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저장하다

 

 

 

어제 잠깐 외출을 했다 돌아오는 길에도 단풍이 너무 곱게 든 나뭇잎을 몇 장 따서 가지고 왔다.

그리곤 읽던 책에 끼워 두었는데 오늘도 잠깐 집앞 은행에 나가는 길, 아파트 산책길로 해서

일부러 단풍과 낙엽을 즐기며 갔다. 그 짧은 시간이지만 요즘 병원생활 이후로 외출 또한

맘대로 못하고 있으니 이런 짧은 시간의 산책마져도 내겐 호사처럼 느껴진다.

 

요즘 며칠 박완서님의 책을 읽고 있는데 책마다 '가을을 저장'해 두었으니

다음에 누가 읽게 된다면 아마도 반갑게 이 낙엽을 찾게 되지 않을까.

예전에는 낙엽이나 꽃을 따서 책 사이에 많이 끼워 두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줄어 들다가

나이가 들어가니 다시 소녀적 그 감성으로,시간으로 돌아간듯 내가 또 이렇게 하고 있다.

아마도 이 시간이 지나고나면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이 아쉬워서일까..

올해의 가을은 더욱 아쉽고 안타깝고..나가서 즐기지 못하니 더욱 슬픈 가을이다.

빨리 훌훌 털고 일어나 나가고 싶은데 맘처럼 쉽지 않으니...

 

시월은 병원생활 이후로 정말 시간이 빨리 가고 말았다.

병원에 들어갈 때는 푸르던 가로수들이 퇴원하느라보니 빨갛고 노랗게 물들어 있다.

며칠 사이에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듯 뭉텅 잘려나가고 말았다.그래서일까 시월이 더욱 빨리

지나가고 말았다.벌써 말일이 다가오고 있고 딸들 수능도 십여일 앞으로 다가오고 말았다.

주말에 막내가 정기외출을 하였는데 수능에 대한 이야기만 했다. 그날 어떻게 해야하는지

그리고 챙겨가야할 것들을 미리 챙겨가기도 했는데 걱정이다. 두녀석이라.

정해 놓은 시간은 빨리 다가오고 미련없이 최선을 노력을 다 했는지...

노력한만큼 최선을 다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모두들 말이다.

올해 단풍이 무척이나 곱다는데 나 스스로도 그리고 딸들 때문에도 제대로 즐기지 못할 듯..

하지만 그 열매는 누구보다 달것이라고 생각한다...아자 아자...

 

2012.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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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양장) - 성년의 나날들 소설로 그린 자화상 2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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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 살아 생전에도 우리들 앉혀 놓고 하시는 말씀중에 제일 많은 것은 당신이 겪으신 고난의 시간,한국전쟁과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아프시던 일찍 가셨던 그 어려웠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는 잊지도 않고 몇 번을 하셔도 꼭 같은 말씀이지만 어쩜 그렇게 재생을 잘해시는지.그런 아버지의 말씀을 엄마는 옆에서 지겹다며 자식들에게 그런말해서 무엇하냐고 했지만 난 듣기 좋았다.물론 그 모든 말씀이 내가 겪지 못한,할아버지나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호기심에 대한 것도 있지만 아버지가 고난의 시간을 거쳐 지금 우리와 함께 하고 있음이 거져 얻어진 시간들이 아니라는 것을 소설을 읽듯이 옆에서 가만히 앉아 잘 들었던 기억이 있다. 우리는 자신이 힘든 기억은 잊을래야 더욱 잊을수가 없다.그것이 개인사이기도 하지만 역사의 소용돌이와 함께 51하는 것이라면 더욱 기억되고 기록되어 더 많은 이가 나눈다고 해도 흠이 되기 보다는 더 생생이 그 시대를 이해하고 기억하는 기록이 되지 않을까,그런면에서 전작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를 단숨에 읽고 이 책을 망설임없이 집어 들게 되었다.

 

전작은 스무살까지의 기억에 대한 기록이라면 이 소설은 한국전쟁부터 53년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개인사와 맞물려 힘겹게 돌아가던 한국사와 함께 하여 생생함은 물론 그 시대를 좀더 깊숙히 안으로 들어가 혼란의 시대를 이겨냈던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박적골의 유년시절에는  겉껍질만이라도 양반이었던 할아버지와의 기억으로 인해 풍족하고 아버지를 일찍 여읜 설움보다는 할아버지를 기둥으로 박적골이 좀더 풍성하게 그려졌다면 이 소설은 할아버지에서 장손인 '오빠' 로 정신적이 지주가 옮겨짐으로 인하여 모든 것을 오빠로 인해 보여지던 세상이 오빠가 인민군에 끌려가 도망쳐 오게 되고 시민증을 얻지 못해 다니던 학교에서 도민증을 얻으러 갔다가 함께 숙직질에 있었던 군인이 쏜 오발탄에 다리에 맞게 되면서 기울어 가는 오빠와 그런 오빠로 인해 피난을 가지 못해 서울에 와서 처음 뿌리를 내리게 되었던 현저동 집에서의 피난생활,집 앞에 있던 마르지 않던 우물이며 빈집털이를 하여 근근히 이어가던 생활및 어쩔 수 없이 인민위원회에 나가야만 했던 오점의 시간들및 월북을 종용당하고 올케와 어린 조카와 함께 북으로 향하며 마주하는 피난민으로의 생활을 생생히 담아 놓았다.

 

오빠의 다리에 총알이 박히고 팔개월의 삶은 저자의 정신적 지주였던 '오빠'라는 영혼이 서서히 스러져가듯 그렇게 곁에서 점점 빈쭉정이처럼 매말라 간다. 변변한 약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먹는것 또한 부실했으니 환자가 그만한 세월을 이겨냈다는 것도 참 대단한 일인듯 한데 환자와 함께 그 시간을 함께 하고 소리소문없이 오빠의 죽음을 덮어야만 했던 오열의 시간은 그녀를 갑자기 한 집안의 가장이라는 위치로 우뚝 서게 한다. 어린 조카들을 위해서도 한집안의 가장으로 나서야 했던 스무살, 인민위원회에서 만난 인연으로 근처에 살던 언니의 도움으로 들어가게 되었던 피엑스에서의 생활은 이미 작품 <나목>으로도 만났던 이야기지만 그 세세함을 다시 소설을 통해 들여다 보게 되니 먹먹하게 되기도 하고 남편을 일찍 사별하고 하나뿐인 아들에게 기대었던 엄마의 모든 것이 저자에게로 향하는 엄마와 딸의 애증의 시간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올케 또한 든든한 생활꾼으로 일어서는 오뚝이 같은 삶을 통해 혼란의 시간들이 잘 표현되어 있어 그 시간속을 잠시 여행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현저동 피난생활을 이어나가게 해 주었던 집 앞에 있던 겨울에도 마르지 않고 흘러 나오던 우물과 빈집에 남겨져 있던 먹거리와 힘든 세월이지만 동토에도 봄이 오듯 피어나던 하얀 목련, '미쳤어' 라고 밖에 뱉어낼 수 없었던 계절의 만남은 동토에도 봄이 오듯 피난민의 삶에도 한반도에도 봄이 올 수 있을까? 라고 되묻고 있는 듯,아니 희망은 꼭 올것이라는 믿음을 가져다 주기도 했지만 더불어 그동안 기대왔던 오빠의 죽음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집안의 가장으로 생활전선에 뛰어 들어 생계유지를 위해 자신에게 맞지 않은 옷인듯 해도 그 생활에 길들여지며 돈을 벌어야 했고 어머니는 그동안 등지고 있던 집안의 대소사를 떠안게 되시고 올케 또한 든든한 버팀목으로 당찬 생활꾼으로 이어나가는 여인들의 삶에서 전쟁의 무서움보다는 배고픔의 서러움에서 벗어나려는 삶과 그 속에서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저자의 모습을 통해 저자의 이십대를 통해 더 나아가 소설가로서의 삶 또한 살짝 엿보는 기회를 만나볼 수 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이 작품 속에 이어지는 '어머니'의 삶을 통해 그녀의 소설가로서 맥을 이어준 것은 '어머니'가 아니었을까? 물론 파란만장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을 헤쳐나온 저저의 삶 또한 소설의 좋은 소재가 되었겠지만 그녀사 소설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게 해 준것은 '어머니'의 존재인듯 하다. 어머니의 존재가 아니었다면 소설가 박완서가 있었을까? 어머니와 그녀의 관계는 애증의 관계이면서도 억척스럽게 힘든 세월을 이겨낸 어머니의 삶을 통해 그녀 또한 세월과 역사를 보는 눈이 달라진 듯 하다. 홀로 누구보다 억척스럽게 자식들에게 신문학을 공부시키며 '자존심'으러 버티어낸 어머니,자신이 힘든 시간을 이야기로 풀어내면 고난한 시간을 잊으려 했던 그 모든 시간들이 서서히 저자에게는 영양분으로 자리하지 않았을까. 현저동의 마르지 않던 우물과 같은 분이 '어머니' 이기도 하면서 동토의 땅에서 맞 본 '미쳤어' 라는 백목련의 개화는 '소설가로서의 저자의 삶'에 비유하고 싶다.

 

꾸며낸 이야기가 사실적이라 믿고 싶은 소설도 있지만 자신의 생생한 이야기가 이처럼 소설로 재탄생하였으니 믿고 싶지 않아도 한 조각 한 조각 이어진 이야기가 멋진 조각보로 다시 태어난것처럼 저자의 소설들은 읽음과 동시에 믿음이 가는 생생함이라 더욱 편안하고 그녀의 마르지 않는 '우물'에 더 기대고 싶은가보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 또한 오래전에는 모두가 '산' 이었다. 하지만 오래전에는 산동네라고 부르던 곳은 지금은 산은 온데간데 없고 새로운 도시로 탈바꿈하여 제일의 동네가 되었다. 이곳이 산동네라는 것은 아파트 바로 곁에 있는 작은 동산이 말해주고 있다. 그 또한 좀더 큰 산으로 이어져 있었지만 얼마전에 모두를 허물어 내고 일부분만 남겨져 있다. 지금의 동산을 보는 사람들은 오래전 그 형상을 기억하지 못한다. 이곳이 '산'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대부분 힘들거나 어려웠던 시절을 더 빨리 잊고 싶어한다. 자신에게 좋은 기억과 행복한 것만 기억하려 하는데 기억이란 것은 그렇지 않다. 나쁜 것일수록 더 오래 더 많이 기억해낸다. 세 잎의 행복 속에 네 잎의 '행운' 이 숨겨져 있듯이 우리네 기억 또한 힘들고 불행이라고 생각하는 것 속에 행복이 있다는 것을 잊으려 한다. 어쩌면 그런 우리의 기억의 편린을 조각 조각 이어준 '조각보'와 같은 저자의 소설들이 있어 참 다행이고 그런 역사의 날실이 있었기에 그녀의 개인사와 병합한 씨실과 함께 멋진 소설로 탄생할 수 있지 않았을까.

 

저자의 불행한 개인사만 놓여 있는 소설이었다면 참 밋밋하고 재미없었을 것이다. 분명 고난의 시간이었지만 한국전쟁이라는 큰 획이 있어 그녀의 개인사와 씨줄과 날줄로 만나 그녀의 삶과 역사를 탈바꿈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할아버지 이후로 기대었던 오빠의 삶,'오빠도 살아 돌아온 게 아니라 그때 무참히 죽은 것이다. 지금 아랫목에 누워 있는 건 오빠의 허깨비일 뿐 진정한 그는 아니다.' 오빠의 삶이 그러하지 않았다면 어머니와 저자 또한 중심을 자신에게 놓을 수 있었을까. '세상만 자반 뒤집기를 안 하면 사람들은 어떻게든 적응하고 먹고살게 돼있었다.' 오빠의 죽음으로 인해 더이상 미성년자가 아닌 이젠 한가정을 책임질 의무를 짊어진 일꾼으로 그리고 자신을 중심에 놓게 된 삶을 통해 고난의 시간 속에서 활짝 피어나는 백목련처럼 자신의 고난의 개인사를 솔직하게 끄집어내어 '백목련'처럼 활짝 피게 한다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했을 터인데 멋진 작품으로 기록되어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이 참 행운이라 여겨진다. 이 기회에 저자의 다른 작품들을 좀더 만나는 기회를 만들어봐야 할 듯 하다. 소설속의 '어머니'도 저자의 삶도 좀더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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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양장) - 유년의 기억 소설로 그린 자화상 1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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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현듯 싱아 생각이 났다. 우리 시골에선 싱아도 달개비만큼이나 흔한 풀이었다. 산기슭이나 길가 아무 데나 있었다. 그 줄기에는 마디가 있고,찔레꽃 필 무렵 줄기가 가장 살이 오르고 연했다. 발그르슴한 줄기를 꺾어서 겉껍질을 길이로 벗녀 내고 속살을 먹으면 새콤달콤했다. 입 안에 군친이 돌게 신맛이,아카시아꽃으로 상한 비위를 가라앉히는 데는 그만일 것 같았다.' 요즘 아이들은 '싱아'를 알까? 내가 어릴 때는 위의 글에 나오듯이 정말 흔한 풀이었고 간식처럼 뚝뚝 꺾어서 껍질을 벗기고 새콤한 것을 잘도 먹었다. 그때에는 찔레순도 연하게 나오는 철이라 찔레순도 꺾어서 겉껍질을 멋기고 연한 부분을 먹었다. 싱아도 찔레순도 아카시아꽃도 그때의 아이들에게는 간식거리나 마찬가지였고 그때는 흔하디 흔한 풀이었지만 지금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을 보면 그만큼 먹거리가 좋아지고 다양해졌다는 것일 것이다.

 

작가의 맹자의 어머니보다 더한 강한 모성을 소설속에 담아낸 부분을 <나목>에서도 읽었다. 물론 오빠에 대한 이야기도,고난한 지난 삶도 소설속에 고스란히 녹아나 그때의 시대와 실상을 여실히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은 그녀가 개풍 박절골에서의 어린시절과 아들의 공부를 위하여 장손이며 맏이지만 서울행을 강행하여 홀로 삯바느질을 하여 강건하게 아들 공부를 시키고 더불어 딸인 그녀까지 신학문을 공부하게 하는 어머니의 강단진 모습과 여리고 섬세하면서도 집안의 들보노릇을 하는 오빠에 대한 기억과 그 주변인처럼 모든 것을 바라보고 '고발'하듯 담아내는 저자의 모습을 60년대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그때까지 담아낸 소설이다.

 

'이런 글을 소설이라고 불러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순전히 기억력에만 의지해서 써 보았다.'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듯이 혹은 자서전을 쓰듯이 써낸 글이라 저자는 '소설이라 할 수 있을까?'했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냈기 때문에 더 사실적이고 진솔하고 꾸밈없는 글과 현실이 잘 담겨져 있어 어느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한 것 같다. 누구의 인생을 들여다보던 한편의 드라마이고 한 편의 대하소설이겠지만 시대가 시대이고 그녀처럼 또렷하게 '기억'해 내고 '사실적'으로 담아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읽으면서 '어쩜'하고 깜짝 깜짝 놀라며 내 유년의 기억을 떠올려 보지만 그 모든 것들이 생생하게 기억나기란 힘든 일이다. 그런면에서 박적골에서 아버지를 세 살에 여의어 할아버지를 혹은 아버지처럼도 여기면서 생활하는 적나라한 모습들은 내 어린시절과도 겹쳐 보지만 그런 생생함은 간혹인데 너무 사실적이라 그녀가 풀어내는 '자화상'이 아니라 한 편의 다큐를 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실감나서 빠져들며 읽게 된다.

 

저자의 삶을 유지해 준것은 누구보다 생활력이 강하고 어느 아버지보다도 더 강건한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 밑에서 때론 아버지로 때론 아들로 오빠로 가장의 삶과 현실적 사상 속에서 우왕좌왕 하던 '오빠' 가 아니었나. 그녀의 어머니의 삶은 그야말로 '맹모삼천지교'보다 더한 삶인듯 하다. 자식들을 위하여 아니 집안의 기둥인 '아들'을 위하여 해마다 이사를 밥먹듯 해도 힘들이지 않고 하는가하면 삯바느질로 힘겨워도 꾹 참아내며 집장만까지 하는 강인함,한국의 어머니의 모성애와 강인함을 함께 보는 듯 하다. 그런 어머니를 보아오며 자랐으니 그녀 또한 자신도 모르게 어머니를 닮아가는 강인함으로 성장하지 않았을까? 딸들은 자신의 '엄마'를 거울로 삼아 닮고 싶지 않지만 닮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나이가 들어서 보게 된다.

 

'아니 계집애가 집안 망신을 시켜도 분수가 있지,무슨 흉내를 못내 하필이면 덕물산 무당의 작두춤 흉내를 내느냐?'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박적골에서의 유년의 삶이 끝나는가 했는데 그래도 여름방학마다 박적골의 냄새를 잊지 않고 찾아 고향의 푸근함에 훔뻑 취하기도 했던 따뜻했던 시절을 점점 서울깍쟁이처럼 서울생활에 물들어 가고 영혼의 지주와도 같은 오빠의 삶을 통해 좀더 강단진 자신으로 변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자신과 함께 한 기억들을 사진의 필름에 담아 놓듯 정확하게 담아 놓아 훗날 '소설'속에 그대로 담아 내는 노력을 기울였으니 참으로 대단하고 그 노력에 감사할 따름이다. 혼란의 시기를 살아 온 사람들의 '증언'과도 같은 작품들을 읽다보면 우린 너무 쉽게 고난의 시절을 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후손들에게 물려줄 정당한 '기록'을 남겨 놓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게도 된다.

 

오빠의 삶은 왠지 모르게 뭉크의 '절규'를 보는 느낌이다. 어딘지 모르게 그를 따라 다니는 죽음의 그림자가 어딘가에서 그를 노려 보고 있는듯 하지만 '유년의 기억'속에 나오는 저자의 삶은 길가에 흔하디 흔했던 싱아와 같은 잡초의 삶처럼 어디에서도 잘 견디고 생명력을 이어나갈 수 있을만큼의 강인한 힘을 얻고 있는듯 하고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세세하게 잡아내는 '매의 눈'과 같은 날카로움을 어린시절부터 간직하고 그 기억력을 잡아 준 것은 '어머니'의 이야기의 힘과 어머니가 오빠에게로 향하는 대신 그녀를 방치해두듯 했던 시간,그 시간에 만날 수 있었던 책인 고전의 힘이 아니었나 한다. 그녀가 풀어내는 이야기의 힘도 재밌게 빠져들 수 있지만 무엇보다 그녀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책'을 따라 가게 되었다. 힘든 시간을 이겨내게 해준 책의 힘이 무엇보다 저자를 오늘날 우리곁에 있게 해 준듯 하고 저자를 외롭지 않고 잘 이겨내게 만들어주지 않았을까. 자신의 유년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자신이 놓치고 보지 못했던 부분도 볼 수 있고 자신을 또한 개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가져본다. 정말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아니 다 어디로 갔을까? '당신의 유년의 기억은 다 어디에 있느뇨?' 묻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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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전능한 할머니가 죽었다
가브리엘 루아 지음, 이소영 옮김 / 이덴슬리벨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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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친할머니와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사진도 없다. 너무 젊어서,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가신분들이 더욱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정이 그리웠는데 어려서 큰댁 할아버지 수염을 잡고 무릎에서 논 것은 다름 아닌 나였고 외할아버지의 그 많은 손주들을 제치고 늘 일순위 귀여움의 대상은 나였다. 그렇게 하여 어린시절은 외할아버지와 큰댁의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들이 가득하다. 외할머니 또한 내가 어린시절에 일찍 가셨기에 할머니에 대한 남드른 정이 없다.하지만 외할아버지는 틈만나면 내가 보고 싶다고 기별을 하여 늘 난 외할아버지와 함께 하듯이 외갓댁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할아버지와 함께 한 추억이 많다. 할아버지는 늘 날 데리고 동네를 다니거나 천렵을 나가기도 하고 조개를 잡으로 가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과일나무를 주변에 심어 늘 내 입을 심심하지 않게 하기도 했지만 유실수가 열매를 맺을만하면 내가 보고 싶다고 하여 외가로 향하곤 했다. 할머니가 안 계신 집이었지만 할아버지가 음식을 잘하셔서 별 무리없이 지내기도 했고 엄마와 함께 가기도 했으니 외가가 친가이상으로 가깝고 내 어린시절은 외할아버지의 모든 것으로 담겨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외할아버지야말로 '전지전능' 하셨다. 못하시는것 없이 모든 것을 잘하셨고 만들기도 잘하셨고 정말 내가 말만 하면 도깨비방망이처럼 뚝딱 나왔다. 그런 추억을 만들어준 외할아버지가 뒤돌아 보면 참 고맙다.

 

저자의 다른 책인 <데샹보 거리>를 읽었는데 그 책 역시나 잔잔한 일상과 그 속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잔잔한 여운을 주는 작가다. 그 이야기 속에서도 할머니와의 이야기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을 하는데 이 책엔 네 편의 이야기중에 할머니 이웃할아버지 이삿짐센터를 하는 친구네 그리고 엄마와 함께 하는 '여행'과 관한 글이다. 하지만 그 여행속에는 '삶'이 있고 인생이 있다. 인생이란 삶과 죽음이 공생하고 있으면서 과거 젊은시절에 간직하고 있는 '여행'에 관한 것은 이상향처럼 왠지 모르게 설레이고 안개속 모호한 무지개처럼 손에 잡힐듯 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그런 것이지만 점점 성장을 하면서 과거와 현재의 여행은 다르게 작용을 한다. 우리가 어린시절에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뒷동산은 무척 크게 보이지만 나이가 들어가 가보면 보잘것 없듯이 어쩌면 현실을 보게 된다. 하지만 그 현실마져 크리스틴의 엄마는 결혼과 육아로 인해 뿌리를 내리게 되면서 그 모든 것들을 잊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 크리스틴과 함께 여행을 하게 되고 꿈속의 이상향과 같은 곳을 쉽게 가게 되지만 현실이 보이게 된다. 안주한 자신의 현실이 안전해 보이고 자신이 그렇게 잔소리를 했던 자신의 '엄마'인 크리스틴의 할머니를 닮아가고 있는 현실,삶이란 그런것인가.

 

크리스틴은 어려서 할머니가 오라는 말에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할머니와 이야기가 잘 통하는 것도 아니고 그곳에 가면 재밌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그녀만의 '인형'을 만들어 주게 되면서 할머니의 삶은 다시 보게 되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 자신의 집으로 오게 된 할머니를 이젠 그녀가 보듬어주고 있다. 한순간 그녀에게 '전지전능한 분'과 같았던 할머니가 가시고 그 무료함을 이웃집 할아버지가 채워준다. 상상력이 풍부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그러다 할아버지의 제안인 ' 위니펙 호수로의 여행'에서 그녀는 더 넓고 값진 시간을 만나게 되지만 할아버지는 기억속의 위니펙 호수가 아니다. 호수는 변하지 않았겠지만 사람들은 변했다. 그래도 이웃집 할아버지 덕분에 엄마처럼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평생 한번도 위니펙 호수를 구경하지 못할뻔 했는데 다행히 할아버지와 함께 하게 되었다.인생도 어쩌면 '여행'과 같은 것이다. 떠나기전에는 설레이고 많은 것을 기대하게 되지만 막상 여행지에 가고 나면 실망하게 될 수도 있고 생각과는 전혀 다른 시간과 만나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웃 친구인 이삿짐을 옮겨주는 아빠를 둔 친구를 따라 마차를 타고 이삿짐과 함께 여행을 하게 되지만 자신이 상상한 것과 다른,엄마가 들려준 이사 가는 날에 본 풍경과는 다른 실망만 안고 오게 된다.

 

그리고 성장하여 이제는 엄마의 곁을 떠나 홀로 프랑스로 글쓰기를 위해 여행을 떠나는 크리스틴,엄마야 부모니 당연히 그녀가 걱정된다. 엄마처럼 못박혀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세상 다른 곳으로 떠나 '글쓰기'를 위해 여행을 한다는 것을 엄마는 받아 들이기가 힘이 들지만 시간이 흐르고 세월은 변했다. 그녀 크리스틴도 성장을 했고 엄마도 이젠 할머니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삶이란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듯 하면서도 비슷비슷한 길을 걷는 여행과 같은 것인지.<데샹보 거리>와는 다르면서도 이 소설 또한 화려하거나 꾸미지 않은 잔잔함 속에 인생을 반추하게 된다. 삶이란 무엇일까? 아이에서 소녀가 되고 숙녀가 되고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고 일련의 시간들 속에 정지한 듯 하면서도 인생을 여행하듯이 변해가는 시간들.그 시간들 속에서는 삶도 있지만 분명 '전지전능한 할머니'가 죽듯이 '죽음'이란 것도 있다.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돈을 많이 가졌다고 해도 자식들로부터 소외당하며 홀로 외롭게 살아갈 수 있을수도 있고 엄마처럼 '역마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뿌리'를 내리고 한 곳에 정착하여 움직임없이 살아갈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다. 하지만 분명히 시간은 변하고 있다. 과거에 보았던 멋진 풍경을 간직한 언덕이 보잘것 없는 둔덕으로 보일정도로 시간은 변해가고 있다.

 

삶의 엉킨 실타래를 풀어 나가듯,인생이 무엇인가 하고 실타래를 풀어 나가듯 할머니의 삶,할아버지의 삶,이웃집 아저씨의 불만섞인 삶,엄마의 삶 그리고 내 삶을 통해 그녀는 분명 변하여 갔고 그들과는 무언가 다른 삶을 살고자 자신이 간직한 꿈을 실천에 옮기는 그녀, 그렇게 하여 얻는 것보다 걱정거리가 많은 줄 알았던 엄마에게 과연 그녀가 선택한 삶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글로 보여주는 크리스틴의 삶에서 진정한 삶이란 무엇인가? 라고 묻고 있는 듯 하다. 평범한 일상,평범한 삶 속에서 좀더 큰 울타리를 보게 만드는 그녀의 소설들은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든다. <데샹보 거리>를 읽었고 <내 생애의 아이들>은 가지고 있지만 아직 읽지를 않았다. 이 책 역시나 <데샹보 거리>를 읽고 구매를 해 놓았는데 잊었다가 이 책을 받아 들고는 이 작가를 만난듯 하여 작가소개를 읽다가 책을 밀쳐놓지 못하고 읽게 되었다. 역시나 많은 것을 기대하고 읽기 보다는 그녀의 글을 좋아한다면 빠져들어 읽게 될 책이다. 진정한 삶,인생이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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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베란다,제라늄도 피고 사랑초도 피고

 

 

제라늄

 

제라늄은 늘 꽃을 보여주어서 정말 이쁜 녀석이고

삽목으로 개체를 쉽게 늘릴 수 있기도 하지만 수정하여 씨를 얻어서 심을 수도 있어

다시금 키우는 재미에 빠졌다. 오래전 빨간 제라늄을 십여년을 넘게 이쁘게 키우다 지겨워서

그냥 죽게 만들었는데 왜 그랬을까?.... 이렇게 이쁜데...

창가에서 하나 둘 피어나는 제라늄을 보면 정말 이쁘다. 이녀석이 안방베란다 창가에서는

삽목도 잘 되고 잘 크는데 거실 베란다의 티테이블 위에서는 햇볕에 너무 성장을 하여 밉게

크고 있다.종이 워낙에 그런 것인지..

암튼 여름에 빨간 제라늄을 하나 다시 들였는데 꽃이 피고 있어 이쁘다.

 

 

커피나무

 

여름에 다00에 갔다가 발견한 <커피나무> 주워 온 화분에 옮겨 심어 놓고

일주일에 서너번 물을 주었더니 화분 흙에서 <제브라페페>하나 싹이 터서 자라고 있는 것이다.

이뻐서 잘 키워봐야겠다 하고는 병원에 들어갔는데 옆지기가 이 커피나무에 물을 너무 많이

주어서 제브라페페는 운명하셨고 커피나무도 큰일날뻔..내가 하루 물을 따라서 다른 화분에

주었더니 다행인지 누런 잎이 지더니 새 순이 돋아 나고 있다.

커피나무는 꽃이 하얀색으로 쟈스민 꽃과 비슷하다고 하는데 물관리를 잘하며 잘 키워봐야 할 듯.

또 아는가 이 나무에서 커피콩을 따서 커피를 끓여 먹게 될지..ㅋㅋ

 

행운목

 

올해는 행운목들이 아직까지 잠잠하다. 작년에는 요맘때 꽃대가 나오고

큰딸이 수능을 보는 날에 꽃이 활짝 피었는데 말이다.. 이녀석은 분갈이를 하여 한동안 몸살을

앓느라 성장을 멈추고 있더니만 여름부터 갑자기 잎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이렇게 튼튼해졌다.

나람다 아래 위로 물을 주면서 잎이 나오는 부분을 보고 있다.혹시나 첫 꽃대를 올리는 것은

아닐까 하고..더불어 딸들 시험도 코 앞으로 다가왔으니 이녀석들이 활동을 해 주어야 하는데

아직 소식이 없으니 날마다 행운목에 도장을 찍고 있는 나....

 

부겐베리아

 

부겐베리아에서 새순이 나오길래 베란다 커튼봉을 타고 올라가라고 다른 가지에 걸쳐 놓았더니

이녀석 내가 병원에 있는 사이 꽃을 피웠다가 졌는데 오늘 보니 끝부분에서 또 꽃이 나오고 있다.

그것이 천정 부분이라 관심밖으로 밀려나 있어서 못 보았던...

가시가 있고 줄기가 잘 부러져서 조금 예민한 구석이 있어 다루기가 힘들기도 한데

이렇게 꽃을 보여줄때는 이쁘다. 모든 꽃은 이쁘다는...

 

 

 삽목한 바이올렛~

 

삽목해 놓은 바이올렛에서 새로운 잎들이 올망졸망 나오고 있다.

아니 꼬물꼬물 나온다고 해야 하나. 암튼 녀석들은 이렇게 나와서 새로운 객체로 자리를 한다.

잎을 하나 따서 꽂아 놓으면 새로운 개체로 자라는 바이올렛,

바이올렛을 그만 키우고 제라늄으로 바꾸려고 했는데 이녀석 오랜시간 동안 키워왔기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또 다시 삽목, 포트마다 이렇게 꼬물꼬물 올라오고 있다.

성장한 것들은 꽃대를 열심히 올리고 있는 것도 있고 꽃이 활짝인것도 있고..

암튼 바이올렛이 피면  집안이 다 화사하다~~

 

 

팔손이

 

팔손이가 봄이나 되야 새순이 터지는데 올해는 창가로 옮겨 놓았더니

요즘 햇살이 따듯해서인지 새순이 터져 나오고 있다.. 녀석..

그리고 밑에는 언제 이렇게 키웠는지 모르게 새끼가 튼실하게 올라오고 있다..

화분이 아닌 땅에서 키웠거나 영양분이 충분했다면 엄청 컸을 팔손인데

화분도 그리 크지 않고 영양분도 고르지 않아 더디게 자라고 있는 듯 하다.

그래도 새끼가 나오니 좀더 풍성한 팔손이가 된 듯 하여 기대된다.

 

 누군가 아파트 화단에 <알로카시에>를 버렸다.

키우다 미워서 버린듯 한데 그것이 작은 것으로

서너개가 그냥 방치된 채 있었다. 가져다 키울까 말까

하다보니 두개가 죽고 하나가 남아서 그래도 며칠을

강하게 살아가고 있어 녀석을 데려다가 울집 빈 화분에

심어 놓은 것인데 이녀석 <율마>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고 있지만 분명 잘 자라고 있다.

거기에 얼마전에는 새끼가 자라고 있다.

화분 속에서는 활발한 생명력과 강한 생명력이 함께

공존하고 있었나보다.

비록 버려졌던 것이지만 울집에서는 한자리 차지하고

있으니 잘 자라길...

 

 

 

 

 

 

 

사랑초

 

늘 변함없이 잎을 올리고 꽃을 보여주고 있는 사랑초,

이녀석도 울집에 올 때는 그리 좋은 상태가 아니었고 겨우 한뿌리였는데

지금은 화분이 벌써 몇 개로 늘어났는지 모른다. 뿌리를 나누어 심어도 되고

잎을 따서 심는 삽목으로 개체를 늘릴 수 있는 사랑초는 꽃이 여린듯 하면서도 참 이쁘다.

사랑초를 부부금슬에 비유하는데 사랑초가 잘되고 꽃이 잘 피면 금슬이 좋다는데

울집은 금슬보다는 다른 것들이 잘자라고 있으니 이녀석도 더불어 잘 자라고 있는듯.

아파트 화단에 누군가 버린 화분흙 속에서 사랑초가 몇 개 돋아 있길래

포트에 옮겨 심어 놓은 것에서도 잎도 무성하게 나오고 꽃대가 올라오고 있다.

식물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정말 이쁘게 키울 수 있는데 화단에 갔다 버리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난 덕분에 덤으로 얻는 것이 있으니 좋긴 한데 식물에게는 미안한 일이다.

하지만 울집에서는 버림을 받지 않고 꽃을 피울 수 있으니 더 잘 자라는듯 하다.

오늘도 녀석들을 한바퀴 돌며 소소한 행복을 맛본다.가을햇살이 담뿍 담긴 행복을...

 

2012.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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