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 - 매 순간 그대의 삶 위에 축복의 꽃비가 되어줄 인연 이야기
능행 지음 / 휴(休)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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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이 모여 하루가 되고, 하루가 모여 한 달이 되며, 한달이 모여 일 년이 됩니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살다보면, 하루가 일 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죽음과 만나는 순간 그 순간 그날까지 최선을 다해 사는 게 기적이 아닐까 싶은데......' 아버지가 암판정을 받으신후 자꾸만 그 병을 앓았던 사람들이나 그 가족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인지... 아픔이 비단 나 혼자의 이야기가 아니고 이제는 누구나 아픔이 될 수 있고 나이를 불문하고 누구에게 닥칠지 모르는 그 병과 죽음에 좀더 달관해지고 싶어서였을까, 아님 능행스님의 자비를 얻고 싶었음일까 제목을 보는 순간 꼭 읽어봐야 겠다는 마음에 서둘러 책을 구매하게 되었다.

죽음을 옆에서 지켜 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마지막을 함께 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자비와 인내력 정말 말로 다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일터, 죽음에 가까이 다다른 말기암환자들을 보살피는 호스피스 역할을 하는 능행스님은 이땅에 내려온 부처님 같은 분 같다. 가족이 없는 환자에게는 가족이 되어 주고 남편이 없는 여인에게는 남편이 되어 주기도 하고 자식을 기다리는 분들에게는 자식과 같은 힘을 옆에서 모두 쏟아내면서 자신까지 죽음의 문턱에 갔다 오신 정말 살아 있는 자비를 베풀고 계신 분으로 존경 스럽다.

'다른 건 다 괜찮은데 죽을 때 고통스러울까봐 너무 두렵고, 하루하루 죽어가는 순간들과 대면하는 일이 너무나 싫어요.' 나도 그랬다. 아버지가 암이라는 큰 병이라고 판정이 나고 그것도 고통이 제일 크다는 폐암이라는 소리를 듣고는 왜 내게 이런 일이, 그러면서 아버지의 마지막이 너무 고통스러울까봐 늘 걱정이다. 자식이지만 옆에서 내가 나눌 수 있는 고통이란 것은 먼지만큼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늘 걱정이고 전화벨 소리에도 '혹시' 하는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병을 모를때는 한참만에 보면 그저 연세 때문에 늙고 외소해지셨다고 생각을 하던것이 이젠 병이라는 '친구' 때문에 아버지의 육신에 종양에 의해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것이 눈에 보일정도로 들어남에 이젠 아버지의 얼굴을 마주함이 고통이다. 자식에게도 나누지 못하는 고통을 혼자서 얼마나 감내하고 계신지...

그 죽음앞에서 인간의 욕심은 끝이 나지 않는 것을 가끔 마주함이 못내 안타깝기도 했다. 자신들의 가족이며 피를 나눈 형제의 죽음앞에서 한 인간의 삶보다 혹은 죽음보다 돈이 더 귀하게 대접을 받는 것이 정말 어떻게 말해야 할지. 죽음앞에서 의연하고 처연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에겐 죽음이 결코 오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던 사람들도 스님의 자비와 말씀으로 아이처럼 말갛게 변하고 좀더 순수하고 편안해 지면서 죽음을 받아 들이고 가시는 장면들이 정말 가슴을 아리게 했다. 얼마나 순간순간 혼자서 눈물을 남모르게 훔쳤는지 모른다.

아버지의 병을 알고 부터는 이런 책을 읽고 싶지 않았다. 다른 책인 <울지마,죽지마,사랑할거야> 도 구매를 해 놓고 실은 너무 슬플까봐 읽지를 못했다. 그런대 언제부터일까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읽기 시작한것이 노희경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이었던 것 같다. 비단 나 혼자만의 슬픔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런 류의 책을 읽으며 나 스스로 단단해지기 위하여 연습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살만하니까 무슨 일을 당한다고 한마디씩 한다. ' 이렇게 갈 것을 왜 그리 복작거리면서 살았는지...... 사는 것 별거 아니네. 별거 아니야. 이게 인생이라는 건가요? 말도 안 돼요. 말도 안돼.... 허탈한 건지.허망한 건가?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네.' 먼저 간 그들이 전해주는 것은 나중이 아닌 현재를 정말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에 하지.좀더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하고 늘 뒤로 미루기만 하다 보면 그 '나중' 은 언제 온다는 것일까? 말기암 환자들은 그 마지막에 서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현재가 중요함을 강조해 주고 있다. 그들이 마지막에 숙제처럼 한 '용서와 이해 그리고 사랑' 은 더 늦기전에 현재에 물 흐를때 빨리 해야만 후회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용서는 아름다운 선물이다.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할 수 있을 때, 그것이 진정한 용기가 아닐까.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이렇게 살아온, 이렇게 죽어가는, 그 많은 사연과 인연들을 두고 맥없이 죽어갈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을 온전히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
'맞다. 이생은 아깝다. 한데, 이 아까운 삶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현상에만 집착하느라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른 채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있지는 않은지. 어디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인식하지 못한 채 허상만 좇고 있는 건 아닌지..'

'오늘' 을 맞지 못하고 어제 죽어간 이들이 전해주는 후회하지 않는 죽음을 맞이하기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또 그런 이들을 위해 곁에서 동행의 길을 함께 걸어주고 있는 능행스님, <이 순간> 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주신 스님과 영혼들에게 감사한다. 그 사람이 한 생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제일 잘 알 수 있는 자리는 마지막 가는 자리라고 했는데 마지막에 미련을 남기지 않기 위하여, 아니 오늘 하루하루의 삶이 좀더 축복이고 행복이라는 것을,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이 순간> 은 삶에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는 책이다. '모든 일에 감사하고 기뻐하며 살자!' 라는 스님의 말처럼 나의 하루, 오늘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소중하게 보내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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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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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는 세자였다. 구왕이 그걸 알았고, 세자가 그걸 모르지 않았다. 청의 살을 맞고 지금 볼모로 끌려가고 있으나, 세자는 이미 죽은 노루가 아니라 앞으로 죽어가야 할 노루였다.' 반정에 성공하여 왕위에 오른 인조, 친명 사대주위를 표명하며 정국의 안정을 도모하려 했으나 이괄의 난,청의 침입 등으로 혼란을 겪게 되는 불운의 왕,굴욕의 왕이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 맏이 '소현세자' 는 자진해서 심양으로 볼모로 가 9년여 세월을 세자이면서 외교관의 역할을 톡톡이 하지만 그런 그가 너무 뛰어났던 것일까 왕인 아버지의 눈에 나 그만 자신의 목숨을 앞당기고 말았다.

청의 침입으로 엄청난 혼란을 겪고 청과 군신관계를 맺는 삼전도의 치욕을 당한 인조, 그런 왕에게 심양에가 친청의 외세에 물든 맏아들은 더이상 왕의를 물려줄 세자가 아니었던가.굴욕의 시간을 참아내고 환국을 하였지만 자신의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한 불운의 세자 '소현' 자신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그의 아내며 아이들까지 모두 할아버지인 인조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 정말 안타깝기도 하고 세상엔 두마리의 호랑이를 용납하지 않다는 것을,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는 자식도 그 무엇도 용납하지 않던 그 시대가 씁쓸하기도 하다.

'말들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소설의 처음인 이 한문장이 '소현' 을 대변하는 듯 하다. 일국이 세자이지만 볼모로 잡혀가 그곳에서도 이곳저곳 눈치를 봐야 하는 그이며 자신의 아버지인 조선에서조차 자신의 위치가 위협적이라 자신의 진실을 소리내지도 못하고 눈물조차 제대로 흘리지 못한 불쌍하고 가련한 세자 소현. '멀리 떠나 있는 아들을 생각할 때 내가 몸이 아팠다. 베어내지 못하는 살이 붙어 있는 자리에서 아팠다. 내가 너를 생각하면 몸이 더욱 아팠다. 불로 지진 침을 맞아도 그 아픔이 가시지 않았다. .. 임금이 몸을 돌려 누웠다. 여윈 몸이 등뼈가 세자를 향해 드러났다. ' 울거라 네 몸이 울음이 가득할 것이다.' 꿈속에서 겨우 아비의 진심을 읽어내지만 그의 가슴은 늘 텅빈것처럼 외롭다. 

그가 있는 자리는 아비의 나라에서도 그렇지만 심양에서도 '혼란' 이다. 그곳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살아가기 위하여 늘 자신을 들어내지 않고 중립을 지키며 하루하루 고된 나날을 살아낸 그 세월은 그에겐 외로움이고 고독이다. 친청을 택한 것 또한 살아가기 위한 한방편이지 않았나 싶기도 한데 쇄국정책을 하던 조선에겐 어쩌면 그는 너무 앞질러 갔는지도 모른다. 그의 삶처럼 비루한 자들의 삶이 얼켜든다. 조선의 양반가 딸이지만 적국의 첩이 된 흔과 그녀가 데리고 간 신기를 지닌 몸종 막금과 그런 그녀를 가지지도 못하고 죽이지도 못하고 그녀의 최후를 지켜준 만상등이 얼키어 소현의 적국에서의 이년여 삶이 얼마나 질곡의 삶이었는지 작가는 자신의 실들을 가지고 한필의 꼼꼼한 옷감을 자아낸다. 

뭔가 대단한 것보다는 작가는 '소현의 역사' 를,잊혀지고 묻혀버린 인간 소현을 그려내고 있지 않나 싶다. 그의 고독과 외로움,아비에게 죽임을 당하면서 자신이 이겨낸 질곡의 삶마져 묻혀 버린 '눈물 겨운 역사의 편린' 을 찾아내어 그를 달래는 진혼곡을 쓰듯 잠자던 그를 깨어 놓았다. ' 세자의 관소에 사는 것도 어느새 8년이었다. 관소로 가는 길, 적의 성도의 곳곳이 오래 떨어져 있던 조선의 경도보다 오히려 낯익었다. 낯익은 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세자의 눈빛이 깊었다.' 문장 하나에도 그의 외로움과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깊게 베어 있다. 

'누구나 영원히 적입니다.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그걸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8년전,조선은 그걸 몰랐습니다. 조선의 적이 청뿐만 아니라 명이기도 하다는 것을 아셨어야 했습니다.' '정복자의 세상, 정복자의 세월이었다. 세자가 문득 어금니를 물고 생각했다. 부국하고 강병하리라. 조선이 그리하리라. 그리되기를 위하여 내가 기다리고 또 기다리리라. 절대로 그 기다림을 멈추지 않으리라. 그리하여 나의 모든 죄가 백성의 이름으로 사하여지리라. 아무것도 결코 아무것도 잊지 않으리라.' 그는 어찌보면 역사의 희생양이다. 자신의 꿈을 다 펴보지도 못하고 접어야 했던 그의 젊음이 안타깝기도 하고 그가 만약에 아버지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하지 않고 살았더라면 어떤 역사가 펼쳐졌을지 몹시 궁금하기도 하다. 그도 아버지와 같은 왕이 되었을까. 김인숙 작가는 <안녕,엘레나>라는 작품으로 처음 만났다. 그녀가 역사소설은 처음이라고 했는데 첫작품으로는 후한 점수를 안겨줄 수 있을 듯 하다. 줄줄 쉽게 읽히기 보다는 역사로 읽어서 처음엔 조금 거리감이 있기도 했지만 고비를 넘고 부터는 재밌게 읽었다. 그가 타국에서 가졌을 서러움 외로움을 아비조차 방관하지 않았나 하는 안타까움으로 좀더 소현세자를 기억하게 해준 작품으로 오래 남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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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작가 - The Ghost Writer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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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스키 자신의 삶과 닮은 영화 유령작가,2010



감독/ 로만 폴란스키
출연/ 이완 맥그리거(유령작가), 피어스 브로스넌(아담 랭), 올리비아 윌리암스(루스 랭), 킴 캐트럴(아멜리아),...

감독 자신의 삶과 너무도 닮은 유령작가, 보이는 대로 다 믿지 말라 진실은 숨겨져 있다.


내가 폴란스키 감독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영화<테스> 이겠지만 그 영화로는 감독에 대하여 잘 모르던 때이다. 하지만 최근으로는 영화 <피아니스트>를 너무 감동적으로 보아 감독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영화 <피아니스트>중에 감독이 겪은 나치시절의 이야기가 실감나게 들어나 있다. 그래서 영화는 더 사실적이고 와 닿은 것 같다. 이 영화 또한 그의 삶과 너무도 닮아 있다. 미성년자 성범죄로 스위스 별장에 가택연금된 감독, 영화의 등장인물인 아담 랭도 미국의 어느 섬에 갇혀 있다. 어찌보면 자신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처럼 영화와 감독의 삶은 영화속에서 겹쳐 있다.

로버트 해리스의 원작<고스트>, 그의 전작 <폼페이>를 영화화 하다가 무산되고 다시 건네 받은 <고스트>를 원작자가 직접 참여를 하여 만든 영화라 그런지 세세하게 잘 표현되었다. 감독 폴란스키가 미국에 갈 수 있었다면 원작에 잘 묘사된 미국의 섬이 등장을 하였겠지만 성범죄에 발이 묶인 감독은 독일의 어느 섬을 영화에 담았다. 원작을 읽어보지 않아 원작에 섬이 어떻게 묘사 되었는지 모르지만 감독이 담아낸 '독일의 섬' 도 영화에 한 몫을 한 듯 하다. 황량하면서 바람이 거세고 폭풍이 몰려오기 전의 알 수 없는 날씨가 영화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잘 말해주고 있다.

유령작가, 랭의 자서전을 대필하던 전직 유령작가가 해안가에서 시체로 발견이 되어 그가 유령작가로 섬에 들어가게 된다. 아담과 루스,겉으로 보기엔 완벽한 커플이다. 내조를 정말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루스, 아담도 그녀에게 자신의 작은 것 하나하나 지적을 받을 정도로 아내를 믿는다. 그들 곁에서 랭의 자서전을 수정하다가 전직 유령작가가 남긴 '단서' 를 발견하면서 영화는 급 반전을 거듭하며 속도를 올린다. 스릴러라고는 하지만 살인사건이 있지만 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섬의 풍경도 어찌보면 아름답다.영상이 아름다운 스릴러라고나 할까. 

서서히 들어나는 진실, 과연 <랭의 자서전>에 숨겨진 진실은 무엇일까...
전직 유령작가가 남긴 단서들 중에서 '폴 에맷' 이라는 사람이 들어나게 되고 연극을 하던 랭이 갑자기 정치계에 발을 들여 놓은 사실과 그가 정치에 입문한 해등 진실과 맞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아낸 고스트, 랭이 자리를 비운 뒤 섬을 한바퀴 돌다가 우연히 만난 노인에게서 새로운 사실을 전해 듣는다. 전직 고스트의 죽음은 자살이 아닌 타살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 전직 고스트의 죽음에 가려진 커다란 진실이 서서히 푹풍처럼 밀려오듯 섬에는 한바탕 비와 바람이 몰아친다. 

가려져 있던 '제3의 인물' 이 들어나면서 감추어졌던 진실이 들어나고 고스트의 숨통을 조이는 추격의 눈,하지만 그는 그의 방식대로 랭이 어린시절을 과감히 빼 버리고 아내를 만나는 순간부터 하여 자서전을 고쳐 쓰고 랭은 저격범에게 총을 맞고 죽음에 이르지만 그의 자서전을 날개돋힌듯 팔려 나가게 된다. 하지만 고스트가 놓친 진실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 그는 다시 원작에 숨겨진 '코드' 를 읽어내고는 그 속에 숨겨진 '커다란 진실' 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대반전이 숨겨진 영화 유령작가,어찌보면 결말을 예측할 수 있지만 결코 서두르지 않고도 조용하면서도 큰 스릴러를 만들어 낸 듯 하다. 초반부의 스산한 겨울 해변가와 섬의 분위기가 영화의 전부를 말해주기도 하고 그게 또 폴만스키 감독의 장점이기도 한듯 한데 서두르지 않고도 고스트가 쫒기는 장면에서 스릴감을 갖게 하기도 하고 아내의 냉정함속에 숨겨진 '팜므타탈' 의 독이 들어 있음을 잘 표현해 내기도 했다.

007 영화에서 멋진 모습으로 나왔던 피어스 브로스넌의 주름은 처음엔 어색한듯 하더니 영국의 어느 총리와 비슷하기도 하고 맥그리거와는 비교가 되는 무게중심을 잘 잡아 준듯 하다. 그들 둘 사이에서 각을 제대로 보여주신 아내 루스 랭으로 분한 '올리비아 윌리암스' 의 차가우면서도 날카로운 눈빛이 영화와 너무 잘 맞았다. 그녀의 아름다운 눈빛 뒤에 숨은 진실을 알고 나면 영화의 내용은 쉽다.진실을 쥔 자들이 마지막까지 입을 열지 않고 숨어 있고 감독 또한 차분하면서도 천천히 비에 젖어들듯 서서히 진실을 파헤쳐 나가기에 영화는 더 긴장감이 있다.영화의 끝을 보고 나면 남자들은 말할 듯 하다. '당신의 아내를 믿지 말라.' 

너무 빠른 영화에 길들여진 관객이라면 영화가 재미없다고 할 것이지만 폴란스키 감독의 삶을 어느정도 이해하고 받아 들일 수 있다면 영화를 더 재밋게 볼 수 있다. 감독 자신이 삶이 어느 정도 녹아난 영화이면서 원작자가 직접 참여를 하고 <아일랜드>와는 다른 연기를 보여준 '이완 맥그리거' 를 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도 잊혀지지 않는 암울하면서도 스산했던 섬의 겨울 섬의 해변의 풍경이 눈에 아른거린다. 그 바람과 빗속에 홀로 서 있던 여인, 그녀의 고독이 무엇인지 알고 나니 낮게 앉은 구름만큼이나 그녀의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 이 영화를 보기전 티비의 모방송인 '서프라이즈'에서 폴란스키의 인생을 다룬 적이 있다. 이 영화와 함께. 영화를 보면서 감독은 영화의 진실을 풀어내고 있는데 진짜 폴란스키 감독의 진실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진실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가 거장으로 그의 능력을 보다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도록 긴 시간 그의 발목을 잡고 있는 무거운 쇠사슬에서 빨리 놓여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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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무소유 - 법정스님 이야기
정찬주 지음 / 열림원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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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이 하나만 있으면 됐지 왜 두 개를 가지겠느냐. 두 개는 군더더기이니 무소유라 할 수 없으니라.'
법정 스님은 가셨지만 스님이 가신 길 위로 뿌려진 '무소유' 의 홀씨들은 모든이들의 가슴 깊숙히 박혀 뿌리를 내리고 있지 않나싶다.이 소설을 읽기전에 석.탄.일에 모방송에서 특집다큐로 하는 '법정스님' 에 대한 것을 보게 되었다. 중간정도에서 보았는가 잘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스님이 스쳐간 흔적마다 함께 했던 사람들이 이야기와 그들이 들려 주는 '인간법정' 의 이야기는 세상에 알려진 '깐깐하면서 대쪽같은' 그런 존재가 아닌 '꽃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나눔을 베풀줄 아는' 그런 사람이었다. 정말 우리가 존경해야할 '멘토' 였던 분, <소설 무소유> 도 방송과 비슷한 '인간 법정' 에 대한 이야기라 비슷한 감도 있었다.

가난을 알았기에 가난을 밑바탕으로 하였기에 자신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으면서 모든것을 나누려했던 정말 '무소유의 실천자' 법정스님, 난 그분이 스님이기 이전에 '폐암' 이라는 병으로 돌아가셔서 더 가슴이 아프다. 친정아버지도 폐암판정을 받으셨는데 마지막 고통을 그분처럼 겪으시다 가실듯 하여 더욱 마음이 아프다. 치료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과 죽음' 으로 담담하게 받아 들이셨던 분, 읽는 내내 가슴이 저릿저릿했다. 혼자의 삶을 택해 강원도 산골로 들어갔지만 추운것을 견디지 못하시고 따듯한 제주도에서 마지막 삶을 보내셨던 분, 이웃분들이 법정스님인줄도 몰랐다는 인터뷰가 아른아른 한다.

작가 또한 스님보다는 '인간법정' 에 대하여 소설을 썼다고 했다. 그도 인간이기에 자신의 뿌리를 뒤로 하며 책 세 권을 들고 집을 나올때는 모두가 보고 싶고 다시 발길을 돌리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직 한 길만 추구하며 자신을 이끌어준 '효봉스님' 의 무소유의 삶을 받아 들이며 자신 또한 그와 같은 인물이 되어 한시대를 맑고 향기롭게 채우고 흔들고 가신 분, 그분의 향기가 그립다. 소설은 어린시절부터 하여 그의 스님으로의 삶보다 어떻게 그가 구도자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는지 하는 인간적인 면을 더 중요시하며 그의 궤적을 훑고 있다. 우물가의 밥풀하나 국수 한 가닥에도 마음을 쓰시고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드신 '빠삐용의자' 는 지금은 다리가 하나 부러져 있지만 의자에 대한 이야기는 얼마나 시적이면서도 마음이 여유로워지는 이야기이면서 주이을 잃은 의자가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훵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한사람을 새롭게 조명하기란 그가 가고 난 시간이 너무 짧을 수도 있지만 유언처럼 그의 영혼이 담긴 글들을 더이상 출판하지 말라고 하신 것처럼 그래서일까 더 그가 지나고 난 삶이 궁금해질 수도 있는데 소설은 그런 갈증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 모든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내가 금생에 저지른 허물은 생사를 넘어 참회할 것이다. 내 짓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통에 사용하여 달라.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 일체의 번거로운 장례의식은 행하지 말고 관과 수의를 마련하지 말라.화환과 부의금을 받지 말라. 삼일장 하지 말고 지체 없이 화장하라. 평소의 승복을 입은 상태로 다비하고 사리를 찾지 말고,탑고, 비도 세우지 말라.' 그분의 행적을 지우기엔 너무도 큰 획을 그으며 사시다 가셨다는 생각을 해본다. 일점 부끄러움 없이 사시며 빈손으로 가는 마지막 길이 무엇이란 것을 실천하고 가신 듯 하다.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 의해 많은 것을 가질 수도 저작권료로 인해 남보다 더 부유할 수 있었던 그 모든 것들을 알게모르게 다시금 사회에 환원하듯 자신의 삶을 되집어보며 굴곡을 가져다 주었던 사람들에 대하여 모두 베풀고 가신 그분, 어느 불자의 말씀처럼 불일암은 꽃이 먼저 맘에 들고 꽃을 좋아해 선택한 곳이었다는 말씀이 지워지질 않는다. 꽃을 좋아하고 꽃과 함께 사시다 꽃처럼 가시며 꽃씨를 우리에게 숙제처럼 남겨 가신 분이다.

'나는 근래에 와서 사람을 그리워해본 적이 전혀 없다. 우리가 진정으로 만나야 할 사람은 그리운 사람이다. 그리움의 물결이 출렁거리는 사람과는 때때로 만나야 한다. 그리워하면서도 만나지 못하면 삶에 그늘이 진다. 그리움이 따르지 않는 만남은 마주침이거나 스치고 지나감이다. 그것에는 영혼의 메아리가 없다. 영혼의 메아리가 없으면 만나도 만난 것이 아니다.' 소설 속에는 그분의 '향기로운 말씀' 많다. 밑줄 긋고 살짝 접어 놓은 곳들이 이 책 또한 많다. 스님이기보다는 '인간 법정' 의 한 삶을 다시 되집어 본다는 의미로 죽죽 읽어나갔는데 아직도 그분이 떠났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것은 아직도 그가 남긴 '맑고 향기로움' 이 우리 주위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음일까. 소박하면서도 표 나지 않게 살려고 한 삶이 너무고 깊은 협곡을 남기고 가신 분,그분이 생각날때 가끔 한귀절씩 들춰보며 내 삶을 담금질 할 수 있는 책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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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1 이외수 장편소설 컬렉션 6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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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는 두 갈래의 길이 있다. 한 갈래는 인간의 모습으로 걸어가는 길이고 다른 한 갈래는 짐승의 모습으로 걸어가는 길이다.' 이 책은 위에서 말한 길 중에서 두번째의 길인, 짐승처럼 살아가는 인간괴물,파괴적이고 폭력적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그런 인물에 대한 이야기이다. 트위터에 올린 짧은 글을 모아 만든 신간 <아불류 시불류>를 읽과 나서 접한 이 책은 그가 이런 파괴성과 폭력성에 대하여 썼다는 것이 매치가 안될 수도 있다. 소년의 감성을 지닌듯 하면서도 위트있게 인생사나 현재를 꼬집는 글로 가슴 깊게 파고 들었던 글의 여운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이 소설을 읽어서일까 조금은 괴리감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의 전작중 <장외 인간>을 읽어 보았기에 그리 큰 무리수는 없었던 듯 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불가항력적인 위험요소들로 가득차 있거든.세상은 어차피 지뢰밭이고 인생은 어차피 도박판일세.' 인생 전체가 지뢰밭과 같은 사람 전진철, 미국에서 살던 그가 초등5학년 전학을 온 반은 그의 한쪽눈이 함몰되어 없는 기외한 외형도 놀라웠지만 대인기피증처럼 친구들과 친하지도 않고 그가 온 뒤로 알 수 없는 '도난사건' 은 아이들에게도 이상한 일이었지만 담임에게도 괴이한 사건이었다. 설마 벤츠를 타고 다니는 녀석이 도둑질을 할까 했지만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고 범인은 그였던 것이다. 그의 도벽 때문에 한국에 왔지만 다시 도진 도벽, 그 도벽을 무마시키기 위하여 이모는 담임까지 납치를 하여 반강제적으로 자신들의 뜻에 따라주길 바라지만 그런 방법밖에는 없었을까 하는 생각.

어쩌면 그는 태어날때부터 유명 여배우였던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병을 고쳐보려는 태도보다는 쉬쉬 감추고 감싸고 들려했기에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지 않았나싶다. 그런 그가 성장을 하여서 병증이던 도벽은 섹스중독증을 거쳐 연쇄살인에 이르기까지 인간 말종,그야말로 파괴와 폭력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산에 들어가 자신의 전생과 만나고 초능력적 영원한 힘을 얻은 그에게 세상에서 무서울것은 하나도 없었다. 컴퓨터 바이러스와 같은 방법으로 자신의 '초생성서' 를 퍼트려 폭력성을 더 극대화 시키는 변태적 인간말종 진철과 그외 연쇄살인과 관련한 사기꾼,노래방 도우미, 경찰,시인,무술관 관장님등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을 하여 빠른 전개로 이야기가 전개 되지만 그들은 한뿌리의 감자줄기에 매달린 감자처럼 옷깃을 스치듯 진철이라는 인물과 관련이 있다.

네크로필리아,시체를 사랑하는 이상성욕의 소유자 진철.그리고 그가 연쇄살인방법으로 쓰는 독침등 그와 관련된 인물들의 서서히 들어나는 삶을 신화적이고 전설적으로 그려내어 다소 어렵고 이상스럽게 다가와 읽기에 어려운 감이 있다. 작가의 독특한 외모만큼이나 다가가기 힘든 소설이기도 하다. 매니아층이 아니라면 손에 잡기 어려운 소설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인간에게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이중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한 면보다는 악한 면을 더 들어내어 쓴 소설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아직 2편을 다 읽지 못했지만 독침으로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진철' 과 '무도소년' 의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하다. 누군가는 나서서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진철을 막아야 할터인데 그가 무도소년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아불류 시불류>를 읽어서인가 어쩌면 인간은 우리 내면에 감추어진 폭력성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흐려지고 옅어지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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