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가장 가까운 영화관의 상영 시간표와는 시간이 맞지 않아 아이들 방학 전 마지막 행사가 불발되려는 순간, 검색의 여왕 H언니가 비교적 가까운 영화관에서도 이 영화를 상영한다는 걸 알아냈다. 사인 받은 시험지를 놓고 가 집으로 돌아온 딸롱이를 학교로 돌려보내고, 눈이 안 떠져 학교에 안 가겠다는 아롱이 손을 끌어 교문 안으로 밀어넣은후, 빛의 속도로 영화관으로 향했다. 상영 시작 5분 전이었다. 조조였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생각보다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가능한 송강호를, 송우석으로 보려고 했다. 어차피 돈 없고, 빽 없고, 가방끈 짧은 변호사. 돈 버는 재미에 푹 빠져, 요트 타던 송우석 변호사는, 송강호가 연기하는 모습으로만 그려질 터였다. 그렇게 하는 게 속이 편할 것 같았다. 영화 보러 같이 갔던 언니들에게 말했다.
"언니, 저, 눈화장은 안 했지만, 울지는 않을 거예요. 렌즈도 꼈고. 아무튼 안 울거예요."
그렇게 하는게, 아무래도 속이 편했다. 노무현 대통령님이 자주 입으셨다는 체크 자켓을 입은 모습으로 화면에 나타난 송강호를, 법정에서 제 정신이 아닌 모습으로 변론하는 송강호를, 하얀 죄수복을 입고 법정에 서 있는 송강호를, 송강호를 노무현 대통령님과 같은 사람으로 생각되는 순간을, 나는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정의로운 방법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증거가 되고 싶다'며 열정적으로 연설하던 그를,
간발의 차로 이회창을 제치고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노란 물결로 가득찬 민주당 당사 앞에서 "지금은 당원분들 한 분, 한 분 손잡고 싶습니다."라고 떨며 말했던 그를,
손녀를 유모차에 태우고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자전거 페달을 돌리던 그를,
'대통령 일 열심히 할 때는 그렇게 욕을 하더니만, 그냥 노니까 사람들이 잘 한다고 하네요."하며 크게 웃던 그를,
수십대의 자동차로도 부족해 헬기까지 동원해 소환되는 장면을 생중계로 보여줘야했던 그를,
'원망하지 말라'며 그렇게 떠나간 그를,
그의 모습을 송강호가 보여준다고 생각하면, 난 그걸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암담한 시대, 제일 많이 배운 사람들이, 제일 비열한 수법으로 약자를, 사람을, 국민을 억압하고 옥죄일 때에, 비록 계란으로 바위를 치더라도 그렇게 싸워 보겠다는,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송강호의 대사는, 두 시간짜리 영화에서 다 보여줄 수 없었을 그의 삶의 고통과 불안을 두려움과 분노를 내게 전해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리고 오늘도 계속되는 권력의 폭압적 행태를 앞에 두고,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영화관에 앉아 있는 것이다. 영화표를 사서 영화관에 들어가 그 영화를 보는 것, 관객수 1인의 수를 올려주는 것, 오직 그것 뿐이기에, 난 그렇게 했다. 두 시간이 힘들었다. 영화 보는 내내 자꾸 목이 말랐다.
영화를 만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한 시대를 열정적으로 살았던 그의 삶을 영화로 표현해낸 용감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나는 앉아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특히, 영화배우 송강호씨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영화 '26년'을 찍은 영화배우 진구에게 시나리오가 안 들어온다는 이야기가 들리는 이런 흉흉한 시대에, 송강호씨의 결단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미 연기로는 자신의 영역을 확고히한 배우지만, '정치적이다', '편향적이다'라는 평가를 받는 경우 영화배우로서의 운신의 폭이 확연히 줄어들 것임에도 송강호씨는 크게 용기를 냈다.
송강호씨의 아내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여러번의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변호인' 출연의 결정적 한 방은 박찬욱 감독이나 봉준호 감독이 아니라, 송강호 아내의 것이다.
"당신이 아주 젊고 ‘핫’하고 최고의 지위에 있는 배우라면 모르겠다. 그렇지만 산전수전, 우주전까지 겪은 당신이 겁날 게 뭐가 있나.” 아내의 말에 송강호는 내심 놀랍고 고마웠다고 당시의 심경을 전했다. “사실은 박찬욱 감독이 아니라 박찬욱 할아버지라도 아마 내 마음 10% 이상을 움직이기는 힘들 거다”라며 웃은 송강호는 “그러나 집사람은 별 것 아닌 말 한마디로 나를 움직였다”고 털어놨다. “내 마음의 99%를 바꿔버릴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집사람이다”라는 송강호의 말에서는 아내를 향한 애정이 담뿍 묻어났다. [국민일보, 쿠키인터뷰, 2013. 12. 04]
여러 사람이 용기를 내 이 영화를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