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에서 내린 참이었다. 나는 소설이 너무 좋아 읽어야겠다 다짐했지만, 일단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에서 내렸다. 오랫동안 백인들이 과학적 실험을 근거로 흑인이 ‘열등하다 주장한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인간이 다른 인간을 이렇게 대할 없다. 인간이 인간에게 있는 일이 아니다.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기 위해 백인들은 지식과 정보, 돈과 재능을 쏟아 부었다. 흑인은 백인보다 열등하다고 말하기 위해. 흑인들의 영혼까지 착취하기 위해. 흑인들에 대한 횡포와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랑스럽고 용감한 주인공 코라를 숨겨주었던 마틴과 에설 부부 이야기 중에, 에설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잠깐 나온다. 



어디 가시는 거예요, 아버지?” 어느날 에설이 물었다. 펠리스(재스민의 엄마) 죽은 2 되던 해였다. 재스민은 열네 살이었다. 

위층에 간다.” 아버지가 말했고, 둘은 야간 방문을 표현할 말이 생기자 이상한 안도감을 경험했다. 그는 위층으로 가고 있었다. (219) 



에설의 아버지는 밤마다 삐걱거리는 계단을 밟으며, 에설의 소꼽친구 재스민의 방으로 간다. 삐걱거리는 계단 소리와 재스민의 비명이 밤마다 들려온다. 에설이 듣는다. 에설의 엄마가 듣는다. , 자기 자신에게서 그리고 그를 둘러싼 세계에서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는 사람은 에설의 아버지 뿐이다. 에설의 어머니도, 에설도, 그리고 불쌍한 흑인 소녀 재스민도 고통받는다. 재스민의 고통과 에설의 고통이 똑같았다고 말하는게 아니다. 다만, 재스민이 에설의 친구이냐 아니냐, 그녀가 백인이냐 흑인이냐의 사실과 상관 없이 재스민의 고통이 에설에게도 전해졌다는 것이고, 에설의 어머니는 다른 형태의 고통을 견뎌야만 했다는 의미다. 만약 재스민의 엄마가 살아있었다면 그녀도 고통 속에 있었을 것이다. 재스민에게 아빠가 있었다면, 오빠가 있었다면, 남동생이 있었다면, 그들 모두 밤마다 재스민의 비명을 들었을 것이고, 모두 괴로웠을 것이다. 사람, 에설의 아버지만 제외하고. 백인 남자, 에설의 아버지만 밤마다 자신의 자유를 과시할 있다. 에설의 아버지에게만 재스민의 비명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이렇게 , 이제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에서 내린 참이다. 새롭게 떠나기 위해 다음 책을 펼친다. 『차이의 정치와 정의』. 희망도서로 신청하고 대출해서 펼쳤더니 이런 구절이 보인다. 247. 



보편적 시민은 또한 백인이고 부르주아이다. 여성만 근대의 시민 공중에 참여하는 것이 배제되어 왔던 것은 아니다. 최근까지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유태인과 노동계급은 시민의 지위를 갖지 못했다. …… 품위 있는 남성은 올곧고, 감정에 좌우되지 않고, 규칙을 준수하는 존재여야 했다. 이런 문화적 이미지에서는 육체적이고, 성적이고, 불확실하며, 무질서한 존재 양상은 여성, 동성애자, 흑인, 인디언, 유태인, 동양인과 동일시되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래 바로 이거야.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명랑하고 활기로 가득찼으나, 서론을 읽어보니 막막한 마음에 다시 247쪽을 펼친다. 이제 내렸는데, 여기가 아닌가 . 다른 역으로 이동 요망. 



여기에 박연선이 있다. 박연선 작가의 대표작이라면 역시나 손예진, 감우성 주연의 <연애시대> 있다. 이혼한 부부의 사랑이야기가 신선하기도 했거니와 주고 받는 대화들이 주옥 같아서, 열혈청취자는 아니었지만, 애잔한 느낌이 남는 드라마였는데, 드라마가 박연선 작가의 작품이었다.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표지에서부터 책의 분위기를 예상케 한다. 왼쪽 츄리닝 입은 처자와 오른쪽 몸빼 할머니는 친족 관계가 분명해 보인다. 밑으로는 여덟 개의 발이 보인다. 발바닥이 보이는 사람들은 누워 있는 분명하고, 그들은 바위 아래 어둠 속에 누워있다. 삼수생 강무순, 홍간난 여사, 종갓집 양자 꽃돌이가 15 아홉모랑이 마을에서 일어났던 ‘4소녀 실종 사건 추적한다. 경산 유씨 종갓집 외동딸을 잃어버린 커다란 대문을 걸어 잠그고 사는 유선희네, 막내딸을 잃어버린 밤마다 산에 올라 여우 울음소리로 외계에 정착한 딸과 대화를 나누는 목사님 사모님 조예은네. 삼거리 허리 병신 아빠에 동네 바보 일영이 누나 황부영네. 그리고 동네 최고의 날라리지만 늦게 얻어 귀한 외동딸을 잃어버린 유미숙네. 나이도 학교도 출신 성분도 다른 명의 소녀가 한꺼번에 사라졌다. 그녀들은 , 어디로 갔을까.


타임캡슐 물건을 통해 추리에 추리를 더해 가며, 하나하나 퍼즐을 맞춰가는 이야기는 군데군데 가감없이 코믹의 진가 보여주고, 지금 죽어가는 이의 자기 고백주마등’ 12꼭지는 스릴러의 축을 잡아준다. 흑백 인종차별 기차에서 이제 내린 나는, 코믹에 방점을 찍고 싶다. 



때를 틈타 나는 꽃돌이를 이리저리 감상했다. 정말이지 공짜로 보기 미안할 정도의 미모다. 

이걸 묻은 전이라구요?”

15 전이란 말에 꽃돌이는 심각해졌다. 생각하느라 그러는지 눈을 내리까는데, 속눈썹이 어찌나 긴지 그늘에서 햇빛도 피하겠다. 따라와요.”

지옥이라도 따라가주마. (70) 



그때부터 한호 얘기만 하길래. 내가 한호한테 얘기해줬어. 선희가 관심 있어 한다구. 그다음부터야, ……. 요새 애들처럼 데이트다 커플이다 그러진 않았어도 편지도 주고받고, 참고서도 추천해주고 그랬을걸.”

전국 학부모연합에서 환영할 만한 그런 이성교제를 했나보다. (128) 



이것들아, 여름방학이라고 싸돌아다닐 생각 말고 공부하란 말이다. 연애하지 말고 공부해. 맥주 마시지 말고 도서관에 말뚝 박어. 자라도 배우고 익히는 전국의 재수생 삼수생에 대한 예의요 책임이란 말이다. 덥다고 놀아도 되는 백수 뿐이야. (203) 



황부영이 꽃돌이를 빤히 쳐다보는데, 냉정한 시선이다. 오기 직전, 불쾌지수 최고인 꿉꿉한 날에 봐도 저절로 미소가 나오는 고운 얼굴을 한참 쏘아보더니 묻는다. (341) 



소설을 재미나게 읽으면서 정지돈의 단편 <창백한 > 생각났다. 이렇게 재미있는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소설이고, 난해한 <창백한 > 소설이고, 『82년생 김지영』 소설이다. 소설은 힘이 세다. 모든 이야기가 가능하다. 소설이라는 속에서 다채로운 재미가 가능하다. 


즐거움을 위한 독서, 쾌락에만 봉무한 독서였다. 

조용한 집을 킥킥대는 소리로 채워버렸던 즐거운 독서 여행이었다. 

이제 내린다. 이번 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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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10-31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더 그라운드 레일로드가 그렇게 좋단 말입니까? 할랬는데, 인용하신 문장을 보니 가슴 아파서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ㅠㅠ

(그래도 일단 땡투하고 담아보기)

단발머리 2017-10-31 11:25   좋아요 0 | URL
일단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는 엄청 좋은 책이지만 여러군데 가슴 아픈 장면이 많아요, 아주. 제가 권해 이 책을 읽은 1인은 무섭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니까 일반적인 의미에서 무섭지는 않은데 장면들이 워낙 긴박하게 펼쳐지니까요.
저의 올해의 책 후보 중 하납니다^^

transient-guest 2017-10-31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애시대는 일본소설이 원작 아닌가요??? 처음 듣는 작가라서 여쭙고 갑니다

단발머리 2017-10-31 11:22   좋아요 0 | URL
네~ 일본소설이 원작 맞네요. 저는 극본:박연선만 확인해서^^:;

레삭매냐 2017-11-01 15: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UGGR 보다 폴 비티의 <배반>이 확실히 읽기
에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맨부커상이라는 광휘에도 울나라에서는 잘
팔리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UGGR 은 확실히 대단한 작품이었습니다.
콜슨 화이트헤드의 다른 작품들도 빨랑 나
왔으면 좋겠습니다.

단발머리 2017-11-01 19:16   좋아요 1 | URL
으흠.... 그렇군요.
전 <배반>을 도전해 보려구요.
비슷한 환경과 배경이 어떻게 다른 식으로 그려질지 기대됩니다.
<노예 12년>도 이번에 이어서 읽어볼까 하는데, 맨날 계획만 앞서고 그럽니다. ㅠㅠ

저도 콜슨 화이트헤드 다른 작품들 기다려집니다.ㅎㅎㅎㅎㅎ

AgalmA 2017-11-01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내리니 폴 비티 <배반>이 도착한ㅎ? 전 둘다 못 봤는데 전자를 읽은 분들은 후자도 꼭 읽으실 듯한ㅎ; 역시나 레삭매냐님도 단발머리님도 그럴 줄 알았음요ㅎ

단발머리 2017-11-07 08:38   좋아요 0 | URL
전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너무 좋았어요. 곧 이어 <배반>으로 이어가볼까 합니다.
레삭매냐님과ㅡ같이ㅡ묶여서 (~~~~도) 기분 좋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