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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전능한 할머니가 죽었다
가브리엘 루아 지음, 이소영 옮김 / 이덴슬리벨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내겐 친할머니와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사진도 없다. 너무 젊어서,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가신분들이 더욱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정이 그리웠는데 어려서 큰댁 할아버지 수염을 잡고 무릎에서 논 것은 다름 아닌 나였고 외할아버지의 그 많은 손주들을 제치고 늘 일순위 귀여움의 대상은 나였다. 그렇게 하여 어린시절은 외할아버지와 큰댁의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들이 가득하다. 외할머니 또한 내가 어린시절에 일찍 가셨기에 할머니에 대한 남드른 정이 없다.하지만 외할아버지는 틈만나면 내가 보고 싶다고 기별을 하여 늘 난 외할아버지와 함께 하듯이 외갓댁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할아버지와 함께 한 추억이 많다. 할아버지는 늘 날 데리고 동네를 다니거나 천렵을 나가기도 하고 조개를 잡으로 가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과일나무를 주변에 심어 늘 내 입을 심심하지 않게 하기도 했지만 유실수가 열매를 맺을만하면 내가 보고 싶다고 하여 외가로 향하곤 했다. 할머니가 안 계신 집이었지만 할아버지가 음식을 잘하셔서 별 무리없이 지내기도 했고 엄마와 함께 가기도 했으니 외가가 친가이상으로 가깝고 내 어린시절은 외할아버지의 모든 것으로 담겨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외할아버지야말로 '전지전능' 하셨다. 못하시는것 없이 모든 것을 잘하셨고 만들기도 잘하셨고 정말 내가 말만 하면 도깨비방망이처럼 뚝딱 나왔다. 그런 추억을 만들어준 외할아버지가 뒤돌아 보면 참 고맙다.
저자의 다른 책인 <데샹보 거리>를 읽었는데 그 책 역시나 잔잔한 일상과 그 속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잔잔한 여운을 주는 작가다. 그 이야기 속에서도 할머니와의 이야기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을 하는데 이 책엔 네 편의 이야기중에 할머니 이웃할아버지 이삿짐센터를 하는 친구네 그리고 엄마와 함께 하는 '여행'과 관한 글이다. 하지만 그 여행속에는 '삶'이 있고 인생이 있다. 인생이란 삶과 죽음이 공생하고 있으면서 과거 젊은시절에 간직하고 있는 '여행'에 관한 것은 이상향처럼 왠지 모르게 설레이고 안개속 모호한 무지개처럼 손에 잡힐듯 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그런 것이지만 점점 성장을 하면서 과거와 현재의 여행은 다르게 작용을 한다. 우리가 어린시절에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뒷동산은 무척 크게 보이지만 나이가 들어가 가보면 보잘것 없듯이 어쩌면 현실을 보게 된다. 하지만 그 현실마져 크리스틴의 엄마는 결혼과 육아로 인해 뿌리를 내리게 되면서 그 모든 것들을 잊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 크리스틴과 함께 여행을 하게 되고 꿈속의 이상향과 같은 곳을 쉽게 가게 되지만 현실이 보이게 된다. 안주한 자신의 현실이 안전해 보이고 자신이 그렇게 잔소리를 했던 자신의 '엄마'인 크리스틴의 할머니를 닮아가고 있는 현실,삶이란 그런것인가.
크리스틴은 어려서 할머니가 오라는 말에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할머니와 이야기가 잘 통하는 것도 아니고 그곳에 가면 재밌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그녀만의 '인형'을 만들어 주게 되면서 할머니의 삶은 다시 보게 되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 자신의 집으로 오게 된 할머니를 이젠 그녀가 보듬어주고 있다. 한순간 그녀에게 '전지전능한 분'과 같았던 할머니가 가시고 그 무료함을 이웃집 할아버지가 채워준다. 상상력이 풍부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그러다 할아버지의 제안인 ' 위니펙 호수로의 여행'에서 그녀는 더 넓고 값진 시간을 만나게 되지만 할아버지는 기억속의 위니펙 호수가 아니다. 호수는 변하지 않았겠지만 사람들은 변했다. 그래도 이웃집 할아버지 덕분에 엄마처럼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평생 한번도 위니펙 호수를 구경하지 못할뻔 했는데 다행히 할아버지와 함께 하게 되었다.인생도 어쩌면 '여행'과 같은 것이다. 떠나기전에는 설레이고 많은 것을 기대하게 되지만 막상 여행지에 가고 나면 실망하게 될 수도 있고 생각과는 전혀 다른 시간과 만나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웃 친구인 이삿짐을 옮겨주는 아빠를 둔 친구를 따라 마차를 타고 이삿짐과 함께 여행을 하게 되지만 자신이 상상한 것과 다른,엄마가 들려준 이사 가는 날에 본 풍경과는 다른 실망만 안고 오게 된다.
그리고 성장하여 이제는 엄마의 곁을 떠나 홀로 프랑스로 글쓰기를 위해 여행을 떠나는 크리스틴,엄마야 부모니 당연히 그녀가 걱정된다. 엄마처럼 못박혀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세상 다른 곳으로 떠나 '글쓰기'를 위해 여행을 한다는 것을 엄마는 받아 들이기가 힘이 들지만 시간이 흐르고 세월은 변했다. 그녀 크리스틴도 성장을 했고 엄마도 이젠 할머니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삶이란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듯 하면서도 비슷비슷한 길을 걷는 여행과 같은 것인지.<데샹보 거리>와는 다르면서도 이 소설 또한 화려하거나 꾸미지 않은 잔잔함 속에 인생을 반추하게 된다. 삶이란 무엇일까? 아이에서 소녀가 되고 숙녀가 되고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고 일련의 시간들 속에 정지한 듯 하면서도 인생을 여행하듯이 변해가는 시간들.그 시간들 속에서는 삶도 있지만 분명 '전지전능한 할머니'가 죽듯이 '죽음'이란 것도 있다.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돈을 많이 가졌다고 해도 자식들로부터 소외당하며 홀로 외롭게 살아갈 수 있을수도 있고 엄마처럼 '역마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뿌리'를 내리고 한 곳에 정착하여 움직임없이 살아갈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다. 하지만 분명히 시간은 변하고 있다. 과거에 보았던 멋진 풍경을 간직한 언덕이 보잘것 없는 둔덕으로 보일정도로 시간은 변해가고 있다.
삶의 엉킨 실타래를 풀어 나가듯,인생이 무엇인가 하고 실타래를 풀어 나가듯 할머니의 삶,할아버지의 삶,이웃집 아저씨의 불만섞인 삶,엄마의 삶 그리고 내 삶을 통해 그녀는 분명 변하여 갔고 그들과는 무언가 다른 삶을 살고자 자신이 간직한 꿈을 실천에 옮기는 그녀, 그렇게 하여 얻는 것보다 걱정거리가 많은 줄 알았던 엄마에게 과연 그녀가 선택한 삶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글로 보여주는 크리스틴의 삶에서 진정한 삶이란 무엇인가? 라고 묻고 있는 듯 하다. 평범한 일상,평범한 삶 속에서 좀더 큰 울타리를 보게 만드는 그녀의 소설들은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든다. <데샹보 거리>를 읽었고 <내 생애의 아이들>은 가지고 있지만 아직 읽지를 않았다. 이 책 역시나 <데샹보 거리>를 읽고 구매를 해 놓았는데 잊었다가 이 책을 받아 들고는 이 작가를 만난듯 하여 작가소개를 읽다가 책을 밀쳐놓지 못하고 읽게 되었다. 역시나 많은 것을 기대하고 읽기 보다는 그녀의 글을 좋아한다면 빠져들어 읽게 될 책이다. 진정한 삶,인생이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