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걷기여행도 낭만적이지만 '자전거 여행' 도 한번은 꼭 해보고 싶은 여행이다. 하지만 난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 자전거 하면 먼저 얼마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난다. 내가 초등학교때 아버지는 늘 자전거로 날 등교를 시키는가 하면 하교시에도 데리러 자주 학교에 오시곤 했다. 농사일을 하시다 오신 아버지의 뒤에서 떨어질까봐 아버지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고 바람을 느끼며 함께 미루나무길을 달리던 그 추억은 정말 잊을수가 없다. 그런 자전거가 내가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이의 출퇴근용이 되면서 자전거는 나와 좀더 친숙한 생활용품이 되었다. 내가 다칠까봐 자전거를 못배우게 했던 아버지에 비해 남편은 이제라도 자전거를 배워 함께 타고 여행을 가자고 하는 것을 보면 자전거란 꽤나 매력적인 것이면서도 산을 하나 넘어야 할 존재로 남아 있다. 

얼마전에는 우리가 가끔 가는 산을 자동차길로 걷기를 하는데 오르막과 내리막이 적절하게 있어 난 걷기에 좋다고 했더니 그는 자전거를 타고 이 길을 혼자서 와봐야겠다고 말하고 있는데 남편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그 길을 매력적인 모습으로 쌩하게 내려가는 것이었다. 우린 오르막이었지만 그에겐 내리막이었다. 그러니 얼마나 스릴을 느꼈을 것일까. 그가 그 내리막을 만나기 위해선 그동안 힘들게 올라왔던 것에 대한 보답처럼 알맞게 경사지면서 구불구불 하던 그 길은 그가 남기고간 '물음표' 의 자태처럼 내게도 물음표로 남겨지게 되었다. 정말 자전거를 배워볼까. 하지만 그 일은 아직은 내겐 먼 이야기다.

늘 한 자 한 자 꾹꾹 연필로 눌러써서 그의 글을 읽다보면 마음을 아리게 하는 작가 김훈, 자전거 사랑이 남다른 그가 1999~2000년에 떠난 자전거 여행, 십여년 전의 글이지만 방금 다녀온듯한 따끈따끈 하면서도 그가 온 몸으로 눌러 쓴듯 하여 가슴에 새겨지는 맑고 흙내음 물씬 풍기는 언어들이 신선한 바람과 함께 마구마구 가슴을 헤집고 들어오는 듯 하여 그와 함께 여행하는 기분으로 읽었다. 얼마전에 그의 신간 <내 젊은 날의 숲>을 읽어서일까 그 소설은 마치 이 에세이의 일부인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 에세이를 읽다보면 그의 작품들을 모두 만나는 기분이 드는 것은 비단 나만의 느낌일까. <칼의 노래>이며 <현의 노래>이며 혹은 <개-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인듯 <바다의 기별> 아님 <밥벌이의 지겨움> 같기도 한 글들이 내포되어 있는 듯 하다. 

'1999년 가을부터 2000년 여름까지 전국이 산천으로 끝고 다닌 내 자전거의 이름은 풍륜이다. 이제 풍륜은 늙고 병든 말처럼 다 망가졌다. 2000년 7월에 풍륜을 퇴역시키고 새 자전거를 장만했다. 이 책을 팔아서 자전거값 할부를 갚으려 한다. 사람들아 책 좀 사가라.' 그렇다면 그는 십년이 지났으니 물론 새로 장만한 자전거 할부값은 모두 갚았을 것이고 혹시 또 다른 자전거로 바뀌진 않았을까. 카메라 마니아이면서 자전거 마니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가 솔직하게 털어 놓은 마지막 말이 너무 솔직담백하여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자전거 여행을 했으면 자전거를 퇴역시켰을까. 그정도로 신나게 달리고 함께 하며 그가 길따라 아니 그가 만든 길로 자전거를 이끌고 다니며 만난 산천과 사람들 이야기는 너무도 인간적이고 역사적이며 지리학적이라 읽은 후에 다시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가족여행으로 다녀왔던 여수의 '향일암' 그가 들려주는 향일암 이야기는 그때의 추억을 다시 되살리게 만들었다. 비에 젖어 우비를 입고 겨우겨우 많은 계단을 오르며 바위사이를 지나 빨간 동백꽃이 반기는 그 길을 지나 바다를 향하여 있던 향일암을 만났던 기억은 정말 잊을수가 없다. '향일암 앞바다의 동백꽃은 사람을 쳐다보지 않고, 봄빛 부서지는 먼 바다를 쳐다본다. 바닷가에 핀 매화 꽃잎은 바람에 날려서 눈처럼 바다로 떨어져 내린다.' 정말 멋진 표현들과 그의 섬세함이 묻어나는 눈길이 느껴지는 글들이 가슴에 꽃잎처럼 떨어져 수 놓인다. 다시금 향일암에 가서 동백꽃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지 매화 꽃잎이 바람에 날려 바다로 떨어지는지 확인을 해봐야할것만 같은 향일암의 글들은 그 길을 차가 아닌 자전거를 타고 갔다면 아름다운 남해에 가다 쉬면서 만났을 다도해가 그에겐 어떻게 비쳤을지 몹시 궁금해진다. 

그의 섬세함은 비단 동백꽃 그 시선에 머무르지 않고 매화 꽃잎 한 장에 머무르지 않고 봄나물을 먹으며 그 깊은 땅 속의 기운마져 끌어 올리듯 하여 몸서리 쳐진다. '냄비 속에서 끓여지는 동안, 냉이는 된장의 흡인력의 자장 안으로 끌려들어가면서 또 거기에 저항했던 모양이다. 냉이의 저항 흔적은, 냉이 속에 깊이 숨어 있던 봄의 흙냄새, 황토 속으로 스미는 햇빛의 냄새, 싹터오르는 풋것의 비린내를 된장 국물속으로 모두 풀어 내놓는 평화를 이루고 있다.' 어디를 읽어도 정말 좋다. 자전거 여행을 하니 흙과 좀더 친숙한 시간이었겠지만 봄국 한사발에 그 긴 이야기를 봄국의 깊은 맛을 우려내듯 풀어내어 쓴 그남자의 가슴속이 궁금해지게 만드는 글이다. 소설속에서 만나던 작가 김훈이 맞는지 물어보고 싶은 요리연구가의 글처럼 맛깔스럽고 빨리 냉이를 넣은 봄국 한그릇을 얼른 뚝 비우고 그 맛을 느껴봐야 할 듯 하며 그 국을 천천히 음미하며 먹고는 나른한 기지개라고 켜야 할 듯 하다.

그의 여행은 사소한 것들 하나도 놓치는 법이 없이 모두 그의 뷰파인더 안에 가두어 놓듯 모든것들을  글 속에 가두어 둔다. 그냥 흘러가는 가는 강이 아닌 그곳에서 살아 숨쉬는 갯지렁이 하나라도 생명이라는 것으로 존재감을 들어내 놓고 그는 또 다른 길을 만들며 떠난다. 그래서 그의 글이 좋은 것일까. 소설 <개>에서 느꼈던 세심함이 이 여행기에서도 여실히 나타나면서도 어느것 하나 소홀히 놔두지 않고 그의 글속에서 살아 숨쉬게 만드는 그만의 재주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갯지렁이의 구멍은 밀물에 쉽게 쓸려버려서 갯지렁이는 끊임없이 흙을 뱉어내며 새 집을 지어야 한다. 갯지렁이의 이 기구한 무주택의 운명이 갯벌에 지속적으로 산소를 불어넣어, 갯벌은 모든 살아 잇는 것들의 터전이 된다. 갯지렁이는 온몸의 마디를 뻘밭에 밀면서 기어간다. 갯지렁이는 죽음을 통과하듯이 온몸을 뒤틀면서 뻘 속을 헤치고 나간다. 갯지렁이가 기어간 뻘 위의 자국은 난해한 문자와도 같고, 고통스런 글쓰기의 흔적과도 같다.' 갯지렁이의 흔적에 비유한 자신의 글쓰기의 고통이 느껴지는 한 줄의 글에서 작가가 남모르게 느꼈던 고통이 전해진다. 

그는 풍륜과 바람을 가르며 산을 넘고 인생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달리듯 길을 달려가며 생명과 숲과 나무와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무엇보다 그가 전해주는 '사람' 이야기가 너무도 인간적인 이야기들이 많아 가슴에 남는다. IMF의 직격탄을 맞고 아직도 방황하는 생활을 살고 있지만 희망을 일구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나 섬진강가에서 희망을 빛내며 반짝반짝 날마다 새롭게 커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도 너무 인간적이라 좋다. 그런가 하면 그의 신간 '내 젊은 날의 숲' 처럼 그의 숲사랑은 '가까운 숲이 신성하다' 편에서 너무도 세세하게 그려진다. '숲은 글자 모양도 숲처럼 생겨서 글자만 들여다보아도 숲 속에 온 것만 같다.' 그 한 줄에서도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숲의 신성은 멀고 우뚝한 것이 아니라 가깝고 친밀해서 사람의 숨결을 따라 몸속으로 스미는 것임을 안면도 소나무숲 속에서는 알겠다.' 해풍을 이겨내는 소나무숲에서 그가 느꼈던 친밀함은 글처럼 숲이 연결되는 느낌이다. '숲의 시간은 헐겁고 느슨하다. 숲의 시간은 퇴적의 앙금을 남기지 않는다. 숲의 시간은 흐르고 쌓여서 역사를 이루지 않는다. 숲의 시간은 흘러가고 또 흘러오는 소멸과 신생의 순환으로서 새롭고 싱싱하다. 숲의 시간은 언제나 갓 태어난 풋것의 시간이다.' 이 글에서 이미 '내 젊은 날의 숲' 은 예견된 글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와 함께 자전거 여행을 한다면 어떤 자연과 우리나라를 만날까.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자연이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으로 빛나며 그 속에서 자연과 함께 숨 쉬고 있는 사람 또한 한 생명으로 더욱 빛날것만 같은 그의 자전거 여행 이야기는 길이 없어도 끝이 없을듯 하다. 전국 어디를 가도 이야기가 있고 자연이 있고 생명이 있고 생명의 냄새가 있고 살아가는 사람들 또한 그가 속한 자연과 닮아 가면서 자연화 되는 그림같은 이야기들이 너무도 인간적이면서 섬세함을 함께 하는 이야기는 풍륜을 타고 가는 물음표의 그의 모습처럼 물음표의 그가 우리에게 주는 희망의 '느낌표' 로 가슴이 훈훈해진다. 그가 가는 길은 언제고 열려 있어 모든 것들이 살아 숨쉴것만 같은 자전거 여행은 십년이 지난 지금에 읽어도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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