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두를 찾아라
배혜경 지음 / 수필세계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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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라는 말보다 수필집이 더 어울린다,는 서니데이님의 평가는 정말 옳았다. 한 단락, 한 문장, 한 단어를 아껴가며 읽을 때마다 청아하고 시원한 느낌이 가득하다. 아름다운 한국어의 정취에 빠져들라치면 눈 앞에 그려지는 친절한 묘사에 오히려 내가 금방이라도 책 속으로 빨려들어갈 듯 하다. 예를 들면 이렇다.

불꽃같은 순간의 인상은 세월의 바람을 타고 활활 타오른다. 유년의 기억 속에서 할머니가 풀어 헤치고 있던 머리카락과 방바닥에서 사금파리 빛을 쪼개어내던 은비녀가 시간이 갈수록 눈부시다. 정갈하게 빗질하여 은비녀를 질러 놓은 머리도 곱상이었지만 실뱀처럼 남실대는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뒷모습은 내게 잊히지 않는 초상이다. 오래 품어 오던 꿈을 피워내듯 한 송이 백합화로 피어나던 해사한 그 옆얼굴도 또렷하다. (<비녀>, 15)

지방에서 사시다가 자식들과 같이 지내려고 서울로 올라오신 할머니와 서울 딸네집에서 여름을 나기위해 올라오시는 외할머니와 같이 지냈을 때는 내가 대학에 다니던 몇 해 동안이다. 저녁이되 아직 여름의 태양빛과 한낮의 뜨거운 열기가 가시지 않은 저녁 시간, 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보면 할머니 두 분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그 때는 이미 두 분 다 많이 연로하셔서 손쉬운 관리를 위해 짧은 머리를 하고 계셨지만, 내 기억속의 할머니들은 은비녀를 품고 단정하게 쪽진 모습, 바로 책 속의 모습 그대로이다.

나도 그 때쯤에는 열 살이 아니었나 싶다.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그 때의 내가 어땠는지, 장소가 어디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순간의 느낌이 너무 특별해 마음으로만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기억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 할머니 두 분에 대한 기억이, 추억이 되살아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흐릿해져가는 나만의 기억이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경험이어서 나로서는 놀라우면서도 무척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앵두를 찾아라>는 너무 신나는 글이다. 이 책의 표제작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요놈(?)의 귀여운 앵두는 진정한 웰빙족이어서, 밤이면 친구들과 떨어져 고독을 즐기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가벼운 아침운동을 즐긴다. 먹는 것에 매달리지 않고 소식에 만족해 건강하고 날씬한 몸매를 유지한다.(67) 요즘에는 연애에 흠뻑 빠져있다. 진정한 자유인에 다름 아니다.

우리집에 들어오는 모든 물고기들과 안녕하지 않은 안녕을 했던 게으르고 못된 사람으로서 앵두와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프레이야님이 부럽다. 또 한편으로는 앵두가 안녕할 수 있는 건 그들의 밤과 낮까지도 살뜰히 보살피는 그 분의 마음씀씀이 덕분이라는데 생각이 미친다.

앵두를 찾는 즐거운 일상이 프레이야님에게 계속 되시기를, 프레이야님에게 기쁨과 영감을 주는 귀여운 앵두들이 그 분 옆자리에 가득하게 되기를... 앵두 없이 사는 심심한 나는, 소심히 바래본다.

나도 앵두를 찾아야겠다, 나만의 귀여운 앵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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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8 09: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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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8 12: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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