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깐 시작이 다꾸였던 건 아니고, 증발해버린 시간을 찾다 찾다 그렇게 된 거였다.
오후에만, 더 정확하게는 오후에만 잠깐 일을 하니깐, 원칙대로라면 오전에는 시간이 좀 남아야 되는데, 그게 안 되어서 어찌 된 일인가 싶었다. 아침에 요가(라고 썼지만 사실은 요가 매트 깔고 누워서 핸폰)하고, 빨래 한 판 돌리고, 빨래 건조기에 넣고, 아롱이랑 아침 먹고, 설거지하고 청소기 한 판(이틀에 한 번) 돌리고 나면, 씻고 나갈 시간이다. 돌아와서는 저녁 먹고, 치우고, 30분 산책 다녀오면, 곧 잠잘 시간. 일상을 충실히 사는 게, 하루를 충만하게 사는 게 행복한 인생이라 그러던데, 내 일상은 충만한가.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일상,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일상은 이렇게 채워지는 건가. 스크린타임 설정을 오프에서 온으로 바꿔놓은 뒤 내가 핸드폰과 얼마나 친하게 지내는지 알게 된 이슈에 대해서는 여기에 적지 말기로 하자. 소리 없이 지나버리고, 소문 없이 스쳐 지나가는 시간을 적어두려고 다이어리를 샀다.

원래 텐미닛 플래너 쓰고 있는데, 최근에 열흘 정도 밀렸다. 이제 5월인데, 벌써 5월인데, 시퀀스 10시퀀스 다이어리를 구매하였고. 알고 보니 이 세계는 아름다운 손글씨와 깜찍한 스티커와 알록달록 마스킹 테이프의 세계인 것을 이제야 발견한 나. 다이어리 쓰기 시작해서 12월까지 도착한 일이 한 번도 없었던 나이기에 어쩌면 당연하다. 아니, 다이어리 쓰기를 1월에 시작해서 12월까지 쓰는 사람이 있어? 진짜 그런 사람이? 있었다. 그런 사람이 있더라.

민음사 이벤트가 눈에 띈다. (https://www.aladin.co.kr/events/wevent.aspx?EventId=308593&start=welcomepop)
저 가방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갖게 된다면 내 평생의 The Book 『제인 에어』로 해야 하냐, 즐겨 읽는 『오만과 편견』으로 해야 하나 고민 중에, 세계문학전집 테스트 코너가 있어 해보았다. 12개의 질문에 답하면서 나와 닮은 세계문학 전집을 찾아보라는 건데, 나한테 맞는 책은 『죄와 벌』이라고 한단다. 도선생이 내 스타일이라는걸, 나는 알고 있었다.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