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또또 강신주다.
나는 전작주의자가 아니고, 그럴 만한 능력도, 생각도 없는 사람이지만, 강신주니까, 강신주 책이니까 읽는다.
난 강신주가 좋다.
이번에 정해진 서열은 거의 확정적인데, 강신주는 서인국보다 섹시하다. 물론, 서인국 앞의 앞은 홍광호다. 홍광호는 부동의 1위, 강신주랑 서인국 정도가 같이 덤벼야 1위 탈환이 가능하다. 이번 주의 인기투표는 이렇게 마무리하고.
날개 돋친 이 길손, 얼마나 기가 죽어 어색한가!
전에는 그토록 아름답더니, 얼마나 우습고 초라한 몰골!
골통대로 부리 건드리며 약올리는 사람에.
절뚝거리며, 못 나는 병신 시늉을 해대는 사람!
폭풍 속을 넘나들며 활잡이를 비웃는
이 구름의 왕자를 닮은 것이 바로 시인.
땅 위로 쫓겨나 놀림당하는 마당에서는,
그 거인 같은 날개 때문에 걷지도 못하다니.
-보를레르, 「알바트로스」 (『악의 꽃』) (38쪽)
알바트로스는 추운 북극 지방에 서식하며, 커다란 날개로 매우 높이 그리고 아주 의연하게 날 수 있는 새로 유명하다(38쪽). 그러나 위엄 있게 하늘을 날던 알바트로스가 땅에 착륙할 때의 모습을 직접 본 사람들은 웃음을 참지 못 한다고 한다. 떼굴떼굴 구르다시피 땅에 착륙하는 알바트로스의 모습이 너무나 우습기 때문이다. 하늘 높이, 의연하게 날 수 있게 해 준 알바트로스의 커다란 날개가 땅 위에서는 짐스러울 뿐이다.
알바트로스의 모습은 하늘의 삶을 꿈꾸지만,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시인의 삶을 닮아있다. 시인은 그의 상상력을 펼치며 창조의 공간을 날아다니는 사람이지만, 땅 위에서는 ‘쫓겨나 놀림을 당’할 뿐이다. 시인이 꾸는 꿈, ‘거인 같은 날개’ 때문이다.
살육과 분쟁을 근본적으로 종식시키기 위해서 노자가 철저한 국가주의를 선택한다면, 장자는 국가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부인하고 개체들에게 긍정적인 삶의 전망을 제공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다. 결국 두 사람의 사상을 묶는 데 사용되는 ‘도가사상’이나 ‘노장사상’이란 범주는 실제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사후에 구성된 상상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86-7쪽)
이 책에서 지은이가 말하고자 하는 한 가지 생각, 그가 전하고자 하는 한 가지 생각이 이 문단에 표현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쉽게 생각하듯이 장자는 복잡한 세상사를 뒤로 하고, 흰 수염에 부채를 들고 산 속에서 신선놀음이나 즐기자는 ‘노장사상’으로 간단히 묶여버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자가 철저한 국가주의를 통해 개인의 삶보다 공동체, 국가의 존립 및 유지에 큰 의미를 두었던 것에 반해, 장자는 각 개인의 삶의 긍정적인 전망을 중시했다는 것이다.
강신주는 장자의 이러한 사상의 배경으로 양주, 송견, 혜시를 꼽았다.
개체의 삶보다는 공동체의 유지를 우선시하게 될 때, 우리 삶은 단지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양주는 우리의 삶 자체가 다른 무엇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고유한 절대적 목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162쪽)
우리의 삶 자체는 다른 무엇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절대적 목적이다.
우리 각 개인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절대적 목적이다.
내 삶 자체는 다른 무엇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환원될 수 없는, 절대적 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