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 유시찬 신부의 인생공감
유시찬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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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요즘 내가 나 자신에게 많이 하는 질문이다. 아이들이 커서 자신들만의 길을 찾듯 떠나가듯 하고 나니 아이들의 앞날도 걱정이지만 노후에 대한 걱정과 함께 지금 이 순간 정말 내가 있는 이 위치가 어디쯤일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딸들도 대학에 들어가고 나니 자신들 또한 사회에 한 발을 내디딘것처럼 하나 하나 새롭게 배워가고 있고 자신들만의 길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고 있지만 청년들도 그들의 부모인 우리들의 앞날도 그렇게 녹녹치 만은 않다. 요즘은 대학에 들어가면서 빛쟁이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고 가까이에서 그런 상황에 처한 이야기를 많이 듣다보니 스펙 쌓기에 급급한 청춘들이 과연 올바른 인성을 가지고 있나도 걱정되면서 스펙만큼 대접받고 있는가 묻고 싶다.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중에 불안하지 않은 이가 있을까? 모두가 불안하다. 학생은 학생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청춘은 청춘대로 그 나에게 맞게 모두가 불안함 속에 살아가고 있는데 그런 가운데 '나 자신을 바라보자'라고 한다.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가? 현재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신을 사랑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포용하고 '떠나라' 라고 한다. 익숙한 것에서 떠나라. 부모에게서도 일찍 떠날수록 자립심을 키우는 것이고 무엇을 배워도 하나 더 배우게 된다는 것,하지만 우리 부모들은 대부분 자식들 뒤에 연줄처럼 따라다니며 무엇이든 다 해주려고 한다. 늘 '어른아이'처럼 보이는 자식들을 물갈에 내놓은 것처럼 안절부절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어 놓으면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우리집은 올해 두녀석이 함께 대학을 들어가게 되었다. 한 놈이 들어가도 힘든 상황에 두녀석이 함께 움직이다보니 무엇이든 배로 힘들어 두녀석 들의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며 몇 개월은 정말 정신없이 힘들게 뛰어 다닌듯 하다. 그렇다고 넉넉해서 모든 것을 충분히 해줄수는 없는 현실이고 부모는 부모대로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데 언제까지 자식들 끈처럼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을 많이 가져보게 되었다. 힘들게 보낸만큼 두녀석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주길 바랬지만 그들은 그들나름 열심히 살고 있다고 보지만 대학가라는 것이 술집과 식당만 즐비하다. 학구열을 불태울 그 무언가는 없다는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의 아이들 또한 늦은 시간까지 늘 어울려 다니는 것을 보면 잔소리를 하게 된다. 남들보다 뒤쳐지지는 않아도 비슷한 스펙을 쌓아야 할 것 같아 충고를 하지만 아직 그런 충고를 받아 들일만큼 현실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아직 '마음공부' 를 많이 하지 못했고 그런 여유를 찾지 못해 흔들리고 있다.

 

늘 현재인 땅만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하늘도 바라보며 하늘과 땅을 함께 하는 삶으로 이어가라 한다. 하늘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삶은 성스럽고 겸허해진다고 한다. 하늘 한 번 쳐다보기 힘들게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스펙 하나를 더 쌓기 위하여 땅만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는 삶이라 하늘을 보기 힘든데 삶의 목표를 세우고 목적을 가지고 살아 간다면 잠시 흔들린다고 해도 내가 목표로 정한 나무의 근처까지는 올가가게 되어 있다. 스펙도 중요하고 삶의 목적도 중요하지만 '마음 공부' 도 자신을 바로 세우는데 중요함을 강조하는데 그런 말들이 치열하게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에게 들릴까.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떠나라,찾아라,앉알' 라는 말이 참 와 닿는다.우리는 모두 자신안에 자신만의 태양을 간직하고 살고 있다. 그 태양이 빛나게 하는 것 역시나 자신이다. 마음이 밝아야 얼굴이 밝듯이 나의 태양을 밝게 하기 위하여 성공을 향하여 달려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의 자신을 바라보고 '쉼표'를 찍듯이 한번 자신을 돌아보는 일도 중요하다. 유시찬 신부의 청춘들에게 전하는 인생공감의 말들이 봄날 휴식을 취하며 햇살 따뜻한 곳에서 잠깐 쉼표를 찍듯 읽는다면 삶의 매듭이 풀릴지도 모른다. 희망이란 찾는 자에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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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의 건축 만인의 도시 - 예술의전당과 밀라노 디자인 시티의 설계자 김석철의 공간 철학
김석철 지음 / 시공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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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는 유난히 '예술의 전당'을 많이 보며 지나간 한 해 였다. 그렇다고 예술의 전당에 들어가 문화를 체험한 것은 아니고 그 주변에서 큰딸이 한해를 살아 서울에 입성하여 예술의 전당을 보면 큰딸이 살고 있는 곳에 다 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예술의 전당은 우리의 '갓'모양을 닮은 독특한 지붕 모양이 더욱 우리의 정서에 맞는 건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해준다. 전통과 현대가 만난 건축이라고 해야하나. 이번 이월에 제주여행을 가서 '영화박물관'을 그냥 지나친것이 이렇게 후회가 될 줄이야. 건축에 남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무엇보다 난 한옥을 좋아한다.그 옛날 한옥도 좋지만 현대와 맞물린 한옥이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보기도 하는데 현대와 고전이 함께 공존하는 건축속에서 천년의 건축은 무엇인지 그런가하면 우리는 후세에 무엇을 남겨줄 것인가도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요즈음이다.

 

우리집 주변에도 요즘은 산을 허물어 버리고 또 다른 숲이 들어서고 있다. 일명 '아파트숲' 정말 숨막힌다. 자연과 숨쉬고 싶어 산이 있는 주변으로 이사를 왔는데 산은 겨우 주먹만큼 남고 모두 허물어지고 대단위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는가 하면 낮은 산은 모두 허물어지고 있다. 그곳이 모두 주거단지로 거듭나고 있는데 그래도 주변에 보면은 주택난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많다. 아파트를 지어도 지어도 '내집'을 갖는 것이 어려운 시대라는 말인지. 아파트도 외양이 다양하게 변해가고 있지만 단독이나 그외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서민적인 곳이 좋다.아니 그런 건축이 더 좋다. 천년의 도시 경주에 여행을 몇 번 갔던 기억이 있는데 어디를 밟아도 역사의 현장이겠지만 역사로 인해 개발이 덜 된 역사로 포장이 된 경주가 있다는 것이 뿌듯했다. 아파트숲으로 역사의 땅을 내어주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현실이 좋았다. 우리는 너무 '시간'이라는 세월을 금방 허물어 버린다. 그런면에서 천년의 도시 천년의 건축에 등장하는 '크노소스궁전,예루살렘,이스탄불,경주,아시시,케임브리지,신열하일기,뉴욕,시카고,샌프란시코'는 허물어 버리기 보다는 역사를 어떻게 현대로 이끌어 와야 하는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 하다.

 

건축은 분명 바로 코 앞을 내다보는 근시안적인 것이 아니라 '천년의 건축'처럼 후손 대대로 물려주고 이어갈 구조물이다. 그속에는 역사와 문화가 모두 담겨 있다. 언젠가 EBS에서 '집'에 대하여 토론하는 것을 잠깐 본 적이 있는데 대문부터 하여 집이라는 것에는 철학이 우주가 다 담겨 있다는 것을 잠깐 본 적이 있다.건축에 문회한이라 세세한 것은 알지 못하지만 잠시 쉬는 쉼터와 같은 집이 담고 있는 많은 의미를 보면서 어느것 하나 허투루 지어지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조상들은 집에도 자연을 모두 담았다. 문을 열면 그대로 자연을 품에 안듯 한 구조를 보면 정말 오래도록 머물고픈 한옥들이 많은데 저자의 예술의 전당이며 한샘 DBEW 디자인 센터,특히나 한샘 디자인센터는 어느 책에선가 보고 '정말 멋지다'라는 말을 하며 한참을 보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전통과 현대가 너무도 멋지게 만난 건축,어쩌면 전통이 현대에서 멋지게 빛난 작품인지도 모른다. 창덕궁 담과 조화롭게 이어지는 동양과 서양의 만남,그 절정의 건축이지 않을까.

 

예술의 전당과 제주 영화박물관과 그외 밀라노 시티와 더불어 도시설계에 얽힌 건축이 단지 건축만 있는 것이 아니라 건축은 역사와 전통  문화 그리고 자연을 배려하여 그 속에서 함께 하는 우리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하나의 건축물이 탄생하기까지 구구절절 많은 이야기가 있다. 때론 순조롭게 성사되던 것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리는 이야기도 있는가 하면 난항 끝에 순조롭게 역사에 오래도록 남을 건축이 된 이야기도 있고 현대의 건축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인들이 마시는 것은 단지 차가 아니라 '문화와 문명'을 먹고 마시는 것이다라고 한 것처럼 건축에도 그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담겨 있고 그런 건축물이 지어져 천년의 건축이 되길 바라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예술의 전당 개관 25주년을 맞아 16년전에 만났던 '천년의 건축 천년의 도시' 개정판으로 나왔다고 하는데 좀더 사진이 많이 첨가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무엇보다 건축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접한것 같아 먼 시간을 여행한듯 하다.건축의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징검다리가 되어줄 건축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숨막히는 건축이 아닌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자연을 품은 건축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도 가져본다.

 

'초고층 건물 사이를 걷는 일은 시간과 공간을 잊게 한다. 바로 저기에 있다 싶은 거리를 향해 걷는데 아무리 걸어도 거기가 나타나지 않는다.빌딩 사이의 그림자 속을 헤매다 문득 네거리를 만나고 햇살이 가득한 빛의 가로로 나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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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정원] 꼬물꼬물 새싹들의 행진

 

청겨자

 

 

콩나물처럼 쑥쑥 여리게 자라서 만지지도 못하겠다.

연약한 아이처럼 만지면 금방 흠집...ㅜ 이걸 어떻게 해야하는지..

밖에서 키웠다면 강하게 컸을텐데 베란다에서 키우기엔 너무 무리인가..

암튼 그래도 잎이 나왔다. 포트에 옮겨 심은 것은 잎이 나왔는데 화분에 무리지어 있는 것은

콩나물처럼 쑥쑥이라 옮겨 심기도 그렇다.그래도 자라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청경채와 적겨자가 나오고 있다

 

청경채와 적겨자를 같은 상자에 씨를 뿌렸다. 나오면 키우는 것이고 안나와도..

주말에 정신없이 보내다 어제 스프레이를 해주며 보니 싹이 나오고 있다.

씨를 뿌린지 며칠 되지 않는듯 한데 벌써..그런데 적겨자라고 붉은빛 싹도 보인다..ㅋㅋ

수확보다 키우는 재미에 씨를 뿌렸는데 청경채와 적겨자가 어떻게 자랄까..

청겨자처럼 콩나물처럼 쑥쑥 크지 말아야 하는데..

그래서 베란다 문을 조금 더 열어 놓았다.햇빛만이 아니라 바람도 조금 더 들어와

녀석들을 더디게 자라게 하도록...

 

 

가끔 생각지도 않은 것들이 자랄 때가 있다.

올해는 유난히 실외기에 놓여 있는 화분에서 [냉이]가 많이 자랐다.

베란다에 옮겨 심은 것도 몇 개 있는데 실외기베란다에서 자라는 것이 튼실하다.

그런데 요녀석은 바이올렛은 죽었는데 무언가 새로운 개체가 자라고 있다.

바이올렛 잎꽂이를 하며 뽑아 버릴까 하다가 그냥 두었다. 무얼까...

 

 

실외기베란다에 [부추] 씨를 뿌려 둔 상자에서 적상추와 다른 것이 싹이 텄다.

적상추는 지난해 여름에 다른 화분에서 자라던 것이 꽃이 피고 씨가 떨어진 것이고

파릇파릇 돋아나는 것은 부추가 아니고 [왕고들빼기] 인듯 하다.

요녀석 역시나 지난해 하나 캐다가 이 상자에 심어 두었다가 씨가 맺혔길래

부스려 뿌려 두었는데 발아가 되었나보다. 기다리고 있는 부추는 보이지 않고 객식구만...

 

 

 

더덕새싹과 씨가 떨어져 새로 자라고 있는 더덕새식구가 한 화분에서 잘 자라고 있다.

녀석들은 꽃샘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흔들리며 잘도 자란다.

옆에서 냉이도 강인한 생명력으로 꽃을 피우고 점점 세력을 넓혀가듯 몇 개가 자라고 있는데

도라지싹은 보이지 않고 객식수들이 더 잘자라고 있는 더덕화분이다.

 

 

오늘도 울집 베란다의 주인은 [군자란]이다.

하나 둘 툭 툭 떨어져 지는 녀석도 있는 군자란 화단에 들어가면

잠시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된다. 꽃밭에서 길을 잃듯 꽃속에서 오늘 꽃샘추위를 잊는다.

 

20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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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 - 따뜻한 신념으로 일군 작은 기적, 천종호 판사의 소년재판 이야기
천종호 지음 / 우리학교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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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소년원이라는 곳과 그곳을 간 친구들은 무서운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인줄 알았다. 시골에서 학교를 다녀 대부분 초등학교 6년을 그리고 중학교 3년을 함께 다닌 친구들이 대부분이다.그런데 중학교 때에 뜻하지 않게 정말 학교에서 조용하고 소심하고 누구보다 겁이 많게 생긴 친구가 소년원인가 하는 곳에 며칠 다녀왔다는 소문이 퍼졌다. 왜 일까? 궁금했지만 그 자체를 믿고 싶지 않았다.초등학교 때부터 보아 온 그 아이의 심성은 누구보다 곱고 착한 것을 알았기에 그런 일을 저지를 친구로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구는 그 후에 친구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 가며 그래도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며 다닌 듯 하다.그 후로 나의 무관심인지 그 친구에 대한 모두의 무관심인지 그 후의 이야기를 아직 듣지 못했지만 졸업도 우리와 함께 잘 한것을 보면 아마도 잠시 방황을 뉘우치고 잘 살아아고 있지싶다.

 

범죄의 연령이 점점 어려지고 있다고 하는데 법의 기준에 맞춘 나이에 어른도 저지르지 못하는 일을 서슴없이 저지르고 자신의 죄를 뉘우치기는 커녕 당연하게 받아 들이고,그야말로 어른흉내를 내는 아이들도 있고 가정의 파괴나 그외 다른 이유로 범죄에 물들어 가는 아이들도 있는가 하면 요즘은 학교폭력이 큰 문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지만 학교안에서 대처능력은 학교밖에서 보는 눈과 다르게 작용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듯 하다.그야말로 학교안에서는 '쉬쉬'하면서 자신들의 학교에 해가 되는 일이 없도록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하지만 주변에서도 사회적으로도 보면 학교폭력은 큰 문제다. 그런 사회적 문제를 불러 일으키는 것은 다름아닌 우리 어른들의 몫이다. 우리집 아이들도 그런 시기를 충분히 거치고 지나갔기에 그 나이 아이들의 심리에 대하여 조금은 이해한다고 본다.

 

일등만 강요하고 성적으로 아이들을 판단하는 사회에서 아이들은 여기에서도 저기에서도 성적과 대입 사춘기와 부딪힌다. 자신들의 에너지를 맘껏 발산하며 그렇게 한참 성장할 시기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꽉 닫힌 틀에서 콩나물 시루처럼 쑥쑥 성장하기만을 바라는 부모와 선생님의 욕구에 만족하는 기대치를 일구어내기 위하여 잠도 자지 못하며 하루 24시간을 달리고 있다.그런 아이들을 보면 정말 하루 하루가 조마조마하다. 부모들이 아니 어른들이 그런 아이들 곁에서 바로 잡아 주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데 가정이 와해된 상태의 아이들은 누가 책임을 질까? 순간의 잘못으로 죄를 지은 소년들에게 가혹한 벌을 내리는 것 또한 우리 어른이다. 한순간 인생의 기로에 서서 그야말로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릴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그들에게 내려지는 죄값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그들의 마음 깊은 곳까지 들여다 보려는 천종호 판사의 이야기는 비단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 어른들 모두가 나누어 가져야 할 무게이다.

 

그의 이야기는 소년들과의 '소통'이 잘 담겨 있고 감동까지 더해준다. 그가 읽어주는 시 한구절 또는 편지 한 장이 구구절절 마음을 움직이고 읽는 독자에게도 울컥하는 감동을 전해준다. 누가 소년들에게 감히 돌을 던지겠는가? 어떻게 보면 어른들이 그들을 벼랑끝으로 몰아 세우고 벼랑에서 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사자는 자신의 새끼들을 벼랑끝에서 밀어 살아남는 자를 기른다고 하지만 벼랑끝에 몰아 세우면 쥐가 고양이를 물수도 있다. 소년들 개개인의 주변 환경과 마음을 헤아려 그들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그들을 보듬어 안으며 사회의 구성원으로 다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해주는 그의 글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나부터 나의 아이들과 소통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나 생각해 보게 한다. 서로 마음의 문을 닫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그는 개개인의 '가능성'을 보고 길을 열어 준다. 아직 완전하지 못한 이성을 지닌 소년 소녀들이기에 그들에게는 무한의 가능성이 분명히 있다. 지금 이 순간이 인생의 끝이 아니고 시작일 수 있고 늦은 후회란 없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 다시 시작한다면 분명 자신 안에 있는 또 다른 길을 찾을 수 있다.그런 길을 제시해 주고 우리 모든 어른들이 하지 못한 '미안해.사랑해'를 그가 실천해 주고 있는듯 하여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따뜻한 시 한 편으로 그들의 꽁꽁 닫힌 마음의 빗장을 풀며 눈물로 녹여 낼 때 나도 왜 그리 눈물이 흐르는지. 똑같이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부모의 마음은 다 같을 것이다.자기 자식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그런데 삐뚫게 가고 있다면 누가 좋아하겠는가.그런 자식에게 그가 따끔한 침을 놓아 주면서도 따뜻하게 봄눈 녹이듯 소년들의 언 마음에 따뜻한 강 한 줄기 흐르게 만든다. 판사의 직무를 넘어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내는 듯 하여 천종호 판사야 말로 우리 어른들의 거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이들이 삐뚤어 나가는 것에는 우리 어른들의 '무관심'이라는 정말 무서운 병이 도사리고 있다. 그런가하면 우리의 아이들도 다른집 아이들처럼 '일등'을 강요하다보면 어느 순간 포장된 아이를 만날 수도 있다.그런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도록 우리의 마음의 눈을 돌려 놓는 듯 하다. 비단 누가 하나만 바뀐다고 사회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부모나 선생님들이나 우리 어른들 한 명 한 명이 아이들에게 따뜻한 시선과 관심을 가지다 보면 소년범들은 줄어들지 않을까.비단 그가 주머니가 가득 채워져서 그런 일을 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자신의 주머니가 가벼워도 저절로 아이들을 위해 열리는 주머니처럼 그의 마음 또한 퍼내고 퍼내어도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소년범들을 어둠에서 밝은 양지로 이끌어 주는 그의 강직함을 많은 이들이 읽고 느낀다면.청소년기의 아이들과 그의 부모들이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이고 지금 방황하고 있는 청소년이라면 꼭 읽어보았으면 하는 책이다. 내 인생은 누가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순간의 잘못이 평생 멍에처럼 자신의 어깨를 무겁게 누를 수도 있다.자신을 사랑하자, 다시 날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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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래를 넣은 열무김치비빔국수

 

 

금요일 4월5일 한식날에 잠깐 친정에 들렀는데 엄마가 달래를 주셨다.

달래는 엄마의 화단에서 자란 것이다. 그것을 뽑아 네 명의 자식들에게 똑같이 나누어 주신 엄마,

물론 엄마는 아마 하나도 안드시고 우리들에게 주셨을 것이다. 

그것으로 아침에 [달래간장]을 해서 밥을 비벼 먹고 조금 남긴 것으로 저녁에 비빔국수에 넣었다.

달래향이 더해지니 비빔국수가 더 맛있다.

 

*준비물/소면,열무김치,달래,양념고추장 그외 양념

 

*시작/

1.끓는 물에 소면을 넣고 식용유 한방울에 소금을 약간만 넣고 삶는다.

2.찬물에 소면을 잘 헹구어 주고 물기를 살짝 눌러 빼준다.

3.달래를 먹기 좋게 잘라 넣어 주고 신 열무김치도 반 정도 잘라서 넣고

김치국물을 조금 넉넉하게 넣어 준다.

4.양념고추장에 입맛에 맞게 양념을 넣어 버무려 먹는다.새콤달콤하게.

 

 

 

주말에 내려 온 막내딸을 터미널까지 데려다 주고 들어왔더니 옆지기가 배가 고프다고 한다.

아침을 먹고 점심은 건너 띄어서인지 이른 저녁시간 배가 고픈 것이다.

쉬는 날은 배고픔도 일찍 찾아 온다. 밥하기는 그렇고 얼른 신열무김치 넣고 비빔국수를

하기로 했다.국수는 옆지기가 삶는다고 해서 고추장 양념하고 비빔국수거리를 준비했다.

친정엄마가 주신 달래가 남아서 달래도 조금 질쭉하게 잘라서 넣어 주고 신열무김치를 넣고

얼른 준비를 해 놓고 옆지기가 삶아 준 국수를 넣고 비볐다. 서당개 삼년이면 국수를 삶는다고

울옆지기 이젠 국수를 잘 삶는다. 그리곤 준비 놓은 거리에 국수를 넣고 쓱쓱 비벼서 맛있게 냠냠..

 

 

거기까지 좋았는데 옆지기가 위의 그릇에 국물이 조금 남았다고 밥을 말아 먹고 싶단다.

그런데 문제는 밥알이 한 톨도 없었던 것. 그래서 부랴부랴 쌀을 씻어 밥을 안쳤다.

뭐 그시간엔 1박이를 보며 기다리면 되었다.그렇게 웃고 웃고 또 웃다보니 밥이 금방 되었다.

옆지기는 비빔국수 국물에 금방 한 따끈한 밥을 한술 말아 또 맛있게 먹었다..

그리곤 '아....너무 먹었어..국수까지가 좋았는데..' 늘 먹고 후회한다.

그리곤 그 역효과를 내게 한다는...비빔국수 정말 올해는 많이 해먹을 듯 하다.

 

20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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