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누구냐? 가을 군자란 꽃






다른 것들은 봄에 다 피고 지고...지금은 씨로 맺혀 있건만
이녀석은 봄에도 피었는데 가을에 또 꽃을 피우고 있다.
봄에 핀 녀석들은 색이 무척이나 진하고 고운데
제철에 피지 않아서일가 색이 연하다. 그래도 기특하다.
볼 것 없는 지금 이렇게 꽃을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군자란 꽃만 필소냐 '나도 있다' 라며 피려고 준비하는 '아젤리아'
이 꽃 말고 몇 송이 피었다 지고 지금 피어 있는 녀석도 있는데 그리 좋지 못하다.
그래도 얼마나 기특한지 하나 지면 또 하나 몽오리가 올라오고..
이녀석들 봄에는 무엇하고 이제서 피고 있는것인지..
아닌가 봄에 피는 녀석보다 먼저 피고 있는 것인가~~



삽목한 제라늄

며칠전에 세개 가지를 잘라 삽목한 제라늄이다.
작은 것이라 어찌살까? 했는데 잎이 나오고 있다. 가을볕이 좋긴 좋은가보다.
이 화분들은 바이올렛이 있던 안방베란다의 화분받침대에 있는 작은 화분들인데
여름 우기에 베란다문을 열어 놓았더니 빗물에 바이올렛이 다 죽었다.
거실베란다에는 바이올렛이 많지만 이곳엔 바이올렛이 오랜시간 피어 있었으니 이젠 제라늄으로
물갈이를 해 보려고 삽목을 몇 군데 했는데 역시나 제라늄은 생명이 강하다.
벌써 뿌리를 내리고 잎을 올리고 있나보다.




바이올렛 화분에서 동거를 하고 있는 '달래' 다
이녀석은 산에서 데려온 것이 무척 오래 되었는데 뽑아내도 흙 속에 생명을 감추고 있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는데 이 녀석 또한 가을에 올라오니 뜯어서 달래간장이나 해먹을까..ㅋㅋ

간만에 초록이들과 시간을 나누어본다. 오늘은 기분도 꿀꿀하고 해서
어제 하려다 못한 베란다의 8년생 천장에 닿고 있는 '율마' 이발을 했다.
그냥 재봉가위로 쑥덕쑥덕 삐죽삐죽 나온 것들을 밑에 신문지를 깔고는 잘라내고 버리고
잘라내고는 버리고... 그렇게 내 마음의 잔가지를 치듯 이발을 했다.

율마녀석들은 잘 자라다가도 여름 장마철에 꼭 곰팡이가 생겨 한쪽면이 죽고는 한다.
어느 정도 햇볕을 보면 화분을 돌려주고 돌려주며 키워야 제대로 된 모양으로 키울 수 있는게
율마다. 하지만 가끔 이렇게 이발도 해 주어야 하는데 자연스런게 좋다고
지금까지 한번도 가위를 대지 않고 키웠더니 더이상 자라지도 않고 자꾸 못난 모습만 보여줘
큰맘 먹고 잘라내 주었더니 맘이 시원하다.
식물도 생가지를 잘라내니 '건드리지 마세요~~' 하는 것처럼 향을 품어내는 녀석..
덕분에 향기로운 향을 맡아가며 이발을 했다.

201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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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 싫어! 푸른숲 작은 나무 15
라셸 코랑블리 글, 쥘리 콜롱베 그림, 이세진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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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다,잘못하는 것 같지만 '잘한다 잘한다. 아니 할 수 있다.' 라며 엉덩이를 두드려 주다보면 점점 으쓱해서 잘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 되는 것이 아이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책일긱 싫어' 하는 아이들에게 강압적으로 '책읽어.책은 읽어야돼.이 책 읽어.' 라고 말한다면 아이가 책을 읽을까,아님 반발심을 가지게 될까? 그런 아이일수록 환경이 중요한 것 같다.책과 친하지 않았다면 놀이를 통해서라도 책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만들어 주던가 강압적이기 보다는 생활속에서 아님 엄마와 아빠와 함께 하며 아이가 점점 스펀지처럼 책에 스며들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 주면 서서히 책과 친구가 되어갈 수 있다. 엄마가 만화책을 싫어한다고 만화책을 좋아하는 아이를 강압으로 만화책과 멀어지게 하면 아이는 영영 책과 이별하게 된다.

아이들은 흔히 주변에서 놀이처럼 익히는 것을 좋아한다. 물놀이를 하면서 '물놀이용책'을 가지고 놀게 하던가,장난감처럼 책으로 성을 만들고 책으로 도미노게임을 해 보게 하고 책으로 시장놀이를 하게 하면 책은 '읽어야 되는 딱딱한 것에서 놀이감' 이 되어 좀더 친숙하게 된다. 나 또한 어릴적에 아이들에게 그렇게 책과 친근한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한참 소꿉놀이에 빠지는 3~4살엔 동화책을 아이들과 함께 읽어가며 테잎에 녹음을 했다. 글자를 잘 몰라도 몇 아는 글자들과 그림으로 내용을 알고 있으니 문제될 것이 없다. 쉬운 글자에 가서는 아이에게 읽어보라고 하면서 녹음을 해주고는 소꿉놀이를 할 때나 다른 놀이를 할 때 자연스럽게 엄마와 아이의 목소리가 담긴 녹음테잎을 틀고 놀게 하면 저절로 책을 즐기게 되고 글자도 너무 쉽게 깨우치게 된다.이십여년이 다된 지금 어린시절 아이들과 함께 했던 녹음테잎은 가보처럼 남겨지게 되었다. 아이들은 녹음테잎 속의 자신들의 목소리와 노래등을 듣고는 새로운 엄마의 모습과 자신들의 지난날을 추억하고는 너무 좋아했다. 그런데 책 읽기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엄마의 욕심을 담아 '~~해라, ~읽어라.' 하면 그 순간부터 아이들은 좋았던 것도 싫어지는 것이다. 이 책엔 그런 아이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린시절 침대맡에서 엄마가 읽어주는 책은 따듯하고 좋았다.그런데 엄마는 내가 책 읽기를 싫어하는데도 책장에 가득 책을 사서 꽂아 놓는가 하면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선생님을 만나서 '얘는 책읽기를 싫어해요..' 라고 단점을 더욱 단점화시켜 말한다면 아이가 좋아할까.하지만 선생님은 '어머님, 독서는 잼 같은 거예요. 파리가 잼에 꼬이듯, 아이들이 스스로 책에 매달리게 하는 수밖에 없어요.' 라고 말한다.반항심에 아이는 더욱 책읽기를 싫어하고 책읽기 싫어하는 사람이 자신뿐만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있다는데에 착안하여 '책 읽기 싫은 아이들의 모임'을 만들어 작전에 돌입한다. 자신들의 뜻을 부모에게 관철시키기 위하여 집에서 할 수 있는 온갖 일들을 저지르면서 부모와 전쟁아닌 전쟁에 들어간다. 엄마의 화장품을 모두 감추거나 아빠의 양말을 모구 감추거나 자신들이 저지를 수 있고 부모가 난처해할 수 있는 일로 주위를 끄는 아이들,그것으로 끝이날까.부모들은 아이들이 말을 하지 않고 이상한 행동만 하니 왜그런지 모른다.

그런 아이들이 '도서관 점령 대사건'을 벌인다. 도서관에 있던 사람들을 밖으로 시선을 끌기 위한 작전을 펼친후에 도서관을 자신들이 점령하고는 자신들이 읽기 싫어하던 책이  가득한 도서관을 난장판을 만들어 놓는다. 그런다고 무엇이 바뀔까, '우리 손으로 바꾸자.' 사진들은 도서관을 점령하고 난동을 부리면 자신들의 뜻이 관철될 줄 알았지만 그렇지가 않다. 사무엘 뿐만이 아니라 친구들은 저마다 책읽기 싫은 이유를 가지고 있다.하지만 기억속의 책은 자신들과 멀리 있지 않다. 엄마가 머리맡에서 읽어주는 따사롭고 좋았으며 만화책은 자신이 정말 좋아했던 그리고 잘 읽던 책이라는 둥 그리고 사무엘은 도서관에서 난장판이 된 책들로 성을 쌓듯 하고 책속에 길을 내어 숨으려 한다. '책들이 방음벽 역할을 해 주어서 밖에서 나는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어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었지요. 백 년쯤 자고 일어나면 세상은 똑같겠지요. 그래도 그때쯤이면 모두들 날 잊어버리 테니, 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거에요. 그리고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할 거에요.' 책 속에 숨어버린다고 자신을 잊버릴까 책과 멀어질까,아이는 책과 친해지는 방법을 알고 있었고 책 속에서 길을 찾는 법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부모의 행동이 자신을 책과 점점 멀어지게 했을 뿐이다. 책읽기 싫어해서 벌인 작전인데 그들은 지금 책 속에 갇혀 있는 것이다. 난장판 된 도서관 어찌해야 할까?

부모들은 도서관을 난장판을 만들어 놓은 아이들 모두에게 벌을 내리기로 한다.다른 벌이 아닌 그들이 난장판을 만들어 놓은 도서관의 책을 원래 상태로 정리해 놓기 위하여 매주 수요일 도서관에 가서 일을 하게 한다.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부딪쳐 이겨 나가게 길을 제시해 준다.결국 책읽기가 싫어 벌인 자신들의 일에 발목이 잡힌 사무엘과 친구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 책은 책 읽기 싫어하는 아이들에 대한 아이들 입장보다는 부모의 자세에 대하여 더 생각해 보게 한다. 정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좀더 아이들 기분을 좋게 말해줄수도 있겠다는,아이들 입장에서 말을 하고 행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보게 한다.그렇다고 아이들이 벌인 일을 어른이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해결하게 하는 마지막 결론을 잘 내렸다. 그리고 아이가 만화책을 좋아하면 그와 연관지어서 다른 길을 제시해주면 더 책과 친근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만화책하면 선입견에 그건 책도 아니야 하는,세계문학을 읽어야지,고전을 읽어야지가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좀더 다른 것과 접목하여 나아갈 수도 있다는 길을 제시한다. 무조건적으로 부모의 잣대로 아이를 판가름하지 말라는 것이다. 부모의 욕심대로 아이들이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때론 아이와 눈높이를 같이 하여 세상을 볼 줄도 알아야 한다.

'엄마는 알고 싶어. 아무 이유도 없이 화가 폭발했을 리는 없잖아.그렇지, 사무엘?'
엄마가 혹은 아빠가 자신을 모두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말자.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충분히 설명하고 서로 대화로 '절충안' 을 찾아보려 해야지 말도 안하고 '엄만 내 뜻을 알고 있을거야.' 혹은 '내 아이니까 내 아이에 대하여 난 다 알고 있어.' 라고 단정짓지 말자는 것이다. 그런 과오가 더 큰 문제를 불어 온다는 것이다. 좀더 서로간에 대화를 나누었다면,왜 책읽기가 싫어졌는지 서로 말했더라면 이런 큰 문제로 발전하진 않았을 터이고 엄마의 말 한마디, '얘는 책읽기를 정말 싫어해요.' 라는 말로 아이를 단정짓지 말라는 것, 그렇다면 좋게 만들어 주는 것이 부모의 몫이기도 한데 엄마는 그럴 너무 과용을 해서 문제를 크게 만들었다. 아이는 엄마를 제일 많이 그리고 가까이 하고 자라기 때문에 엄마의 영향이 제일 크다. 엄마가 좀더 세심하게 아이의 눈높이에서 보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가지며 그런 자세를 가지게 한다. 책읽기 싫다고 책을 함부로 다루어선 절대 안된다. '언젠가는 나도 책이 읽고 싶어지는 날이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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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꿈 - 14세에 남장하고 금강산 오른 김금원 이야기 진경문고
홍경의 지음, 김진이 그림 / 보림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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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여인중에 울밖 담장을 너머 금강산에 다녀온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그런 꿈을 품고 있다고 해도 담장밖 세상에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던 여인이 얼마나 될까? 여자라고 하여 제약이 너무 많았던 세상,그런 세상에서 남장을 하고 그것도 지금으로 하면 사춘기 겨우 중학생 나이에 금강산을 혼자 다녀왔다니,금강산 뿐만이 아니라 두루두루 넓은 동해바다도 보고 내륙지방도 여행하고 한양을 들러 오랜 시간 동안 그렇게 자유롭게 유람을 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지만 그는 자신이 보고 듣고 한 여행을 글로 남겼다. 시에도 능했던 그녀,재능을 가지고 있어도 여인이라는 그것도 기생의 딸이니 그녀가 택할 수 있는 운명이란 정해져 있었는데 그런 속에서 자유롭게 여행기를 남겼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가.지금이라면 여행기에 대한 저작권이라도 있겠지만 그녀의 글로 그릇이 판가름 되어 모두가 아깝게 생각을 해도 어쩔 수 없는 서출에 기생출신,갖출건 다 갖춘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계급이다. 그녀의 이야기가 오롯이 담긴 <호동서락기>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는 안타깝고 아쉽다는 생각만 들뿐,모두가 시대를 잘못 타고난 죄밖에 없다.

섬에서 태어난 여인네들은 뭍에 간다는 것은 죽어서 나오는 일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래 제주의 김만덕은 어려운 제주민을 구제했다하여 임금의 상을 받게 되었을 때 다른 것도 아닌 섬을 벗어나 뭍으로 나가는 것, 바로 금강산 여행을 해보고 싶다고 올려 금강산을 다녀왔다고 한다.하지만 금원은 엄마가 기생이었다가 첩으로 들어가 그녀를 낳았다. 그러니 당연히 기녀가 되어야 할 팔자인데 그녀는 어려서부터 글을 깨우치고 글짓는 솜씨가 남달랐기에 울안에 갇혀 있기엔 그릇이 넘쳐났던 것이다. 책에서 세상을 배우게 된 그녀는 책과 그림속에 있는 금강산으로 만족하고 싶지 않았다. 직접 눈으로 보고 표현하고 싶었던 그녀는 글스승이나 마찬가지인 고모 기각으로 배우기도 하고 어느 순간엔 그녀를 뛰어 넘는 재주를 지니게 되었다.그녀의 동생 경춘과는 글친구처럼 늘 글을 나누고 어머니와도 함께 자유롭게 글을 읽고 나누고 하였으니 주변이 모두 글선생이요 그녀의 꿈에 날개를 달아주지 않았을까.

'세상에 내딛는 이 걸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리라.'
그녀가 만약에 양반가에서 태어났다면 부모가 그녀를 금강산에 보냈을까? 아버지도 그녀의 재주에 놀라고 어머니는 기녀였기에 그녀를 자유롭게 보내주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지어주신 남자옷을 입고 세상밖으로 향한 그녀는 그녀의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하여 당차게 출발한다.가슴에 품고 있던 의림지를 둘러보고 단양팔경을 구경하고 금강산 한양 등 두루두루 여행하고 집에 돌아오지만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기생의 길,하지만 그녀의 글재주는 담을 넘고 넘어 멀리 퍼져 나가고 한남자의 아내로 살아가게 되는 기회가 온다. 소박하게 사는 사람이었기에 그녀와 잘 맞았던 것일까.그녀의 재주를 아껴주고 알아 주는 사람이었을까,그녀는 결혼을 하고는 정착하게 된 곳에서 조선에서 최초의 여성시사를 열게 된다. 대단한 재주를 가진 글친구들과 글을 나누게 된 그녀는 금강산 다녀왔던 이야기를 가슴에 간직하고만 있지 말고 책으로 쓰면 하면 친구들의 뜻과 함께 그녀는 책을 내기로 결심한다. 여자가 그것도 다른 곳이 아닌 금강산 기행에 대한 책을 낸다는 것이 가당키나 했을까. 하지만 그녀는 남자도 하기 힘들 일을 척척해냈다. 그녀를 품기엔 조선이라는 그릇은 너무 좁았다.

'평해로 향하가다가 월송정에 올랐다. 바람이 고요하고 물결이 잠잠하고 날씨가 청명하여 섬들을 바라보니 있는듯 없는 듯 바다색이 한르에 닿아서 구름 끝을 볼 수 없었다. 차가운 이슬에 뜬세상의 삶이 참으로 가련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담장 안에 갇혀 살던 삶이 망망대해와 금강산 여행까지 두루두루 하였으니 자신의 삶이 얼마나 가련하게 여겨졌을까.지금으로 말하면 정말 넓은 세상을 걷기여행을 하고 견문이 넓어진 것인데 그런 그녀가 다시 담장안게 갇혀 살기엔 그녀의 재능은 거침없이 커진 것이다.만약에 그녀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어떠했을까?  그녀 앞엔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었을까.남자들도 인정한 글솜씨,그리고 추사 김정희까지 인정한 그녀의 능력의 끝은. <호동서락기>라도 남아 있다는 것이 정말 다행이다.조선의 법도에 대항하 듯 금강산으로 향하고 책을 쓰고 그리고 여성시사를 만들어 글친구들과 글을 나누며 그녀의 재능을 펼쳤던 그녀의 삶이 21세기의 내가 읽어도 대단하다. 그 시대에도 분명 재능이 뛰어난 여인들이 있었지만 넘기 힘든 '조선의 법도' 갇혀 꿈조차 펴지 못하고 사그라들었을텐데 자신안에 갇고 있던 '오래된 꿈' 을 그저 꿈이 아닌 현실로 이행한 용감한 그녀,정말 당차며 대단하다.

그녀의 이야기는 <호동서락기>를 빌어 담담하게 그려졌다. 작가의 감정보다는 그녀의 삶을 주로 담담하게 표현하여 한시와 함께 그녀의 삶을 읽어나가는 맛이 그녀의 비단마당처럼 현란하지 않음 속에 비단의 보드라움처럼 스며든다.그시대에는 남자도 서얼이라면 사회적 제약이 많았는데 여자 또한 어떠할까,그것도 어미가 기녀였는데. 그녀의 재능이 아깝다. 호기심 많고 글에 남다른 재주가 있고 모든 것에 제약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꿈을 접지 않고 펼쳤던 그녀,요즘의 청소년들이 읽고 본받아도 될 것처럼 잔잔함이 긴 여운을 남긴다. 낭중지추라 했다. 뛰어남은 언젠가는 드러나게 되어 있다. 코끼리의 다리를 만지고 코끼리를 보았다고 하는 맹인모상이 아닌 직접 눈으로 그리고 자신의 발로 밟아 본 금강산및 그외 여행지는 그녀의 글의 폭을 넓혀 주기도 했지만 밖으로 향하는 설레임을 안으로 잠재우며 더욱 글로 승화시킬 수 있었지 않나 싶다.어떠한 제약에도 자신의 꿈을 굽히지 않았던 그녀,그녀의 삶과 꿈이 다시 태어난 듯 기쁘다. 어찌 역사 속에 그냥 잠들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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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묵키위무침






 





어제 쑤어 놓은 도토리묵,오늘 저녁에 무쳤다.
배추김치를 담고 남은 부추에 양파 당근 그리고 사다 놓고 먹지 않은 키우 2개..
키위 하나는 더 오래되어 달달하게 익은 것이고 하나는 단단한 것이다.
여기에 고추가루,간장,참기름,다진마늘,통깨를 넣고 살살 애기 다루 듯 무쳤다.

난 과일을 잘 먹지 않아 음식에 잘 넣어 먹는다.
키위는 과일중에 제일이라고 장에는 최고이니 음식에 잘 넣는다. 물엿을 넣어야 할 고기요리에
키위를 넣으면 맛있다. 샐러드에 넣어도 맛있는데 오늘은 처음으로 도토리묵무침에 넣어 보았다.

옆지기가 올 시간 즈음해서 무쳤다. 너무 오래되면 맛이 없으니 바로 무쳐서 먹어야 제맛,
무쳐서 큰 접시에 담고 있는데 그가 왔다.도토리묵 하나에 키위를 올려 놓고 간이 맞는지
맛은 어떤지 먹어보라 했더니..'음~~~~' 고개만 끄덕끄덕...
-맛이 어때요..도토리묵무침에 키위를 넣어 보았는데 내 오늘 특별요리 어떠냐고요~~?
-음.....(말 없이 고개만 끄덕끄덕~~)
-말 안하면 못 먹게 한다. 맛있는 것...
-최고~~~~ 최고야~~~역시~~
맛있을 때는 맛있다고 말을 해줘야 더 신이나서 할텐데 먹기 바쁜 옆지기,
마님이 이렇게 해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도토리묵에 키위를 넣으니 새콤하면서도 달콤하여 맛있다. 궁합이 안맞을 듯 하면서
묵무침에 과일이나 파프리카 등을 넣어도 맛있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요리는 창의다.내 요리라고 할 수는 없지만 레시피가 따로 없다.
그냥 그날 눈에 들어노는 것들 넣고 하는 것이다..그래도 맛만 있으면 굳~~~


201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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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엄마보다 한 발짝 느리다 - 내 딸을 어른으로 떠나보내기 위한 첫 번째 여행
박윤희.박정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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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엄마는 끝 없는 애증관계라고 한다. 나 또한 그런 시간을 알게 모르게 지났고 지금은 작년에 혼자가 되신 엄마를 여자의 입장에서 그리고 혼자되신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드리고 싶어 늘 마음을 기울이고 있지만 그것이 물질적이기기 보다는 마음 뿐이라는 것이 아쉽고 안타깝다. 친정엄마는 그리 긴 애증의 관계를 보내지 않았는데 지금 사춘기와 두 딸들과 함께 너무고 긴 애증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아 힘들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나의 옛시절을 이야기 해주면 녀석들은 아직 그릇이 차지 않아서인지 이해를 못한다. 그래도 가끔씩 엄마의 입장에서 엄마를 이해해주는 친구같은 딸들이 있어 좋다. 큰딸이 올해 수능이 끝나면 '카미노 데 산티아고'는 못 가더라도 '제주올레' 길은 한코스정도 걷기여행을 떠나보자고 다짐했다. 그런데 그럴 수 있을까,딸도 나도 정말 누구나 알아주는 저질체력인데 걷기여행을 할 수 있을지 걱정안데 40여일 혹은 50여일 동안 걷기만 하는 산티아고 여행은 어떻게 할까? 하지만 떠났던 사람들은 대부분 그 여행을 마지막 그 순간까지 누리고 온다,부럽다.

오십을 바라보는 전문직 엄마와 이십대에 들어선 딸,한참 애증이 깊어질 때다. 엄마 또한 한참 힘든 시기일 때지만 딸 또한 자신이 선택한 인생에 대하여 깊은 회의를 한 듯 하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과 비슷하다. 우리 큰 딸 또한 좁은 우물안에 갇혀 있어 생각은 좁고 고집은 세다. 하고 싶은 것은 저 멀리 있다. 노력을 좀더 해야했는데 이제와서 후회를 하기도 하고 노력을 하고 있지만 자신의 꿈을 잡기엔 현실이 너무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엄마인 날 또한 힘들게 한다. 녀석에게 지난번에 얼굴을 보고 정말 이 힘든 시간이 끝나면 국내든 해외든 좀더 견문을 넓히기 위한 여행이 필수라고 말해주었는데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실감하며 읽었다.'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 이 이 '순례자의 길' 이라 하더니 둘은 함께 떠났지만 서로 다른 길을 가듯 둘이 하나이면서 따로 길을 걷는다. 그러다 절실한 순간에 손을 잡듯 하나가 된 엄마와 딸, 그렇게 길이 끝나는 곳에서 그들은 하나가 되었고 갖가 따로 우뚝 설 수 있게 되었으면서 둘이 하나가 되기도 했다. 힘든 시간을 함께 이겨내고 걸었기 때문에 그들의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어느 집이나 엄마는 딸이 맘에 들지 않고 딸은 늘 잔소리를 달고 있는 엄마가 눈에 차지 않는 것이다. 점점  나이가 들어가고 머리가 커진다고 사회에 반항하고 어른에 맞서는 어른이 되려고 하는 아이들, 부모의 눈에는 언제나 어리기만 하다. 하지만 자신은 성숙했다고 생각하는 녀석들,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부딪히게 된다.늘 철두철미하다고 할 수 있는 엄마에게 느리고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고 온 딸은 그저 아직 부족한 애로 비춰지는데 그럴 때 손을 잡아주면 일어나지 못하게 되지만 혼자서 할 수 있게 내버려 두면 스스로 일어난다. 그런 것을 둘의 글에서 깊게 느꼈다. 서로 부딪히려고 하는 순간에는 조금 멀리 떨어져 보는 것이다. 부딪히지 않으면 문제도 생기지 않으니 잠시 떨어져서 서로를 생각해 보면 왜 화를 냈는지 시간이 지나고 나면 누그러진다. 처음엔 같이 걸었던 두사람이 점점 혼자 가는 길에 익숙해지고 그렇게 좀더 떨어진 거리에서 서로를 볼 때 좀더 객관적인 눈으로 볼 수 있으며 점점 더 가까워지는,각별해지는 산티아고 40일 1000km의 걷기여행의 길은 '애증의 골' 을 자갈길에서 혹은 오르막에서 혹은 비가 내리는 날 판초를 입고 걷던 그 길에 모두 놓아 버릴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둘이면서 혼자 걷게 되었지만 늘 알베르게에선느 함께 하던 그들이 하루는 정현이 길을 잘못 들면서 엄마를 잃어버리게 되고 그녀는 '혼자' 임을 아니 '엄마' 라는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하여 더욱 각별해진 모녀사이,엄마의 글을 읽다보면 엄마를 이해하게 되고 정현을 글을 읽다보면 그녀를 또한 이해하게 되고 어느 한 쪽 편을 들 수도 없는 서로에 대한 애정 그리고 사랑 그것이 엄마와 딸이기에 가능했던 것을 아닐까.글을 읽는내내 그저 부럽기만 했다. 언제 나도 그런 여행을 떠나보나? 생각하고 있으니 반은 이루었다고 생각해야 할까? 좀더 '엄마와 딸' 의 소원한 관계를 더 가깝게 하기 위하여 아니,좀더 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기 위한 세대차이를 좁혀 보기 위한 여행을 언제 떠나볼까. 그 길이 산티아고가 아니어도 되겠지만 자주보거나 익히 알고 있지 않은 '낯선' 것이었기에 더욱 가능하지 않았을까. 자신안에 있던 소심함을 깨고 좀더 적극적으로 스스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하여 변하여 가는 딸을 보며 흐믓해 하는 엄마,그리고 함께 하며 좀더 엄마를 이해하게 되는,정신적으로 성장을 하게 되는 딸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 그 길에서는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만날 수 있다.자신이 속해 있던 과거와 화해를 하고 현실에 감사하며 새로운 미래를 다짐할 수 있는 여행이라면 40일을 걸어도 좋고 50일을 걸어도 좋을 듯 하다. 그 시간으로 하여 미래의 남은 시간들이 더 단단해질 수 있다면 떠나고 싶다.엄마라는 존재는 자신이 걸어 온 길을 어느 덧 자식에게 강요하게 된다. 의연중에 자신은 자신의 엄마처럼 되지 말아야지 하면서 엄마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자신의 딸에게. 나 또한 그런 것을 현실에서 가끔 부딪히게 된다. 내 엄마가 나에게 강요하던,정말 싫었던 것들을 내 딸들에게 강요하면서 '난 엄마처럼 살지 않을거야.' 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정말 자식을 잘못 키운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 녀석들에게는 최고의 욕이라 할 수 있는 '너도 너랑 똑같은 딸을 나아서 고생해봐라.'라고 한번씩 되받아 주어야 화를 풀릴 때도 있지만 사랑이 없다면 서로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할 수 없는 말들이기도 하다.어쩌면 관심이 지나치고 사랑이 지나쳐서인지도 모른다. 때론 방목을 하듯 내버려 두어도 좋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새벽어둠을 가르며 순레자들이 길을 나선다. 우리도 마치 영화처럼 그들과 함께 길 속으로 사라 진다. 모두들 얼마간 걷다가는 같은 속에서 아침을 먹고 점심거리를 산다. 초보자인 우리도 그들을 따라 한다. 마치 익숙한 습관인 것처럼 자연스럽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모두들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다. 서로 배려하고 서로 돕는다. 이 길을 같이 걷는 사람들의 영혼이 느껴진다. 소중하다.' 함께 걸으면서 지금의 시간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서로에게서 배우게 되고 그렇게 순례자 아닌 순례자가 되어 인생의 무게를 점점 줄여가는 사람들, 그 길에는 그들이 내려 놓고 간 인생의 무게가 또 다른 순례자들에게 빛이 되고 희망이 되어 자라고 있는 것 같다.그 길에서 소중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인생의 무게란,아니 인생에 정말 소금처럼 필요한 것은 얼마나 될까? 꼭 필요하다도 느꼈던 것들을 점점 버리듯이 자신안에 자리하고 있던 아집을 하나 하나 버리어 가볍게 만드는 마법이 그 길 어딘가에 숨어 있는것 같다. 그리고 현실에 감사하고 모두에 감사하고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자신감을 얻게 해 주는 '카미노 데 산티아고' 엄마는 엄마로 딸을 딸로 그렇게 자신들의 자리에 돌아오게 해 준 걷기여행, 나도 떠나고 싶다.'길은 자욱한 안개로 가시거리가 20미터 내외다. 안개가 걷히기를 바라며 바로 앞만 보며 걷는 길이 계속된다. '엄마,길이 보이지 않으니 걷는다는 생각이 안 들어. 그래서인지 힘이 안 드는 것 같아.'...'다행이네. 때로는 멀리 있는 목표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 그럴 때는 오늘처럼 앞만 바라보며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아.' 풀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미스터리한 딸과 엄마의 관계, 그 길에서는 그리고 그 길 끝에서도 'No probl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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