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실패의 기억
무지의 소치, 무식의 발로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전 국민의 애독서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1-남도답사 일번지]을 펴들었을 때, 나는 5장을 넘어가지 못 했다. 내가 얼마나 우리 고유의 문화를 모르고 있었느냐를 확인하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아무래도 재미가 없었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를 도대체,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시간은 흘러 흘러 바야흐로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7-돌하르방 어디 감수광, 제주도편]이 발간되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도전에 나섰다. 국내의 유명 관광지나 명승지는 안 가봐서 모른거고, 제주도는 여기 저기서 들은 풍월이 있으니, 그걸 밑천 삼아 도전해 보자 했다. 결과는 역시 참패였다. 이 시리즈는 안 되겠다, 실패!를 외치려던 찰나였다.
2. 주황색 표지
내가 유치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속물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책 안 읽는 사람들은 다 그렇더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책표지는 중요하다. 책 디자인은 중요하다. 책과의 첫 대면이 만족스러울수록, 인상적일수록 실제 독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내 경우엔 그렇다.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일본편 1 - 규슈, 빛은 한반도로부터]는 예쁜 주황색 (안 예쁜 주황색, 탁한 주황색도 있다) 바탕은 일본 전통 의상인 기모노 문양이고, 도자기는 이도 다와, 이마리야키, 가키에몬, 에가라쓰, 사쓰마야키 등 본문에 나오는 도자기 작품들이다. 제목 글씨는 조선 후기에 목판본으로 간행된 [언간독]에서 집자한 것이라 한다.
이 책을 보는 순간, 다시 한 번 도전의 열망이 솟아 올랐다. 그래, 다시 시작해보자. 국내편 7권을 다른 사람이 집필한 것도 아니고, 동일 저자의 동일 저작일텐데, 세상에, 이 책은 너무나 재미있어 술술 넘어간다. 예쁜 주황색 때문인가. 아무튼 놀라운 일이다.
3. 쌍둥이 형제 이야기
아랍인과 유대인의 경우처럼 한국인과 일본인은 같은 피를 나누었으면서도 오랜 시간 서로에 대한 적의를 키워왔다. (...) 한국인과 일본인은 수긍하기 힘들겠지만, 그들은 성장기를 함께 보낸 쌍둥이 형제와도 같다.
(6쪽, [총, 균, 쇠] (Guns, Germs, and Steel, 재러드 다이아몬드, 김진준 옮김, 문학사상사 1998, 654쪽)
몇 년 전 [총, 균, 쇠] 읽었을 때도, 뒷부분의 추가 논문 <일본인은 어디에서 왔는가>는 한국과 일본에 대한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관심과 애정이 오롯이 느껴졌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일본은 더더욱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겠지만, 외부에서는, 서구에서는 그렇게도 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 성장기를 함께 보낸 2) 쌍둥이 형제. 1) 후천적 경험의 많은 경우를 서로 공유하고 있고 2) 유전적, 생물학적 일치를 보여주는 친인척. 한국과 일본, 일본과 한국이 그러하다. 이제는 서로에 대한 콤플렉스를 이겨내고 상대국을 긍정적으로 인정해야 할 때. 일방적 시각에서 쌍방적 시각으로 옮겨져야 한다는 유홍준님의 주장은 '일본 답사기'를 시작하는 학자의 지점으로 아주 적확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 문장들은 옳다. 옳고, 웃기다.
현재의 대한민국으로 말하자면 아직 분단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지만 너도 나도 얘기하듯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 남한만으로도 더 이상 일본에 꿀릴 것이 없다. 바둑도 피겨스케이팅도 골프도 우리가 더 잘 한다. (5쪽)
하핫. ^^
임진왜란이 후대에 주는 교훈이 한둘이겠습니까마는 지금 이 자리에서 떠오르는 것 두 가지만 얘기하겠습니다.... 첫째는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임진왜란의 전승국은 조선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일본의 침략을 물리쳤죠. ... (중략) ... 조선은 전승국이었기 때문에 전후 국가 재건 사업에 박차를 가하여 더욱 강한 나라가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 결과 100년 뒤 숙종, 영조, 정조 연간의 문예부흥을 맞게 됩니다. 이에 반해 일본은 패전국에서 당연히 일어나는 정변이 일어납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에도 막부로 정권이 교체되죠. 이때 동아시아의 정세가 요동을 쳐 명나라는 청나라에 망하게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조선이 건재한 것은 전승국이었기 때문입니다. (79-80쪽)
임진왜란 직후 조선의 상황은 끔찍했을 것이다. 국토 전체가 전쟁터였으니, 여기저기 시체가 즐비했을테고, 젊은 남자들은 모두 전쟁터에 동원되었을테니, 전후 작업도 암담했을 것이다. 무능한 조정은 임금을 가운데에 두고 여기저기 도망다니기 바빴을테니 위신이 안 섰을테고, 명군의 도움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전쟁터에서는 관군보다 의병이 주력 부대였으니, 버려진 논밭은 황폐해질대로 황폐해졌을 것이다. 이 모든 전란의 책임은 조선에 있다. 이것은 조선의 당쟁 싸움 때문이다,라고 배웠다. 그래서, 전쟁의 원인과 전쟁의 진행, 전쟁의 결과를 조선이 모두 감당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렇게 배웠다.
그런데, 유홍준은 말한다.
"조선은 전승국입니다. 일본의 침략을 물리쳤죠."
맞다. 조선이 전승국이다. 일본도 중국도 패전의 상황 때문에 정권이 교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큰 흔들림 없이 나름대로 전후 복구 사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패배주의에 찌든 비관적 판단은 그만. 민족주의를 앞서운 어설픈 해석도 사양. 사실을 사실대로만 말한다.
조선은 전승국이다.
오징어를 먹으면서 나는 근래에 와서 읽은 정약전(1758~1816)의 [현산어보]가 떠올랐다. 그의 흑산도 유배 시절 저술한 [현산어보]는 [자산어보]라고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이는 한자를 잘못 읽은 것이다. (96쪽)
유흥준님이 얼마나 타고난 이야기꾼인지 여실히 드러난다. 이런 식이다. 오징어를 먹으면서 오징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현산어보]를 떠올리고, [현산어보]를 이야기하자니 정약전과 그의 삶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오징어-현산어보-정약전을 넘나드는 이 찰진 이야기를 그 누가 지루하다 하리요.
가라쓰야키는 처음부터 끝까지 조선 분청사기 기법에 기초를 두고 있으면서 이를 일본식으로 변화, 발전시킨 것이다. (120쪽)
그들은 우리의 분청사기를 미시마, 하케메, 고히키, 가타데 등으로 더욱 변화, 발전시켰다. 이렇게 섬세하게 분류해서 부를 수 있는 것은 그만큼 그 미감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는 얘기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도자기에 대해 거의 무관심하다. 고려청자, 조선백자, 조선 분청사기가 뛰어나다는 주장만 했지 생활 속에서 그것을 즐기지 않고 있다. 그러나 조선 도자의 가치를 일본인들은 일찍이 알아챘고 그것을 생활 속에서 마냥 즐기고 있다. 우리는 고유기술을 갖고 있었지만 그것을 활용할 줄 몰랐고, 일본은 그 고유기술을 통째로 가져가 자신들의 위대한 도자기 문화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반성할 대상은 우리 자신에 있다. (123쪽)
도자기에게까지 갈 것도 없고, 그릇에도 접시에도 관심이 없는 나는 시집올 때 엄마가 사 주신 '한국도자기'를 아직까지 사용한다. 백화점에서 5만원이상 구매시 주었던 사은픔 면기세트도 잘 사용하고 있다. 이쪽으로는 도통 관심이 없다. 물론, 우리 나라에도 그릇에 관심이 많은사람들이 있을테다. 다른 집에 놀러갔을 때, 근사한 찻잔이나 그릇을 볼 때가 종종 있다. (물론, 나는 그 유명한 찻잔과 그릇의 이름도 모른다. 그 엄마들께 죄송^^)
일본 사람들은 우리의 분청사기를 더욱 변화, 발전시키고, 유럽의 주문에 따라 다채롭게 제작했다니 정말 대단하다. 책에서도 확인되다시피, 임진왜란, 정유재란때에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들은 대부분 공주, 남원, 김해, 울산 등 삼남 지방의 도공들이었다. 조선시대의 관요가 있던 경기도 광주등의 뛰어난 도공들은 조선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그들이 만들던 가마터에 대한 조사나 연구는 이루어진게 없다고 한다. 그 때도 그랬고, 지금도 도자기에 대해 거의 무관심하다. 조선 도자의 가치를 알아채고, 그것을 생활속에서 만끽하는 일본인들의 미적 감각이 조금, 부럽다.
당시 번주는 이런 장관의 무지개 솔밭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400년 뒤 후손들은 이런 행복을 누릴 것을 알았기에 어린 묘목을 100만 그루나 심은 것이었다. 똑똑한 지도자 한 분 만난다는 것이 국가와 국민에게 얼마나 큰 복인가를 이 솔밭이 말해준다. (107쪽)
위의 문장은 책 전체를 통틀어 가장 슬픈 문장이다. 똑똑한 지도자 한 분 만난다는 것이 국가와 국민에게 얼마나 큰 복인가. 아, 그런 적도 있었는데. '잃어버린 10년'에는 어디에 내놔도, 심지어 오만방자함이 하늘을 뚫고 태양계를 지나 은하계에까지 가버릴 듯한 신출내기 검사들 앞에서도 논점을 잃지 않으시고, 그러면서도 신사적 품위를 유지하셨던 '똑똑한 지도자' 한 분 계셨었는데, 아, 근래 몇 년은... 참, 복도 지지리도 없다.
4. 골든벨 문제
신랑이 필요하다 해서 엄청 쉽고, 간단한 것들로만 골든벨 문제 10항을 급조했으나, 마감을 맞추지 못 해 폐기처분되었다. 속상한 마음에 여기에 올려본다.
나중에 '조선 분청사기 기법에 기초를 두고 일본식으로 변화, 발전된 토기의 형태는?'하고 누가 묻는다면, '가라쓰야키'하고 대답하지는 못하겠지만, '일본의 도조라 일컬어지는 조선의 도공은?'하고 묻는다면, '이삼평' 정도는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 일본편 1 규슈]
1. 저자는 [총, 균, 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말을 인용해 한국과 일본이 상대국을 부정하는 일방적 시각에서 서로를 인정하는 쌍방적 시각으로 옮겨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재러드는 "아랍인과 유대인의 경우처럼 한국인과 일본인은 같은 피를 나누었으면서도 오랜 시간 서로에 대한 적의를 키워왔다. (...) 한국인과 일본인은 수긍하기 힘들겠지만, 그들은 성장기를 함께 보낸 000 형제와도 같다. (6쪽)"라고 말했는데요, 위의 글에서 빈 칸에 들어갈 말은 무엇입니까?
정답 : 쌍둥이
2. 일본 훗카이도와 사할린에 일부 남아 있는 아이누족은 털이 많고, 키가 작으며 얼굴이 네모지며 눈에 쌍꺼풀이 있는 폴리네시아인 계통으로 짐작됩니다. 수렵, 채취 생활을 영위했던 이들이 만들었던 토기로, 그릇 바깥 면을 마치 새끼줄로 덧붙인 것같이 장식해서 그 이름을 얻은 토기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정답 : 조몬토기
3.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을 위해 축조했던 거대한 성으로 총 면적이 50만평에 이르는 임진왜란 침략 기지는 무엇입니까?
정답 : 히젠 나고야성
4. 저자는 말하기를 임진왜란이 주는 중요한 교훈 중 첫번째로 이것을 들었습니다. 조선이 전쟁 후에 전후 국가 재건 사업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던 것도, 100년 후에는 숙종, 영조, 정조 연간의 문예부흥을 맞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이것 때문이라고 보았는데요.
일본은 패전국에서 당연히 일어나는 정변이 일어납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에도 막부로 정권이 교체되죠. 이때 동아시아의 정세가 요동을 쳐 명나라는 청나라에 망하게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조선이 건재한 것은 (조선이) 000이었기 때문입니다. (79-80쪽) 라고 평가했는데요, 빈 칸에 들어갈 말은 무엇입니까?
정답 : 전승국
5. 현재 200명 정도가 살고 있는 일본의 작은 섬으로 약 2만 그루의 동백나무가 자생하는 동백섬으로 유명합니다. 백제 무령왕이 태어난 곳으로 알려진 일본의 섬은 무엇입니까?
정답 : 가카라시마
6. 일본에서 오징어를 먹으며 저자는 오징어에 대한 이야기 뿐만 아니라, 흑산도 근해의 수산물의 이름, 분포, 형태, 습속을 조사한 정약전의 저서를 떠올렸습니다. [자산어보]라고도 알려져 있으며, 현재까지도 학술적 가치를 높이 평가받고있는 정약전의 저서는 무엇입니까?
정답 : 현산어보
7. 가가미 신사는 일본에서 전쟁의 화신처럼 여기는 진구 왕후를 모신 신사입니다. 이 신사에는 유명한 고려 불화가 보관되어 있는데요, 김우문 또는 김우가 그리 작품으로 고려 불화 중에서 유일하게 높이 4미터가 넘는 대작입니다. 이 불화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정답 : 수월관음도
8. 일본의 3대 대표 토기중의 하나로, 일진왜란 이후 일본으로 끌려온 조선 도공들에 의해 세워진 가마터에서 만들어진 토기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조선 분청사기 기법에 기초를 두고 있으면서 이를 일본식으로 변화, 발전시킨 토기의 형태입니다. 이 토기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정답 : 가라쓰야키
9. 임진왜란 당시 다케오의 번주인 고토 이에노부에게 끌려온 김해의 도공 김태도의 아내로, 아리타의 히에코바에서 천신산 가마를 열고 백자를 생산해낸 사람입니다. 문근영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MBC사극 [불의 여신 정이]가 이 사람의 이야기를 허구로 꾸민것인데요, 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정답 : 백파선
10. 정유재란 때 번주인 나베시마 나오시게에게 끌려와, 도자기 가마의 책임자로 임명받고 가나가에 산페이라는 일본 이름을 얻었으며, '덴구다니 가마'를 열어 일본 최초의 백자를 생산해낸 사람입니다. 일본 자기의 시조의 추앙받는 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정답 : 이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