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승호가 묻고 강신주가 답하다.

어느 순간 유령으로 변한 것 같은 자신의 모습에 실망했던 지승호가 강신주의 이야기를 듣는다. 가면을 벗고 자신의 ‘맨얼굴’에 대면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강신주도 맨얼굴이다. 생얼의 남자 둘, 멋있다.

1. 그가 바라는 것

그렇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딱 한 가지입니다. 저의 책이나 강연이 여러분 스스로 한 번밖에 없는 자신의 소중한 삶을 돌아보고, 자신만의 삶의 주인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도록 여러분을 자극했으면 좋겠다는 것 말입니다. (597쪽)

프롤로그를 읽어 지승호의 마음을 헤아리고, 에필로그를 읽어 강신주의 마지막 당부를 먼저 확인했다. 그렇다. 그가 바라는 것은 이것이다. 내가 나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는 것, 그렇게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인문학자인 그가 책을 읽는 내게 바라는 바다.

2. 삶이 투영되는 책읽기

아까도 얘기했지만, 체제는 항상 우리를 사랑 못 하고 교감 못 하게 쪼개놔요. 경쟁시키고. 그래서 마르크스도 분업이 최악의 원리라고 한 거예요. 시는 그걸 가로지르는 거예요. 그러니까 시를 읽고 고전을 읽으면서 동시대와 교감하고 윗세대와 공감하며 교감의 폭을 넓혀야 해요. 자기가 반영돼 있는, 자기의 삶이 투영되는 책 읽기를 해야 하는 거죠. (215쪽)

아름다운 미사어구에 감동받거나, ‘내가 시집을 읽는다’는 여유에 빠질 때가 아니다. 시를 통해 동시대와 교감하고 윗세대와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나를 반영하는 투명한 책 읽기를 해야 한다.

3.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내가 진짜 제대로 사랑을 하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읽히는데, 내가 베르테르였으면 그렇게 했을 것이고 베르테르가 나였으면 나처럼 사랑했을 거라는 경지에 오를 때 느껴지는 공감과 울림이 있어요. 이게 인문학적 독법의 핵심이에요. 역사책을 읽든 고전을 읽든. 이게 왜 중요하냐면 우리의 의사소통 가능성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에요. (315쪽)

책 전체를 통틀어 서너 번이나 반복된 이야기이다. 진짜 제대로 사랑을 하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제대로 읽힐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이 책을 읽었다. 5학년으로서, 5학년만큼의 생각의 범위 내에서 나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제대로 읽었다. 그 때, 나는 베르테르처럼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유치하고, 미숙하고, 어설프기는 했지만, 그 때 나는 사랑하고 있었다. 나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제대로 읽었다.

4. 뇌사와 장기기증

의학 분야에서는 미국만 해도 육체를 줄 수 있다고 인정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미국은 굉장히 보수적이에요. 적어도 철학적으로는. 문제는 우리 출판계가 미국 책을 너무 많이 번역한다는 거예요. 뇌에 대한 책이 너무 많이 나오잖아요. 뇌사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됐잖아요. 그런데 뇌사는 그렇게 나이브하게 볼 문제가 아니라고요. 장기 기증의 문제가 없으면 뇌사는 중요한 게 아니에요. 뇌에 대한 문제는 곧 장기 기증 문제라고요. 뇌사가 한 번 죽음으로 인정돼버리면 장기는 소유주가 없는 게 된단 말이에요. 그 사람이 죽기 전에 기증하기로 했다거나 가족이 없다면 장기의 소유권이 없는 거예요. 마치 해부학 실험실에 있는 시체처럼 어떻게든 할 수 있는 사물이 되는 거예요. 그게 위험한 거죠. (456쪽)

한 때, 장기 기증 서약을 하는 게 유행인 때가 있었다. 특히, 각막에 대한 기증 서약이 유행했는데, 유명인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 서약에 동참했다. 나는 미래의 ‘언젠가’ 불의의 ‘사고’가 나서, ‘뇌사 판정’을 받아, 내 ‘각막’을 ‘전해준다’는 가정 자체가 무서웠다. ‘각막’을 준다는 건, 의학적으로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걸 전제할 테니까.

5. 자살

자살은 스스로에 대한 폭력이에요. 왜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느냐면 내가 패배자이기 때문이에요. 내가 스스로 패배자인 나를 단죄하는 거예요. 자신에 대한 처형 행위죠. 내가 어떤 사람을 때리거나 죽인다는 것은 그 사람을 부정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패배자고 못난 모습이기 때문에 나를 제거하는 거예요.

경쟁 사회에서는 경쟁을 내면화해요. 나 스스로가 이 경쟁에, 게임에 뛰어든 거예요. 그런데 내가 졌으니까 끝난 거예요. 누구 탓이 아닌 거죠. 이런 논리로 자살을 하는 거거든요. 애초에 경쟁 판에 안 뛰어들고 ‘왜 너희가 경쟁 판을 만들어?’ 하는 사람은 안 죽어요. 경쟁 판에 뛰어든 아이들, 1등 하는 아이들이 죽는 거예요. (485-6쪽)

6. 자기 계발서

모든 인생론은 가짜예요. 내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느냐의 문제로 화두를 던지잖아요. 세계를 어떻게 바꾸겠다는 화두가 아니라, 자기계발서의 핵심은 나만 바뀌면 된다는 거예요. 세계는 한 번도 안 바뀌어요. 인생론과 자기계발서를 믿는 사람들은 나중에 자살을 해요. 우리 사회가 <쇼펜하우어 인생론>의 자본주의화된, 세속화된 버전이거든요. 열심히 자기를 계발하는 거죠. 계발하면 자본주의가 좋아해요. 노예가 되기 위해서 노예적 기능을 익히는 거예요. (488쪽)

7. 글쓰기

블로그는 초보적 글쓰기로는 괜찮은 것 같아요. 블로그의 매력은 자기가 쓴 글에 코멘트가 달린다는 거예요. 이 글이 어떻게 읽히는지를 보는 걸 통해 글의 수준을 올릴 수 있으니까 블로그가 활성화되면 굳이 대학원 안 가도 돼요. 왜냐하면 문과대 대학원은 사실상 글쓰기 연습이거든요. 철학과 같은 경우는 자기가 글 써서 발표하고 코멘트 듣는 과정이 있고요. 매번 리포트라든가 완성된 글을 쓰는 거잖아요. 그러면서 교수한테 평가도 받고. 그런데 블로그에 쓰면 구태여 대학원 다닐 필요가 없을 거 같아요. 글쓰기 연습은 될 수 있죠. (508쪽)

강신주는 초보적 글쓰기로 블로그를 추천한다. 블로그가 활성화되면 굳이 대학원에 안 가도 된다고 말한다. 초보적 글쓰기라, 좋았어, 한 번 해 보자. 초보적 글쓰기.

8. 산

산에 가면 저는 거의 안 먹어요. 사람들 끌고 가느라. 기질적으로 그렇게밖에 못 해요. 치명적으로 저 자신을 해쳐요. 끊어버려야 하는데 못 끊어요. 시작하면 끝까지 가요. 혼자 속 아파하면서. 짐이 무거워서 힘든 게 아니에요. 저를 의지하고 제 마음을 조금만 이해하면 업고도 가요. 그게 아니라 사람들의 성숙하지 못한 모습, 배신감, 이런 게 상처가 되고 힘든 거죠. (512쪽)

강신주는 사진을 보던, 인터넷 강의를 잠깐 보던, ‘강하다’는 인상이 지배적이다. 날카롭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그런데, 지방 강의 얘기라던가, 산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가 얼마나 여린 사람인지 가감없이 느껴진다. 자신이 말한 대로, 인문학적 정신에 입각해서 다른 사람들을 ‘맨얼굴’로 대하다 보면, 상처를 많이 받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강팍한 세상을 자신이 가르치는 대로 살아가려니, 순수하게, 정직하게 살아가려니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든다.

9. 맨얼굴

정직하다는 것은 맨얼굴이고, 동심이고, 감정을 드러내는 거니까 그만큼 상처도 많이 받아요. 내 맨얼굴을 저 인간이 못 받아들이네, 이런 것도 빨리 알고요. 그러면 그 인간이랑 안 만나면 돼요. 계속 나보고 가면을 쓰라고 하는 인간들이 있어요. 그런 인간들은 안 만나야죠. ... 누구를 사랑하려거나 누구한테 사랑받으려면 가면을 벗어야 해요. 동심을 가져야 해요. (586-7쪽)

나보고 가면을 쓰라고 하는 인간들을 만나지 말자.

10. 추천도서

<시여 침을 뱉어라>, <벽>은 확인해야봐야 한다.

이성복, 황지우, 함민복, 김현, 김윤식의 글은 찾아봐야 한다.

<이상연구>, <이광수와 그의 시대>, <임화연구>, <파시즘의 대중심리>,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무소유>, <오래된 미래>, <스펙타클의 사회>는 읽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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