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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ㅣ 나폴리 4부작 3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7년 5월
평점 :
자전적인 글을 통해 소설가로서 성공적인 데뷔를 한 레누. 출판사에서 준비한 행사에서 약혼자의 어머니가 소개한 타라타노 교수를 만나게 된다. 교수는 소설 속 해변 장면이 외설적이라는 대중의 평가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방어할 것을 조언한다. 교수는 성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고 이를 바탕으로 과감한 글을 써낸 여성작가들에 대해 말한다. 레누는 교수가 말하는 여성작가들의 이름을 공책에 모두 받아 적었다. 술이
거나하게 취한 교수는 엘리베이터에서 그녀를 껴안고 키스하려고 한다.
당시만 해도 그렇게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나이 든 남자가
그런 부적절한 행동을 할 수 있다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는 내 예비 시어머니의 친한
친구가 아닌가. (79쪽)
남자친구의 누나인 마리아로사의 집에서 하룻밤 머물게 된 레누는 그 날 새벽, 갑작스런 인기척을 느낀다. 그 집에 함께 살고 있는 베네수엘라 출신의
화가, 후앙이다. 레누 곁에서 얌전히 자고 싶다는 후앙. 그런 소설을 썼으니 이런 경험도 네게 도움이 될 거라는 후앙. 단호하게
거절하는 레누를 위선자라고 비웃는 후앙.
대체 왜 토리노에서는 타라타노 교수 그리고 이 집에서는
후앙이 내 몸에 손을 댄 것일까. 나는 대체 그들에게 어떻게 비춰졌고 그들은 내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103쪽)
안락한 삶을 뒤로하고 환희와 열정의 시간마저 빼앗겨버린 릴라는 소시지 공장에서
일한다. 사장 브루노는 뜨거운 그 해 여름의 수줍음을 많이 타던 예전의 그 브루노가 아니다.
우리 공장에서 일하는 여공들은 공장장이나 남자 동료들이
엉덩이를 주물럭대도 찍소리도 못해요. 사장이란 작자가 원하면 그를 따라 숙성고로 가야 하죠. 그의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대부터 그래왔겠죠. 그 자식은 여공의 몸을 덮치기 전에 숙성고에서 나는 햄 냄새가 얼마나 짜릿한지 모른다는
일장 연설까지 늘어놓죠. (160쪽)
사장은 숙성고로 여공들을 불러낸다. 간부들은
여공들의 엉덩이를 주무르고, 공장 수위는 소시지를 훔쳐가는 사람을 찾아야한다며 어린 여공들이 정문을
지나칠 때 빨간 벨을 누른다. 소시지를 찾겠다며 그녀들을 더듬는다.
소설을 쓰는 레누도, 소시지 공장에서
일하는 릴라도, 자신의 몸에 쉽게 손대려는 남자들과 마주한다. 소설을
썼기 때문인가. 여성의 욕망을 드러낸 소설을 썼기 때문인가. 아니면 소시지
공장에서 일하기 때문인가. 돈을 벌기 위해 소시지 공장에서 일해야 하는 처지에 있기 때문인가.
아니면, 검사가 되었기 때문인가. 국가를 위해 일하고자 다짐한 검사가 되었기 때문인가.
소설가는, 소시지 공장 여공은, 그리고 한국의 검사는 자신의 몸을 더듬는 더러운 손과 마주해야 한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숙성고에서 그리고 장례식장에서.
이런 일은 소설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하고 싶은가. 최영미 시인이 말한 ‘괴물’은
‘상상 속에만’ 존재한다고 말하고 싶은가.
우리는 아무 것도 보지 못 하는가.
보고서도 또,
못 본 체 하는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