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미친 사람들이

결국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다.

- 애플의 1997년 광고 '다른 것을 생각하라 (Think Different)'

1. 드디어 끝났다.

시키지도 않은 일을, 다했다고 누가 칭찬해주지도 않을 일을, 스스로의 숙제라 여기고, 열심히 달리고 달려, 드디어, 끝냈다. 스티브 잡스.

“아니, 무슨, 자서전을 그렇게 정독해? 슬슬 보는거지!” 잔소리하는 신랑을 뒤로 하고, 나는 잡스와 즐거운 열흘을 보냈다. 큰 기지개를 한 번 펴고는, 신랑에게 말했다.

“자기야, 나 이 책 읽고 얻은 결론은 이거야. 아이폰 아니면 안 해!”

“하지 마라!”

2. 폴 잡스와 클라라 잡스

잡스 스스로는 친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사실이 자신에게 미친 영향이 거의 없다고 말했지만, 버림받음, 선택받음, 그리고 특별함은 잡스 정체성의 일부였고, 스스로를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이 되었다. (25p)

“저는 항상 저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요. 부모님이 그렇게 느끼도록 해 주셨어요.” 누군가가 폴 잡스와 클라라 잡스를 그의 '양부모‘라고 부르거나 ’진짜‘ 부모가 아니라는 식으로 얘기하면 그는 신경을 곤두세우곤 했다. “그들은 1000퍼센트 제 부모님입니다.” (26p)

버려졌다고 울고 있는 아이에게 “아니야, 우리가 너를 특별히 선택한 거란다.”라고 힘주어 말해주는 부모는 그 아이의 진짜 부모다. 부모 자격이란게 존재하다면, 폴과 클라라는 진짜 ‘부모의 자격’이 있다.

1972년 가을 잡스의 입학식이 다가오자 부모는 그를 포틀랜드까지 차로 데려다 주었다. 그러나 반항심이 발동한 잡스는 부모가 캠퍼스에 발을 들여 놓지 못하게 했다. “인생에서 가장 부끄럽게 기억하는 순간 중 하나입니다. 너무 무심한 태도로 부모님께 상처를 준 것이지요. 그러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저를 그 곳에 보내기 위해 그렇게 많은 희생을 치르신 분들인데, 따라 들어오지도 못하게 했으니...” (69p)

자식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고, 그 희생을 당연하다 여기는 수천, 수만의 기러기 아빠, 펭귄아빠, 그리고 수천, 수만의 매니저맘, 헬리콥터맘이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부모가 자식의 대학등록금을 대는 일이 당연한 일이다. 슬프지만, 당연한 현실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그것도 입양한 아이의 대학 진학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부모는 찾아 보기 힘들다.

3. 애플 Ⅱ

사진 125p

기술적인 면에서 이 제품이 이룩한 업적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외관에서 풍기는 독특하고도 특별한 느낌은 강렬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이 제품이 1977년에 만들어졌다는 걸 믿기 어렵다.

4. 현실 왜곡장

‘현실 왜곡장’이라는 말은 어느 정도는 잡스가 거짓말을 하는 성향이 있다는 사실을 수사적으로 그럴듯하게 표현한 것뿐이었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거짓말보다 훨씬 더 복잡한 유형의 조작 행위를 가리켰다. 세계 역사와 관련된 특정 사실이든, 회의에서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누구였는지에 대한 기억이든, 그는 진실은 고려하지 않은 채 단언하듯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러한 행위는 의도적인 현실 거부에서 비롯했으며, 결국 타인 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기만하는 것이었다. (200p)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아이디어 회의에서 잡스의 부하직원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잡스는 '쓰레기 같은 이야기는 다 집어치우라'며 특유의 독설로 부하 직원을 질책한다. 일주일 뒤, 잡스는 그 직원을 찾아와 자기에게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있다고 말한다. 들어보니, 저번주에 자신이 했던 이야기다.

"그 얘기, 지난 주에 제가 했던 이야기잖아요?"

"그래, 그러니까...."

"....."

상황에 근거해 두 가지를 추론해 볼 수 있는데, 1) 잡스는 현실과 상관없이 자신이 그렇다고 믿으면, 그것만을 믿는다는 것과 2) 그러하기에 다른 사람들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속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잡스 아닌 다른 사람이 이런 성격이었다면 어떨까? 만약 이런 사람이 시어머니라면? (답은 하지 않는게 좋겠다. 인생은 긍정적으로 살아야지, 제맛이다.)

“그가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그게 이득이 되어서가 아니라 그게 그의 천성이기 때문이다.” 정당하다고 느낄 경우 종종 사람들을 오도하거나 진실을 숨기는 것이 잡스 성격의 일부였다. 반면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포장하거나 감춰 두는 사실을 말함으로써 잔인할 정도로 솔직해지는 때도 있었다. 의도적인 거짓말과 지나친 솔직함 모두 일반적인 규칙들이 자신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그의 니체 철학적 태도의 여러 측면일 뿐이었다. (496p)

이게 바로 잡스 거짓말의 이유다. 잡스가 아주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가정했을 경우, 참, 세상 살기 편하다.

5. 잡스를 다루는 법

가세(프랑스 지사장)는 잡스의 출장 중 그에게 당당하게 맞서는 데 성공한 몇 안 되는 인물 중 한 명이었다. “스티브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가세가 나중에 말했다. “그를 상대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보다 더 심하게 진상을 부리는 겁니다.” (308p)

'현실 왜곡장'에 살고 있는 잡스와 소통하고 싶으면 어떡해야 할까? 잡스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닐테지만, 잡스는 항상 소리지르며 자신만이 옳다고 우길텐데, 그럴 땐 어떡해야 하나? 잡스 진상 전문가 가세에 의하면 "그보다 더 심하게 진상을 부리는 것"이란다. 같이 진상을 부리다 보면, 잡스가 조용해진다고 하니, 그런면에서 보면 잡스는 '어린 아이' 같기도 하다.

6. 워즈, 애플을 떠나다

당시 워즈는 애플 Ⅱ 부문에서 중간급 엔지니어로 조용히 일하고 있었다. 경영이나 사내 정치와는 최대한 멀리 떨어져, 그저 회사의 뿌리를 상징하는 겸손한 마스코트로서 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는 잡스가 애플 Ⅱ를 제대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느꼈고, 그렇게 느낄 만한 정당한 근거도 있었다. ... 화가 났을 때조차도 곰 인형처럼 온순했던 워즈는 다른 디자인 회사를 찾고 나서도 계속 애플의 대변인 역할을 맡기로 했다. (321p)

헌 차고에서 애플 컴퓨터를 만든 사람, 문자적인 뜻 그대로 애플 컴퓨터를 창조한 사람이 애플을 떠났다. 창업주가 회사를 떠나, 다른 회사에 입사한다고? 우리나라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면서 한 가지가 더 명확해졌다. 즉, 스티브 워즈니악이 애플을 만들어 이 세상에 '내놓았지만', 워즈에게 애플을 판매해 보자고 제안해, 이 세상에 애플을 '소개'한 것은 잡스라는 사실말이다.

7. 인생에서 현명한 닻, 파월 로렌

그는 결국 옳은 선택을 했다. 레지(잡스가 사랑했던 또 한 여인)가 친구들에게 말했듯이, 그녀가 잡스에게 돌아갔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고, 그들의 결혼 생활 역시 마찬가지였을 터였다. 레지와의 영적인 유대감을 그리워하긴 했지만, 그는 파월과 훨씬 더 안정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는 파월을 좋아했고, 사랑했으며, 존경했고,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을 편안해했다. 신비스러워 보이지는 않았을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그의 인생에 현명한 동반자가 되었다. (434p)

어린시절의 좌절이나 방황이 평생에 걸쳐 영향을 준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어린시절의 좌절이나 방황 때문에 불안정한 성격을 가질 수는 있다. 불안정한 성격은 평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잡스는 뜨거운 열정의 사람으로, 온 몸을 던져 사랑하는 사람이었지만, 또한 갑자기 냉랭하게 돌아서는 사람이기도 했다. 로렌 파월은 똑똑했고, 강했으며, 무엇보다도 안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녀는 훌륭하게 가정을 지켜냈다.

8. 밥 딜런

잡스가 기억하는 한, 그가 너무 긴장해서 말이 잘 안 나온 적은 오직 밥 딜런을 만났을 때뿐이었다. ... 딜런은 남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보노나 데이비드 보위와는 달랐다. 그는 잡스의 친구가 된 적이 없었으며, 그러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그런 그가 콘서트를 앞두고 잡스를 자신이 묵고 있는 호텔로 초대했다. (659p)

<One Too Many Mornings>, <Mr. Tambourine Man>, <Someday Baby>. 잡스가 좋아한 밥 딜런의 노래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One Too Many Mornings>가 제일 내 정서에 가깝다.  인문학과 과학의 교차를 중시한 잡스는 밥 딜런의 노래가 아이팟을 통해 전해진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뿌듯해했다.

9. 암 그리고 재발

잡스는 마스크를 벗겨 내고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들어서 쓰기 싫다고 투덜거렸다. 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마스크를 다섯 가지쯤 가져오라고, 그러면 자신이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고르겠다고 지시했다. (763p)

이런 환자 본적 있나. 마스크 디자인 마음에 안 든다고 마스크 안 하겠다는 사람. 이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스티브 잡스. DNA 분석을 통해, 염색체 지도를 완성하고 당시 최신 연구 결과를 토대로 암수술 및 치료가 이루어졌지만, 암은 잡스의 ‘현실왜곡장’ 밖에 있었나 보다. 저자는 잡스 질병의 이유 중의 하나로 젊었을 때부터 고수해온 ‘극단적인 채식’을 들고 있다.

10. 위대한 유산

내가 하는 모든 것은 다른 사람들의 노고와 우리가 올라설 수 있도록 어깨를 빌려 준 사람들의 성과에 의존한다. 그리고 우리 중 많은 사람들 역시 인류에게 무언가 기여하기를, 그러한 흐름에 무언가 추가하기를 바란다. ... 우리는 우리가 가진 재능을 사용해 깊은 감정을 표현하고 이전 시대에 이뤄진 모든 기여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하고 그 흐름에 무언가를 추가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이 나를 이끌어 준 원동력이다. (886p)

앞선 사람들이 어깨를 빌려준다. 뒤에 오는 사람들이 그 어깨를 밟고 일어서 또 하나의 지지대가 되어준다. 잡스는 완벽한 제품을 만들고 싶어했다. 보기에 아름다울뿐만 아니라 사용하기에도 편리한 제품을 만들고 싶어했다. 잡스는 오랫동안 기억될 기업을 만들고 싶어했다. 애플은 시장점유율은 그리 높지 않지만, 제품만족도와 시장을 이끄는 위치면에서 가히 독보적이다. 혁신적인 제품, 혁신적인 기업이 탄생했다. 이전 시대에 이뤄진 모든 기여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하고, 그 흐름에 무언가를 추가하기 위해, 잡스는 최선을 다했다. 그의 몫을 다했다.

11. 그리고, 나꼼수

애플의 아이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여러 가지 혜택이 있을 것이다. 새로운 세상이 열렸을 것이다. “~할 것이다“라고 추정할 수 밖에 없다.

지난달 저녁 자리. 핸드폰을 만지작거리시던 아빠가 말씀하셨다. 스마트폰 사용자가 이천만이 넘는다면서? 네, 그렇대요. 우리 나라 인구가 얼마냐? 사람들 거의 다 스마트폰이지.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다 스마트폰이야. 그 다음주에 아빠는 핸드폰을 바꾸셨다. 내 전화기는 스마트폰이 아니다. 하지만, 스마트폰, 특히 아이폰이, 이 세상에 크게 공헌한바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바로 “나꼼수”의 탄생을 가능케 한 것이다.

시내의 작은 녹음실에서 남자 넷이 앉아, 시시덕거리며, 욕을 남발하며, 그리고, 사실 관계를 확인하며 나눈 이야기를 팟캐스트에 올렸다. 한주, 두주, 세주,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나꼼수“는 정치분야에서 1위를 차지하더니만, 마침내 전체 1위에 등극, 팟캐스트의 본산 미국에서도 어리둥절, 도대체 저 방송내용이 뭐냐 하도 궁금해해서, 후에는 인트로에 영어로 간단한 안내까지 나가게 되었다. ”이 방송은 꼼꼼하신 우리의 대통령 각하 헌정 방송입니다. 대통령의 이름은, 이명박, 이명박, 이명박~~~~“

12. 내 몫

안철수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100년 후의 사람들도 잡스를 기억할 것이다. 혁신을 위해 최선을 다한 그의 열정을 말이다. 100년 후까지는 아니어도, 아니, 사람들에게 기억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지금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작더라도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 난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난 내 몫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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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03-15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라보~~~ 멋진 리뷰에요!
아니 여성이니까 부라미라고 해야 되는 건가....^^

단발머리 2012-03-16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 순오기님 오셨네요. 제 방에서 뵈니 더 반갑습니다. ㅋㅋ 책 두께에 비례하면, 리뷰가 좀 짧은 감이 있지요. 잡스님 땜에 딴 책들이 다 구석으로 밀려서는 깊은 밤 울부짖고 있습니다. 빨랑빨랑 리뷰쓰는 방법 있을까요?

순오기 2012-03-22 15:5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익숙한 아이디를 내방에서 만나는 건 기쁨이 배가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