인 숙종, ’종이 시대가 길 수 있었던 까ㅑ닭은 일단 당시 조선 사회가 마침내 두 전란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안정을 되찾았다는  사실과 맥을 같이 한다. 나라의 안정과 임금의 수명이 무슨 상관이랴 싶지만, 재패가 거듭되고 전란까지 벌어지면 왕은 일단 감선을 해야 하고 심하면 선조나 인조처럼 당장 먹을 끼니도 곤란해지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심각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고민뿐 아니라 왕이된 입장에서 백성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대책을 요구하는 신하들의 압력에서 발생하는 울화와 굴욕감등이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전란중이거나 나라가 안정이 되어도 스스로 받는 스트레스는 자신의 건강을 해할 수 있다. 먹는다는 것은 즐거워야 하는데 밥상에 떨어진 밥 알 한 알도 세듯하던 왕처럼 어찌보면 민심을 생각한듯 하지만 그만큼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는 이야기도 된다. 여러 왕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슬기롭게 ’양생’ 을 한 왕들도 있지만 대부분 나라 안 팎으로 돌봐야 하는 많은 문제들과 자신이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눈들에 의해 결코 즐거운 밥상이 되지 못한 것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왕의 수명을 단축하는 경우도 많았다.’백성들이 하늘처러 소중히 여기는 것인데 어떻게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자신이 즐겨 먹는 음식이 자신의 목을 조르다
’선조의 최후와 관련해서 전해져 오는 또 한 가지 음식물이 있다. 바로 약과인데, 광해군과 내통한 개시 김상궁이 선조에게 독이 든 약과를 올려 독살했다는 설이 한때 파다했다.’ ’고종의 경우, 그의 사인은 뇌출혈이었으나 바로 직전까지도 아무런 예후가 없었다는 점, 시신을 염습하던 사람들에 따르면 시신이 검게 변하고 터질 듯 부풀었으며 입안이 녹아 뭉그러지는 등 전형적인 독살의 증상을 나타냈다는 점 등으로 볼 때 독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 순간 올린 식혜에 독이 들어 있었다고 하는데 식혜를 담당했던 시녀가 의문사를 당함으로써 의혹은 더우 크게 남았다.’ 자신이 즐겨 먹는 음식이 자신을 죽음으로 이르게 하는 길이 되었다는 것이 못내 안타깝다. 그들이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하지 않고 자연적 수명을 누렸다면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그런 반면에 ’조선의 왕이라는 게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며 스스로는 보람을, 나라와 백성에게는 혜택을 줄 수 있는지, 영조는 모법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왕의 밥상이 있었다.’ 섭생이나 양생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규칙적이고 균형잡힌 운동 또한 중요했다고 본다. 음식만으로 충당하지 못하는 그 무엇을 다른 것으로 보충하기 보다는 늘 업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그들은 자연수명으로 가장 긴 수명을 산 영조보다는 너무도 짧은 ’단명의 왕’ 들이 많다는 것이 음식과 적절한 운동이 중요함을 말해준다. 그리고 물론 자신을 옭아매는 ’스트레스’ 에 시달리지 말아야 한다. 왕의 밥상이라고 백성의 밥상과 그리 별다르지는 않다고 본다. 그들 또한 비슷한 수준의 음식을 먹고 좀더 풍족함을 누렸겠지만 마음만은 늘 풍요롭지 못한 것이 또한 화근이 된 밥상인듯 하다.

’조선시대 왕의 밥상의 역사’ 를 통해 보니 왕의 밥상이라고 결코 부러운 것이 아닌 먹는 것이란 누구와 함께 먹느냐와 어떤 마음으로 먹느냐가 더 중요함을 보았다. 아무리 값진 음식이라도 편한 마음이 아니면 그 음식이 ’약이 아닌 독’ 될 수 있음을, 마음이 풍요롭다면 김치에 밥을 먹어도 행복하게 먹어 약이 될 수 있는 서민의 삶이 더 행복임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시대의 민심과 경제를 읽어야만 했던 중압감이 결코 편한 밥상이 될 수 없음이 왕의 밥상에서 보여진다. 지금 전해지는 궁중음식이나 궁중요리가 그 시대의 조선 왕 들의 밥상이 아니어도 우리네 음식문화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서민의 음식이 궁으로 전해졌는지 아님 궁중의 음식이 서민에게 전해졌는지 확실하지 않은 것들도 있지만 탕평채처럼 그 시대를 대변하는 음식들도 있는것을 보면 자고로 한가지 보다는 서로 어우러져 조화를 이룸이 음식이나 사람사는 것이나 그 진실한 맛인듯 하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란도란 2010-11-18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서란님!^^ 알찬 책놀이터 잘 구경하고갑니다
저는 이음출판사에서 나왔어요~
저희가 이번에 미국에서 베스트셀러를 연일 차지하여 화제가 되고있는 도서
<모터사이클 필로소피> 한국판 출판 기념으로 서평단을 모집하고있거든요^^
책을 사랑하시는 서란님께서 참여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 이렇게 덧글남기고가요
저희 블로그에 방문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